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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2010.09] 관행기행 _ 2010년 여름의 칭짱철로 여행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2 조회수 80

[Vol.1/2010.09]   관행기행 _ 2010년 여름의 칭짱철로 여행

  

 

박장배 _ 인천대학교 HK연구교수

 

 

20106204년만에 베이징에 들어섰다. 베이징에서 라싸를 거쳐 청두를 통해 귀환하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자료 구입, 칭짱철로 타기, 최근 중국 변화상 보기 등이다.

 

베이징에 도착하여 라싸행 기차표를 사려고 봤더니 여의치 않았다. 일단 서점부터 들렀다가 오후에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왕후징 거리 북쪽의 서점에 가서 미리 뽑아간 목록에 따라 필수문헌 위주로 책을 찾아보았으니 역시 목록은 별 의미가 없었다. 서점에는 3년 전에 출판된 책도 보이지 않았다. 역사와 정치와 사회 서가를 둘러보고 나오다가 문학 서가를 스치며 보니, 거기에 보이는 티베트 코드는 상당한 관심을 끄는 책인 모양이다. 들춰보니 1권 앞 부분에는 티베탄 마스티프(Tibetan Mastiff, 藏獒)’라는 개 얘기로 채워져 있었다.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의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소식지를 얻었다. <단골+>라는 소식지를 보니 베이징의 한국인사회가 상당히 위축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료 소식지에는 각종 연락처와 베이징 상황이 실려 있으니 매우 유용한 자료다. ‘즈신시루(志新西路)’에 있는 호텔을 숙소로 잡았다.

 

숙소에서 TV를 켜고 거리에서 사온 신문을 펴 들었다. TV 보기는 중국 현지 소식을 알기 위한 것이고, 신문 읽기는 현지 소식도 그렇지만 자료조사를 위한 사전 작업의 의미가 크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소식은 남아공 월드컵 얘기다. 이곳 팀이 남아공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열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관심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언론 보도만 보면 양안의 경제 교류는 무척 활발한 모양이다. 참으로 남북과 양안은 다르다. 오늘 세 시간 동안에 TV에서 한국드라마를 보지는 못했다.

 

621일 월요일 아침에 구러우시루(鼓樓西路)’에 있는 시장(西藏)자치구 인민정부 주북경 판사처근처에 있는 초모랑마 호텔로 갔다. 거기에 시짱 입경허가증을 받는 대행 업무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입경허가증의 발급에는 5일의 공작일이 필요하고 600위안의 수속비가 들어간다고 했다. 라싸행 기차표는 매진이라서 좌석(잉쭤)표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서 택시를 타고 만성서원(萬聖書園圖書)으로 갔다. ‘만성서원은 책을 상당히 잘 고르는 편이다. 중화서국의 <청대외무부 중외관계 당안사료 총편-중영관계권>, 화동사범대학출판사의 <유학과 동아문명연구총서>가 보였다. 후자의 총서로 이미 19권의 서적이 출간되었다. 오후 내내 서점에서 책을 살펴보았다.

 

640쯤에 숙소에 들어오니까 CCtv8에서 <여왕의 조건>이라는 한국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뉴스와 신문을 듣고 봤다. ‘인민폐 환율(匯率)’ 문제가 새 소식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장시성에서는 18만 명이 홍수로 곤란을 당하고 있단다. 어제 하오에 파리에서는 1만 명의 화인들이 ()폭력, ()안전행진을 벌였다고 한다. 화인들이 여러 차례 강도를 당해서 치안을 확보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이라고 한다. ‘환치우스빠오에서는 3만 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프랑스에는 파리 일원에 60~70만 명의 화인들이 산다고 한다. 멕시코만의 석유 누출 사고에 대해 오바마는 200억달러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는데, 이 곳 신문은 거기에 미국사회의 이중표준(雙重標準) 현상이 있다고 했다. 인도에서 미국회사가 독가스 사건을 일으키고도 보험회사에서 4.5억 달러를 부담했을 뿐이었다. 중국 언론의 논조 중의 하나는 미국에 대한 경쟁자의 자세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해군의 서해 합동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견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622일 화요일 아침에 택배 회사에 전화를 거니 서울의 경우 해운으로 5~6일 걸리고 발송비가 100위안이며 선불로 1kg15위안이고 착불의 경우엔 20위안이라고 했다. 아침에 켜놓은 TV화면에 상하이세계박람회 한국관의 주제는 조화로운 도시 다채로운 생활(和諧城市 多彩生活, Friendly city, colorful life)”이고 중국관의 주제는 도시 발전 중의 중화 지혜(城市發展中的中華知慧)”라고 하는 문구가 보였다.

 

CCtv1에서 아침 850분경에 황웨이와 장예가 진행하여 서울관광을 방송했다. 처음 소개한 것이 걸작이라는 청계천이었다. 생태환경을 개선한 명소로 알려진 모양이다.

 

버스를 타고 국가도서관으로 향했다. 국가도서관의 가방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옆 건물에 가서 <국가 진귀 고문헌 특별전시회(國家珍貴古籍特展)>을 봤다. 9611권인가를 전시한다고 했다. 대부분은 사기나 자치통감 같이 아는 문헌이었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자료도 많았다.

