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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4 /2011.10] 기획 _ The Story of SUN(孫)’s Family: 인천화교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5)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0 조회수 185


[Vol.14 /2011.10] 기획 _ The Story of SUN()’s Family: 인천화교 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5)

구술: 손덕준 _ 인천 중화루 사장 

채록: 송승석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인천대학교 HK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은 화교연구의 일환으로 화교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천화교의 대표적 인물 손덕준(孫德俊)과 그의 가족이다. 어느 일개인의 가족사가 화교 전체의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교 개인의 인생 궤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은 삶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구술채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도록 하겠다.

 

*. 본 연재는 기본적으로 구술기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되, 지나치게 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임의로 수정을 가했다.

*. 문중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은 공개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나 반복되는 내용으로, 구술대상자와 상의 하에 생략한 부분이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채록자 임의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 (???) 부분은 성명이나 상호명으로, 구술자가 한자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추후에 조사를 해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송승석(이하 송): 아버님은 어떻게 되셨어요? 그 후로도 제주도에 쭉 계셨어요?

 

손덕준(이하 손): 아니. 제주도에 1년쯤 있었나? 그거 생각이 잘 안 나네. 아무튼 제주도 갔다 오셔가지고 한동안 집에서 쉬었어요. 집에서 쉬다가…. 그랬다가 쓰러지신 것 같아, 중풍으로. 제주도 갔다 와서 날마다 술 먹고…. 그때 쓰러진 거 같아요.

 

: 대충 맞는 것 같아요. 사장님이 스물두 살이면 아버님이 마흔 여섯쯤 되었을 테니까.

 

: 그때 아마 애들도 커서 학비도 많이 들어가고 돈도 쪼들릴 때, 중풍으로 쓰러졌어요.

 

: 그러면 당시에는 사장님 혼자 생계를 책임지시게 된 거네요?

 

: 아마, 그때 우리 둘째하고 셋째 남동생 그리고 큰 여동생이 직장 다니고 있었을 거예요. 여유 있게 살지는 못했어요. 형제도 많고 돈도 없고…. 우리 어머니도 다른 데 직장 생활 안 해본 사람이고. 내가 직장 다니고, 둘째도 중학교 나와서 고등학교 못 들어가고…. 공부는 못했어요.

 

: 아버님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쭉 병상에 계셨겠네요?

 

: 우리 아버님, 기술도 좋은데 이상하게 장사 운은 없는 양반이야. 직장 생활해서 돈 좀 벌면 장사해서 쫄딱 망하고…. 우리 아버지 이산가족이고 술 먹는 이유 있었어요. 특히, 정도 많고…. 부모 형제들 두고 왔으니까. 물론, 남한테 도와달라는 것도 그 양반 자존심 있는 사람이라…. 결론은 작은 아버지 집에서 중풍 걸렸다니까. 원래 혈압 높은 사람이야. 쓰러지고 나서 나한테 전화 왔어. “네 아버지 빨리 데리고 가라”고. 그때 의사가 “따뜻한 방에서 삼일만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중국 사람이야, 의사가. 오히려 그 의사가 작은 할아버지한테 사정하더라고. “침 맞으면 좋아질 거니까….” 근데 한사코 안 된다는 거야. “네 아버지 빨리 데려가!” 나도 자존심 강한 놈이죠. 집까지 모셔왔어. 그때 우리가 새마을 남동에 살 때였어. 택시 잡으러 가니까, “너 도망가지 말라”고 그러더라고. 그런 양반이야. 그때 우리 큰 여동생 직장 다니고 있었거든. 근데 …. 솔직히 말해서 원수도 아닌데 말이야. 우리 큰 여동생 두고 이상한 소리를 해댄 거야. 우리 아버지, 애비로서 충격 받아 쓰러지신 거야. 물론 지나간 얘기지만. 지금도 서운한 건 내가 택시를 잡으러 가는데 나보고 도망가지 말라고…. 남도 아닌데…. 지금도 우리 노인네(어머니) 옛날 그 생각하면 부글부글 끓어. 종교도 있는 분이지만, 한이 맺혀서 용서가 안 되나봐. 그래 내가 그러지. “좋은 쪽으로 생각해라. 다 돌아가셨고. 역사에 불과한데….” 그래도 안 돼. 하여튼 그때서부터 내가 가장 역할을 했죠. 초창기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없는 살림에 한의원까지 택시 대절해서 치료 받고 했는데…. 투병생활을 8년이나…. 처음엔 똥오줌 가렸어요. 근데 나중에는 똥오줌 받아가면서…. 돌아가셨어요. 둘째나 셋째 그리고 큰 여동생이 나하고 같이 월급 받아다가 병 치료했죠. 동생들은 학교 다녀야죠, 먹고 살아야죠. 그때 나도 정신 바짝 차렸죠, 딱 쓰러지고 나서…. 그때부턴 ‘옷도 사 입어서는 안 되고…. 정신 차려야지.’ 그런 생각 들더라고. 그때가 홍보석 그만 두었을 때야.

