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34/2021.11/현장&공간] 중국 공산당 조직과 권력구조 문건 해제: 中央宣傳部關於宣傳中“客觀主義”偏向給華北局的指示 _ 이유정
해제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1948년 10월 13일 당 선전(宣传)에 있어서 ‘객관주의’ 편향을 지적하며 이에 대해 화북국(华北局)에 지시를 내렸다. 1948년은 공산당이 중국 전역 가운데 대부분의 동북과 화북, 화남과 화동의 많은 지역, 그리고 서북의 일부분에서 승리하던 시기이다.1) 한편 1948년 6월 인민일보는 허베이(河北省)에서 창간되었다.2) 그러나 이시기 자연 재해가 문제가 되었는데 인민일보는 이를 객관적으로 보도했고, 중앙선전부가 이 보도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인민일보는 1948년 11월 8일 『선전 보도에서 객관주의 경향을 극복하자』라는 사설 보도를 통하여 자아비판을 하였다.3)
아편전쟁이후 중국 언론 보도에 대한 중국 지식인, 언론인, 그리고 혁명가들의 객관주의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이 변화하였다.4) 중국 공산당을 제외하고 중국의 사상가들은 언론 보도의 객관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 캉유웨이(康有爲)와 량치차오(梁启超)를 대표로 하는 입헌유신파와 손문이 이끄는 자산계급 혁명파는 언론을 중시하고 언론의 객관적 보도를 중시했다. 마오도 객관적 보도를 중시하여 1925년 발표한 『‘정치주보’발간이유』에서 ‘사실만을 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후차오무(胡乔木)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이론가와 무산계급 언론학자들은 혁명에서 무산계급 선봉대의 지도 역할을 위해 당의 정책을 선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덩의 실사구시 주장으로 객관적 보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될 때까지, 중국의 언론은 개인숭배와 과대보도를 지속하였다.
번역
선전(宣传)에서 '객관주의' 편향에 대한 중앙선전부의 화북국(华北局) 지시(1948年10月13日) 화북국은 조양(周扬), 판스(磐石), 신문사 각 동지들에게 전달하라: 10월 10일 인민일보는 "전 화북 해방구의 인민이 단결하고 투쟁하여 각종 재해를 이겨내고 있다"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런 기사를 발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 기사에 좋은 소재들도 많지만, 원칙적으로는 두 가지 심각한 단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기사의 제목, 서두와 말미에 각종 재해를 이겨낸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 기사의 3분의 2 이상의 많은 분량이 극도로 지루하고 산만하게 각 구의 각종 재해를 상세하게 열거하고, (심지어는 닭의 전염병과 늑대에 물린 경우까지 포함하여) 어두운 그림을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읽고 나면 극도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화북 전역의 올 가을 평균 수확량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이를 기근 극복의 성과로 적극 홍보하고, 좋은 경험과 교훈을 제시하는 동시에 이재민 구호활동의 미흡함을 지적하여, 간부들과 인민들이 “생산을 한 치 늘리기”위한 노력을 계속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사는 그런 고무적인 힘이 없거나 드물다. 그 힘은 우리 신문에서 모든 선전과, 모든 비판과 자아비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적극적인 고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우리의 선전 업무에서 허용되지 않는 “객관주의” 경향의 한 단면이다. 둘째, '객관주의' 경향은 기근의 원인 분석에서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 세 가지 유형의 기근의 첫 번째 원인은 모두 "장기 전쟁"이다. "첫째, 홍수의 발생과 수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하천 제방의 파손과 미수리... 둘째, 병충해가 발생했으나 장기전으로 인한 부담이 과중했고, 과거(언제의 “과거”를 의미하는가?) 토지개혁은 극좌(左) 정책(어떤 정책이 극좌인가?)으로 인해 농민들 생산 정서의 저하를 가져왔다. 셋째, 전염병이 만연하고, 장기전으로 민생이 동요하여 불안정해지고 영양실조로 저항력이 약화되었다…" 오늘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결정적 의의가 있는 전쟁은 어떠한 입장인가? 공산당 중앙화북국 기관지의 입장이 의식이 없는 평범한 서민들의 전쟁에 대한 혐오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 전쟁이 있고, 전쟁은 여러가지 면모가 있지만, 여기서는 이런 분석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른바 전쟁의 폐해만 강조하고 있고, 토지개혁의 폐해를 더하였다. 항일전쟁이 없었다면, 2년 이상의 해방전쟁이 없었다면 상황은 더 비참했을 일이 아닌가? 전쟁의 모든 사악한 결과는 결국 공정하고 명백하게 일본 침략자와 국민당 반동파의 책임으로 귀속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기사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전쟁의 종식을 요구하거나 전쟁 중에 재난을 구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동지들은 이 논리적 오류를 알고 있지만 편집할 때 “우연히 잊어버린 것”인데, 왜 "잊었는가”?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선전 작업에 존재하는 특정 객관주의 경향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민일보》가 공개적으로 자아비판하는 기사를 쓴 이후, 올해의 재난구호의 위업을 널리 알리는 데 역점을 두고, 투쟁을 계속할 것을 촉구하며, 내년 생산 규모를 한 치 더 늘릴 준비를 하고, 전쟁과 토지개혁에 대한 각종 잘못된 정서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제안을 한다. 이밖에 10월 10일자 신문 4면에 걸쳐 전쟁의 선전 기사가 단 한 건도 없는 점은 편집부의 이목을 끈다. 신문사 직원들과 이 문제를 한 번 검토하고 결론을 내리고 알려 달라. 화북국이 신문사에 대해 이 문제를 검토해 독촉하기를 요청한다.
