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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4 /2011.10] 논단 _ 중국의 소프트 파워와 문화주의 전통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0 조회수 60

[Vol.14 /2011.10] 논단 _ 중국의 소프트 파워와 문화주의 전통

전인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1 _ 문화주의 : 역사상의 소프트파워       

 

개념의 모호(籠統)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소프트파워(軟性權力)라는 용어는 미국의 세계전략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국가들도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각기 자국의 소프트파워 확충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소위 화평굴기론, 베이징 컨센서스(北京共識), 중화문명과 유가사상의 재구성 담론으로, 일본은 소위 ‘매력국가’ 담론,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라이프스타일 리더로서의 새로운 일본 정체성 확립론 그리고 자유, 민주,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엄밀하게 말하자면 근대 서구에서 창안된 서구적 가치)에 기반한 미국과의 소위 ‘가치동맹’론으로, 한국의 소프트파워 확충 시도는 일본과 유사한 형태-한류를 통한 한국 대중문화의 확산 그리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의 확충-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과 한ᆞ일 양국이 모색하는 소프트파워의 내실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소프트파워론이 각국의 대내외 정책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점의 중요성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군사력, 경제력 등 소위 하드파워(硬性權力)와 적절하게 조화된 소프트파워는 첫째, 대내적으로는 통치의 안정성을 높이고 국가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한편 국민통합의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둘째, 대외적으로는 타자가 자발적 혹은 준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문화적 가치나 이념 혹은 정치ᆞ경제ᆞ군사적 패권에 동의하게 만드는 역량이다.

 

이 이론의 제창자인 나이(Joseph S. Nye)에 의하면 소프트파워는 특정 국가가 소유한 다음의 자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보편적 가치(공동의 가치와 정당성), 문화(가치체계와 관행), 제도, 국내외 정책이 소프트파워의 자원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제시한 소프트파워를 중국의 고유한 용어로 고쳐 읽으면 文化主義 = (이하 文이라는 표현은 문화주의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이라 할 수 있고, 그 자원은 전통적으로 운위되던 文化主義의 구성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治國에 있어 소프트파워 즉 文의 중요성은 중국에 있어 뿌리 깊은 전통을 갖고 있다. 漢을 개국한 高祖가 무력으로 천하를 얻었는데, 文이 왜 필요하냐(陸生時時前說稱詩書. 高帝罵之曰, 迺公居馬上而得之, 安事詩書)는 힐난에 대해 陸賈는 치국의 요체는 문화주의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한 바 있다.(陸生曰居馬上得之, 寧可以馬上治之乎. 且湯武逆取而以順守之, 文武並用, 長久之術也) 그리하여 陸賈는 仁義之道를 체계화하고, 叔孫通은 儀禮를 정하여 제국의 통치이념과 시스템, 말하자면 제국 운영의 소프트파워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결국 제국의 통합과 지속은 천하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이념, 그리고 그것에 근거하여 형성ᆞ유지ᆞ발전하는 문화(문화적 보편성)를 창안하는 한편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이 治國의 要諦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보편적 가치와 문화적 보편성의 구현을 치국의 요체로 상정한 이상 修己와 治人의 도덕적 전범을 제공하는 文史哲 즉 인문학은 정통학문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사철을 겸비한 지식인 즉 인문학자 혹은 인문학도가 문화는 물론 정치와 사회의 주역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이 글에서는 첫째, 중국 역사상의 문화주의를 덕치국가(도덕국가)의 구현과 대일통 천하의 수호로 집약되는 전통적 국가론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소개한다. 둘째, 중국의 대국화 과정에서 문화주의 전통이 중국의 미래기획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면의 한계로 상론할 수 없으나 천하(세계) 통합의 보편이념으로 기능한 華夷論 역시 문화주의에 근거한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 통합 이념이었다는 점을 부언해 둔다

 

2 _ 문화적 보편성과 덕치 이념

 

중국의 전통적인 국가론의 핵심은 덕치국가=도덕국가의 구현을 당위적 소명으로 상정한다는 점과 대일통 천하의 수호(維護)라고 할 수 있다.