 

: 홍보석 그만 두시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나요?

 

: 스물한 살 때인가, 스물두 살 때인가?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서 아픈 바람에 서울 안 갔어요. 그냥 가까운데 취직해야겠다, 생각했지. 그래서 이젠 돈을 좀 벌어야겠다. 동생들도 많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또 아픈 사람 있으니까 돈도 들어가야 하잖아? 근데 내가 운이 좋아요, 운이. 인천 경동에 가면 옛날에 중국집이 하나 있었어요. 옛날 신신예식장 맞은편에 동천홍(東天紅)이라고. 그 사장이 한국 분이었어요. 막 오픈한 집이었는데 주방장을 구한데요. 원래 주방장으로 노인네 한 분 썼는데…. 그 양반도 떵()씨던가 그랬는데. 우리 아버지하고 친구 되는 사람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노인네가 기술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 사장이 한국 사람이니까, 대충 월급이나 좀 받아먹으려고. 그 노인네가 그러는 거야. “조카야, 새로 오픈하는 집이 하나 있는데 나하고 같이 일하자. 난 기술이 없다. 넌 기술도 좋고 하니까 네가 와서 나 좀 도와주라. 내가 주방장하고 너는 조리장하고. 한국 사람이 주인이니까 월급은 많이 줄게다.

 

: 신신예식장 건너편이면 평화각 건너편이네요?

 

: 옛날 길병원 내려가는 데 거기 있어. 2층인가 3층인데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 하여튼 갔어. 집에서 노니 뭐해? 월급도 많이 준다니까. 그때 월급으로 20만원 받기로 하고 갔어. 가서 보니까 그 노인네가 슬슬 요리 재료를 뒤로 빼돌리는 거야. 그게 주인 눈에 걸린 거지. 그 노인네 욕심이지. 월급만 그냥 주는 대로 받으면 괜찮았을 텐데. 한 두 달인가 넉 달쯤 지나서 사장이 그 노인네를 자르더라고. 그 사장이 누구냐 하면, 한국 분인데 중국집에서 오랜 일한 사람이야. 그 양반 유명한 사람이야. 그 주인이 나한테 “손 주방장, 그러지 말고 나 도와주게. 난 많이도 필요 없어. 한 달에 딱 1,500만원만 팔아주면 당신 원하는 대로 다 줄게.” 처음엔 막 오픈했었을 때니까 장사도 별로였어. 한 달 매상이 1,500만원이면 하루 50만원이요. 엄청난 거요. 네가 원하는 월급 다 줄 테니까 자기 좀 도와달라고. 그래 내가 그랬지. “지금 20만원인데 그거보다는 더 주어야 한다.”고. 옛날 주방장, 그 노인네 월급만큼 줄 테니까 오늘부터 주방장 맡아 달래. 30만원이면 큰돈이었어요. 그때 당시 다방에서 커피 한 잔에 90원 했어. 삼선짜장이 500원인가 했고 일반 짜장이 350원인가 그랬던 시절이야. 한 달에 1,500만원만 팔면 월급을 달라는 대로 준다니, 좋다고. 해 보자고. 내 기억으로 룸살롱에서 술 먹으면 2 5천원, 3만원 했을 때야. 큰돈이지.

 

: 동천홍도 작은 곳이 아니네요?

