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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9 /2012.03] 기획 _ The story of SUN(孫)’s Family: 인천화교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0)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6 조회수 113


[Vol.19 /2012.03] 기획 _ The story of SUN()’s Family: 인천화교 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0)

(10) 이젠 화교협회도 젊은 사람이 필요해

 

구술: 손덕준 _ 인천 중화루 사장 

채록: 송승석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인천대학교 HK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은 화교연구의 일환으로 화교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천화교의 대표적 인물 손덕준(孫德俊)과 그의 가족이다. 어느 일개인의 가족사가 화교 전체의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교 개인의 인생 궤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은 삶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구술채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도록 하겠다.

 

*. 본 연재는 기본적으로 구술기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되, 지나치게 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임의로 수정을 가했다.

*. 문중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은 공개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나 반복되는 내용으로, 구술대상자와 상의 하에 생략한 부분이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채록자 임의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 (???) 부분은 성명이나 상호명으로, 구술자가 한자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추후에 조사를 해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송승석(이하 송):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도 화교사회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화교사회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조직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야 어떻게든 운영이 될 테니까. 먼저, 화교협회가 있고, 또 지금은 일단 없어졌다고 하지만 번영회 같은 그런 조직도 있고, 또 학교 이사회도 있고 또 만약에 무핑 사람이면 무핑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 한 잔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친목회 같은 것도 있을 테고, 또 중국 요릿집을 한다고 하면, 주방장들이 모이는 모임도 있고, 또 중국 요릿집이 아니라도 무역을 한다고 하면 그 무역상들끼리 모이는 모임도 있을 테고…. 그러니까 같은 업종들끼리 모여서 어떤 조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로 회비도 내고 하는 그런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을 좀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먼저, 화교협회에 대해 말씀 좀 해주세요. 사실, 화교협회가 인천차이나타운에서 제일 큰 화교조직이잖아요? 그렇죠? 사장님도 오랫동안 화교협회 일 하셨고.

 

손덕준(이하 손) : 나도 필명안(畢明安) 회장님 모시고, 그 밑에서 부회장을 칠팔년 했었죠. 지금은 회장이 진영창(陳永昌)이라고 우리보다 젊은 사람이에요. 우리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야. 대학출신이거든. 처음으로 대학출신이 회장하게 된 거지.

 

 

: 화교협회는 대개 어떤 방식으로 운영이 되는 거예요? 일단 회장이 있고, 그 다음에 부회장단이 있고…. 그렇죠? 부회장단은 몇 명이에요?

 

: 회장단이라고 해요. 회장단은 회장 포함해서 여섯 명. 이사는 열아홉인가? 스물인가?

 

: 그 밑으로는 없어요?

 

: 이사 밑에는 일반 회원들이지.

 

: 일반 회원들은 여기 차이나타운에 거주하시는 화교들 전부?

 

: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 회원들은 회비도 내나요?

 

: 지금 회비는 1인당 1,000원씩 받을 거예요.

 

: 천원이요? 너무 적은 거 아닌가?

 

: 옛날엔 5백 원 했고, 지금은 올라서 천원. 식구가 다섯 명이면 그것도 한 집에 한 달 5천원이에요. 적은 편이지. 여기 인구가 3,800명 정도 되니까, 그거 합하면 얼마야? 미성년자 빼고.

 

: 기금이 얼마 안 되겠네요?

 

: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어. 거기다가 유치원에서 나오는 월세가 월 150. 그리고 절 있잖아요? 의선당(義善堂). 거기서 나오는 월세가 월 180 정도. 그러니까 그 인두세 걷어봐야 난방비, 전화비, 기본 관리비 좀 쓰고, 직원 월급 주고 나면 없어. 협회 사무실에 총무 맡아보시는 노인 한 분 계시고, 여직원 한 명. 다 월급 줘야 하잖아?

 

: 운영비로 다 써버리면 나머지는 없는 거네요?

 

: 그렇죠. 그러니까 화교협회가 뭔 일 해보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 돈이 없는 거야.

 

: 그래도 화교협회는 여기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큰 조직이잖아요? 일본 요코하마나 나가사키에 가더라도….

 

: 내가 말씀 좀 드릴게요. 내가 얼마 전에 중구청장하고 구 관계자들 모시고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다녀왔어요. 일본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옛날에 조직이 스무 개가 넘었대요. 내가 그때 가서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회장을 같이 만났어요. 그 사람은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사람이야. 요코하마 시에서 그걸 인정해요. 화교 관련 모든 일은 이 사람을 통해서 하도록 하는 거야. 다른 방법으로 추진하는 거는 시에서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대표지.

 

: 사실, 일본 화교사회에는 광동방도 있고, 복건방도 있고…. 지역마다 나름대로 방()을 구성하고 있잖아요? 근데 여기는 사실상 산동방 하나잖아요? 혹시 산동 외에 다른 출신들도 여기 있어요?

 

: 있기는 있어요. 그런데 거의 없죠. 사실, 방은 옛날 얘기인데…. 하여튼 우리 구화교는 산동방만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신화교들이 있어요. 이제 앞으로 소상인 투자자들이 대륙에서 점점 더 많이 들어올 거예요. 이젠 그렇게 형성이 될 거예요. 아까 하다 말았는데, 요코하마 가서 내가 느낀 건 뭐냐 하면요? 차이나타운에 특혜를 주는 거예요. 차이나타운 명의로 해서 대형 빌딩주차장 하나를 지어주는 거예요, 시에서. 빌딩 짓는데 드는 돈은 은행에서 대출해 주고, 그 대출이자는 시 정부에서 대신 갚아줘요. 그 대신 주차장에서 나오는 수익금 가지고 대출 원금 갚고, 차이나타운 위해서 쓰는 거예요. 그 대신 차이나타운에서 하는 행사 같은 거에는 정부가 한 푼도 지원 안 해요. 다 행사 자체 내에서 모든 걸 상품화시켜가지고 벌어서 충당하는 거죠. 내가 보니까 장사도 잘 되고,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선 느낌이에요. 뭔가 딱 체계가 잡혀 있다는 생각 들었어요. 그 회장은 일본으로 귀화한, 일본 국적 가진 사람이에요. 그래도 산동방이니 북경방이니 다 업무 추진하는 거 모두 이 사람 통해서 해야 돼. 그러니까 라인을 하나로 통일한 거지. 질서가 잡혀 있어요. 우리도 그렇게 체계적으로 해야 여기 차이나타운도 발전할 수 있어요.