(중앙 당안 원본에 따름)
원문
中央宣传部关于宣传中“客观主义”偏向给华北局的指示(1948年10月13日) 华北局请转周扬,磐石,报社各同志: 十月十日《人民日报》发表了“全区人民团结斗争战胜各种灾害”的长新闻。发表这样的新闻是完全必要的,该件也有不少好的材料,但整个地说,我们以为该件有两个塬则性的严重缺点。 第一,该件虽题为战胜各种灾害,并在导语中和末尾提了一些战胜灾害的话,但全篇叁分之二以上的巨大篇幅都是极乏味地而且极零乱地用于详细列举各区各种灾情,(甚至把鸡瘟和狼咬人都搜罗在内)构成一幅黑暗的图画,使人读后感到异常沉重的压迫。华北全区今年秋收既然平均有七成,我们就应当着重从积极方面宣传这是战胜灾荒的巨大成绩,指出好的经验教训,同时批评救灾工作中的缺点,以便鼓舞干部和人民继续努力,“把生产提高一寸”。 但是这篇新闻却没有或很少有这种鼓舞的力量,而这种力量却是我们报纸上一切宣传和一切批评和自我批评所必需具有的。应当说:忽视积极的鼓舞乃是我们的宣传工作中所不许可的“客观主义”倾向的一种表现。 第二,这种“客观主义”倾向更严重地表现在对于灾荒塬因的分析上。叁种灾荒,每一种的第一项塬因都是“长期战争”。 看吧:“第一,水灾之发生,一因连年战争,河堤失修,… 第二,虫灾之发生,因长期战争,负担过重,与过去(什么时候的“过去”?)土改中政策过左,(什么政策过左?)致农民生产情绪低落…… 第叁,瘟疫流行,一因长期战争,人民生活动荡不安,营养不足抵抗力减弱…”在这里对于我们今天所全力进行的,具有决定一切的意义的战争是表现什么立场呢? 难道不是把共产党中央华北局机关报的立场降低到普通的不觉悟的老百姓的厌战立场上去了吗? 有各种各样的战争,战争有各种各样的方面,但是在这里完全看不到这种分析,看到的只是所谓战争的罪恶,此外还加上了土改的罪恶。 如果没有抗日战争,如果没有两年多以来的解放战争,难道事情不是要更加悲惨吗? 战争的一切恶果难道不应当十分公正并且十分明确地归咎于日本侵略者和国民党反动派吗?而按照这篇新闻里的分析,我们能得到什么结论呢? 我们就必须要求停止战争,或承认在战争中生产救灾是不可能的。我们的同志无疑是知道这种逻辑的错误的,但是在他们编辑时“偶然地忘记了”,但是为什么“忘记了”呢? 我们以为,这只能从我们宣传工作中所存在的某种客观主义倾向来解释。 因此,我们提议,《人民日报》应当写一篇文章,在公开进行自我批评之后,着重宣传今年生产救灾的伟大成绩,号召继续奋斗,准备明年提高生产一寸,并且向对于战争以及土改的各种不正确情绪作斗争。 此外,十月十日的报纸共有四版,没有一条宣传战争的,这也应当引起编辑部的注意。 请你们召集报社工作人员将这件事情检讨一次,并作出结论,告诉我们。请华北局对报社此项检讨,予以督促。
(根据中央档案原件)
【중국공산당 조직과 권력구조 관련 문건 해제 14】
이유정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THE CHINESE CIVIL WAR, https://alphahistory.com/chineserevolution/chinese-civil-war/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中共中央宣传部办公厅 中央档案馆编研部(编), 1996, 中国共产党宣传工作文献选编1937-1949年, 2卷, 北京: 学习出版社, pp.741-7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