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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2010.09] 기획2 _ 관행이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2 조회수 90

[Vol.1/2010.09] 기획2 _ 관행이란?

 

 

관행 연구의 중요성과 관행 개념의 다양한 용례

 

 

장호준 _ 인천대학교 HK연구교수

 

 

1 _

 

알제리 카빌리아(Kabyle)의 아랍 사회에서는 父邊평행사촌혼(patri-lineal parallel marriage)이 관습법에 의해 승인되는 공식적인 혼인의 규칙이다. 1) 인류학자들은 현지 정보제공자들을 통해 그 공식적인 규칙을 알아내며, 그 규칙을 바탕으로 부계적 친족혈통도 및 가계도를 그려왔다. 또한 그 가계도에 기반하여 男系親 연망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지역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관계를 파악하고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해석해왔다. , 지배적인 집단 범주의 현지인들과 인류학자들은 공식화된 규칙을 근간으로 사회문화적 현상을 설명/해석해왔기 때문에 그와 어긋나는 것들을 무시하거나 일탈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며, 다시 그 규칙의 공식성은 그러한 설명/해석을 통해 공식적 담론 차원에서 재강화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 혼인을 살펴보면, 공식적 규칙이 엄격하게 요구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예외적이다. 실제에 있어서는 父邊평행사촌혼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설령 부변평행사촌혼으로 간주되는 혼인 사례들도 비공식적인 다른 형태의 혼인, 예를 들어 교차사촌혼으로 이해해도 무방한 경우가 많다. [굵은 선은 공식적 담론에 따른 해석; 점선은 비공식적/대안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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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다이어그램에 함축되어 있는 공식적/규범적 혼인과 비공식적/실제적 혼인의 이중성 또는 모순적 중첩에 대한 통찰이 바로 프랑스 사회학자/인류학자 P. Bourdieu의 이른바 “실천(practice)” 이론의 출발점이다 (Outline of Theory of Practice (1977)).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논지를 최대한 단순화하자면, 어떤 사회(구조)의 –– 재생산과 변동의 계기를 포함하여 –– 작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a) 보편적인 사회 구조를 분석의 중심에 놓고 개별 행위자를 구조의 담지자 정도로 간주하는 객관주의적 입장이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b) 사회 구조 및 체계의 영향력에 구애되지 않고 자율적 의지를 지닌 개별 행위자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주관주의적 입장을 [사르트르의 주체철학; 현상학적 방법론] 벗어나야 하는데, 이러한 방법론적 전환을 가능케 하는 최적의 분석적 층위가 행위자들의 실천(practice), 또는 실천들(practices)이라는 것이다.

 

Bourdieu practice 개념을 정치하게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지만,2) 아마도 그 개념을 가장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이 그의 practice 이론의 출발점이었던 Kabyle 사회의 혼인과 친족(kinship)이 아닐까가 한다: 부변평행사촌혼이라는 공식적이고 지배적인 규범 또는 규범적 담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카빌리아 사람들이 교차사촌혼 등의 비공식적(non-official) 혼인을 행하는 것, 그리고 또한 대외적으로는 부변평행사촌혼의 형태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교차사촌혼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졌을 수도 있는 수많은 혼인 사례들. Bourdieu는 전자의 혼인 형태를 공식적(official) 혼인, 그리고 후자를 실제적/실천적(practical) 혼인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계보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형제관계가 친족집단 내의 반목과 갈등, 즉 친족 분열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족보상으로 표시되는 친족을 official kinship, 그리고 실제 협력 관계의 연망을 바탕으로 그려질 수 있는 친족을 practical kinship으로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이 시사하는 바는, Bourdieu practice라는 개념을 통해 의도하고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practical이라는 그 형용사적인 형태에서 그것도 official이라는 상대어와의 관련하에서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의해야 할 점 중의 하나는 Bourdieu의 “실천(practice)”은 청년 마르크스나 루카치 등이 말하는 목적의식적인 실천(praxis)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Bourdieu practices는 당연히 특정한 사회적 시간과 장소에서 (, 행위자들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합목적적으로 조직되거나 의식적으로 조율되지는 않는다. Practices는 행위자들이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이익을 충족하고자 하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전략의 산물”이다 (1977: 36, 이탤릭은 필자).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적 행위를 실제적/실천적(practical)이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practised), 유지되며, 계발되기 때문”이지(1977: 37), 그것이 목적의식적이거나 합목적적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말하는 practice는 행위자들이 어떤 사회적 공간에서 –– 좀 더 정확하게는 사회적 장(, field)에서 –– 일정한 이익을 충족하고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관습적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Bourdieu는 세계를 관계적 원리로 이해하기 위해 “사회적 공간” 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 중에서도 구조화된 사회적 공간을 “장(; field)”이라 칭하는데, (field)은 거시적 사회 구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서 나름대로의 게임/경쟁의 규칙, 지배 구도 및 적법/정당한 의견체계 등을 지니고 있다 (예술, 교육, 경제, 법률 등)3). Bourdieu practice(s)는 이러한 사회적 장()에서 행해지는 관습적 행동으로서, practice(s)의 내용과 양상은 행위자들이 그 장()에 참여하면서 체화(體化)하게 된 실천감각 또는 실천논리(sense/logic of practice), 즉 그가 아비튀스(habitus)라고 부르는 것에 의해 규정되고 조율된다. 아비튀스는, 개인의 습관이나 습성 또는 사회의 풍습/습속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그 사회의 구조적 특징에 따라 구조화되고 동시에 어떤 사회 구성원들의 practices를 구조화한다. 물론, 아비튀스는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재구조화/변형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안정적이고 장기지속적인 속성을 지닌다.4)