 

덕치국가=도덕국가의 구현은 국가 좁게는 국가권력을 문화적 보편성에 이르는 수단의 하나로 보는 문화주의적 국가 관념의 산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문화 전통에는 도덕적 공동체와 그 집합으로서의 도덕 국가를 지향하는 유교적 정치문화가 장기간 지속”되었다. 또한 “황제나 사대부는 통치자로서의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권위가 전제 지배의 근원”으로 기능했다. 그렇다면 황제나 사대부가 확보한 도덕적 권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권위가 국가/국가권력의 본질적 기능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국가는 인간의 행위 기준을 제시하고 성인의 가르침에 근거한 윤리적 원칙에 따라 지배-다시 말해 聖人의 道를 실현-하고, 사회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지상의 임무였다. 국가는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도덕적 원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의무가 있었으며, 그러한 원리에 근거하여 사회 구성원을 단결시키는 기능까지 담당해야 했다.

 

말하자면 국가는 문화적 보편성을 통해 사회 구성원을 통합시킬 수 있을 때 그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의 기능 역시 모든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동일성을 추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통치 행위는 단순히 인민에 대한 통제와 국가의 합목적성에 부합하는 인적, 물적인 동원 및 그 시스템의 운영이라는 차원을 넘어 통치행위 그 자체가 도덕적 행위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국가는 보편적 통치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국가는 정치권력의 구현체임과 동시에 문화의 담지자로서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낸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고, 이로써 왕조/국가 그 자체가 천하라는 등식이 성립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중화주의적 천하관과 유교적 국가론의 산물이었다.

 

국가권력을 문화적 보편성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삼으로써 문화적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국가의 정당성은 이미 확보되는 결과가 된다. 이 지점에서 법과 제도는 문화적 보편성 구현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며, 法治(法制)보다 문화적 보편성 즉 도덕에 준거한 德治의 우위가 가능해 진다.

 

덕치의 구현, 말하자면 도덕적 공동체, 문화적 보편성을 담지한 공동체를 지상에 구현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한 이상 현실 정치는 성인의 가르침에 근거한 윤리적 원칙과 도덕에 따라 인간의 행위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회의 조화를 달성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 되게 된다. 따라서 治者 역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제로 사회 전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도덕적 원리를 만들고, 자신들이 창안한 보편적 가치를 전 사회가 공유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옛 사대부 지식인들은 스스로 이상적인 도덕 국가의 구현자임과 전 사회적인 문화적 동질성의 확립자임을 자임하였다. 이들이 철들면서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천하를 위하여 마음을 정하고, 백성을 위하여 소명을 정하며,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고, 후세를 위하여 태평세계를 열라”는 소명의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대부 지식인들의 행위 규범이기도 했다. 이러한 소명의식은 개인의 이득보다는 천하의 안위와 문화적 연속성을 중시하고, 백성의 행복과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통치를 자신들의 소명으로 인식했고, 이것이 사대부 지식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보편성의 구현과 함께 국가 기능의 또 다른 핵심적인 요소는 大一統 天下의 수호(維護)였다. 大一統은 “중국과 그 주변의 공간적 통일이라는 의미 외에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가 하나의 구조로 통합을 이루는 구조적 통일을 의미”한다. 국가권력과 사대부 지식인은 중국이라는 文化體를 유지ᆞ보존ᆞ발전시키는 것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앞서 언급한 사대부 지식인의 행위 규범은 역사의 연속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中華’라는 보편적 가치의 영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를 소명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명론적 영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제는 무엇이었던가? 亂世가 초래한 분열과 혼란 속에서는 그러한 영속성을 기대할 수 없으며, 천하의 안정이야말로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 불가결한 전제였다. 그러므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帝國이 一統되는 大一統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는 것은 국가 혹은 사대부 지식인의 본질적 사명임과 동시에 존재 근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大一統의 統合-현재적 의미로는 강력한 하나의 중국-을 달성하여 인민의 행복과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국면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도덕적/현실적 의무였다. 여기서는 권력의 형태, 근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政體는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고 어떠한 政體였던간에 大一統을 수호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大一統의 국면은 강력한 권력에 의한 강압적 통합에 의해 실현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일통은 지배 영역에 대한 그리고 인민에 대한 문화적, 도덕적 통합 다시말해 문화적 보편성의 확보를 전제로 한다. 그럴 경우에야 만이 대일통이 완결성을 갖출 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정치적으로는 절대적 권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함으로써 民을 통합해야 했고, 문화적으로는 ‘보편’적이고 ‘유일한 中華의 문화’를 통해 民을 통합해야 했다. 중국의 국가권력이 이러한 통합을 정통성의 원천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도덕적 의무로 인식하고 행동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손문의 삼민주의나 마르크스ᆞ레닌주의ᆞ모택동 사상이 국민국가 건설 도상에서 끊임없이 全民 혹은 人民 統合의 기제로 원용되었다. 국민당 정권과 공산당 정권은 국가 주도의 위로부터의 국민통합을 강제할 만한 권력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의 도덕적 정당성을 ‘이념’-보편적 가치를 지닌 ‘이념’-에서 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강력한 권력과 함께 문화적, 도덕적 차원에서의 통합을 통해 완결될 수 있었던 전통시대의 大一統的 統合 양상과 묘한 일치를 보여준다.