 

책 전시회를 보고 국가도서관의 판정처(辦證處)’에 가서 사진 찍고 열람증을 발급받았다. 선본(善本)열람실(2-1)로 가서 열람신청서를 썼다. 자료의 1/3을 복사해 줄 수 있는데 보통 자료는 1페이지당 8위안이고 고적이면 80위안라고 했다. 참 무슨 자료를 얻자면 힘과 비용이 든다. 내가 찾아본 자료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가도서관이 유일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면당 80위안의 자료비를 내라고 했다.

 

복사를 맡기고 3시 반에 국가도서관에서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종관춘 도서대하로 갔다. 영화와 드라마 코너를 보니까 몇 년 전과는 달리 한국드라마는 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몇 년 사이에 정말 상전벽해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여행서나 학술서나 문화나 어디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그리 확연히 느껴지지 않는다. 삼성 휴대폰이 조금 존재감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구할 책 목록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판되고 나서 몇 년 지나면 대부분의 책이 서점에 없다. 같은 연구실의 연구자가 찾는 <무롄시(目連戱)>도 서점마다 없다고 했다.

 

숙소에 들어와서 식사 후에 신문을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2부가 26일에 출간된다고 한다. 1부는 120만 책이 인쇄되었는데, 2부는 60만 책이 출간된다고 한다. 베이징에는 베이징도서대하 등 3개 도서대하(대형서점)에 있는데, 야윈춘(亞運村) 도서대하가 이번에 막 개입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베이징에는 1.2만 평방미터가 넘는 4곳으로 늘었단다.

 

623일 수요일 950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국가도서관에 가서 복사물을 찾았다. 1150분에 류리창 <중국서점>에 도착했다. <경항대운하문헌집성>1-5 (2009), <고구려발해연구집성>1-6, <민국서남변수(邊陲)사료총서>1-6, <민국철로연선경제()사보고회편>(7500위앤) 등 유리창 중국서점에서는 여전히 다른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책을 취급한다.

 

시딴의 북경도서대하까지 걸어가서 책을 찾았다.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450분에는 왕후징(王府井)신화서점에 가서 무롄시관련 책을 찾아봤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왕후징 거리는 최대의 번화가답게 북적거렸다. 그러나 서점은 시딴보다 활기도 다소 약한 느낌이다.

 

저녁 먹을 시간에 108번 버스를 타고 따뚠난(大屯南) 정거장까지 갔다. ‘야위춘 도서대하는 막 문을 열어서 시설이 최신이고 어린이 부분과 영어교재 부분이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영어책에 비해 다른 쪽은 서가 배정이 단출했다. 한국어교재가 세 칸에 걸쳐 있었다. 3x5x30책 정도의 수량일 것이다. 아마치스의 사랑의 학교’(연변인민출판사) 등 조선글로 된 책들도 20여 권 보였다. 일본어는 8, 노어와 법어와 독어는 각각 1칸씩 배가되어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오늘 신문을 훑어봤다.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맞아 황금주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국의 5대 발명이라는 주판과 황금이 결합된 것이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 같다. 15줄과 105알의 황금주판에는 국화인 모란, ‘()’()’자가 새겨졌다. 중국의 국화가 모란인가. 신문에서는 그렇게 썼다. 중국축구대표팀은 쿤밍에서 12일부터 집중훈련(集訓)”을 하고 마귀훈련주간을 보내며 와신상담했다고 한다. 곧 평가전을 한다고 했다.

 

강서성의 푸허(撫河)의 제방 400m가 유실되었다. 10만 명이 대피해야 한다고 했다. 서남지역의 심한 가뭄재해가 지난지 2개월이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홍수를 만났다. 이번 홍수 지역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공업지대의 하나다. 중국의 신세기 치수방략은 홍수와 가뭄을 결합하여 고려해야 한단다.

 

한편 어제 전국 인대상위회는 촌위회조직법 수정 초안을 심의했다고 한다. “촌규민약이 법보다 크다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박람회에 따라 관련 지식이 신문에 자주 소개된다. 북경청년보에는 자오즈쩐(趙致眞)<조물기-세계박람회의 과학 이야기(造物記-世博會的科學傳奇)>의 내용이 일부 소개되었다. 2000년 하노버 박람회는 전시관 건축에 대해 하노버 원칙이라는 약법3장을 실행했다. 9조항의 요지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자연생태 보호에 있었다. 그래서 모든 건축에 환경에 대한 부면(負面) 영향을 제거하고 재생 가능하지 않은 자원의 사용을 줄이고 건축의 장구한 가치에 주의하며, 건축사가 자기 작품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참가국들은 실제 행동으로 적극 호응하였다. “건축은 응고된 음악이라는 괴테(歌德)의 명언은 영원히 낡지 않는다. 500 헥타아르(公頃)의 상하이 박람회장은 대형 건축 음악회가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였다.

 

1035분에 cctv2에서는 실명제는 망유병(網游病)’을 치료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Btv에서는 한국영화 <2424(鉆石惹的禍)>를 방영하고 있었다.

 

624일 목요일 아침 850분에 CCtv1에서 수원 관광을 안내했다. 수원화성에 가서 공중화장실을 보여주었다. 20년 전, 한국인들은 8688년부터 깨끗한 화장실 운동을 전개했다. 화성행궁에 들어가 대장금을 촬영했다고 소개했다. 숙소에서 나가 버스를 타고 우다오커우 정거장에서 내렸다. 환전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국가도서관에 가서 책 두 권을 복사했다.