 

: 2층하고 3층이니까 매장이 한 200평은 될 거야. 주방 있고 홀 있고. 그때 당시 인천에 신형 요릿집이 생긴 거지. 거기서 주방장을 했어요. 그때 나이가 스물두 살이야. 30만원 받으면 그땐 대단한 거야. 하루 50만원 매출. 나중에 주말에 결혼 손님 받잖아? 예식손님. 탕수육 하나, 짬봉 아니면 울면, 우동. 그 우동 하루에 이삼천 그릇씩 팔았어. 주말에. 그 양반 대박 터진 거지. 요리도 신식이니까 디자인부터 멋있게 했어. 그 양반 나중에 그러더라고. 인천에서 이렇게 실력 좋은 사람 처음 봤다고. 내 밑으로 있는 사람들은 다 나이가 나보다 많았어. 그래서 나도 나이를 스물여섯이라고 속였어. 그 사람들, 옛날 내가 잔치뷔페 할 때도 내 밑에서 일했어. 지금은 다 70 가까이 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다 날렸어. 날마다 다방 가서 커피나 마시고…. 하여튼 거기서 1 6개월 일하다가 그만 두었어요. 이 주인 양반이 처음엔 고급요리 팔아서 재미 좀 봤는데 나중에 결혼손님한테 올인 하더라고. 그게 이문도 많이 남고 비싼 재료도 덜 들고. 하루에 보통 결혼손님 여섯 일곱 팀 받으니까, 그 사람 머리가 이쪽으로 쏠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나중에. “사장님도 눈치 빠른 사람이지만 나도 눈치 빠른 사람이요. 내가 조만간에 그만 둘게. 당신은 결혼손님만 받으라고.” 이건 요리사로서 자존심이야. 암튼 사장은 그게 더 낫겠다 싶은 거지. 사실 주말 예식장 손님만 해도 엄청 거시기해.

 

: 그럼, 거기 그만 두시고 다음엔 어디로 가셨어요?

 

: 그때 내 선배님 한 분 계셨어, 평화각에. 내가 동천홍 그만두고 집에서 한 달 동안 놀았어요. 놀면서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을 때인데, ()씨라고 그 선배를 만났어요. 나보다 나이 더 먹은 사람인데. “야, 너 지금 뭐하냐?” 동천홍에서 일하다가 그만 두었다고 하니까, “야, 그럼 너 놀면 뭐하냐? 평화각에 임시로라도 있어주면 안 되냐? 너 차라리 자리 잡을 때까지 평화각 와서 좀 도와주면 안 되냐?” 그래서 평화각 갔어요. 거기서는 몇 개월 안 있었어요. 평화각은 사실 우리 아버지 결혼식 때 피로연 한 곳이요. 우리 아버지도 평화각에서 직장 다녔어요. 평화각 같으면 그때 당시 이미 오래된 집이고…. 지금처럼 전통 그런 건 아니야. 집도 건물도 다 노후해 가지고 지저분한 집이었어. 그때 느낌은 그랬어요. 예식손님 받으면 고급요리는 안 팔려. 예식에 재미 붙이면 마진은 좋지만, 그래서 사장은 돈 많이 벌지 몰라도 주방장은 재미없는 거야. 어떻게 해서든 짜장면 몇 천 그릇, 탕수육 몇 백 개 팔면 되잖아? 굳이 비싼 재료 사다가 마진도 없는 거 할 필요가 뭐 있냐는 식인 거지. 그러니 탕수육, 짬뽕만 하는 거야.

 

: 그때는 결혼식한 다음에 중국집에서 피로연 같은 거 많이 했나보죠?

 

: 많이 했어요. 옛날엔 중국집에서 많이 했어요. 몇 사람이 앉아서 짬뽕 몇 개, 탕수육 하나 시켜놓고…. 그 대신 나머진 다 집에서 싸 왔어요. 잡채니, 떡이니…. 자리만 빌려 주는 거지. 손님 많이 받는 집은 30분마다 한 팀이야. 동천홍도 결혼손님 안 받는 줄 알고 가서 요리 해줬는데…. 사장이야, 돈만 벌면 되는 거니까. 아무튼 그래서 내가 나중에 열빈(悅賓) 간 거요.

 

: 열빈엔 어떻게 가시게 되었어요?