 

이미 오래된 글인데다 그 동안 (특히 사회과학계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이론인지라 지금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 다양한 개념들 및 그 개념들로 구성된 이론적 틀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두고 –– practice의 층위에 조사와 연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론적/방법론적 차원에서 어떠한 시사점이 있는지를 다시 카빌리아의 혼인 practice를 중심으로 간단히 되짚어 보고 가자. 먼저, 사회문화적 행위의 정치적 속성에 관한 시사점이다. 혼인 practice의 두 사례를 도식화한 위의 다이어그램은 카빌리아 사회의 평행사촌혼 제도 및 그에 대한 공식적 담론의 지배적인 위치 때문에 교차사촌혼적인 독해가 은폐되고 억압되고 있다는 점, , 부계 집단의 혈통이 여자를 통해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당연히 이 사회에서는 교차사촌혼적인 해석이 이단으로, 또는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주변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다시 말하면, 혼인 practice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혼인을 둘러싼 사회 관계에서 무엇이 관건적인 요소인지, 그리고 사회내부의 성별, 집단별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의 작동 방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위와 관련된 것으로, 혼인제도의 지속성 및 변동가능성과 관련된 시사점이다. 공식적/지배담론적 혼인과 구별되는 실제적/실천적 혼인(practical marriage)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식적 혼인형태의 정당성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 실제 혼인 practices 과정에서 공식적/지배담론적 혼인 규범의 정당성이 약화될 수도 있으며, 또한 역으로 practical 혼인의 형태와 방식이 바뀔 수도 있는데,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연구자는 공식적 혼인형태와 실제적 혼인의 역사성—지난 역사기간 동안의 지속 및 변화와 이후의 지속/변동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에 대해 더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practices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카빌리아의 혼인관련자들을 구체적인 행위자의 지위로 복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지인들은 더 이상 공식적 혼인담론의 수행자 또는 사회구조의 담지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동원 가능한 자원을 활용하여 나름대로의 전략을 가지고 상호작용, 즉 혼인관계에 참여하는 사회적 행위자들로 간주된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사회구조나 공식적 (혼인) 규범을 무시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절대의지의 소유자, 또는 자율적인 주체로 이해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행하는 혼인 practice는 한편으로는 항상 공식적 (혼인) 규범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오고 있는 관습적 행동의 영향을 받고 동시에 그것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 제도를 넘어서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practices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국가에 의해 제도화/법제화된 규범과 실제적(practical) 행위들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다. Practical 행위들은 공식적 규범 및 법률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데, 양자는 일치할 수도 그리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실제적 행위들의 사회정치적 차원에 주목하고 그것을 조사/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설정하게 되면, 공식적 규범/법률 체계는 분석적 차원에서도 상대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법률체계를 비롯한 제도화된 지배 규범/규칙의 정당성(legitimacy)과 그것의 지배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법제화된 규범체계가 상대화되는 이상, 그와 어긋나는 practices들을 일탈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 또는 예외적인 것으로만 취급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2 _