 

국가도서관에서 나와서 전철을 타고 내가 아는 연구소에 갔다. 아는 사람이 출타 중이어서 우다오커우의 한국식 PC방에 가서 전자편지를 확인하고 문서를 만들어서 발송했다. 전반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한국 사람들이 많이 빠져 나가서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별로 성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들어와 신문을 폈다. 24일은 메시의 23세 생일이라고 한다. 이곳의 축구신문은 생일쾌락이라고 썼다. 최고의 생일선물은 주장완장이라고 했다. 중국의 보안기관은 최근 신장의 공포조직을 깼다고 했다. 남방주말에는 북한팀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흥미롭게도 조총련에 대한 소개도 심도 있게 했다. 정대세가 인상적이었던 거 같다.

 

625일 금요일 아침 10시에서 30분 동안 책을 발송했다. 77kg을 발송하는데 발송비 100위안을 포함하여 모두 1,255위안을 지불했다. 1150분에 숙소퇴거절차를 마쳤다. 베이징의 아는 분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어제는 상하이 세계박람회에 갔다가 늦게 돌아왔다고 한다. 베이징의 변화도 크지만, 상하이는 몇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했다.

 

오후 4시에 여행사에 가서 티베트 입경허가서와 기차표를 찾고 나왔다. 베이징서역으로 가서 기차역의 투시검사대를 통과하여 4번 대기실로 갔다. 역구내가 1990년대보다는 참 밝아지고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내가 탈 자리는 T27열차의 9() 신에어컨 좌석(新空調硬座)이었다. 930분에 열차가 출발했다. 이제 45시간 동안 달려서 라싸에 도착할 것이다. 열차는 기관차를 포함해서 14량이었다.

 

처음에 앉은 자리는 시닝의 한족 청년들이 바꿔 달라고 해서 자리를 바꿔줬다. 이번에는 티베트학생들이 일행이 함께 가겠다며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주었다. 학생표는 195.5위안이었다.

 

중국의 공안조직에서는 신장성의 공포분자 10여 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두목은 이밍 써마일(Yiming Semaier, 33)과 아부두러시티 아부라이티(Abudurexiti Abulaiti, 42). 두목 아부두러시티 아부라이티는 동이운공포조직이 파견한 인원이라고 한다. ‘동투르크스탄이슬람운동은 중국 공안부가 200312월에 인정한 4개의 동투르크스탄공포조직의 하나라고 한다. 이 조직은 베이징올림픽기간에 카슈에서 변방관병을 습격한 조직이라고 한다. 이번 체포는 작년의 ‘7.5 우룸치 유혈사태에 대한 예방조치의 하나로 보인다. 정치적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그것이 발생하는 방식은 다르다. 월드컵과 세계박람회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은 권력의 존재 방식을 상기시켜 준다. 앞으로 어느 나라든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이런 적대세력간의 충돌이 있을 것을 예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626일 토요일 아침 740분에 열차는 시안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도 있고 타는 사람도 있었다. 20분 쉬고 출발했다. 열차에 비치된 <중국서장> 잡지에는 세박회상의 티베트관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세계박람회를 살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차창밖으로 드넓은 보리밭 또는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중국에서 ‘5개념의 성립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미 곡물을 거둔 빈 밭이라서 뭔지는 모르겠다. 드넓은 보리밭(밀밭)을 보니 동주에서 수까지의 1차 천년영화를 보리가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장하자면 2차 천년영화는 쌀이 만들었다.

 

아침 104분에 일어나서 보니 지형이 심상치 않았다. 산과 골짜기와 냇물로 되어 있었다. 터널도 많았다. 중간에 있는 몇몇 젊은 사람은 노래를 불렀다. 한어노래도 부르다가 티베트어노래도 불렀다. 음이 아주 높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성량은 풍부했다. 냇물은 하나같이 흙탕물이었다. 1149분 톈수이역(天水)을 지났다. 지붕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는 집이 있었다. 마을사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한참 가다 보니 아직 보리 또는 밀이 새파랗고 보라색 꽃이 핀 식물이 자라고 있는 밭도 있었다. 밭에 많은 식물이 있는데 그걸 모른다면 그 지역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산에는 조림한 흔적이 있었다. 낮에 두어번 집벽에 남녀평등이니 남아 여아등의 단어가 보였다. 아직도 남아선호가 심한가 보다.

 

오후 229분에 란저우역(해발 1526m)에 도착했다. 오후 616분에 시닝(해발 2260m)에 도착했다. 시안에서 란저우 넘어가는 길에 좀 험한 지대가 있고, 그 후에는 시닝까지 그대로 통한다. 바깥온도는 28도란다. 시닝에서 많은 사람이 타고 많은 사람이 내렸다. 630분에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유채꽃과 비닐하우스가 종종 보였다. 왼쪽 무릎속이 은근히 아팠다. 몸이 그리 좋지 않아서 신경쓰기도 힘들었다. 티베트 청년들은 광동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주변 승객들은 기차가 정말 빨라졌다고 했다. 대운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문명은 양의 문제를 잘 해결하면서도 속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취약성을 보였다. 유목세력의 속도에 불리한 위치를 감수해야 하기도 했고, 서구의 기선의 속도에 압도되어 근대에 수동적 위치를 감수해야 했다. 이제 철도, 고속철, 고속도로, 위공위성 등 속도에서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8시가 넘자 또 노래패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한어 노래도 하고 티베트어 노래를 하기도 했다. 매우 현명한 노래방법이다.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묶는 것도 의미가 큰 것 같다. 둥근 동산 모양의 초원이 펼쳐지다가 지평선이 보이는 초원이 펼쳐졌다. 열차는 114km의 속도로 초원을 달렸다. 10시에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숨이 좀 가빴다. 산소가 평지보다 적은 모양이다. 시닝에서 고르모(格爾木)까지는 통칭 800km라니까 100km의 속도로 달리면 새벽 2시경에 도착할 것이다. 칭하이호는 밤에 달려서 보지 못했다. 기차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엄두가 나지는 않았다.