 

: 옛날 대관원에서 일할 때 친구 하나 있었어. 동료지. 걔는 칼판부대에서 일하는 애야. 전화가 온 거야. 서울로 오라고. 그래서 간 곳이 열빈이야. 조리장으로. 직책은 뭐냐면 부주방장 겸 조리장이야. 친구는 칼판장. 주방장은 장씨였어. 그 양반 술 참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 그 양반 사십 중반쯤 되었는데…. 아무튼 호인이야. 술 좋아하고. 소주 열병 먹고 일을 하는 그런 양반이야. 난 그때만 해도 술 먹을 줄 몰랐어. 그때 내 나이가 스물세 살이요. “나이가 몇 살이냐?” “스물여덟입니다.” 또 올린 거야. 친구는 알지. 하여튼 그렇게 하래. 그랬는데 그것 때문에 나중에 애를 좀 먹었어요. 여기는 회사 체제니까 골치 아픈 거야. 6개월 일하고 할 수 없이 사장한테 가서 고백했지. 스물세 살이라고. 사실 나이라고 하는 건 이렇습니다. 나이가 너무 어리면 일할 때, 밑에 사람 통솔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이해해주십사 했더니, 사장이 이해한대. 그러면서 그래, 나보고. “인마, 사실 너 영창감이야. 서류 위조한 거야.” 그 사람, 참 재미있는 분이었어요. 초창기였지만 열빈은 정말 제대로 된 회사 체제였어요. 여의도 열빈, 신동양, 홍보석 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거요. 다 유명한 집이지. 열빈도 서울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어, 요릿집으로. 내 자랑이지만 스물세 살,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했어. 나이는 어렸지만, 난 남보다 참 빨랐어.

 

: 열빈에는 오래 계셨어요?

 

: 열빈에서는 좀 오래 있었던 편이지. 그 장 주방장 밑에서 한 2년인가 있었는데…. 그런데 그때, 남상해씨라는 분이 남산에 다리원이라는 중국집을 하나 새로 오픈한 거야. 남상해 씨라는 분, 지금 하림각 회장이잖아. 그 분이 그때 다리원 만들 때, 그러더라고. “야, 덕준아. 나 따라서 남산 가자.” 남산 다리원에 가자는 거야. 남상해씨도 날 인정한 거지. 그때 장 주방장은 남씨 따라 간다고 했어. 칼판장도 남산 다리원으로 가기로 했어. 근데 열빈 사장은 나를 더 잘 봤다고. 그 사장님, 사람 참 멋있더라고. 그 사람 눈치 채고 있었던 것 같아. 하루는 “덕준아. 오늘 저녁에 밥 먹지 말고 기다려. 내가 밥 사줄게. 할 얘기도 있고.” “그럽시다.” 저녁에 끝나니까 밥 사주면서 그래. “너, 남사장 안 따라 가냐?” “남사장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같이 남산 가자고.” “그래? 넌 뭐라 그랬어?” “생각해본다고 그랬죠.” “그러지 말고, 월급 맞춰주마. 너 가지마.” 그때 내가 60만원인가, 70만원 받을 때인가? 더블을 주겠다는 거야. 그때 140만원이면 정말 큰돈이었어. 그 사람, 경상도 대구 사람이야. 나보고 “넌 내가 보기에 착실하고 젊고, 여기서 한 2년 일했으니까, 주방장 맡아줘.” 그때 열빈 주방에 요리사만 스물일곱 명인가 있었어. 홀 웨이터 직원도 한 60명 정도 됐고. 그때 내가 스물다섯인가 그랬어. 근데 졸지에 대 열빈 주방장이 된 거야. 장사 잘 됐어. 월 매출이 한 달에 거의 12천인가, 13천인가 그랬거든.

 

: 그때가 벌써 30년 전인데?

 