 

상당히 에둘러 온 감이 있지만, 지금까지 “practice(s)” 또는 “practical 행위”라고 기술한 부분을 “관행”이라는 단어로 대체해 보자. Bourdieu 저술의 한국어 번역판 및 이론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들은 practice(s)를 “실천”으로 practical을 “실천적”으로 번역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치환이 상당히 어색하고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Bouridieu의 “practice(s)”가 목적의식적인 실천(praxis)보다는 “(공식적 규범/담론체계와는 구별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관습적 행동”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떤 측면에서는 “실천,” “실천적”이라는 단어보다 “관행”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번역어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단수형태로서의 개별 practice보다 복수형태로서의 집합적 practices를 언급할 때는 더더욱 설득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는 “관행”이라는 한국어 단어에 담겨 있는 다양한 지시성, 무엇보다도 일상적 용법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관행”은 “오래 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 또는 관례에 따라서 함”을 뜻하는 단어다. 이 정의 자체에는 그 어떠한 (긍정적/부정적) 가치판단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일상언어에서 “관행” 개념은 주로 부정적 가치판단을 함축하는 다른 단어들과 호응관계를 이루어 사용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국어에서의 “관행” 개념의 몇 가지 용례를 살펴보자. 앞의 네 가지 예문이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반면에 뒤의 네 가지 예문은 중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앞의 네 가지 용례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은 비단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게다.

 

1). 오랜 관행을 깨다; 구시대적인 관행

2). 학맥, 인맥 따위가 없는 사람들을 한직으로만 돌리는 나쁜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3). 가요계가 방송사들의 잘못된 제작 관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시정을 촉구했다.

4). 관치금융의 낡은 관행을 생각한다면 민간인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생각도 옳은 발상법이다

(한국경제 1997/1/9)

5). 관습적 헌법은 영국처럼 성문 헌법전이 없는 나라의 불문(不文) 헌법을 의미하지만, 헌법적 관행은 성문 헌법 국가에서 보충적 기능을 하는 헌법 관습법을 뜻한다 (동아일보 2004/10/23)

6). 봉추댁은 자식들에게 저녁밥을 지어 먹이자 설거지를 시해에게 맡기고는 이제 관행이 되어 버린 밤마을을 나가 버렸고... (김원일, <불의 제전>)

7). 객관적으로 수긍할 만한 이유 없이 지시된 보고서 제출의 기한을 넘기면 당명 불복종으로 치고 징계를 하든지, 이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공산당의 관행이다 (이병주, <지리산>)

8). 시골 양반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고을 수령뿐만 아니라, 설사 그것이 재상의 행차라 하더라도 이 농기 앞에서는 말이나 가마를 내리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송기숙, <녹두장군>)

 

중국어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륙, 대만, 홍콩 모두 practice(s)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实践(實踐)으로 번역된다. 특히 대륙에서는 行이라는 단어 역시 한국어의 일상 용법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얼마 전가지만 해도 전통적인 것의 부정을 중국 근/현대화 과정의 중요한 담론적/물질적 계기로 간주해왔던 근/현대화 주도층의 의도 및 사회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학술적인 차원에서는 “行”을 가치중립적으로 사용하거나 (, , 李金), 또는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Bourdieu 등의 practice(s)와 유사한 것으로 사용하는 논자들이5)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만과 일본의 일부 학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러한 용례의 존재는 확인했으나,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음). 이 중, 전자의 부류에 해당하는 학자들은 “관행” 개념을 국가 법률과 첨예하게 대립되는 관례적 행동 또는 공식적 법률 및 국가 관리 체계와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공간에서 행해지는 집단적/관습적 행동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용례는 그 빈도가 상당히 낮은 게 사실이다.

