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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24 /2012.08] 기획 _ The story of SUN(孫)’s Family: 인천화교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3)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7 조회수 163

[Vol.24 /2012.08] 기획 _ The story of SUN()’s Family: 인천화교 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3) 

구술: 손덕준 _ 인천 중화루 사장 

채록: 송승석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인천대학교 HK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은 화교연구의 일환으로 화교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천화교의 대표적 인물 손덕준(孫德俊)과 그의 가족이다. 어느 일개인의 가족사가 화교 전체의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교 개인의 인생 궤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은 삶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구술채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도록 하겠다.

 

*. 본 연재는 기본적으로 구술기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되, 지나치게 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임의로 수정을 가했다.

*. 문중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은 공개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나 반복되는 내용으로, 구술대상자와 상의 하에 생략한 부분이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채록자 임의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 (???) 부분은 성명이나 상호명으로, 구술자가 한자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추후에 조사를 해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송승석(이하 송): 대만사람, 중국사람 구별하지 않고 CSA 동아리에는 다 같이 있잖아요? 거기에 한국에서 온 만홍씨도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대만, 대륙, 한국에서 온 중국인들이 다 모여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만홍씨는 그들과 같이 있다 보면 뭔가 이질감 같은 걸 느낀단 말이에요. 그게 뭔가 소외된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손만홍: 소외감이라기보다는 저를 대하는 그들의 반응이 절 당황스럽게 한다는 그거예요. 가령, 이렇게 물어요. “너 어디서 왔어? 솔직히 어디서 온 거야? 국적이 뭐야?” 그렇게 물어 볼 때면, 전 똑같은 얘기를 이 사람한테도 하고 저 사람한테도 일일이 설명을 해야 되요. 내 소개를 하는데도 말이에요. 그냥 다른 사람들은 “나 중국인이야.” 하면 끝나요. 근데 저는, 난 어디서 왔고 근데 국적은 어디고…. 내 소개를 하는 데에도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되요. 심지어는 내 가족사까지 들추어서 얘기해야 되요. 그럴 때면, ‘아, 난 이런 존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그게 조금씩 다르지요?

 

손만홍: 전 화교학교 다닐 때, 대만 교과서를 가지고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간체자는 잘 몰랐어요. 근데 걔네들은 내가 중국말은 하는데 간체자는 모른다는 것을 이해 못해요. “왜, 간체자를 모르지?” 그게 어떤 문화적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손만평: 저도 지금 대학원 다니면서 중국 대륙에서 온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되요. 수업이 끝나고 내려오면 대륙 애들은 중국어로 말하잖아요? 근데 그 말이 정말 빨라요. 가끔 못 알아들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걔네들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제 중국어 억양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대륙 억양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대만식 중국어로 하자니, 그것도 뭔가 좀 이상하고 어색하고…. 같은 중국어지만 항상 신경이 쓰여요. 그럴 바엔 아예 한국말로 해버려요, 대륙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때는. 사실 제가 그들처럼 대륙 말을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한국말로 해요. 그러면 일거에 해결돼요.

 

: 만홍씨는 남자친구랑은 무슨 말로 얘기해요?

 

손만평: 전 대만 분들 많이 상대해서 중국어 말할 기회가 아주 많았어요. 주로 통역을 했으니까. 근데 언니는 중국어 정말 못했어요. 중국어 배우는 한국사람 수준 정도였으니까. 정말 아주 못했어요. 근데 언니가 미국에서 중국 남자친구 사귀면서 중국어를 저보다도 더 잘하는 거예요.

 

손만홍: 그래도 제가 말할 때면 남자친구가 계속 수정을 해줘요. 분명 그 친구도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었을 텐데도 자꾸 고쳐주는 거예요. “여기에 동사 빼먹었어.” “여기는 이렇게 말해야 돼.” 정말 열 받는 거지. “네가 알아들었으면 됐지, 왜 자꾸 틀렸다고 고쳐주는 거야.”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기분은 정말 나빠요. 일단 그냥 알아들었으면, 나중에 가서 “이건 이렇게 얘기하면 돼.” 이렇게 좋게 얘기하면 될 것을 “야, 동사 빼먹었잖아!” 까탈스럽게 일일이 수정하고…. 그것 때문에 가끔 열 받아서 싸우기도 해요. 근데 싸울 때도 중국말로 하잖아요? 우리가 영어로 싸울 수준은 아니니까. 그럼, 내 말발이 걔를 못 당해요. 중국어도 걔가 더 잘하니까. 가끔 걔가 “만홍, 지금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들었어?” 딱 그래요. 그럼 나도 열 받아서 “그래! 나 중국어 레벨 원이다. 어쩔래? , 너 영어로 얘기해. 왜 내가 미국 땅에 와서 중국어 배워야 하냐?” 그러죠. 사실, 잘 안 되는 영어로 하자는 게 억지죠. 그래도 하도 열 받으니까.