 

: 요코하마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도 시 정부는 손해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거든요.

 

: 맞아요. 1년에 거기 다녀가는 관광객 수가 2천만 명이래요.

 

: 그러니까 시에서도 남는 장사를 하는 거지. 사실 여기도 그럴 필요가 있어요. 시나 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서 차이나타운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화교협회가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 그럴 필요 있어요. 근데 사실, 돈도 얼마 없고 인력도 부족하고….

 

: 화교협회가 주로 하는 일은 어떤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도 알고 싶어요.

 

: 화교협회는요? 요 근래에는 좀 많이 달라졌는데…. 원래 제가 화교협회 부회장직 한 10년 했었어요.

 

: 제가 이렇게 질문을 드릴게요. 방금 전에 화교협회에는 회장단 6명이 있고 또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고….

 

: 감사도 있어요. 제가 좀 설명 드릴게요. 화교협회 회장 바로 밑에 부회장 다섯 명 있고, 감사장 있어요. 감사장도 부회장이에요. 그리고 부회장은 다시 내무, 외무, 공관, 총무, 감사장으로 나뉘어져요. 그 다음에 화교협회에 소속된 조직 있어요. 청년회, 부녀회…. 그리고 회장단은 이사회에서 뽑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사들 가운데에서 회장, 부회장, 감사장 다 나오는 거죠. 이사가 되려면 자격이 화교들 20명한테 추천을 받아야 돼요. 다 일일이 도장을 받아야 된다는 거요. 순전히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들 중에 만 18세 이상 된 자들 스무 명의 추천 받아야 해요. 그래야만이 그 사람, 이사 자격 부여되는 거요. 그 이사 자격 부여된 사람들이 회장을 투표로 뽑는 거예요. 회장이 뽑히면 그 회장이 부회장들을 지명하는 거죠, 이사들 중에.

 

: 화교협회 운영은 앞에서 말씀하신 회비하고 월세로 모든 걸 충당하는 거예요?

 

: 인천화교협회는 공공재산이 별로 없어요. 학교하고 협회 건물은 인천화교협회 것 아니에요. 다 대만대표부 걸로 되어 있어요. 임대기간은 20년씩이고, 월세는 없지만…. 지금 공공재산이라고 해봐야, 파라다이스 호텔 밑에 있는 유치원하고 또 절 있잖아요? 그게 전부예요. 그러니까 거기서 나오는 월세 조금 하고, 나머지는 인두세가 전부야. 여기는 직원이 둘이에요. 수금하러 다니시는 노인네 한 분하고, 사무실 업무 보는 여직원. 월급 주고 퇴직금 주고 또 난방비, 전기세, 수도세…. 겨우 근근이 충당할 정도예요. 사실, 화교협회 회장이란 직책은 다른 나라하고는 경우가 달라요. 중국대사관하고도 관계 맺어야 하고, 대만대표부와도 관계가 또 있고. 그러니까 사실, 인천에서 회장하게 되면 접대도 해야 하고, 술도 한 잔 사야 되고. 그거 다 개인 주머니에서 나가요. 회장단 주머니에서. 5만원씩 내는 거 있어요. 1인당 60만 원 정도 내는 거지. 그래봤자, 그거 얼마 돼요? 2, 3백 되나? 한마디로 말해서, 그거 다 술값, 접대비 같은 판공비예요. 절대 부족해요. 모자라면 회장이 개인 돈으로 술사고…. 그래도 인천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화교가 많은 곳이잖아요? 그런데….

 

: 인두세라는 게 결국 회비잖아요? 그럼,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도 인두세를 내나요?

 

: 그거야 안 내죠.

 

: 그럼, 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는 화교들만 내는 거군요? 그게 총 몇 명 정도 돼요? 정확하게.

 

: 정확하진 않지만요. 3 7, 8백 명 정도 될 거예요.

 

: 잘 걷히나요?

 

: 사실, 잘 안 걷혀요. 그래서 어떻게 수금을 하느냐 하면, 몇 년 동안 연체되는 경우도 있는데, 화교주민등록 초본….

 

: 호구부(戶口簿) 말씀이세요?

 

: , 그거. 그거 떼려면 화교협회 가야 하잖아요? 밀린 세금 안내면 안 떼어 줘요. 그게 좀 무리가 있는 방법이긴 하지. 그래서 가끔 욕하고 싸우고 그러는데….

 

: 화교들한테 자발적으로 뭔가 이렇게 세금 같은 걸 거두려고 하면, 화교협회가 화교들한테 뭔가 해주는 것들이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 그게 참 문제가 있어요. 지금은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인에 대한 규제 같은 걸 많이 풀어 주었어요. 간략하게 설명 드리면, 옛날엔 우리 영주권이 없었어요. 거주 자격만 있었지. 그래서 옛날 같은 경우는 1년마다 신고해서 자격을 다시 획득해야 해요. 근데 지금은 5년마다 영주자격 부여돼요. 옛날엔 달랐죠. 그래서 옛날엔 화교협회 역할이 중요했죠. 그때 당시에는 화교협회에도 직원 많았어요. 그 사람들이 화교들 대신해서 출입국관리사무소 가서 그런 수속 다 해줬어요. 또 부동산 취득할 때에도 그 역할 많이 해줬어요. 왜냐하면, 개인이 가면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걸 화교협회 담당자가 나서서 처리해준 거예요. 근데 지금은 화교협회 기능이 약화되다 보니까….

 

: 그러니까 지금은 화교협회가 더 이상 그런 업무를 대행해주지 않는다는 말씀이시죠?