 

고르모에서 새벽 318분에 정차하여 20분간 쉰다고 했다. 바깥에는 바람이 좀 불었다. 차안에 있다가 나가보니 좀 서늘했다. 칭짱철로에서 1,142km의 고르모와 라싸 구간은 2001629일 기공되었다. 총투자액은 330.9억 위안이다. 20051015일 전체 선로가 관통되었다. 200671일 정식으로 개통되었다. 우연히도 2006년에는 산샤댐과 함께 칭짱철로와 같은 거대 인프라가 완공되었다. 고르모는 본래 몽골어에서 나왔는데 하류가 밀집한 지방이라는 뜻이다. 344분에 열차가 출발했다. 좌석(잉쭤)의 승객들은 한족과 티베트인이 반반인 것 같다. 침대칸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다. 아침 618분에서 27분까지 기차가 엇갈려 지나가느라고 서행했다. 이곳은 단선철도다. 장북고원은 흙의 지평선이다. 비가 왔는지 땅은 젖어 보였다. 호흡이 상당히 가쁘다. 의자에서 잠을 자기는 무척 힘들었다. 두 시간 자고 깼다. 한참 지나자 사위가 밝아졌다. 기차 속도는 84km이었다. 숨이 가빴다. 화장실을 자주 갔는데, 줄서서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대변이 있는 것도 그렇고 그게 좀 불편했다.

 

9호칸에는 11줄의 의자가 있으니까 5x10=50명과 11째 줄의 3명까지 모두 53명 정도가 탈 수 있다. 입석까지 있다면 6명 정도가 탄 것 같다. 야생당나귀 몇 마리가 보이는 곳도 있었다. 철로가 이동로를 끊었으니 당나귀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을 것이다. 외계온도는 7도였다. 한참을 더 가니 야크와 양떼도 보였다. 열차속도는 86km였다. 장북고원의 무인지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숨쉬기도 불편하고 속도 아프고 지난번의 여행보다 쉽지 않았다.

 

참 넓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느낌이다. 장북고원은 무인지대지만 가끔 마을도 있고 여름에는 유목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오토바이가 가끔 보이는 걸로 봐서 유목민들이나 철로 관리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모양이다. 초원에는 개울이 있어서 사막화되지는 않았다. 흰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떠 있어 초원은 운치를 더한다. 삶의 조건은 엄혹하다. 초원에 철로, 전화선, 도로, 휴대폰 중계탑, 송전탑 등이 생겨 풍경을 바꿨다. 오후 124분부터 한참 쉬었다. 220분에 다시 출발했다. 참 오랫동안 나무를 보지 못했다. 철도 연변이라서 그런지 시짱쪽도 철조망이 초원에 많았다. 1997년에는 철조망이 시짱쪽은 별로 없었고 칭하이쪽에는 많았다. 초원의 철조망은 사유제가 중국 전역에 정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티베트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인 것 같다.

 

감기 증세로 머리 아프고 속 아프고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아프지 않은 곳이 별로 없다. 실제 삶의 현장은 어려움이 많겠지만,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는 운치가 없지 않았다. 넓은 초원은 계속 이어진다. 설산은 눈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런 초원에 기찻길이 생긴 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대륙횡단열차, 러시아의 시베리아횡단열차, 일본의 만철만큼이나 특별한 일이다. 이런 철로에 대해 유목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지인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궁금한 일이다.

 

오후 340분에 열차는 또 섰다. 왼쪽에는 큰마을, 오른쪽에는 큰 초원이다. 티베트인 청년들은 축구 얘기도 종종 했다. 앞자리 사람은 참 휴대폰 통화를 자주 했다. 고원에서도 휴대폰이 잘 터졌다. 물론 내 것은 대부분 서비스 지역을 벗어나 있었다. 이 초원은 까만 점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야크 왕국이다. 가만히 보면 야크왕국은 철조망으로 분할되어 있다. 438분에 당슝의 도로표지판에는 라싸 165km라고 되어 있었다. 이제 두 시간만 가면 되는 모양이다. 당슝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두어 그루 봤다. 당슝부터는 비 때문에 한 동안 풍경을 잘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야크와 양들은 비를 맞고 가만히 있었다. 바깥 온도는 14도였다.

 

라싸 가는 길에도 여전히 나무는 없다. 나무 하나 없는 갈색 산들은 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어도 생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속도는 96km였다. 터널을 통과하자 개울과 함께 달리는 산골짜기가 이어졌다. 길가에 버드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물은 한동안 유채꽃만 보였다. 보리는 한뼘쯤 자라 있었다. 보리 이삭이 팬 곳도 있었고, 하얀 감자꽃도 보였다. 보리 키가 본래 크지 않은 품종이 있는 모양이다. 수염 짧은 밀도 보였다. 한참 지나자 드넓은 밀밭이 보였다. 더 내려가자 드넓은 보리밭도 보였다. 밀이삭은 꼿꼿이 섰고, 보리이삭은 살짝 고개를 옆으로 숙이고 있다.