 

또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주의적 국민통합의 기제가 갈수록 形骸化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중국은 애국주의의 고양을 통해 국가 통합을 강조하고 있는 바, 애국주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중국 문명과 문화에 근거한 정체성과 강한 자부심을 핵심적 자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중화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활용한 인민 통합의 현대적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_ 중국의 대국화와 문화주의 전통

 

문화주의는 전통시대 국제질서를 규율하는 원리로도 작용하였다. 중국에서 발원한 중국 문화주의 전통의 정수는 전통적 천하관념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華夷論과 결합된 천하관념은 매우 독특한 개념이다. 중국인들은 압도적인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의 문화를 단순한 최고가 아닌 ‘유일’하고 보편적인 문화로 인식했다. 또한 천하질서=중화질서는 초강대국에 의한 단순한 영향력 행사가 아닌 지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을 포괄적으로 지배하는 유일한 보편적 통합 질서 그 자체라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전통적 천하관념이었다. 따라서 정치와 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 질서인 중화질서에 의해 천하가 통합되는 것은 “當爲”였다. 우리는 전통적 천하관념에서 소위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정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하튼 보편 문화의 창안자이자 발신자임을 자처했던 중국이 아편전쟁 이후 서구의 강압에 의해 자신을 상대화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말하자면 또 다른 보편가치로 다가온 서구에 의해 보편으로서의 중국 그리고 중국적 가치가 와해되는 ‘굴욕’을 겪었던 것이다.

 

