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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훼이(請會)
구술: 손덕준 _ 인천 중화루 사장
채록: 송승석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인천대학교 HK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은 화교연구의 일환으로 화교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천화교의 대표적 인물 손덕준(孫德俊)과 그의 가족이다. 어느 일개인의 가족사가 화교 전체의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교 개인의 인생 궤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은 삶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구술채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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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재는 기본적으로 구술기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되, 지나치게 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임의로 수정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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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은 공개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나 반복되는
내용으로, 구술대상자와 상의 하에 생략한 부분이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채록자 임의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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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분은 성명이나 상호명으로, 구술자가 한자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추후에 조사를
해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송승석(이하 송): 이제, 다른 얘기 좀 할게요. 제가 듣기로는, 화교사회에서 누가 생활이 좀 어렵다거나 혹은 사업이 잘 안 된다 하면 서로들 도와주고 그랬다고 하던데? 계가 그런 것 같은데? 사장님 아버님도 창업하실 때, 계를 하셨고 사장님도 계를 하셨잖아요?
손덕준(이하 손): 화교들 그런 습관 있어요. 주방장 하다가 장사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그러면 칭훼이, 계를 모집해요. 가령, 1인당 500만원씩
친구들 20명 모아. 그럼, 1억이야. 자기는 매달
500만원만 내놓으면 돼. 20명이서 한 사람 도와주는 거야.
송: 대부분
계를 통해서 창업을 하시고 그랬어요?
손: 내 얘기를 할게. 내가 태화원 할 때, 계를 500만원씩 40명을 모았어.
그럼, 2억이죠. 40개월씩 매달 500만원 내면 돼. 갚으면 끝나는 거니까. 좋은 게 뭐냐면 여러 사람이 한 명을 돕는 거야. 그 대신
내가 계를 했을 때 들어준 친구가 계를 새로 하면, 나도 또 의무적으로 들어줘야 해. 그렇게 해서 다 창업을 한 거죠. 다 자기 장사하게 된 거죠.
송: 그 칭훼이라는 건 원래 중국 산동지방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인가요?
손: 그렇죠. 근데 지금 오히려 산동에서는 다 없어졌어. 그걸
왜 우리가 하게 되었냐면, 우리는 한국에서 외국인이잖아? 신용대출이
안 돼. 그래서 지난 백 년 동안, 전통으로 서로
돕고 한 거지. 은행 대출이 안 되니까. 물론 지금은
우리도 많이 없어졌어. 지금은 계하는 것도 잘 깨져. 이상하게. 옛날엔 그런 일 없었는데. 나도 몇 개 떼였어. 계주가 도망가고 해서….
송: 도망가면
외국으로 가나?
손: 그냥
피해 다니는 거지, 뭐.
송: 그럼, 어떻게 해요?
손: 뭘 어떡해? 그거 악랄하게 쫓아다니면서 고발할 거야?
죽일 거야? 그 사람도 이판사판이지, 뭐. 장사가 안 돼서, 부채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건데. 난 그런 사람들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다들 친구 아냐? “야, 나중에 네가 벌어서 갚아.” 그러고 마는 친구도 있고…. 근데 그걸 상습적으로 하는
놈들도 있어. 물론 열 명 하면 한 명 있을까 말까 하지만….
옛날부터 계는 친구 도와주는 거야. 물론 친척, 친구도
있고…. 친분 있는 사람끼리 모여서 누가 장사하겠다, 집
사겠다 하는데 돈이 모자란다, 그러면 같이 해주고 그러는 거지.
물론 계도 여러 종류가 있어, 규모에 따라서. 적게는
백만 원, 좀 크면 5백만 원 하는 것도 있어.
송: 한 달에 백만 원, 5백만 원씩 갚으려면 쉽지 않은 일인데. 주로 자기 장사 하시는 분들이 하시겠네요? 월급쟁이는….
손: 월급쟁이도
해. 만약 전세금이 좀 모자란다 하면, 백만 원씩 20명 모집해. 그럼 2천만
원이야. 그걸로 전세방 얻어. 월급이 한 2백 되면, 한 달에 백만 원씩 갚는 거지. 그렇게 직장생활하면서 다달이 갚는 거지. 건물 큰 거 살
때는 1억짜리도 해. 40명 모아. 그럼, 40억이야. 그건
좀 잘 사는 상류사회고.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이지. 그러니까
계도 다 비슷한 또래끼리 하게 되는 거야. 있는 놈은 있는 놈끼리, 없는 놈은 없는 놈끼리.
송: 자식들 결혼할 때에도, 돈 필요하면 계도 하고?