 

: 아니. 아직도 거기서 하는 일 있기는 해요.

 

: 현재 화교협회가 하는 일이 주로 호구부 발급해 주는 일…? , 옛날엔 외국에 나가는 경우, 비자 같은 것 대신 받아주고 그랬잖아요?

 

: 그건 사실 개인이 가도 충분해요. 왜냐하면 여행사 있잖아요? 여행사 가면 다 할 수 있는 거고, 개인이 가도 다 할 수 있어요. 다만, 좀 귀찮으니까 화교협회에 부탁하는 거죠. 만약 비자 받는데 38천 원 정도라면 화교협회에서 대신 해 줄 때는 만원 더 받아요. 거기 여직원 있잖아요? 일주일에 두 번씩 중국대사관 출입해요. 그러니까 수고비조로 주는 거죠. 협회에 맡기는 게 편리하기는 하죠. 그렇지만 그게 화교협회 업무라고 볼 수는 없지요.

 

손만평옛날엔 미국 갈 때, 화교협회 도움이 있어야 갈 수 있었어요.

 

 

: 어떤 면에서?

 

손만평그러니까, 미국으로 관광이나 유학을 가려고 하면 화교협회에서 보증서 같은 걸 써줘야 가능했어요. 그걸 대만대표부에 제출하면, 여권을 3년제로 바꿔주던가? 하여튼 그렇게 해서 미국대사관에 제출해야 미국 갈 수 있었어요.

 

: 그게 뭐냐면, 화교협회가 그 사람에 대한 신원보증 해주는 거요. 이 사람이 한국 살면서 범죄 사실 없고 확실한 사람이다, 그런. 일종의 신원보증서죠. 아무튼 내가 보기에, 화교협회는 갈수록 그 기능이 약화되어가고 있어요. 약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대만대표부 역할도 좀 있어요. 옛날은 한국하고 대만하고 국교 있을 때지만, 지금은 중국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대만대표부 기능이 많이 줄어든 거예요. 옛날이야 그래도 의리도 있고 관례도 있으니까, 대만하고 계속 연관되어 있었지만, 지금 벌써 한중수교 된 지가 20년 되었잖아요? 옛날 노인들 다 돌아가시면 그마저도 없어질 거예요.

 

 

: 사장님 말씀은 대만대표부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에 따라서 화교협회 역할도 줄어들 것이다?

 

: 그렇지, 그게. 현실이 그렇잖아요? 이제 앞으로 이중국적 실현되면 화교들 화교협회 가서 호구부 뗄 필요 없어. 그렇잖아요? 한국 패스포트 갖고 있으면 한국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증 발급받으면 돼. 그렇게 되면 화교협회 기능이 많이 없어지는 거죠.

 

손만평 : 가령, 협회에서 호구부 떼잖아요? 지금 구청 가면 모두 전자서비스 하잖아요? 컴퓨터로 딱 치면 나오는데, 여기는 아직도 종이로 문서 찾아서 고칠 것 고치고 복사해주고, 다시 꽂아 넣고…. 여전히 옛날 방식이에요.

 

: 그래도 중국이나 대만에서 무슨 일 생기고 하면, 화교협회에서 나서서 모금도 하고 그러잖아요?

 

: 그런 일 해요. 지난 번 스촨성(四川省)에서 대지진 났을 때에도 모금 했어요. 협회 회장단부터 솔선해서 거두고, 학교에서도 걷고. 또 대만에서 태풍 같은 있을 때에도 모금해요. 화교들도 다 애국하는 거죠. 그건 다 화교협회란 조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맞아요, 그런 것도 화교협회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그렇지만 옛날보다는 그 기능이 많이 약해졌어요. 이렇게 표현하면 좀 이상하지만, 앞으로 화교협회 존폐가 문제가 될 거예요. 만약에 이중국적 실행이 제대로 되면, 누가 화교협회에 회비 내요? “뭔 소리야? 나 한국인이야. 나 그 회비 못 내.” 그럼, 뭐라 할 수 없는 거야. 주민등록? 그거 한국 동사무소 가서 떼면 돼. 내 생각엔 아마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물론 존폐 문제야 사람들 생각 나름이겠지만…. 사실, 전 지금도 한 달에 협회에 십만 원 넘게 내요. 어떻게 해? 화교협회 돈이 없는데. 막말로 난 한국요식업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니까, 협회에 안 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되겠어? 나도 그런 생각 있는데, 협회하고 별로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어떻겠어? 사실, 옛날에 화교협회 운영하시던 우리 대선배님들은 상당히 기강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협회도 이제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어요. 화교협회에 대해 희망적인 얘기를 해야 하는 건데, 말 하다 보니까…. 그렇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사실,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야. 이것도 난 전통을 지키는 거라고 봐요. 옛날에 화교협회 또 뭐 한 줄 알아요? 부부싸움 중재도 했어요. 부부싸움하면 만만한 게 화교협회야. 날마다 술 먹고 와서 나를 두드려 팬다, 못 살겠다. 그러니 화교협회장이 나서서 어떻게 좀 해결해 달라, 혼 좀 내주던가, 경찰서 처넣던가. 그럼, 화교협회회장이란 사람이 나서서,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뭐 어쩌고 해서 달래고 그랬지. 형제지간에 재산 때문에 싸움도 많았어요. 그러면 화교협회회장이 나서서 기본적인 중재를 해주었어요, 자체 내에서. 옛날 연세 많은 분들 말씀 들어보면,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중간에 나서서 조절해주고 그런 일이 많았대요.

 

: 그게 실제적으로 효과가 있었나보죠?

 

: 화교끼리 싸우는 일 생기면 화교협회가 중재에 나서는 거요. “이건 자네가 잘못했구먼!” “술 먹고 남을 팼으니까 얼마 보상을 해라.” 그러고 보면, 옛날엔 화교협회가 경찰서 역할도 했다니까. 60년대에는 한국에서 완장 차듯이 화교협회회장도 완장 찼어요. 그때 당시는 다 그랬어요.