 

손만평: 저도 언니한테 그래요. “언니는 미국에 가서 영어는 안 늘고 중국어만 늘어가지고 온 건 무슨 경우냐?

 

손만홍: 사실, 전 지금 남자친구 만나면서 영어를 쓸 기회가 별로 없어졌어요. 고작 학교에서 친구들이나 교수님하고 얘기하는 것 외에는. 그렇다고 밖에서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얘기할 기회가 없어요. 남자친구랑 있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쓰게 되는 경우도 더 많아요. 그럴 때면 위기감이 느껴져서 남자친구한테 그래요. “우리 평소에도 영어로 얘기하자. 그러다 보면 영어가 늘 거야. 조금씩 습관을 들이자.” 저는 정말 영어 힘들게 공부했거든요. 근데 그러면 남자친구 뭐라는지 아세요? “난 미국에 와서 중국말 하는 게 내 마음의 위로야. 밖에 나가면 계속 영어를 써야 하는데 안에서라도 중국말 쓰자.” 그래요. 사실, 저도 하루 종일 밖에서 영어 쓰다가 집에 오면 정말 피곤해요. 그 친구도 집에서 같이 밥 먹으면서 중국말로 얘기하면, 뭔가 어떤 향수 같은 걸 느낀대요. 이해는 하지만…. 난 그래도 영어로 해야 된다는 입장이고, 걔 입장은 싫다는 거예요. 나보고 그래요. “넌 영어로 해. 난 중국말로 할 테니까.

 

손만평: 언니 남자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 “네 언니, 정말 대단해. 아니 어떻게 중국 욕을 나보다도 더 잘해.

 

손만홍: 남자친구랑 있을 때, 막 욕을 해요. 아빠가 쓰는 욕 있잖아요? 그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나 봐요. 그걸로 남자친구를 제압하는 거죠. 전 사실 산동 말이 더 익숙해요. TV에서 아나운서들이 얘기하는 것 들으면 약간 간지럽다고 해야 되나? , 부산 사람이 서울 말 쓰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중국어 할 때, 산동 말이 튀어나와요. 진쿵도 원래는 할아버지 고향이 산동성이에요. 근데 대련(大連) 사투리는 할 줄 아는데, 산동 사투리는 전혀 못 알아들어요.

 

 

: 남자친구 할아버지도 산동 출신이야?

 

손만홍: . 근데 걔가 태어난 곳은 대련이에요. 할아버지는 산동 무핑이래요. 그러니까 우리하고 같은 고향인 셈이지요. 신기했어요. 내가 산동의 구수한 사투리로, 시골사람들이 쓰는 그런 말로 하면 그게 뭔지 못 알아들어요. 그럼 제가 그래요. “넌 중국 사람이면서 중국말도 못 알아들어? 난 너보다 언어 하나를 더 하는 거라고.” 싸울 때는 막 그래요. 그러니까 쟤한테 그런 말 한 거예요. “너희 언니, 되게 교양 있는 척 하지만 말만 하면 다 욕설이야.” 사실, 처음엔 걔가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는 속으로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왜, 못 알아듣지? 어떻게 이것도 모르지?’ 저도 걔가 대련 말로 친구들끼리 얘기하면 못 알아들어요.

 

: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 땅덩어리가 넓으니까, 언어도 다양하지. 어떻게 생각하면 표준어, 푸통화 이런 걸로 언어를 통일시키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상해 가면 상해 말 있고, 복건 가면 복건 말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냐?

 

손만홍: 맞아요. 근데 미국에 있는 제 친구 중에도 상해 출신이 한 명 있어요. 나처럼 페인팅 공부하는 애인데. 우리 과에선 그 친구랑 제가 유일하게 동양인이에요. 근데 신기한 건, 그 친구는 우리랑 얘기할 때는 중국어로 잘 하는데, 자기네 부모님이랑 상해 말로 얘기할 때는 우리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어요.