손: 나도
계했지만 우리는 이자 안 받았어. 그냥 당대 최고 요릿집 딱 가서 코스요리에 술 한 잔 먹고
끝내는 거야. 500짜리 40명 모으면 돈 2억 걷히는 거야. 이자 안 줘. 그냥 식사 한 끼로 때우는 거야. 500짜리면 50만 걸어놓고 순서로 받아가는 게 아니라 50만 정해놓고 10만 이자 낸다. 매달 십만 원 내놓고 내가 먼저 쓸게. 40만 원씩 걷는 거야. 걷어서 타는 사람한테 주는 거야. 그게 바로 십만 원 이자야. 39명한테 십만 원 이자 줄
테니, 내가 십만 원 다음달 급한 사람 20만 원도
내. 나중에 마지막 사람 50만 원씩 39명 다 50만 원씩 거두어서 주는 거야. 한 달 이자가 십만 원이면 본인 빼면 이자를 40개월 후에
이자를 받는 거야. 먼저 쓰고 한 달에 이자를 주는 거지.
송: 먼저 쓰고 나중에 쓰고 순서를 어떻게 정해요?
손: 계 오야가 집에 아침 열시면 열시, 종이쪽지에 50만원
적어. 제일 많이 적은 사람이 타는 거야. 제비뽑듯이. 종이에 적어서 탄 거야. 그러면 어떤 때 보면 자기가 40명 계를 오야 했잖아? 계를 40개 들어야 돼. 나중에.
딴 사람 할 때는 들어줘야지.
송: 한꺼번에 계를 여러 개 들다 보면 돈을 못 낼 수도 있겠네요?
손: 한번에 40개 못 들어요. 그렇지가 않아요. 두고두고 갚아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 집이 어려울 때 저 사람 아버지가 계 들어줬어. 그러면
그 아들 계할 때 내가 하나 들어줘. “내 이름도 넣어.”
옛날에 우리가 신세를 졌으면, 그 아들 때라도 갚아야 하는 거야. 그게 인지상정이야.
송: 그게 서로 믿음이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손: 원래
계를 하면, 보증인을 두 명 세워. 만약에 계가 깨지면
그 보증인 두 사람이 갚아야 해. 그러니까 서로들 보증을 잘 안 서주려고 하는 거지. 그렇지만 여기는 신용사회야. 계를 깨뜨리면 그건 여기에서
매장당하는 거야. 소문이란 게 무섭거든. 여기 화교사회는
아주 작은 사회야. 금전거래는 거기서 끝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웬만하면 안 깨뜨리려고 하지. 설사 깨져도, 형제들이나
가족들이 노력해서 갚아. 그게 명예가 안 좋거든? 다
식구들이 나서서 해결해 줘. 신용사회니까. 요즘은
그런 거 없어졌어. 보증인들도 안 갚아. “내가 사람
보증했지, 돈 보증했냐? 이거야.” 좋은 전통이었는데 지금은 다 변질되었어요.
송: 아무래도 계는 많이 줄어들었겠죠?
손: 줄어들었어. 지금은 신용대출은 안 되지만, 담보대출은
되거든. 옛날에는 계 한 번 타면, 시간을 쪼개서
집집마다 가서 받았어. 그런데 지금은 온라인 번호 몇 번인데?
시건방 떠는 거지. 시대가 바뀌었어. 들어
주는 사람 오히려 피곤하게 만들어. 난 우리 친구가 계를 하면 그래. “온라인 번호 불러 줄거면 나 안 해.” 난 그게 싫어. “네가 직접 와서 받아가.” 물론 이건 다 농담이지. 다들 바쁜 세상인데 온라인으로 해줘야지. 하지만 전통이 변질된
거야. 전통대로 하면, 계모임을 하는 거야. 어느 한 집에 모여서 중국차, 다과 내놓고…. 다 모였을 때, 계 탄 사람한테 즉석에서 돈을 줘. 지금은 계 안 타는 사람은 오지 않는데, 옛날엔 그런 거
없어. 다들 모여. 그게 다 사라졌어. 이걸 핑계로 한번 만나자는 건데…. 전통이 없어졌어. 요즘, 화교 전통 다 사라졌다고 봐야 되요. 이젠 거의 한국화 다 되었어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여기 화교들 대부분 한국 와이프하고 결혼해요. 나도 그렇고. 그러니까 중국, 한국 다 얽혀서 지금은 한국화 다 되었지. 이제는 화교라는 자리도 양보해야 되요. 누구한테? 신화교한테. 본토에서 온 중국 사람들한테 양보해야 되요. 우리는 한국사람 준비 다 된 사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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