 

: 그럼, 반대로 일반 화교들은 화교협회한테 뭔가 화교협회가 이런 걸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 같은 것도 있을 거 아니에요?

 

: 바라는 건 많죠.

 

: 예를 들어서 어떤 거예요?

 

: 바라는 거 많아요. 나도 그 안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라 너무 잘 알아요. 바라는 거 정말 많아요. 근데 협회가 그럴 힘도 없고 여유도 없는 거예요. 사실, 돈이 있어야 일을 하죠. 한국에 거주하면서 화교 관련한 무슨 법규라든가 부동산 문제라든가…. 그런데 정보도 없고….

 

: 제가 볼 때는, 그게 이런 이유 아니에요? 첫째는 돈이 없으니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회장단은 있지만 그 밑에….

 

: 박사님 제대로 보셨어요.

 

: 제가 좀 더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회장단 밑에 실질적으로 발로 뛰면서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없다 보니까. 사실, 이게 나이 오십 되고 집에서 할아버지 소리 듣는 분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만나고 다니고 이게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 밑에서 활동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협회 일에 많이 참여해야 되는 게 아닌가?

 

: 맞아요. 맞아. 아주 정확하게 보셨어요. 왜냐면요? 그게 시대를 따라 줘야 되거든요. 화교협회는 좋게 얘기하면 관공서예요. 또 화교를 대표하는 부서예요. 진짜 유능하고 사상 있고 일도 잘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참여해야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 희생도 좀 필요해요. 컴퓨터도 젊은 사람들 잘 할 거 아니야? 사실, 지금 화교협회 할 일 많아요? 그거 알죠? 중국인묘지? 그것도 그렇고. 화교 중에도 노인들, 장애인들 많아요. 그 사람들 복지 문제도 신경 써야 되는 일이에요. 이런 건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나서야….

 

: 청년회나 부녀회는 아직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나요?

 

: 지금도 있어요. 청년회는 서울, 부산 같은 데는 다 사라진 걸로 알고 있어요. 부녀회도. 옛날엔 반공구국청년단 같은 것도 있었어요. 다 폐지되었지.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

 

: 그래도 인천은 아직 그런 조직들이 남아 있고?

 

: 그렇죠.

 

: 그렇지만 요즘에는 그러지 않을 거 아니에요?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나요?

 

: 부녀회는 어머니날에 있잖아요?

 

: 어머니날이 언제죠?

 

: 5월 셋째 주 주말.

 

: 그럼, 중국의 무친지에(母親節)하고 거의 비슷하네. 5월 둘째 주 일요일이니까.

 

: , 비슷해요. 근데 지금 있잖아요? 요즘은 호응을 별로 못 받고 있어요.

 

: 그러니까 부녀회는 주로 어머니날 행사 같은 걸 맡아서 하는 거군요? 그럼, 청년회는 어때요? 어떤 활동을 하나요?

 

: 청년회 있잖아요? 옛날에 때가 되면 학교에서 행사를 좀 해요. 행사 끝나면 학생들 모아놓고 경품 추첨도 해요. 선물 같은 거, 경품 같은 거. 38일 부녀절(婦女節, 여성의 날)에도 그렇게 하고. 그거 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모금을 해요. , 5만원 내는 집도 있고, 손이 좀 큰 사람은 20만원도 하고. 이렇게 거두면 그걸로 선물 같은 것을 사는 거죠. 부녀회도 그런 식으로. 어머니날에는 버스 대여해서 여행도 보내주고, 노인네들.

 

: 화교협회 안에 청년회, 부녀회도 있지만 요식업 관련 부서도 있었죠? 화교들 대부분 중국 요릿집하시니까 요식업에 종사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분들을 위한 업무를 책임지는….

 

: 요식업조합 있었어요. 옛날엔 지금 한국 요식업중앙회가 좀 허술할 때요. 그래서 한 3, 40년 전에 이 요식업조합 만들었어요. 인천화교 요식업조합 있었어요. 식당하는 집마다 회비 받았어요. 회비는 월 얼마로 딱 정해져 있었어요. 당시, 인천에서 식당 하는 화교들만 해도 꽤 많았어요.

 

: 인천화교요식업조합은 주로 어떤 일을 했어요?

 

: 그 회비 받아가지고 세금 관련해서 세무서나 구청에 가서 정보 알아가지고 화교들한테 그런 정보 알려주는 거죠. 그런데 옛날에 각종 규제 때문에 식당 하는 업주들이 점점 줄어드니까 폐지가 된 거죠. ? 조합장이라면 판공비라도 있어야 되는데, 가게가 자꾸 줄어드니까 회비가 잘 안 걷히는 거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화교협회 자체 내에서 그 일을 맡아 했지. 옛날엔 화교협회가 그런 기능도 했어요.

 

: 그러니까 화교요식업조합은 주로 한국의 관공서를 상대로 어떤 정보를 수집해준다든지 아니면 문제가 있을 때 그걸 무마해주는 일들을 주로 한 거네요? 그럼, 요식업조합은 정식으로 화교협회 산하 기관이었던 거죠?

 

: 그때 당시 요식업조합은 화교협회 소속이었어요. 화교들 모임 만들면 다 화교협회에 등록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협회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는 모임 말고도, 친목회 같은 것도 다 화교협회에 등록해야 돼요. 인천 차이나타운연합회 같은 경우는 대사관에까지 등록해요.

 

: 인천화교협회 말고 인천차이나타운연합회가 따로 있었어요?

 

: 그거 내가 회장 했잖아요.

 

: , 차이나타운상가번영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 그래요. 그 단체도 화교협회에다 등록을 해요. 또 우리 인천화교라이온스클럽 있는 거 아세요? 인화(仁華) 라이온스클럽이라고. 저도 몇 대째인가 회장을 했었어요.

 

: , 라이온스클럽도 따로 있었구나.

