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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26/2012.10] 논단 _ 불투명한 정치관행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7 조회수 60

[Vol.26 /2012.10] 논단 _ 불투명한 정치관행들

박승준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공산당이 “2012년 하반기(下半年)에 개최하겠다”고 작년 가을에 발표한 제18차 전당대회(全大)의 개막이 임박했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관영 중앙TV는 전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베이징(北京)에 모여 일주일 정도 함께 지낼 3000명 안팎의 당대표들이 어떤 인물들인가를 소개하는 시리즈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현 당 총서기와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 겸 정치국 상무위원 두 사람이 지난 10년 동안 이루어놓은 업적들을 그래프와 표로 소개하는 자화자찬씩 선전 프로그램도 매일같이 방송되고 있다. 그렇게 당 대회가 가까워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공산당이 중심이 된 중국 국내정치에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투명하지 않으며,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의 불투명한 관행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서양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면서도 면도날로 자른 듯한 합법적 정치 과정과는 다른 정치 행태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모습을 보여준 불투명한 중국 정치관행은 지도자의 건강문제를 비밀에 부치는 중국 특유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시진핑(習近平) 현 국가부주석의 15일간의 잠행(潛行)이다. 늦어도 10월 중순까지는 개최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될 것으로 내정된 시진핑 부주석은 지난 94일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다음날 면담하기로 약속이 돼있었다. 하지만 클린턴 장관은 중국 외교부로부터 “시진핑 부주석이 운동하다가 등을 다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클린턴 장관뿐만 아니라 리센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헬레토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 등 외국지도자들도 시진핑과 약속을 하고 베이징을 찾아왔지만 이들과의 약속도 줄줄이 깨졌다. 클린턴을 비롯한 미 국무성 베이징 방문 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매스컴과 차이나 와처(China Watcherㆍ중국관찰자),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시진핑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운동하다가 등을 다쳤다?” 경호원들의 엄중한 경호를 받고 있는 차기 최고지도자 내정자가 운동하다가 다른 곳도 아니고 등을 다쳤다?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하다가, 등의 어디를 다쳤다는 말인가? 운동하다가 팔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등을 다쳤다면 누가 등 뒤에서 무엇으로 찌르거나 아니면 무엇에 찔렸다는 말인가. 수영을 하다가? 풀장에서 수영을 하다가 어떻게 하면 등을 다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시진핑이 다쳤다는 부위와 부상과정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억측은 “누군가의 칼에 찔렸다”느니, “고의적인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 기도가 있었다”는 것에서부터, 무언가 후진타오(胡錦濤) 현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사이에 불편한 문제가 불거져 시진핑이 모든 일정을 보이콧하고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거라는 억측까지 중국 안팎에서 나돌았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600여명의 외국 특파원들은 외교부 브리핑에 나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에게 시진핑이 어디 있는지를 물었다가 중국 외교부 대변인들 특유의 ‘묵묵부답(默默不答)’이나 ‘소이부답(笑以不答)’과 마주쳐야 했다. 어떤 외국기자는 “시진핑 부주석 괜찮으냐?”는 말로 혹시 유고(有故) 상태는 아닌가 물었다가 외교부 대변인으로부터 “좀 더 진지하게 질문할 수 없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15일 동안이나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시진핑 부주석은 915일 전국 과학의 날 행사장에 천연덕스럽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검은 색 가을 점퍼 차림의 시진핑은 특유의 밝은 웃음과 우렁찬 목소리로 당과 국가의 차기 지도자로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궁금해 하는 전 세계의 중국 관찰자들에게 과연 시진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주면 안 되는 것일까? 