 

저녁 627분에 드디어 열차가 라싸에 정차했다. 라싸는 여전히 큰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나 변방도시로서는 매우 잘 정비된 느낌이었다. 역은 시 외곽에 새로 지었다. 역에는 한자로 라싸(拉薩)’라는 큰 명패가 붙어 있었다. 티베트어는 위쪽에 작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한 청년이 광장쪽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군인(정확히는 무장경찰)이 제지했다. 그것이 라싸의 풍경의 일부인 모양이다. 가이드는 목도리(카따)를 주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가이드와 라싸의 일정을 얘기했다. 그리고 티베트에서 보내는 첫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샤워 하지 말라! 물을 더 마셔라! 과일을 더 많이 먹어라. 고산 반응을 느낀다면 더 쉬어라.

 

가이드와 함께 칭녠루에 있는 유스호스텔(Phuntsok khangsang international youth Hostel)에 도착했다. 라싸에 와서 숙소 직원(Wangchuk)에게 처음 들은 얘기가 한국팀이 우르과이팀에게 져서 도태되었다는 얘기였다. 식사 후에 유스호스텔에 들어가 보니 벽과 방에는 온통 낙서가 넘쳤다. 한어낙서가 대부분이었다.

 

방은 미루나무 사이로 포따라궁이 보이는 방이었다. 방안에 누워 있다가 지나온 일정을 정리하고 생각을 추슬러 보려고 했더니 몸이 영 시원치 않아서 잠자리에 들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도 의자가 아닌 침대에 누우니까 훨씬 나았다.

 

628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나가보니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와 함께 왔다. 오전 나절에는 새 가이드가 안내를 했다. 가이드는 잠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노르부링카(여름궁전)로 가기 전에 포따라에 가서 예약을 했다. 포따라궁 관람은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오전에는 노르부링카에 갔다. 문혁 때 세 궁전 중에서 두 개가 파괴되었다. 먼저 들어간 방에는 캴상 갸초의 의자와 타라 여신의 52개의 탕카가 있었다. 달라이 라마(holder of Buddhist)는 관음보살의 화신이고, 타라 여신은 달라이 라마의 누나라고 했다. 탕카는 스톤 페인팅이란다. 건물 안의 바닥은 아카로 만들었다고 했다. 보기에는 그냥 시멘트였다. 발이 안 아프고 여름에는 방안이 춥고 겨울에는 방안이 덥단다. 이 궁전은 18세기에 만들어졌다.

 

가이드는 티베트인들은 고양이도 좋아하지만 개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칭짱철로가 개통되었는데, 한 라싸 사람은 모든 게 더 비싸졌다!”라고 했다. 한비자의 상아젓가락 효과와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9대 달라이 라마의 궁전으로 갔다. 21여신상이 있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 10대 뺀첸 라마의 사진이 있었다. 달라이 라마의 자동차와 가마가 있었다. 티베트에서는 한국영화가 유행인데 남자는 주로 울고 러브 스토리가 많다고 했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궁전의 시계는 “9시에 멈춰져 있다”. 그 시간에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떠났다. 궁전의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1956년에 벽화가 만들어졌고, 1959년에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갔다. 가이드는 벽화에 티베트의 삶이 다 있다.”고 했다. 벽화들은 1956년에 암도 잠빠(Amdo Jampa)가 그렸다. 한쪽 벽의 그림은 동서남북 티벳의 사원을 모두 그렸다. 달라이 라마의 기도실 옆에는 카메라가 있었고, 영국에서 선물한 라디오도 있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라디오와 시계를 좋아했다. 오른쪽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사(life history)가 그려져 있고, 왼쪽 벽은 달라이 라마의 생애사, 가족, 선생님이 그려져 있었다. 그쪽 구석에 있는 것이 티베트 안에 있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유일한 사진이다.

 

오후에 가이드과 함께 조캉 사원에 가고, 내일 아침 1050분에 포따라에 가자고 했다. 오후 3시에는 세라 괸빠에 가자고 했다. 조캉 사원은 라싸 툴낭 쭉라캉인데, 라싸는 ‘ra(goat) sa(sand)’에서 나와 lhasa(God Palace)로 변했다고 한다. 연못은 8대 달라이 라마가 만들었다.

 

가이드는 거리에서 무장경찰의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숙소 앞에서는 무장경찰 7명이 지나더니 거리에서는 주로 5명이 순찰했다. 5명은 중간에 무슨 발사기를 가진 1명과 방독면을 가진 네 명이었다. 라싸 시내의 무장경찰은 신장의 '공포분자' 체포 소식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무관한 소식이 아니라는 데에 참 씁쓸함이 있다. 지난 615일 화요일에 한국군 오쉬노(친구)’ 부대 선발대가 서울공항에서 출발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7세기에 쏭짼감뽀 왕이 네팔인 왕비를 위해 조캉 사원을 지었다. 송잰감뽀 상의 머리 위에 석가모니 얼굴이 있다. 왕의 왼쪽에 네팔 왕비, 오른쪽에 중국왕비, 뒤쪽에 아들을 낳은 티베트 왕비가 있다. 문성공주 뒤에 뻬마삼바와가 있다. 티베트의 3대 다르마킹은 송짼감뽀, 티쏭데짼, 티래빼짼이다. 또 어떻게 조캉사원이 세워졌는가를 설명하는 벽화도 있었다. 노르부링카에서와 마찬가지로 벽화사진을 못 찍게 하는 게 제일 답답했다.