 

: 상해 말은 중국 푸통화하고는 완전히 다르지. 거의 외국어 개념이랄까? 대만에 가도 대만 사람들 민남어 쓰잖아? 우린 한마디도 못 알아듣지.

 

손만홍: 맞아요. 대만 애들도 그래요. 근데 치사하게 자기네들끼리 얘기하고 싶으면 꼭 민남어로 얘기한다니까.

 

: 나도 대만에 있을 때, 그런 경험 했어. 평소에는 중국어로 하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자기네들끼리 대만 말로 한다니까. 그럼, 난 멀뚱멀뚱. 욕을 하는지 뭐 하는지 모르지. 우리도 외국사람 앞에 놓고 웃으면서 욕하고 그러기도 하잖아?

 

손만평: 저희도 그래요. 버스 타면, 중국어, 한국어 반반씩 섞어서 써요. 어떤 사람 욕하고 싶으면, “야, 칸네이거런(看那個人, 저 사람 좀 봐.) 웃기지?” 이런 식으로. 물론 핵심적인 용어는 다 중국말로 하고.

 

손만홍: 화교의 특징이에요. 근데 지금은 한국에서 그렇게 하면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요. 중국말 잘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 그렇지.

 

손만홍: 이건 딴 얘기인데, 저도 대학 다닐 때, 학점 쉽게 따려고 중국어 교양교목 신청한 적이 있었어요. 화교 애들은 대개 다 그래요. 학점 쉽게 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신청했는데. 막상 시험 볼 때는, 오히려 한국 애들은 쉽게 생각하는 부분을 제가 틀리는 거예요. 그게 발음기호예요. 병음(). 우리는 한어병음 안 배우고 주음부호 배웠잖아요? 한어병음은 중국식이고, 주음부호는 대만식. 전 몰라서 막 틀리는 거예요. 물론 작문이나 논술은 할 줄 아니까 상관없는데. 근데 그것도 전 간체는 안 배웠으니까 번체로 다 써요. 그럼, 교수님이 불러요. 번체로 쓰니까 좀 이상하게 생각하셨나 봐요. 그럼, 제 사정 얘기를 하죠. 한국 대학교에서도 다 간체를 쓰잖아요. 말을 할 때는 잘 하는데 막상 책을 보면 간체자로 되어 있어서 잘 모르겠는 거예요. 오히려 저보다 중국에서 몇 년 공부한 한국 애들이 중국어를 더 잘해요. 간체자도 잘 읽고, 발음도 좋고.

 

: 여기 화교학교에서는 지금도 간체 안 가르쳐 줘요?

 

손만평: . 그게 아직도 교과서가 대만 거니까. 간체자를 가르치자는 얘기는 꾸준히 나오긴 하는데….

 

: 근데 실제적으로 대만에서는 중학생 이상이면 간체자 거의 다 아는데?

 

손만평: 저도 대만에 갔을 때, 서점에 갔는데 간체자와 번체자를 비교해 놓은 책 여러 권 봤어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손만홍: 저도 중국유학생 친구한테 간체자와 번체자 비교해 놓은 사전 사다달라고 한 적 있어요. 우리는 배우면 빨리 배워요. 번체를 알고 간체를 배우면 빨리 배울 수 있대요. 오히려 간체만 배운 중국 애들은 번체를 몰라요. 일종의 고어(古語) 같은 개념이래요. 걔네들은 무척 어려워해요. 그런 면에서는 우리가 유리하죠.

 

: 앞으로 화가로서의 계획은 잘 세워놓았어요?

 

손만평: 언니 계획은 제가 이미 다 짜놓았어요. 우선은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그림이 걸려야 되요. 뉴욕에 모던아트 있거든요? 거기에 그림이 걸리면 난 만사 제쳐놓고 언니 매니저 할 거예요.