후진타오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건재한 가운데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사람의 건강이나 행방이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과연 중국의 당과 국가에 과연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중국 지도자의 건강이 비밀에 부쳐지던 모습은 1989 85세가 된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건강이 비밀에 부쳐지던 때 이후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1997 2월 덩샤오핑이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인의 건강은 중국의 국가 최고 기밀의 대우를 받았다. 외국 특파원들이 외교부 브리핑에 나가 “덩샤오핑 선생의 건강은 어떠냐”고 질문하면, 당시 리자오싱(李肇星) 대변인은 특유의 생글거리는 웃음을 흘리면서 “지금 315분이다”라는 완전 엉뚱한 대답을 대답이라고 내놓고는 했다. 결국 당시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 노인은 베이징으로 찾아온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다가 젓가락으로 집은 반찬을 입으로 가져가다가 떨어뜨리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 “노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당시 베이징을 찾아온 고르바초프는 덩샤오핑과 만나기에 앞서 자오쯔양(趙紫陽) 당시 당 총서기와 만나 “덩샤오핑 동지의 건강은 어떠시냐”라고 안부 인사를 던졌다가 자오쯔양으로부터 “우리 당은 매일 덩샤오핑 동지에게 국사를 보고하고 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자오쯔양이 한 말은 ‘우리의 덩샤오핑 동지는 매일 국사를 보고받고 이해를 할 만큼 건강하시다’는 뜻의 말이었으나, 최고 실력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 외국지도자에게 중요한 기밀을 넘겨준 죄목이 나중에 자오쯔양의 죄목으로 추가됐다. 당시 세계의 중국 관찰자들은 수천만 중국공산당 당원들을 총지휘하는 최고 권력자일 것으로 생각하던 자오쯔양이 아무런 자리에 앉아있지 않은 덩샤오핑을 비롯한 원로 노인네들의 입방아에 올라 권력 피라미드의 최고 정점에서 쫓겨 추락하는 광경을 보고 다시 한 번 중국 정치가 겉과 속이 다른 불투명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덩샤오핑의 건강뿐만 아니라, 1989 6월말 천안문 사태의 와중에서 당 총서기 자리가 장쩌민(江澤民)에게 넘어 가도록 배후조종하고, 그해 9월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당 중앙 군사위 주석 자리도 장쩌민에게 넘겨준 뒤에도 중국 권력의 중심에는 여전히 무직의 덩샤오핑이 있었고, 3년 뒤인 1992 2월 덩샤오핑은 이른바 ‘남순강화(南巡講話)’라는 이름의 정치 캠페인을 벌여 중국의 경제 발전 전략을 좀 더 빠른 성장을 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임 당 총서기 자오쯔양이 실각하고 비어있는 자리에 오른 장쩌민은 10년 뒤인 2002년에 당 총서기 자리를, 2003 3월에는 국가주석 자리를 순순히 후임자 후진타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장쩌민은 당 중앙군사휘원회 주석자리만은 2002년 가을 전당 대회 때 후진타오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당 총서기로서의 5년 연임 임기가 끝났는데도 장쩌민은 당 중앙군사위 주석자리만은 초법적으로 깔고 앉아 있다가 결국 당 최고위급 간부들의 눈치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2004년에 중앙위 전체회의에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10년 전의 그런 관행은 이번에도 후진타오에 의해 답습될 전망이라고 들린다. 후진타오가 앉아있는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그리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 가운데 앞의 두 개는 올 가을과 내년 봄에 물려주고 군사위 주석 자리만은 명확한 임기 규정이 없다는 점을 활용해서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눌러앉아 있어본다는 구상이라는 말이 베이징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전당대회는 무려 3000명이 모여서 개최하는 대회이고, 중앙위 전체회의도 무려 300명 안팎의 중앙위원들이 모여서 개최하는 회의다. 그런 자리에서도 어떤 당대표나 중앙위원도 “당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직의 임기도 명확하게 당규에 써넣자”는 견해를 입 밖에 내놓지 않는다. 그저 두루뭉수리로 “다 우리 후진타오 당 총서기가 알아서 적당할 때에 시진핑 동지에게 물려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면서 회의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전망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 정치에는 아무 직위에도 앉아 있지 않은 노인네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관행이 법조문이나 당규보다 더 중요한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말인지 호랑이인지 모르는 ‘마마후후(馬馬虎虎)’의 불투명성이 아직도 중국공산당내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당규보다 헌법보다도 중요한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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