: 30년 넘었지. 31년 됐지. 사품냉채, 유산슬, 왕새우 요리가 4천원 받았어. 하루 평균매출이 한 3,4백만원 팔았을 거야. 일반 짜장은 없고 삼선짜장이 아마 600원인가 받았을 거야. 거기 내가 있었던 거야. 내가 열빈 주방장 할 때는…. 내가 좀 엄했어요. 내가 어렵게 배워서 그런지. 내 밑에 있는 사람들, 아주 좀…좀 그랬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이도 어린놈이 그렇게라도 해야 주방장 역할 할 수 있다.’ 그런 생각 들어서 그렇게 했는데. 결론은 뭐냐? 그때 당시 중국집에 인력이 그렇게 많이 남아돌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남대문 인력시장 가서 사람들 데려왔어요. 면 뽑는 애들, 잡일하는 애들…. 이것들 싹 다 문신들이에요. 식당 출신들 그런 거 좀 있어요. 다들 젊을 때니까. 이것들 하도 심심하면 “어이, 주방장 이거 한번 할래?” 팔씨름. 이 지랄들 하는 거야. 다들 건달 기질 있어. “그래? 너 좀만 기다려.” 사실, 혼자는 안 되거든. 젊었을 때 나도 한 가닥 했지만. 내 친구 칼판장 있잖아? “야, 이 새끼들 좀 꺼칠꺼칠한데?” “알았어.” 그리고 둘이서 반쯤 죽여 놓지. 패버리는 거야. 사전에 우리가 사장한테 가서 그거 다 얘기해. “사실 일하는 놈들, 남대문 시장에서 데려온 사람들, 아시다시피 다 건달 새끼들입니다. 심심하면 집적거리는데 대신 사장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내가 패버릴 테니까 나머지는 사장이 책임지세요.” “알았다. 그 대신 너희나 맞지 마라.” 젊었을 때, 참 배짱도 좋았어. 그런 방법도 썼고, 하하! 물론 이유 없이 사람 패지는 않죠. “어이, 주방장 팔씨름 한번 해볼래?” 맞먹어. 이거 해서 지면 어떡할 거야, 안 그래? 그러니까 할 수 없이 패버려. 그런 새끼들 수그러들 땐 잘 수그러들어. 코피 터지잖아? 화장실 가서 씻겨줘. 앞치마로 얼굴 닦아줘. “야, 내려와. 일층 가면 슈퍼 있어.” 술도 많이 먹을 때야. 삼바 25, 캡틴 Q, 이런 거 있어그것도 양주라고…. 안주는 알사탕 하나씩 입에다 물어줘. “야, 이거 안주다.” 종이컵에다 삼바 25시 한잔씩. 소주병으로 하면 그게 4홉이야. “마셔, 인마! 남자새끼, 그거 맞았다고 울긴 왜 울어. 마셔.” 한두 잔씩 먹으면 한 병 금방이야. “야, 그만 먹자. 올라가서 일하자.” “나, 그만 둘래요.” “그래? 한 번 더 올라갈까?” “예, 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 인력시장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인들일 거 아니에요?

 

: 한국 애들 데려오는 거지. 물론, 화교 놈들도 있고. 암튼 그땐 아주 소문났었어. 열빈 주방장 손덕준이 아주 독종이라고. 저 새끼 아주 젊은 놈인데 아주 성질 더럽고 잘못하면 줘 팬다 이거야, 사람을. 근데 그 사장도 재미있었어. 이미 돌아가셨는데…. 나보고, “덕준아, 이거 할 때 조심해라.” “왜요?” 그러면, “괜히 말이야. 이빨 하나 얼마인지 알아? 이빨 같은 데 까면 안 된다.” 연말이면, 우리 하루에 1,200만원도 판 적 있어. 그때 장사 된 이유가 뭐냐면, 그… 정치, 국회의원 선거할 때 되면 여의도 정치인들 딱지를 돌렸어. 한 장에 5만원이야. 종이딱지. 코스요리가 제일 싼 거 오만원이야, 코스 요리 한상에. 제일 비싼 게 12만원이야, 코스요리가. 선거할 때 되면 아주 정신이 없어. 내가 볼 때, 다 공짜로 먹는 것 같아. 정말 젊어서 한창 일을 할 때는 진짜 일 열심히 잘했어요. 그 사람한테 정말 돈 많이 벌어줬다고, 젊었을 때. 심심하면 데리고 가서 양주 사 먹이고. 나보고 그래. “덕준아, 네 월급 정말 많은 거다.” 그 경상도 사람, 참…하하! 그럼 그러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요? 우리는 이거 특수 직종이에요.” 월급 올려달라고 하면 꼭 그런 소리했다고. “사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월급 좀 올려주면 원래 프라이팬 세 번 흔들 거, 월급 안올려주면 두 번 밖에 안 흔드는 법이에요. 그걸 아셔야죠.” “알았다, 알았어.”… 그때 열빈 다닐 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 그럼, 그 후에도 열빈에 죽 계셨어요?