 

손만홍: 실은 올해 초에 엄마랑 만평이랑 뉴욕에 왔었어요. 엄마도 뉴욕에 있는 큰 미술관에 가서 고흐 작품 같은 유명한 작품 많이 봤는데, 그것들하고 제 그림 비교하더니 제 그림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제가 원래 사람의 인체를 좋아해서 그런 쪽의 그림을 많이 그리거든요. 그러니까 엄마가 보시기에, 제 그림은 의사들이 보는 해부학적인 그림, 병원에나 걸릴 것 같은 그림 같은 거예요. 엄마는 계속 예쁘고 아름다운 것 그려라, 편안하고 보기 좋은 거 그려라 그래요. 엄마는 서양화들을 보고 나서, 우리 딸은 정말 그림을 못 그리는구나 생각하신 거예요. 우리엄마는 완벽한 사진 같은 서양화 같은 그림을 좋아하시는데, 제가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까. ‘이런 쓰레기 같은 그림을 누가 살까?’ 그런 생각 하신 것 같아요. 근데 현대미술이라는 게 정말 희한하고 다양하잖아요? 나중엔 엄마도 희망이 좀 생기신 것 같아요. 제 그림 같은 것들도 많은 걸 보고. 그래도 아직까지 잘 이해를 못하세요.

 

: 그럼, 만홍씨는 앞으로도 계속 순수미술 쪽으로 할 거예요?

 

손만홍: 그러고 싶긴 한데…. 근데 패션 쪽도 아직 관심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그동안 배워온 거니까. 잘 모르겠지만, 패션 일도 뭔가 아티스트적으로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근데 전 너무 상업적인 건 싫어요. 성격적으로도 그런 데에는 제가 좀 반감이 있어요. 그래서 완전히 상업적으로 가지는 않을 생각이에요. 제 주위 분들 중엔 저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실제적으로 교수님하고 친구들하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해요. 지금 대학원생이라서 1년에 2번 정도 오픈 스튜디오를 하는데, 그러면 그림을 팔 기회도 생겨요. 사실, 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놀란 것은, 학교가 교육보다는 그림 판매에 더 열중하는 거예요. ‘그럼, 더 잘 팔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하나?’ 고민 많이 됐어요. 사실 그림 사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림을 알기나 하고 사는 건지도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정말 뭔가 컨템퍼러리 아트의 가치를 알고 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유화의 분위기가 좋아서 사는 건지…저 자신도 사실은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될지 고민이 돼요.

 

: 혹시 그림을 실제로 팔아본 적도 있어요?

 

손만홍: 혹시 아시아프(ASYAAF)라고 아세요? 올해 홍대에서 한 공모전이었는데. 저도 거기에 두 작품 출품해서 전시했어요. 그리고 제가 팔고 싶은 그림은 실질적으로 판매가격을 매겨놓았어요. 제가 제 그림에 가격을 정해놓은 거죠.

 

: 실제로 팔렸어요?

 

손만평: 팔렸어요. 가격흥정을 바로 제가 했어요.

 

손만홍: 근데 제가 팔기 싫어서, 창피해서 박스 안에다 넣어놓은 작품이 팔렸어요. 캔버스에 정식으로 그려서 전시한 작품은 안 팔리고.

 

: 왜 그랬을까?

 

손만홍: 글쎄…. 제 생각엔 그 그림에 어떤 순수함 같은 게 있었지 않았을까? 그게 제 처녀작이었거든요.

 

: 남자친구는 계속 미국에 있고 싶어 해요? 대륙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고?

 

손만홍: . 그런 것 같아요.

 

: 외아들이라고 안 했나?

 

손만홍: 그렇겐 한데 자기는 나중에 한국에서도 살아보고 싶대요. 저도 역마살이 좀 있는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것을 찾고 싶어요. 그런 걸 유목민, 노마드(nomad)라고 하나? 암튼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전 제 인생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별하다면 바로 그런 거예요. 전 나중에 프랑스에서도 살아보고 싶어요. 제 스스로도 이건 저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고민이에요. 전 나중에 정말 좋은 아티스트가 되면, 우리 모교인 화교학교에다가 장학금을 기탁할 거예요. 좋은 그림 그려서….(울먹거리며)

 

<이때, 손덕준 사장 입실>

 

손만평: 아빠가 오니까 더 슬픈가 봐요.

 

손덕준: 아이고, 꿈도 야무지네. 네 먹고 사는 거나 걱정해. 그림 그리는 사람이 제일 거지라고 하더라.

 

이선애: 그런 마음이 분명 들 것 같아요. 저도 여기에서 공부를 하다보니까, 우리 중국교포 학생들이 옛날 기존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도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시키고 싶어요. 여기서 터득한 저만의 교육방법으로. 그 친구들한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손만홍: 전 딱 하나 바라는 게 있어요. 그건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하는 거예요.(또 다시 울먹거린다.)