 

3 _

 

본 중국관행연구사업단에서 중시하고 있는 “관행” 개념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전혀 관련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알제리 카빌리아 사회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는 본 사업단 사업계획서를 처음 접하고 나서 느낀, 사업계획서의 구상이 Bourdieu practice 이론 틀 및 방법론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개인적인 소감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소회는 평소 영어 문헌을 읽으면서 practices를 대부분 “관행”으로 번역/이해해왔던 필자의 해독 정향에서 비롯된 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업계획서에 나타나 있는 사업 구상은 가히 Bourdieu의 이론적 구도를 역사학에 적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모로 닮아있는데, “관행” 개념의 다중성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여 몇 가지 측면을 간단히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 페이지 참고]

 

먼저, 법제화된 공식적 담론 또는 제도화된 규범의 차원보다는 실제적 행위, 보다 정확하게는, 기층 인민들의 생활세계에서 일어났던 실재의 차원에 조사와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은 이미 지난 시대의 상황을 그 조사-연구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과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지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록 Bourdieu의 경우와 같이 當代에 진행중인 실제적인 실천/관행에 대한 연구는 아닐지라도, 법률/정책 등에 제시된 바와 같은 지배적인 규범 및 담론체계보다 당대의 그것까지를 포함하는 역사적 실재(historical reality)를 주된 조사/연구의 대상 및 층위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의 기본적인 틀이 상당히 닮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5, 11, 18 참고; 국가에 의해 법제화된 규범과 관행/practices의 차별성 및 관련성에 대해서는 9, 10, 15].

 

다음으로, 사업계획서상의 “관행” 개념이 — 소규모 사회 또는 사회의 특정한 장()을 배경으로 하는 Bourdieu practice 개념보다 — 사회 구성원들의 practices를 구조화하는 일종의 무형의 체계이자 원리인 아비튀스(habitus) 개념과 매우 더 흡사하다는 점이다. 이는 사업계획서상에 기술된 방대한 조사연구 대상과 야심에 찬 기획, 즉 지리적으로 다양하고 오랜 역사 과정을 통해 형성된 중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비튀스와 마찬가지로 관행은 장기지속적인 구조이며 [2, 4, 5], 더 나아가 “일상생활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이자 “공동체의 규범원리”로 규정되고 있다 [6, 8, 12, 13]. 물론, Bourdieu의 아비튀스 개념과 문화 개념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여기서 “관행” 개념과 “문화” 개념의 차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다. 더욱이 사업계획서상에서는 개념으로서의 관행과 문화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으니 말이다 [1].

 

이와 관련하여, 사업계획서상에서 사용되는 “관행” 개념의 다중성에 대해서도 간단히 지적해보자. 앞 단락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인 관행은 “중국을 중국답게 만드는 규범”으로서 [3] 무엇보다도 “공동체” 단위에서 작동하는 규범원리로 이해되고 있다 [7, 8, 10, 12, 13]. , 분석적으로 볼 때 관행의 소재 단위가 공동체라는 말인데, 아마도 이렇게 반복적으로 관행을 “공동체”와 관련시키는 것은 그것의 국지적/지역적이고 비공식적인 특징을 부각함으로써 관행과 국가에 의해 법제화된 공식적 규범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업계획서상의 관행 개념을 규정하는 데 (그리고 이해하는 데) 이렇게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 공동체는 때로는 국가-사회 관계에 관한 논의에서 국가와 구별되는 영역으로 이해되는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시민]사회와 동일시되는가 하면 [22, 23], 때로는 보다 구체적으로 (Bourdieu의 장()과 유사한 분석 단위의) 향촌, 지역, 경제, 종교(공동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21]. 물론, 후자의 경우에도 누구에 의해, 어느 정도의 지리적 단위에서, 어떤 기준으로 경계가 만들어지는 공동체인지에 대해 별도의 언급이 없어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관행 개념을 “관습법”과 동일시하는 부분에 이르면 [14, 16, 17] 그 개념의 다중성/혼란함이 한층 더 심해진다. 그것이 practices, habitus, 문화, 또는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이 되었든, 관행이 관습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관행이 관습법에 반영되어 있다거나 또는 관습법의 내용이 관행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새삼스럽게 관습법이라는 개념이 서구적 식민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따라서 엄연히 법체계가 존재했던 중국 사회에 그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관행 개념이 관습법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라면, 혹자들이 사회적 관습, 습속으로도 (혼란스럽게) 이해할 수도 있는 관행이라는 단어를 굳이 핵심적 개념으로 선정하고 또한 그렇게 장황하고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관습법이 일상생활을 제어하는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

 