 

저녁식사를 하며 들어보니, 가이드는 6백위안에 구도심지역에 방을 얻었다고 한다. 세 개의 방 중에 한 칸은 불당이라고 한다.

 

1045분에 라싸 텔레비전(電視台)’에서는 고두심 씨가 나오는 꽃보다 아름다워(比花還好)’를 했다. <라싸만보> 신문에는 다양한 소식이 나와 있었다. 금년의 라싸 쇼뙨 절(雪頓節)810일에서 16일까지 거행한다. 북한은 미국에 65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 민정기관은 그 동안 비밀로 하고 있던 한국전쟁 사망자 숫자를 183108명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5차 티베트공작좌담회의 정신을 구현하자는 기사도 보였다. 615일에 이어 26일에도 150만 명 이상이 상하이 세계박람회를 관람했다고 한다. 중국의 작년 유동인구는 2.11억 명에 달했다고 한다. 145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두통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629일 화요일 아침에 포따라궁에 들어갔다. 짐 검사를 하고 한참 들어가서 100위안에 입장권을 샀다. 올라가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50분 만에 나와야 한다고 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방은 192213대 달라이 라마가 만들었다. 가이드는 포따라궁이 큰 사원인데 지금은 스님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가이드는 4일에 한 번씩 올라오다보니 모두 아는 사람이었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있었고, 14대 달라이 라마의 의자는 비어 있었다.

 

5대에서 13대까지의 기도실이자 침실은 17세기에 건설되었다. 7대와 8대 달라이 라마 사이에 6대 뺀첸 라마가 있다. 서로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5대 달라이 라마의 스투파는 가장 큰 스투파다. 거기에 3712kg의 금이 들어갔다. 1220분에 포따라궁 관람을 마쳤다.

 

점심은 네팔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한 티베트인은 1년 전에 3일간 혼례식을 했다. 예전에는 한 달이었다. 첫날은 패밀리, 둘째날은 프렌드, 셋째날은 워킹 피플을 위한 잔치를 했다. 가이드는 가이드 일을 4월에서 11월까지 하고, 겨울에는 일이 없다고 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입장료가 할인된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30%가 농민, 30%가 유목민, 나머지는 공무원 등이라고 한다.

 

오후 2시에 차를 타고 티베트박물관으로 갔다. 국가박물관이라 입장료는 없었다. 쏭짼감뽀와 문성공주의 사진이 있었다. 식물과 동물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냥 후루룩 둘러봤다. 박물관에서 325분에 나왔다. 20여 명의 한국인들이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었다. 가이드는 한족으로 2명이라고 했다. 한국 아줌마는 박물관의 화면을 보며 현세에는 기대할 게 없으니까 저렇게 간절하게 내세를 추구한다고 했다.

 

가이드는 라싸에서 노르부링카가 제일 좋다고 했다. 나무도 많고 아름답다고 했다. 나도 벽화가 있어서 맘에 든다. 내 몸이 영 시원치 않았다. 고산반응이라기보다는 감기 때문에 며칠 힘들었던 것 같다.

 

숙소에서 신문을 보니 어젯밤 470명의 경찰이 여름철 엄격히 타격하기활동을 했다고 한다. 세계박람회는 세계박람회고 치안은 치안이다. 박물관에서 돌아 올 때 숙소 앞 길에는 경찰 2명이 지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촬영기를 들고 있었다. 세계박람회의 덴마크관이 뉴스에 나왔다. 덴마크는 자전거 왕국이란다.

 

어제부터 한미훈련은 7월로 연기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늘 신문에는 중국군이 동해에서 실탄훈련을 한다고 했다. 요즘 양안관계는 좋은 모양이다. 무슨 합의서를 체결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반면에 남북관계는 험악하다. 오늘 신문에도 너무나 대비되는 소식이 실렸다. 뉴스를 보니 양안은 구동존이(求同存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과 대만은 양안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했다. 총칭에서 장차 양안 경제합작 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양안 합작을 추진하는 중국측의 개념은 쌍영(雙贏)’인 듯하다.

 

요즘 중국 TV를 보면 고전명작을 다시 찍어 보여준다. ‘설인귀도 재방송되고 있었다. <서유기>는 다른 판본이 두 개 방송되고 있었다. <삼국>은 현재의 국책을 은유하고 있을 것인데 지금 정확히 어느 때 만들어진 것을 방송하는지는 모르겠다. <홍루몽>은 지금 다시 만들어 방영하고 있었다.

 

630일 수요일 아침에서 cctv7에서 스탈린의 죽음을 봤다. 스탈린은 철권통치로 고독했다. 뉴스에서 보니 미국의 러시아 간첩 체포 사건은 여기 TV에서는 관심사인 것 같다.

 

점심때 1220분쯤 기사와 가이드와 헤어졌다. 떠날 때 가이드는 염주를 선물로 줬다. 여행은 어땠느냐고 물어서 사람도 좋고 유적지도 좋고 풍경도 좋다고 했다. 가이드가 있는 것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맛이 너무 없어서 내내 힘들었다.

 

T24 열차는 630() 오후 110분에 출발하여, 72() 오전에 청두에 도착한다. 1240분쯤 기차에 들어갔다. (라싸-청두 712. 1) 열차는 기관차 포함하여 17량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은 자리를 잡느라고 시끌벅적했다. 거의 대부분 한어였다. 침대칸(루안워와 잉워)에는 서양인 네 팀(8)이 있었고 티베트인은 보지 못했다. 티베트인들은 좌석(잉쭤) 쪽에 있는 모양이다. 침대칸(잉워)은 정원이 60명이었다. 푹신한 침대칸(루안워)은 정원이 32명이었다.