 

손만평: 우리 언니가 자기 말에 자기가 감동해서 우는 것 같아요. ‘내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혼자 복받쳐 가지고…. 내가 우리 언니를 너무 잘 알거든요.

 

손만홍: 그냥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얘기를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물어주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학생들도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뭔지 알 수 있어요.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 실제적으로 화교학교가 정말 이런 것들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있어요?

 

손만홍: 다른 한국 학교들도 상황이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학교가 학생들의 감수성을 더 키워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책임감을 갖고 배울 수 있는 그런 학교.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또 책을 읽어도 각자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좀 들어줄 수 있는 그런 학교였으면 좋겠어요. 귀를 기울여라.

 

: 지금 화교학교는 아직도 그런 게 잘 안된다고 생각해요?

 

손만홍: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근데 일단 여기 학교는 언어적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실질적으로 피해자는 학생들이에요. 물론 두 가지 언어를 한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제 경우에는, 한국어, 중국어, 거기다가 영어까지 배웠을 때는 정말 혼란이 극에 달했어요. 사람들은 한글도 쓰고 중국어도 쓰니까 좋겠다고 하는데,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오히려 언어를 섞어 쓰다보니까 영어 같은 제3의 언어를 배울 때는 더 혼란이 와요. 경우에 따라서는 언어장애도 겪을 수 있어요. 물론 언어적 능력이 발달한 애들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어요. 근데 한국에 있을 땐 그걸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런 아이가 있다는 걸. 미국은 달라요. 그게 교육방식이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에요. 그런 문제가 있으면 선생님과 많은 대화도 하고 해서 해결해요. 그런 아이를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가 아주 성숙되어 있어요.

 

: 보통 한국 사람들은 화교 하면, 한국어도 잘하고 중국어도 잘한다고 생각해. 근데 사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굉장한 고충이 있을 수 있다는 거네?

 

손만홍: 제가 미국에 있으면서 ESL 프로그램 디렉터 선생님과 상담을 한 적이 있었어요. 나의 가족사나 배경에 대해 묻고 그랬는데…. 그때 그 선생님이 저한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어요. 뉴올리언스에서 영어 수업을 한 적 있었는데, 반에 태국 학생이 있었대요. 그 태국 학생은 학교에서는 영어를 쓰고, 집에서는 부모님과 태국어로 소통하고. 사춘기를 그렇게 보낸 친구였대요. 근데 어느 순간, 그 학생에게 언어장애라는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언어도 잘 못하고 저 언어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 거죠. 물론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 친구처럼 언어장애가 올 수도 있는 거예요. 그 언어장애가 증상이 심해지면 난독증이 올 수도 있고 아니면 얼렌 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어요. 글씨를 못 읽거나 하는….

 

: 그런 언어적 상황이 실질적으로 병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손만홍: 난독증이라고. 물론 그 안에는 다양한 증상이 있고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대요. 저 같은 경우는 얼렌 증후군이라고 해서 책을 읽을 때, 글씨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거나 줄이 밀려서 보이거나 하는 그런 증상이 있어요. 전 그런 케이스예요. 한마디로 중국어나 한국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증상이라 할 수 있어요. 가령, 영어가 주어, 동사, 형용사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면, 중국어나 한국어는 그것과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가 우리 같은 경우에는 종종 생길 수 있대요.

 

: 그렇지. 언어마다 어순이나 그런 게 틀릴 수 있으니까.

 

손만홍: 그래서 제가 항상 조언해주고 싶은 것은, 중국어를 배우면 정말 중국어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거나, 한국어를 배울 땐 정말 한국어만 쓸 수 있게끔 그렇게 자유롭게 해야지, 그게 아니고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하면 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예요. 특히, 3의 언어를 배울 땐 분명 그런 애들이 생길 수 있어요. 그걸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화교들도 그렇고. 요즘 한국 애들도 어릴 때부터 외국어 배우고 그게 유행처럼 되어 있는데, 잘 살펴보면 그런 애들 중에도 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분명 많을 거예요. 이건 제가 직접 본 건데, 어려서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온 학생들이 꽤 있어요, 한국에서. 중학교 때 왔으면 7, 8년 아니 10년 가까이 미국생활하게 되잖아요? 그런데도 그 애들 중에는 아직도 ESL 프로그램을 듣는 애들이 있어요. 그렇게 미국에 오래 있었어도 아카데미 수준의 영어를 하지 못하는 거예요. 전 처음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종의 이중 언어 상황 속에서의 혼란. 글을 쓸 때의 문제점일 수도 있고, 말을 할 때의 문제점일 수도 있고…. 그런 비애가 있어요. 이건 꼭 화교뿐만이 아니고 그렇게 성장한 애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예요.