 

: 역사가 한 25년인가 됐어요. 그것도 다 회교협회에 등록되어 있어요. 그렇게 단체들을 만들면 화교협회에 등록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화교협회 이사진 구성할 때, 그런 사조직 대표들을 이사로 유치하는 거죠.

 

: 그런 사조직들이 옛날에 굉장히 많았을 거 아니에요? 친목회니, 라이온스클럽이니….

 

: 스하이훼이(四海會)라고 친목회 있어요. 서로 뜻 맞는 사람들끼리 만들었어요. 그것도 한 스무 명쯤 될 걸, 아마? 또 우리 그 중국인화예우회(中國仁華藝友會)도 있어요. 회원이 40명 정도 돼요. 이건 요리사들, 음식업계 종사자들 모임. 그것 말고도 한의사회 모임도 있고, 자강회(自彊會), 매화회(梅花會) . 사조직 많았어요. 그런 조직에서 한두 명씩 이사 해줘도 이사가 한 2, 30명 돼요. 이들이 화교를 대표하는 거지.

 

: 그러니까 화교대표조직이 한 열개 정도가 있었다는 거잖아요?

 

: 한 열 개 정도는 있을 거예요.

 

: 지금도?

 

: 그게 있다가도 없어지기도 하고, 또 생기기도 하고…. 친목회라는 게 다 그렇잖아요? 다 화교협회 등록해요.

 

: 모든 사조직이 화교협회에 등록하는 건 아니잖아요?

 

: 개인적인 친목회라도 화교협회에 등록 안 하면, 화교협회에서 인정 안 해요. 그러니까 등록해야죠.

 

: 그럼, 그 가운데 가장 큰 조직은 어떤 것이었어요? 아까 말씀하신 중국인화예우회?

 

: 그렇지. 제일 큰 조직은 우리 주방장 출신들 모이는…. 20년 됐어요.

 

: 그러면, 요식업을 하는 화교들끼리 그런 공식적인 조합 말고 별도의 친목 모임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거네요?

 

: 대개는 인천 출신 주방장들 모임인데….

 

: 그것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세요. 차이나타운 주방장 포함해서 인천이나 다른 지방까지?

 

: 다른 지방까지는 아니고요. 대개는 인천 출신들. 하나의 친목회지. 옛날 주방장들, 지금은 거의 다 사장됐어요. 차이나타운에 있는 사람들, 거의가 다 요리사 출신이에요. 내 친구 있잖아? 중국성(中國城) 곡창신(曲昌信) 사장. 다 같은 요리사 출신이에요. 다 옛날에 서울에서 주름잡던 사람들이야. 열빈 주방장, 가든 주방장, 가든호텔, 프라자호텔…. 다 우리 친구들이야. 옛날엔 그 우리 친구들 열 몇 명 정도 모이면 정말 짱짱했어요. A급 주방장들이었어요. () 사장도 옛날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중국식당 주방장 했어요. 다 주방장 출신들이야. 모임은 이십년 가까이 했어요.

 

: 20년 가까이 되셨으면, 사장되기 전부터 그러니까 주방장 시절부터 그런 모임을 하게 되신 거네요?

 

: 그렇죠.

 

: 그럼, 그 분들은 대개 주방장하면서 만나게 되신 거예요?

 

: 아니지. 인천화교들은 다 화교학교 출신이야.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다 알던 친구들이지. 수십 년 지기야.

 

: 그러니까 주방장 모임은 일종의 동업자들 모임이었네요?

 

: 그런 셈이지. 다들 인천 출신이지만 직장은 다 서울에 있었고…. 그러다가 나중에 다들 인천에 내려와서 너도 나도 자기 장사를 시작하게 된 거지.

 

: 그 모임엔 서울이나 다른 지방 출신들은 전혀 없었고?

 

: 서울 출신도 있었지만 인천 출신이 많았죠. 서울에도 따로 주방장 모임이 있었어요.

 

: 그럼, 친목회 회원은 대충 몇 명 정도 되요?

 

: 지금은 한 사십 명 넘죠. 중간에 안 나오는 친구도 있고. 둘 빠지면 하나 들어오고, 또 하나 빠지면 둘 들어오고. 요즘엔 나이 젊은 사람들도 들어와. 이 모임이 역사 좀 있다 보니까 이미지가 나쁘지 않거든. 그래서 그 안에선 나이 차이도 많아. 우리 동생벌도 있고…. 이젠 우린 늙은 축에 들어요. 시청 근처에 시옌 있잖아? 거기도 우리 회원이고, 만리성도…. 다들 형제지간이나 다름없어.

 

: 제일 젊은 사람은 20대도 있어요?

 

: 20대는 없고요. 제일 젊은 사람이 한 40? 너무 연배가 차이나도 문제가 있거든요.

 

: 그렇지. 세대차이 느껴가지고 말도 안 나올 걸?

 

: 그래도 40대 초반까지는 있어요. 이 모임에 들어오려는 젊은 친구들 많아요. 근데 너무 젊으면 좀 그렇잖아? 우리가 볼 때, 그 친구들은 우리 손자뻘이거든? 손자뻘까지 다 들여놓으면 좀 그렇잖아? 우리 보기엔 40대도 다 똘마니들이지, . 다 대선배들인데.

 

: 화교사회에서 주방장 모임은 굉장히 큰 조직이네요. 오래된 조직이고. 모임은 정기적으로 있어요?

 

: 한 달에 한 번. 회비는 2만원이야. 그거 거두어서 삼겹살 파티도 하고, 망년회도 하고. , 가을 버스 대절해서 부부동반 놀러 가기도 하고. 이번엔 중화루에서 했어요. 현직 주방장은 몇 명 없어요. 다들 자기 장사하는 사람이지. 이젠 다 사장이야.

 

: 그럼, 모임의 정관 같은 것도 있나요?

 

: 아니, 그런 건 없고. 그냥 친목회니까.

 

: 그럼, 모이면 주로 어떤 말씀들을 나누세요?