본 사업단이 수행중인 관행 연구사업의 중요성과 관행 개념에 대한 논의를 Bourdieu의 얘기에서부터 시작했고, 또 그의 이론적 틀과 개념적 도구에 기대어 사업단의 연구사업 계획을 살펴봤지만, 이러한 우회가 당연히 Bourdieu의 이론적 구도와 개념들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양자의 이론적/방법론적 구도에서 보여지는 상사성(相似性) 역시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 독해에 따른 것이며 어떤 점에서는 그 정도를 다소 과장한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상사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사성의 여부 및 정도와는 무관하게, 사업단 사업계획서의 내용 그 자체만을 놓고 볼 때도 관행 개념과 관련된 주요 몇몇 개념은 좀 더 정치(精緻)하게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관행 개념의 경우,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동시에 엄연히 구별되는 최소한 3가지 차원의 개념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관습적 행동의 총체로서의 관행, 무형의 사회 운영원리이자 시스템으로서의 관행, 관습법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차원의 관행. 이렇게 개념의 다중성을 지적하는 것은 그 개념을 사전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하자고 촉구하는 게 아니다. 실제 조사/연구를 통해 그 개념을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위의 세 가지 개념 차원의 상호 관계를 좀 더 구체화하자는 말이다. 어떤 개념이, 특히 주요 개념은 중요한 이유는 조사와 연구의 방향은 물론 그 사실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고: 중국관행연구사업단 사업계획서에서의 관행 개념

 

1). 중국 특유의 사회경제관행문화 (p. 4: 4/4) [페이지: 단락/]

 

2). 전통적인 사회경제 메커니즘은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 중층적으로 형성된 ‘장기지속’적 구조, 이사회가 유지되고 운영되었던 다양한 사회경제 관행의 총체 (p. 5: 2/3-4)

 

3). 관행은 중국을 중국답게 만드는 규범이자 중국적 특색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 (p. 5: 2/5-6)

 

4). 중국적 표준이 설정될 수 있는 토양은 바로 ‘장기지속’되는 중국의 사회경제관행... 따라서 중국식 발전모델이 생성될 수 있는 토양으로서의 관행에 주목[해야] (p. 4: 4/1-3)

 

5). (중국식 발전모델은) 지속성, 반복성, 항상성, 명료성 그리고 중국의 구성원에 의한 동의를 통해 규범력을 인정받았으며, 그 자체로서 사회적 강제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 사회의 관행(을 벗어나서는 창안될 수 [없음]) (p. 6: 1/1-3)

 

6). 중국인의 일상생활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무형의 사회운영시스템관행(을 통해 중국사회의 통시적 변화와 지속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p. 7: 2/3-4)

 

7). (국가권력은) 관행의 질서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와 갈등하면서 공존을 모색해 왔다) (p. 8: 2/1-2)

 

8). 공동체는 관행에 의해 움직이고 유지되어 왔다. 관행은 다양한 공동체의 운영원리이자 운영 시스템으로 작용(했던 바) (p. 8: 5/1-2)

 

9). 보다는 관행, 관행보다는 도덕과 윤리를 더 중시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규제력관행이었고, 관행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최종적 귀착점이 法이었다 (p. 8: 5/2-4)

 

10). 공동체의 규범원리관행(이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법과 배치되지 않고 일련의 연결관계 속에 있었음) (p. 9: 2/2-3)

 

11). 관행은 중국 사회의 기층에서 작동하면서 제국 질서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였다 (p. 9: 2/5-6)

 

12). 개인은 동일한 관행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과 귀속감을 확인... 또한 관행은 공동체의 운영시스템으로서 작동... 국가권력은 공동체의 관행질서를 인정함과 동시에 통제... 그러므로 관행과 개인-공동체-국가는 불가분의 관계... 관행을 매개로 삼자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중국사회의 장기 안정성이 확보) (p.9: 3/1-6)

 

13). (관행) ‘중화제국’ 질서의 토대인 공동체의 주요 규범 원리이며 시스템 (p. 20: 4/2)

 

14). 중국 경제가 중앙권력의 역할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신용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그 이면에 공유되는 관행(또는 관습법)적 규범원리가 존재했다는 가정... (p. 21: 2/1-3)

 

15). “국가권력의 관행 통제”는 본 관행조사에서 불가결한 항목이다 (p. 21: 3/2)

 

16). 관행과 법의 관계, 그리고 관습법과 실정법의 충돌과 상호보완 관계... (p. 21: 3/6)

 