굴욕의 시대를 지나온 현재, 개혁 개방의 과실을 토대로 ‘중화’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굴기하는 중국’은 이제 상식화되었으며, 개혁개방 이래 “현대화 건설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중국을 세계 강국의 대열에 우뚝 솟아오르게 하였다”는 자부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것은 천하의 중심에서 밀려나 동아의 병자(‘東亞의 病夫’)로 전락하는 멸시 속에서 지난하게 탐색했던 강한 중국의 회복이 상당 정도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굴욕의 지난 세기와 전혀 다른, 어쩌면 세계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국격(國格)으로 세계와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중국은 大國化의 길을 드러내 놓고 모색하고 있다. 권력 엘리트의 정기적인 집단학습의 한 결과물인 <大國崛起>가 이들만의 공유에 그치지 않고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수많은 중국인들이 시청했으며, 한국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공중파로 방영된 바 있다. 세계사적으로 여러 대국들의 발생과 소멸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의 최종 귀착지는 중국의 大國化이며, 중국이 더 이상 大國化를 숨기지 않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성격과 실체는 형성과정에 있지만 외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중국은 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형국을 ‘중화’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라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의 전통 즉 중화제국 운영의 경험과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ᆞ경제ᆞ문화적 자원이, 중화에 대한 자신감 회복의 자양분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전통을 부정하고 서구 중심의 근대성을 쫓아가던 상황에서 벗어나 이제는 중화문화의 전통을 긍정하고 재창조하려는 문명사적 전환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화문화의 전통을 긍정하는 현 상황에 이르기까지, 강한 중국을 복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적 보편을 회복하기 위해 전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전통을 철저히 부정하려는 시도가 등장하였다. 그 출발점이 54 신문화운동이었다. 54를 導火點으로 중국사회의 토양으로 작용했던 전통(바꾸어 말하자면 “중화문화의 역사성”)과 지향해야 할 질서로서의 근대(바꾸어 말하자면 추구해야 할 “시대성”)를 어떤 방식으로 조화시킬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상적, 문화적 긴장이 팽팽하게 형성되었다. 뿐 만 아니라 국가운영방식, 사회질서 등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적 변혁이 모색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근현대사는 충격과 변혁, 동란과 혁명, 신중국 건설이라는 격동을 경험했으며, 그러한 격동이 근현대 중국사의 외형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격동적 변화는 궁극적으로 중화문화의 역사성 부정을 핵심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전술한 바와 같이 ‘강한 중국’이 상당 정도 회복되면서 중화문화의 역사성을 긍정하는 경향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은 두 가지 경향으로 대별할 수 있는 바, 그 하나는 중화문화의 역사성을 긍정하는 지식구조의 확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중국 특유의 사회경제관행과 문화를 토대로 운영되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건설 움직임이다. 이 두 경향은 중층적으로 형성된 중화문화를 토양으로 삼아 중국적 보편을 회복하고 명실상부한 대국으로 발전하려는 중국의 미래기획의 양 날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움직임 즉 중화문화의 역사성을 긍정하는 지식구조의 확산은 다음과 같은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장구한 중국사 속에서 형성된 자신들의 전통을 파괴하기보다는 전통 역시 시대성에 비추어 비판하고, 시대성(근대성)을 비판적으로 학습하여 전통을 발전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의 현재적 효용성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중국이라는 文化體의 정체성을 수호ᆞ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 모색은 ‘지속가능한 강한 중국’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화적 토대(중국적 표준)를 재창조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주의에 입각하여 통치되는 국가를 理想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理想을 실천해 왔던 문화가 지금까지 유효한 한, 중화문화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적 표준을 설정하려는 사상적 모색은 극히 실용적인 의미를 띤다 하겠다. 예컨대 최근 유행하는 공자를 둘러싼 상징조작은 단순한 상징조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 건설을 위한 모색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또한 권력 엘리트에 의해 강조되고 있는 유교 윤리의 긍정은,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착근될 수 있는 도덕적 덕목을 전통의 창조적 재구성 속에서 발굴하려는, 그리하여 중국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만들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를 모델로 미래를 기획하는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유교적 통치이념의 적극적 활용, 전략적 의도를 내포한 기획된 역사연구의 확산 등 일련의 사회문화적 현상은 21세기 중국의 미래기획과 밀접히 연동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특유의 사회경제관행이 (다른 나라들과는) 차별적으로 인정되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건설 모색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보이는 중화문화의 역사성 긍정의 대표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경제 메커니즘은 오랜 역사과정을 통해 중층적으로 형성된 ‘장기지속’적 구조로 한 사회가 가진 다양한 사회경제 관행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관행은 중국을 중국답게 만드는 규범이자 중국적 특색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였다. 대국으로의 지향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사회를 움직였던 전통적 사회경제 메커니즘은 청산의 대상이거나 적어도 근대적 발전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실제 새롭고 강한 중국을 회복하기 위한 국가건설의 방향도 그러한 요소의 척결과 최소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중국은 미국 중심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비판함과 동시에 중국 특색의 사회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중국식 발전 모델을 개발하고 확산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중국과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재편하려는 전략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미국적 표준 뿐 아니라 다양한 표준의 존립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집착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볼 때 중국 중심의 스탠더드(Chinese Standard)를 창조하고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 이 글은 2010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중국 사회과학원의 공동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을 다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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