 

: 나도 내가 겪은 실제 경험을 말해주지. 몇 년 전,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한 학생이 중국어를 굉장히 잘하는 거야, 한국 학생인데. 요즘에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자식들 중에는 중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렸을 적부터 중국에서 사는 애들이 많잖아? 그 친구도 그런 케이스야. 8년을 중국에서 살았대. 당시 대학 2학년이었으니까, 한 열두 살쯤 중국에 간 건가? 중국어도 굉장히 잘하고, 한국말도 유창해. 근데 시험을 보는데 한국어로 논술 하는 게 있었어요. 근데 이 친구가 한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시험지를 좍좍 찢어버리더니 강의실을 뛰쳐나가는 거야. , 그런 애들이 간혹 있잖아? 속으로 ‘저 괘씸한 놈! F.’ 당연히 F.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 그 친구가 지금 말한 거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거야. 한국 애들은 자기보고 중국어를 굉장히 잘한다고 하는데 사실 자기는 정말 자신이 없다고. 한국어도 말은 하겠는데,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뭘 어디서부터 써야 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거야. 심지어는 아주 간단한 단문조차도 글로 쓰지 못하겠다는 거야. 그리고 이젠 아예 쓰기조차 싫다는 거야.

 

손만홍: 맞아요. 저도 약간 그런 문제점이 있었어요. 대학에서 보고서 작성하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건 보고서 쓰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정말…. 다들 너무도 쉽게 작성하는데 저한테는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손만평: 근데 이건 냉정하게 말하면, 언니가 그런 훈련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것이지, 훈련을 많이 하면 당연히 개선될 여지가 있었어. 처음부터 못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글을 쓸 기회가 많이 없어서 그런 거야. 저는 전혀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물론 저도 처음엔 어떻게 써야할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외국인을 위한 논문작성법 같은 걸 듣고 나니까 완벽하지는 않아도 뭔가 개념이 잡히더라고요. 그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 글쎄. 난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사실, 어떤 언어든 간에 완벽하게 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잖아?

 

손만평: 언니가 말하는 완벽한 구사의 기준이 뭔지 전 사실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무리 해도 외국어는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손만홍: 제가 봤을 때, 박사님이 말씀하신 그 친구는 정말 아카데미적인, 학구적인 언어를 쓸 경우에는 자기 언어가 미달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면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실질적으로 말로써 자기를 표현하고 발표를 하고 일상적인 얘기를 하는 건 문제가 없을 수 있어요. 근데 반대로 글을 쓸 경우에는 많은 것들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물론, 만평이 말처럼 차근차근 훈련을 쌓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만평이는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요. , Language person 이라고 하잖아요? 너무 잘하는 케이스. 근데 저는 안 그래요. 시험 볼 때, 마지막에 편지를 써요. 화교라고.

 

손만평: 암튼 전 부족한 건 훈련이 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생각해요. 방법은 다양해요. 그만큼 많이 접촉을 안 했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전 제가 약한 점보다는 잘하는 점을 최대한 살려서 부족한 걸 커버하려는 편이에요.

 

손만홍: 저도 언어가 콤플렉스라는 걸 잘 아니까, 그럴수록 어떻게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해요. 잘 모르면 교수님 찾아가서 묻기도 하고…. 논문들을 이것저것 찾아서 닥치는 대로 읽기도 하고, 요약도 하고 나름대로 애를 써요. 제 노력이 가상했는지 지난번엔 교수님이 학점을 후하게 주셨어요. 잘했다기보다는 노력한 게 보여서…. 그럼, 노력한 것에 대해 보람을 느껴요. 기분이 좋아요. 처음 대학에 들어가니까, 친구들은 다들 예고(예술고등학교) 출신이에요. 그쪽 분야에선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거니까 뭘 해도 여유가 있어요. 교수가 과제를 내주면 미리 다 알아듣고 척척 해 와요. 저는 꼭 한발 짝씩 느린 거예요. 말을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그 의도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항상 예고 출신 애들 하는 거 보고 따라하고…. 꼭 한 템포씩 느리게 과제를 해갔어요. 근데 결국 나중에는 선생님한테 인정을 받았어요. 예고 애들은 자신이 너무 잘한다는 것을 아니까 잔꾀를 부려요. 과제를 내면, 전 정말 단순하게도 실제 크기로 만들어 가는데, 친구들은 조그맣게 샘플만 여러 가지 해 와요. 그걸 선생님이 지적을 하더라고요. 얘는 실제 크기로 해서 느낌이 사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고. 처음엔 칭찬을 들으니까 오히려 황당했어요. 전 미술을 기초부터 배워온 게 아니잖아요? 그냥 인문계 다니다가 뭣도 모르고 온 건데. 그때부터 전 물 만난 고기처럼 정말 열심히 하게 됐어요. 보고서를 써도 전 모르면 무조건 물어요. “그 단어 뜻이 뭐야? 난 못 알아들었어.” 이렇게 말하면 친구들이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그랬어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이 뭘 해오라고 하면, 미국 애들은 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데 다 척척 해 와요. 근데 동양 애들은 그걸 다 지나치는 거죠. 모르고도 아는 척….