 

: 처음엔 다들 주방장들이었으니까, 밑에 직원들 취직문제 같은 거. 왜 있잖아? 직원 그만두면 주방장들끼리 “누가 놀고 있는데 데려다 써라.” 뭐, 이런 정보들. 대개 스무 명 정도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라, 직원 채용문제가 제일 중요하니까. 또 그 안에서 계도 하고. 요리 측면에서도 서로들 정보를 나누고 했어요. 어떤 재료가 가격이 어떻고 등등. 예를 들어, 요즘에 죽순은 어디 것이 좋다더라. 연하고 냄새도 안 나더라. , 이런 거. 요즘 들어오는 덩어리 삭스핀은 30분 쪄서는 안 돼. 한 시간 정도는 쪄야 돼. 옛날 같지가 않더라. 술 한 잔 먹으면서 주방장들끼리 정보 교환하는 거지. 주로 이런 대화들 하지. 한 달에 한 번씩 자주 만나니까 정도 많이 들고. 또 어려운 일 있을 땐 서로가 도우려는 그런 마음 가지고 있고. 요즘은 무슨 얘기 하나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낼 때니까 그런 얘기도 하고…. 옛날 젊었을 때는 만나고 술 한 잔 먹으면서 다 자기 자랑들이지. 내가 뭐 열빈에 있는데 송이 사는데 한 1톤씩 들어온다. 열빈 요즘 매출이 장난이 아니다. , 며칠 전에 내가 청와대 갔었는데…. 다 그게 자기 자랑하는 거요. 그때 당시는 어렸으니까.

 

: 요리 얘기도 자주 하시고? 혹시 이런 요리 내가 만들어 봤다고 하면서 레시피 같은 걸 서로 공유한다던지?

 

: 그거는 서로가 다 자기 거니까, 안 내놓아. 그냥 남의 것만 알아내려고 하지. 그게 사람 속성 아니겠어요?

 

: 요즘도 꾸준히 만나시고?

 

: 중간에 미국 간 사람도 있고, 딴 데로 이민 간 사람도 있어. 지금 우린 나이 먹은 축이고, 젊은 친구들 많이 들어왔지.

 

: 모임의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 우리 주방장 모임 이름이 「인화예우회(仁華藝友會)」야. 그러니까 인천화교 예술가 모임인 거지. 하하! 사실 요리도 예술이잖아? 다들 이 업계에서 수십 년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잖아? 그러니까 예술가지, 안 그래? 30대 중반에 그 모임 시작했으니까, 20년 넘었어요. 우리가 그 스타트 끊은 거지. 몇 사람이 처음 시도해서 만든 거야. 내가 3대째 회장을 했었나? 내가 회장할 때 있잖아요? 중산학교 따리탕(大禮堂, 대강당)에서 요리전시회 한 번 한 적 있었어요. 각자 자신 있는 요리 출품하는 거지. 호응도 상당히 좋았어. 한국 최고의 중국요리 실력자들 작품 아냐? 그때 언론에서도 관심 갖고. 어디 그때 사진도 있을 텐데….

 

: 모임에는 따로 회장도 뽑고 하세요?

 

: 회장 있어요. 부회장, 총무도 다 있어요. 임기는 보통 2년씩 돌아가면서 순서대로 하고. 다 자격 있는 사람들이니까.

 

: 그 모임 가면 참 재미있겠네요? 평생 같은 일을 해 오신 분들이니까.

 

: 그러니까 거기 가면 큰소리 치고 자시고 할 것도 사실 없어. 벌써 한마디 하면 딱 눈치 채니까.

 

: 주방장 모임 말고, 화교들이 다 중국집을 하는 건 아니니까….

 

: 그렇죠. 그래서 라이온스클럽 있잖아요? 인화라이온스클럽. 여기엔 한의사들도 많아요.

 

: 라이온스클럽이라면 회원들이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 회비 한 달에 5만원씩 내요. 그러니까 1년에 60만 원 정도 내는 거지. 여기엔 중국집 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의원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근데 이 모임은 회원을 확보하기가 참 어려워요. 우리 중국요리사 모임이야 별 사람 다 있지만…. 라이온스는 그래도 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니까.

 

: 아무래도 한의사나 큰 중국 요릿집 하는 분들이 중심이 되겠죠?

 

: 주로 여기에는 한의사 하는 분들이 많고, 중국 요릿집 하는 분들 그리고 학교 선생님도 계시고. 요즘은 관광 쪽에서 사업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이나 대만 상대로 무역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 만평아, 너희들도 너희들끼리 모임이 있어?

 

손만평 : 동창회는 있어요. 매년 7 7일에 해요.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이잖아요? 사실, 7 9일이 생일이라 그 날 만나자고 했는데, 애들이 반대하더라고요. 왜 네 생일에 만나느냐고. 동창회하면 다 그렇겠지만, 요리사하는 애들도 있고, 대학 다니는 애들도 있고 그래요. 그러다보니까 이게 하나가 안 돼요. 얘기가 안 통해요. 하는 일이 다르다보니까.

 

: 지난번에 잠깐 얘기하다 말았는데, 고향사람들끼리 가령, 무핑이면 무핑 사람들끼리 향우회나 동향회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은데?

 

: 문영동향회(文榮同鄕會)가 있지. 문등(文登), 영성(榮城) 사람들 모임. 문등하고 영성은 서로 붙어 있어요. 그 초대회장이 잘 생각 안 나네. 서울에서 옛날에 무슨 여행사 하던…. 그것 말고도 무핑동향회도 있고. 아무튼 옛날엔 한국 화교들 중에 제일 많은 건 무핑 사람들이었어. 나도 무핑 사람이야.

 

: 옛날엔 그런 동향조직들이 굉장히 많았죠?

 

: 옛날 서울에선 셔우광(壽光) 사람들이 제일 단결 잘 되었어요. 문영이나 무핑보다 훨씬 더 단결 잘해요.

 

: 그건 왜 그래요?

 

: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조직 잘 되었어. 셔우광은 산동의 야채기지예요, 채소재배단지. 북경, 상해의 야채는 다 거기서 대는 거야. 옛날에 영등포에 친구 놈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바로 셔우광 출신이었어. 보면, 엄청 단결하더라고. 무슨 일 있다 하면 다 동원되고. 바쁘다는 소리 안 해. 다 모여.