 

열차는 오후 19분에 출발했다. 15하 침대는 나, 16하는 청두아줌마와 아들, 15중은 상당히 아는 척을 하는 한족 청년, 그리고 15상과 16상은 젊은 부부였다. 내가 탄 칸의 16호 중포(中鋪)는 아이를 데리고 온 청두 여자의 침대였다. 어린이의 기차요금은 168위안이다. 모자에게 침대를 바꿔줬다. 좌석이 아닌 침대칸만 해도 정말 사람 사는 곳 같다.

 

나가호는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담수호라고 한다. 안도에 619분에 도착했고 해발 4702m였다. 갈 때는 다른 쪽을 봐서 몰랐는데 티베트에서 나오면서 보니까 마을이 꽤 있었다. 공간이 참 넓다. 이런 공간 감각은 사고방식에도 반영될 것 같고, 제국 구상도 쉬울 것 같다. 오후 724분에 탕굴라를 지났는데, 그곳은 해발 5067m란다. 5m가 넘어도 초원은 철조망(왕웨이란網圍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832분에 토토허를 지났다. 창장의 원류라며 안내방송은 중화민족 5천년과 연결시켰다. 비가 자주 오는 듯하다. 먹구름은 적지만 구름도 많고 비가 온 흔적이며 개울도 많다.

 

71일 목요일 아침에 열차의 안내방송에서는 오늘이 공산당 창립 89주년이라고 했다. 자느라고 고르모를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시간을 달린 아침 820분에도 여전히 초원이었다. 철로는 여전히 단선철로였다. 청해 쪽은 초원 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왕웨이란도 촘촘한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야크떼와 양떼가 초원을 거닐고 있다.

 

97분 오른쪽으로 칭하이호가 있다. 끝없는 바다 같다. 말은 청하이호 쪽에 와서야 좀 보였다. 관목이 보이는 곳도 있다. 경작지가 보이는 곳도 있다. 계속 지평선만 보이는 초원이다. 밭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 파란싹들이 쭉 자라는데 유채 같다. 944분 옆으로 기차가 지나쳤다. 어느 결에 철로는 복선이다. 그러니까 20시간 정도 되는 칭하이호 근처까지 단선철로이고, 티베트쪽의 유목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109분에 긴 터널을 통과했다. 조금 더 가자 나무가 마을주변에 많이 보이고 주민들은 주로 유채꽃 농사를 지었다. 낮은 지대에는 쭉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몇 번 터널을 통과했다. 밀과 보리, 유채 등과 함께 참깨도 보였다. 흙집은 사라지는 추세인 모양이다. 새로 짓는 집은 벽돌집이나 시멘트집이었다. 1035분에 인구밀도가 높은 농촌지대에 들어섰다. 도시에는 공사중인 곳이 많았다. 도로표지판에 황위안(湟源)’이 보였다. 곧 터널이 나왔다. 1110분 열차는 시닝 시내에 들어서 달리는 중인 듯하다. 산의 나무는 조림으로 억지로 키우는 듯하다. 1127분에 시닝에 도착했고 49분 출발했다. 시닝은 여기저기 건설이 이뤄지고 있으나, 색깔이 단조롭고 큰 활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란저우는 전체적으로 시닝보다는 훨씬 크다는 느낌이 든다. 색깔은 여전히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이 있으나, 시닝보다 다채롭고 활기가 느껴진다. 상업지역에는 특히 붉은 색이 많았다. 제비가 몇 마리 날아다녔다. 건조지대의 메꽃은 채송화꽃보다 작다는 느낌이 든다. 시닝보다는 란저우가 훨씬 크다. 란저우는 시닝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크다는 느낌이 든다. 베이징의 변화도 큰데 베이징 사람이 놀랄 정도로 상하이의 변화는 큰 모양이다. 40분쯤 시내 구역을 달렸다. 오후 210분에 란저우에 정차했다. 32분에 출발했다. 역에서 란저우만보를 샀다. 1면에는 제6집단() 호함편대인 란주함이 아덴만으로 출동한다는 소식이 실렸다. 미국연방조사국의 낚시수사11명의 러시아 간첩혐의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도 빠지지 않았다. 그중 미모의 여상인이 관심을 끈다고 한다. 클린턴과 푸친이 만나서 개선되는 미러관계가 간첩사건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626일 이래 대흥안령의 화재를 막기 위해 1.3만 명이 나섰다고 한다. 란주빈의관을 소개하는 기사도 있었다. 빈의복무는 아침해 사업이지만 여전히 기피가 있다고 한다. 토련 연강유적도 보호해야 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20089월에 순환경제촉진법이 반포되었는데, 란주 도시광산의 개척자로 한 기업이 소개되었다.

 

라싸신문은 전국적인 관점, 정치군사적인 관점에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란저우완바오는 전국적인 관심사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실질적으로 지역적인 관심에 집중한 듯한 느낌이 든다. 사례가 하나뿐이라서 과도한 일반화일 수 있다.