17). 현 중국정부가 1990년대 이후 법제를 정비하면서 수행하고 있는 관행(관습법) 조사와 연구도 조사대상이다 (p. 23: 2/4-5)

 

18). 관행은 장기간에 걸쳐 수많은 중국인에 의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승인되어 이들의 삶 속에 확고히 뿌리내려 생활 전반에 강력한 規範力을 가졌다 (p. 28: 1/1-2)

 

19). 관행은 소멸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재구성되는 방향으로 변화 (p. 29: 4/3-4)

 

20). 비록 사회경제적 토양이기는 하지만 관행현재와는 일정 정도의 부조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는 지속되는 관행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관행과 현재 간에 존재하는 괴리와 상호침투과정을 실증적-동태적으로 분석해야... (p. 30: 2/8-10)

 

21). 중화제국의 국가-사회운영 시스템(이를 잠정적으로 중화제국의 질서라 개념화한다)다양한 종류의 공동체(향촌, 지역, 경제, 종교)와 상호의존적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음 (p. 28: 5/4-6)

 

22). 사회를 움직이고 유지했던 사회영역(공동체)과 사회영역을 작동시킨 질서(관행)... (p. 29: 1/6-7)

 

23). 국가와 사회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매개물로서 작용한... 관행의 질서에 주목한다 (p. 43: 2/2-3)

 

*주석

1) 전통 또는 부족사회에서의 혼인이 집단간의 여자 및 재화의 교환을 통해 사회적 연망을 확대하고 그로 인해 정치/경제/사회적 자원의 활용 기회를 넓히고자 하는 행위가 제도화된 것이라는 [따라서 족외혼(exogamy)가 지배적인 형태라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평행사촌혼은 연망확대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는 일종의 족내혼(endogamy)으로서 희귀한 결혼형태라 할 수 있겠다. 카빌리아 사회에서 부변평행사촌혼이 공식적이고 바람직한 혼인형태로 간주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문화적 편견(더러운 것, 나쁜 것, 수치스러운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더러운 여자”들 중에서도 핏줄, 그것도 남자의 핏줄로 연결된 여자가 그나마 낫다는 생각에서 연유한 것으로들 파악한다.

2) 예를 들어, “완료된 작업과 작업 방식간의; 객관화된 산물과 역사적 실천이 실질화된 산물간의; 구조와 아비튀스간의 변증법이 이루어지는 지점; the site of the dialectic of the opus operatum and the modus operandi; of the objectified products and the incorporated products of historical practice; of structures and habitus (1990: 52)

3)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 중의 하나는 어떤 사회적 장(field)에 이해관계를 충족하고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들이 그 장()내의 역학관계에서 동등한 위치를 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각각의 장()은 참여자들간의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인 관계를 그 자체로서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참여자들의 성향(disposition)과 사회적 궤적(trajectory), 그리고 보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본(capital)”의 총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Bourdieu가 말하는 자본은 사회적 장()에서 이익을 충족하고 상징적 권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보유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뜻하는데, 다음 네 가지로 구성된다: 상징적 자본(어떤 場의 규칙과 체계 등에 대한 지식 등을 바탕으로 그 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향력), 경제적 자본(직접적으로 돈으로 변환되며 재산권의 형태로 제도화되어 있는 경제적 자원), 사회적 자본(사회적 면식과 인정 관계를 바탕으로 다소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연망 형태의 자원으로, 신분의 호칭과 같은 형태로 제도화되어 있으며 상황에 따라 경제적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자원), 문화적 자본(특정 조건하에서 경제자본으로 변환될 수 있으며 교육 수준 등의 형태로 제도화되어 있는 자원).

4) 이러한 점에서 아비튀스는 (사회의 거시적 구조에 의해) 구조화되고 동시에 (개인들의 관습적 행동을) 구조화하는 또 다른 차원의 구조이며 따라서 분석적으로 그다지 유용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는 개념이라고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 Bourdieu가 후기구조주의자로 분류되는 것도 무엇보다도 구조와 주체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다소 환원적이고 때로는 동어반복적이기도 한 이 habitus개념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Bourdieu의 아비튀스 개념과 “문화” 개념과의 차이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5) 특히, 대만과 일본의 일부 학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러한 용례의 존재는 확인했으나,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 “관행”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용이 일본어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일본어 학술 문헌에서 사용되는 관행 개념에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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