 

: 그럼 그런 동향조직들은 주로 모여서 어떤 얘기를 해요?

 

: 주로 모이는 건 무슨 결혼식이다, 장례식이다, 그런 슬픈 일이나 기쁜 일 있을 때 함께 모이죠. 말하자면 여기는 이국타향 아니야? 외국에 있을수록 단결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살기 위해서는 뭉쳐야 하는 거지. 옛날엔 다들 외국 나온 거잖아? 그러니까 무핑 사람하고 영성 사람하고 만나면 다 같은 고향사람이다, 하면서 금방 친해지고 그랬지. 무핑하고 영성은 10킬로도 안 되거든. 그런 식으로 해서 단결하고 친해지고…. 근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어. 그건 옛날 중국 못 들어갈 때 얘기고, 요즘은 중국 마음대로 출입하니까, 어디 그런가?

 

: 그럼, 요새는 지역의식이나 동향의식 그런 건 많이 없어졌어요? 가령, 협회 회장선거를 한다, 그러면 혹시 무핑 사람 나오면 무핑 사람들이 찍어주고 그런….

 

: 옛날에는 그런 거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상 외로 지역관념 같은 건 많이 없어진 것 같아. 지금은 사실, 국적관념도 없어졌어. 나는 화교다, 나는 중국인이다, 그런…. 이게 시대의 흐름이에요. 변화, 시대의 변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난 자연스러운 거라고 봐.

 

: 요즘도 동향회가 활동하죠?

 

: 있기는 있는데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아요. 옛날에 내가 봤을 땐, 문영동향회 같은 경우는 회원도 많고 잘 모이고 그랬는데…. 요즘은 미팅 한번 하기도 힘든 것 같아.

 

: 예전에 사장님 어머님 말씀 들어보니까, 올림포스 뒤에 동향회관이 있었다고 하던데?

 

: 올림포스호텔 그 자리에 있었어요. 그거 얘기하면요? 옛날엔 거기를 영국산(英國山)이라고 했어요. 거기가 옛날 영국 사람들 별장을 써던 자리예요.

 

: 영국 영사관이 거기에 있었어요.

 

: 맞아. 사실, 일본시대 이전만 해도 청나라 사람들 그곳으로 출입 많이 했어요. 그때 당시 거기가 다 바다였어요. 하인천역까지도 다 바다였어요. 청나라 말기에는 중국 배들이 들어와 무역 많이 했어요. 그래서 화인(華人)들이 많았어요. 주로 뱃사람들이지. 뱃사람들 많다 보니까, 왜 있잖아? 기생들? 그런 사람들도 있었어요. 내가 영국산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요? 중국 사람들은 그 쪽 바다에 하이션냥냥(海神娘娘)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러니까 여자 바다신이지. 그래서 하이션냥냥 모시는 먀오()도 있었어요, 사당. 왜냐면, 배가 왕래하는 관계로 해상의 평안을 기원하는…. 중국 사람들 그런 습관 있었어요. 하이션냥냥은 물을 다스리는, 바다를 다스리는 부처였어요. 그래서 뱃사람들 그 사당에 가서 절하고 그랬대요. 물론, 다 전설이죠. 그런데 하루는 어떤 놈이 그 사당에 들어가서 그 하이션냥냥 신상(神像)을 보면서 뭔가 음담패설 같은 걸 했대. 이거 다 우리 노인네 얘기야. 그런데 좀 있다 보니까 그 놈이 주전자 끓인 물을 자기 다리에다 붓고 있더래. 자기가 자기 발에. 이게 뭐냐면, 그 신이 그 놈한테 벌주는 거요. 그렇게 영()하다는 절이 있었다는 거죠. 그때 당시 청나라 사람들 거기를 뭐라고 그랬냐 하면, 용머리라고 불렀어요. 근데 일본시대 들어섰잖아? 일본 사람들 지리를 볼 줄 알았어요. 지리 잘 봐요. 청나라 사람들이 너무 번성하다 보니까, 일본인들이 오자마자 뭐를 했냐면, 중국 사람들 기()를 죽인 거야. 지금은 역 앞에 큰 도로 있잖아요? 그때 당시 그 도로는 크게 필요 없는 도로였어요. 그런데 거기에다가 도로를 놓은 거지, 일본 사람들이. 이게 그 용머리 한가운데를 잘라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올림포스호텔하고 우리 여기 태화원 이쪽 중간에 길을 파버린 거예요. 중국인 기를 없앤 거요. 길을 딱 내니까 사흘 동안 빨간 물이 계속 흐르더래. 이것도 우리 노인네한테 들은 얘기요. 그렇게 사흘 동안 빨간 물이 흘렀어요, 빨간색. 그때부터 중국 사람들 기 빠지는 거야. 슬슬 쇠퇴해가는 거지.

 

: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이 풍수에 따라 그렇게 한 거군요?

 

: 내가 어렸을 때 바로 거기서 살았어요. 그 절이 어떻게 없어졌냐 하면, 6·25 , 인천상륙작전 때, 폭격 맞아가지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절에 붙어 있는 타일, 벽돌, 그 잔해 보았어요. 우리 외할아버지가 거기서 사셨어요. 그때 6.25 터지고 나서 중화루고, 공화춘이고 다 망하게 된 거예요. 차이나타운도 그때부터 쇠퇴했고. 우리 어머니 얘기로는 그게 다 일본 놈들이 용머리 잘라버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하! 아무튼 전쟁 터지고 나서 차이나타운 완전 박살난 거요. 좋은 건물도 다 폭격 맞아서 망가지고, 없어지고·. 다 폐허가 된 거죠.

 

 

: 그러니까 하이션냥냥을 모시던 그 사당 자리가 동향회관 자리다 그것이죠?

 

: 동향회관은 사실, 지금 의선당과 마찬가지야.