 

오후 321분 기차가 긴 터널로 들어섰다. 열차는 계속 골짜기 사이를 달렸다. 좀 넓은 곳도 있었다. 이전에 산은 거의 모두 불모의 땅이더니 이제는 산위에까지 밭이 있는 곳도 있었다. 작물 중에는 옥수수가 많이 보이고 개울과 밭 사이에는 흙낭떠러지가 있었다. 동굴집을 지을 수 있는 지형인 듯하다. 집집마다 밀짚더미들이 쌓여 있다. 450분 우산(武山)역을 지났다. 511분 깐구(甘谷) 역을 지났다. 계속 골짜기를 지나면서 느낀 점은 좁으면 좁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청장고원 쪽이 비었다면 여기는 차 있다는 것이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한 꺼풀씩 벗겨지는 느낌이라면,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한 꺼풀씩 입어가는 느낌이다. 물질적으로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티베트쪽은 아예 정신적인 쌓기를 선택한 셈이라고나 할까.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양파 껍질 같은 것이 어느 쪽이든 똑같지만 그 성분은 다른 셈이다.

 

오후 817분에 안내방송에서 다음 역은 빠오지라고 했다. 847분에 빠오지(寶鷄)에 도착하여, 97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가 출발하면서 다음 역은 꽝위앤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내일 아침 757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열차는 라싸에서 청두까지 39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휴대폰은 생활의 일부다. 이 밤에는 그런 대로 잤다.

 

72일 금요일 아침 7시 반에 밖을 보니 옥수수, 비닐하우스, 벼논이 보였다. 많은 논이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안내방송에서는 쓰촨인들이 수입의 1/10을 차 구입에 쓴다고 했다. 공간을 나무와 벼와 건물들이 꽉 채우고 있다. 공간을 비워둔 고원의 풍경과는 정반대다. 시야에 산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다. 30분 늦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침 824분에 열차는 청두역에 도착했다. 모자도 다른 일행도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청두역을 벗어나 달리다가 공상은행이 보이길래 버스에서 내려서 1042분에 은행 ATM기에서 400위안을 찾았다. 지도에 용링(永陵)공원이 있길래 뭔가 하고 들어갔다. 5대 후촉의 왕젠(王建)의 왕릉인가 보다. 용링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 눈연꽃인상 호텔(雪蓮印象酒店)’라는 간판이 보였다.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 가봤다. 작은 호텔인데 청두 귀국 티베트동포 접대소(成都 歸國藏胞 接待站)’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안내대에 가서 물어보니 1인실이 160위안이라고 했다. 일단 묵어야 한다면 샘스게스트하우스도 좋고 이곳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묵겠다고 했다.

 

숙소에서 나와서 청두 거리를 둘러보았다. ‘톈푸(天府)광장에 가서 근처에 있는 톈푸서성(天府書城)에 들어갔다. 베이징에서 못 구한 책을 여기서 구할 수 있을까 하여 둘러봤다. 장서량은 훨씬 빈약했다. 길거리에 파는 수박은 베이징과는 달리 소형수박이었다. 다른 도시도 그렇지만 청두 시내에서는 삶의 속도가 무척 빨라진 느낌이다. 자전거도 전기자전거가 도입되어 속도가 빨라진 탓도 있을 것이다.

 

숙소에 와서 오랜만에 샤워를 했다. TV를 켜니 ‘24번 통로'캉바웨이스'였다. 캄바 위성TV! 730분에는 한어학습을 하고 있었다. ‘심천위성tv에서는 1125분에 한효주 씨와 가수 이승기 씨가 나온 <찬란한 유산(錯位人生)>을 하고 있었다.

 

73일 토요일 아침 724분에 꿈 속에서 박지성 선수와 얘기하다가 잠을 깼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아쉽게도 새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

 

1015분에 숙소에서 나왔다. ‘무후사나 가볼까 하다가 짐도 무겁고 경비도 부족해서 그냥 공항에 가서 책을 읽다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54() 버스를 타고 가서 1052분에 청두 북역에 도착하여 300번 공항버스를 탔다. 역에서 한두 정거장 못 미친 곳에는 티베트인들이 모여사는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티베트어로 쓴 호텔이름과 상점이 보였다. 청두역 건너편에는 문신을 새겨주는 사람들이 죽 앉아 있었다. 공항버스는 딱 1시간만에 쐉류공항(雙流機場)에 도착했다.

 

공항대기실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10시가 넘어서니까 국적항공기에 탈 한국손님들이 나타났다. 단체여행객은 60대 남녀노인들이었다. 탑승 수속을 하고 10번 탑승구 쪽으로 오다 보니까 일곱여덟 개 되는 판매점에서 티베트 기념품을 파는 곳이 두 군데였다. 기념점에는 팬더인형이 많았다. 비행기는 밤 1122분에야 탑승구에 대고 오는 손님이 내렸다. 대기실에서 한국인 노인이 인천대교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고속버스가 추락했단다. 안전거리를 안 지켰다고 한다.

 

74일 일요일 새벽 0020분에 비행기는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40분이 넘어서야 출발한 듯하다. 비행기는 새벽 452분경에 공항에 내렸다. 집에 왔더니 베이징에서 부친 책을 가져온 택배 회사 직원이 무척 힘들어 하더라며 책도 인권을 생각해서 포장하라고 했다. 이번에는 구입비가 많지 않아서 별로 사지 않았는데 책은 역시 무게가 있다.

 

이번 방문은 주로 심리적인 차원이겠지만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아무튼 자료 구입도 자료 구입이지만, 이번 여행은 역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양안의 경제협력 기본협정이나 상하이 세계박람회, 동아시아의 안보딜레마 등 중요한 대목이 많았다. 상하이 세계박람회도 좀더 면밀하게 봐야 할 행사인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외부자본, 특히 화교 자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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