 

: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이나 미국에서의 생활이나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게 좋은 약이 될 거라 믿어요. 그리고 그런 걸 따져보면, 어쩌면 미국 생활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손만홍: 그런 점이 있어요. 부모님 곁에 있으면 정말 게을러지는 것 같아요. 손 하나 까딱 안 하게 되니까. 집에 오면, 부모님 품에서 쉬고 싶은 그런 심리적인 게 있나 봐요. 근데 오히려 밖에 나가면 정말 강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정말 잘하게 되는 것 같고. 저도 모르게 제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방학 때 집에 오면 솔직히 싫어요. 시간도 너무 아까운 것 같고, 게을러지고…. 뭔가 발전적인 그런 게 없다는 느낌이에요.

 

: 그래도 쉴 때는 푹 쉬는 거야. 가끔씩은 완전히 널브러지는 것도 괜찮아.

 

손만홍: 만평이는 저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만평이가 홍대 시각디자인학과 나왔잖아요?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 하나, 대학원을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을 때가 있었어요. 그땐 정말 민감했어요. 원래 성격도 까칠하고. 그건 누구에게나 오는 스트레스잖아요? 졸업하고 직장은 안 구해지고, 이대로 백수로 지내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제가 그랬어요. 사람은 잘 하는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내가 봤을 때, 네가 디자인 쪽으로 간 건 네가 하고 싶어서 했던 것 같고, 잘해서 간 건 아닌 것 같다고. 그러니까 이젠 네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그런 걸 해보라고. 중문과 대학원 간다고 했을 때, 전 정말 기뻤어요. 잘했다고.

 

: 만평이는 잘 할 수 있어요. 근데 생각이 너무 많아.

 

손만홍: 저는 대학 다닐 때, 정말 막 즐기기로 했어요. 그리고 정말 즐겼고요. 아무리 과제나 그런 게 힘들어도 새로운 걸 해보는 거니까 어렵지만 좋았어요. 근데 만평이는 그게 다 고통으로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중문과 대학원 들어가고 나서는 그 힘든 걸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손만평: 아니야. 이게 더 힘들어. 제가 사실 홍대 졸업하고 몇 군데 취직 원서를 넣었는데 그 중에 출판사가 있었어요. 가로수길 있는 출판사였는데 가서 면접을 봤어요. 공교롭게도 모집 대상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편집디자이너인 거예요. 제가 딱 그렇잖아요. 여섯 시간 동안 면접을 봤어요. 나중에는 사장이 직접 면담을 했어요. 뭘 하고 싶으냐고 물어서 전 다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목표를 하나 분명하게 정하래요. 네가 진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제가 그래서 솔직히 대학원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그 사장님이 가서 잘 생각해보고, 그래도 출판계에 몸담고 싶으면 그때 다시 오라고. 그러면서 저한테 책 두 권을 줬어요. 근데 저는 너무 억울한 거예요. 전 한창 패기가 넘치고 있는데, 이 할아버지 도대체 뭔데 날 함부로 평가하고…. 두고 봐라. 가만 안 둔다. 막 서러운 눈물이 나는 거예요. 어차피 안 뽑을 거면서 면접은 왜 여섯 시간씩이나 하고 말이야.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어요. 근데 지금까지도 그때 받은 책은 열 받아서 안 봤어요. 이제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튼 그때부터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조금씩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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