 

: 의선당과 동향회관이 비슷한 거라? 의선당은 종교시설이고 동향회관은 같은 고향사람들 조직인데. , 뭔가 있는 것 같은데?

 

: 그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고. 옛날엔 산동동향회라고 했어요. 무핑이나 영성, 그런 게 아니라, 산동동향회. 청나라 말기에는 여기에 상해인, 북경인 많았어요. 지금 여기도 백 프로 산동 사람 아니에요. 그 당시 무역상들은 특히, 거상들은 다 북경, 상해, 홍콩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남방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금이야 다들 떠나서 그렇지. 그 당시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남방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도 다 동향회 있었어요. 산동동향회는 산동인들만 모이는 동향회지.

 

: 산동방이라고는 안 했어요?

 

: 그게 산동방이지. 산동사람들만 모이는 거니까 산동방이지. 일본 요코하마 가보니까, 거기는 광동방, 북경방, 산동방, 복건방 다 따로 있어. 파벌이 스무 개가 넘는다고 그래. 대만방도 있더라고. 가게 앞에 대만 국기 걸어놨더라고, 대문에. 중국방은 중국 국기 걸어놨어. 다 파벌이 있어요. 이거 중국사람 습관이에요. 내가 요코하마 가서 실제로 느낀 거예요. 학교도 두 종류 있어. 중국대륙 학교 있고, 대만 학교 있어. 다 자기 색깔들 있어. 대만은 대만, 중국은 중국.   

 

 

 

: 대륙하고 대만이 나누어진 다음에 새로 타이완에서 일본에 이민 간 사람들이 만든 것일 거예요, 아마

 

: 그럴 거예요. 일본이 중국하고 수교된 지가 한국보다 오래 됐죠? 그러니까 중국하고 수교 안 되었을 때, 그전부터 대만하고 그런 관계니까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요새 북경방 같은 건 나중에 생긴 걸 거예요. 중국이 그 철문을 연 지가 얼마 안 됐어요. 한국이 중국하고 수교한 것도 20년 밖에 안 되었잖아요? 그래서 중한 수교되고 유학생들이 다 오게 된 거요. 그게 바로 신화교예요.

 

: 지금 일본에는 1945년 이후 대만에서 간 화교들을 포함해서 약 40만 정도 된대요. 그런데 사실, 195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더 많았어요, 일본보다.

 

: 그게 다 화교들 제한하는 정책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일본사람들은 제한정책을 그렇게 심하게 안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화교들이 제일 많았던 시기가 화폐개혁 할 때예요. 그때 당시에는 중국 사람들이 돈 많다, 이런 소문 많았어요. 화교들 그때 다 외국, 3국으로 재이민 갔어요. 하물며 홍콩 통해서 다시 중국 자기 고향으로 들어간 사람들까지 있었는데요, . 현재 대만에는 노병(老兵)들 있어요. 그 사람들, 대개가 다 산동성 출신이에요. 그 사람들 뭐냐면, 바로 장개석 따라 대만으로 건너간 사람들이에요. 그 양반들, 돈 모아도 집 한 채 안 샀어.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 고향 들어가려고.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우리 아버님하고 똑같은 신세지. 돈 벌어서 어떻게든 고향 가야한다, 그런 생각 가진…. 고향 가야하는데 집을 왜 사? 안 그래요? 대만 노병들, 생활이 다 약해요. 돈 모으면 금덩이 사들여서 나중에 고향 가려고. 그래서 고향이란 게 중요한 거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거예요. 아무튼 동향회는 산동동향회고, 지금 화교협회는 그 산동동향회부터 시작한 거요.

 

 

: 그러니까 사실상 산동동향회가 인천화교협회의 전신이다?

 

: 그렇게 시작해서 화교협회가 된 거예요. 호적등본 떼어보면 남방인은 별로 없어요. 산동 사람이 90% 넘어요.

 

: 그럼, 여기 오래 사신 분들 중에 남방분도 계세요?

 

: 있어요. 바로 학교 밑 건물 돌계단 옆에 오래된 중국 건물 있잖아요? 그거 완벽한 사합원 건물이야. 그 주인할머니가 바로 상해 사람이에요. 지금은 연세 많아가지고 대만 딸네 집에 가 있는데. 그 할머니도 유명한 사람이지. 남방 사람이야. 중국 남방 사람들은 아주 약아. 산동 사람들은 좀 멍청해.

 

: 산동은 주로 물고기 잡고 농사짓고 한 반면에 남방 출신은 주로 장사를 한 사람들이라서…. 지금도 좀 그렇고. 남방 사람들이 원래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잘 살잖아요?

 

: 중국에서 제일 무서운 지역이 어딘지 알아? 바로 온주(溫州) 사람들이야. 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의 큰 재벌들, 다 온주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은 고생도 잘 견디고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야. 대단해. 아마 그 동네 인구의 60%가 다 외국 나가 있을 거야. 자기 고향에 안 있어. 중국 부동산 투자 브로커들 다 온주 사람이야. 그 사람들 지금도 산동에 와서 부동산 확 샀다가 확 팔고 가버려. 부동산 사업 하는 사람들 다 남방 사람이야. 산동 사람들은 순하죠. 온순하고. 성질은 급하지만…. 그래서 산동 사람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3분 열혈(熱血)’이라고 해. 3분 동안만 왁자지껄 떠들면 그만이야. 그걸로 끝나. 화끈해. 뒤끝이 없어. 대신 남방인은 약아요. 산동 사람들 둘 갖다 붙여놓아도 안 돼. 2 1로는 상대가 안 돼, 머리싸움에서는. 그래서 옛날부터 중국의 무장(武將)들은 다 산동에서 나와요. 군대에서 키 크고 덩치 좋은 애들, 다 산동 애들이야. 산동에서 다 뽑아가는 거야. 충성스럽고 충신이지. 이렇게 하라 그러면 끝까지 그렇게 해. 근데 남방은 그게 아니거든. 말 안 들어요. 그 중에서도 온주 사람들이 최고야. 장사 정말 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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