 

: 내가 열빈을 두 번 그만두고 세 번 들어갔어요. 첫 번째 그만 둘 때는, 내가 대우빌딩 가서 주방장을 했나? 아니, 프라자호텔에 스카우트 되어서 갔어. , 시청 근처 프라자호텔. 스카우트 돼서 갔어요. 왜 거기로 갔냐면…. 한마디로 그때 당시에는 요리사로 호텔에 들어간다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야. 그런데 그것도 프라자호텔에서 직접 조리부장 통해서 나를…. 그때 왜냐면 열빈이 장사도 잘 되고 음식도 소문났어요. 맛있었다고, 열빈이. 스카우트 되어가지고 갔지만, 그리 오래는 하지 않았어요. 내가 프라자 호텔에 있을 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 내가 한번은 청와대 출장담당을 한 적이 있어. 미국대사관, 국무총리실 출장은 다 내가 담당했어요. 청와대 가서 요리하다 귀싸대기 맞은 것도 나야.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어. 프라자 호텔 26층이 내 담당이야. 파티 같은 거. 호텔은 출장 파트가 있어요. 그래서 국무총리실, 미국대사관 출장 잘 다녔어요. 프라자호텔에서는 주방장 아니었어요. 그냥 A급 요리사지. 하루는 주방장이 나보고, “덕준아, 청와대 네가 가라. 네가 담당해라.” 전날에 이미 출장 재료가 냉장고에 따로 보관되어 있어. 아예 종이로 봉인을 해 놓았어. 청와대에서 직접 자기네들이 나와서 봉인해요. 출장담당하려면 한 달 전에 미리 명단을 올려요. 난 내 이름이 올라간 것도 몰랐어. 내가 주안 삼보주택 전세 살 때였는데, 우리 어머니가 그러는 거야. 동네사람들이 저 집 아들 사고를 쳤나 보다고. 경찰들이 조사를 나왔더래. 그게 그러니까 신원 조회한 거지. 그때 처음 청와대 갔었어. 봉고차를 탔는데 커튼을 다 내리더라고. 가니까 주방 시스템이 다 되어 있어. 여섯시에 식사인데 세시에 도착했어. 더럽게 엄하더라고. 함부로 못해요. 가서 앉을 자리도 없어. 그냥 내동 서 있는 거야. 냉장고도 함부로 못 열게 해. 시간 되면 그 사람들이 시켜. 그대로 해야 돼. 요리를 시식하는 놈도 있어. 숟가락, 젓가락, 식기, 다 은이야. 시간되니까 시작하래. 음식 만들 때 좀 덜어서 시식하게 달라는 거야. 시식하고 3분 후에 음식이 나간다고. 그러냐고, 알았다고 했지. 전복 요리하면서 시식용으로 일인분 더 만들었어. 근데 이상하게 긴장이 되더라고. 잘못해서 전복 하나 밖으로 흘렸어. 난 가게 주방에서 하던 습관대로 도로 집어넣었지. 그러니까 뒤에서 바로 한방 날라 오는 거야. 불이 번쩍하더라고. 이게 누구 드시는 음식인데 그렇게 하냐는 거야. 한 대 얻어맞았지만 누구한테 하소연해? 그냥 “죄송합니다.” 그랬지. 당장 그 요리 빼래. 하나도 쓰지 말라는 거야. 겨우 겨우 나머지 요리 다 끝내고 생각해 보니까, 정말 열 받는 거야. 배도 고프고…. 나중에 식사 끝나니까, 아까 그 사람 나한테 와서, “거, 아까 그 요리 남은 거 우리한테 주세요. 우리가 먹겠습니다.” 아까하고는 다르게 친근하게 하더라고. “약주 하시죠? 아까는 미안했습니다. 제가 우리 청와대에서 담근 동동주 한 병 드릴게요. 차 올라타면 드세요. 여기서 드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청와대 각성냥 열 개 딱 주더라고. 속으로 그랬지. ‘성냥은 왜 주는 거야.’ 하여튼 주는 거니까 그냥 받았지. 차에 타니까, 빈속에 열 받지, 짜증나지. 동동주 까서 나발 불었어. 근데 그렇게 독한지 몰랐어. 가게 도착하니까, 기사가 우리 내려주는데 난 집에도 못가고 그냥 취해서 여관방에서 잤다니까. 다음날 성냥 받은 거 주방장한테 주면서 이러이러해서 귀싸대기 맞았다고 그랬지. 그리고 다시는 거기 안 간다고 했어.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 청와대, 국무총리실, 미국대사관 다 다녔어. 미국대사관 가면 제일 좋았어. 팁도 주고 양주도 한 병씩 주고 그래. 내가 열빈에 있을 때에도 군부대로 출장요리 간 적 있었어. 삼군사령부, 육군 본부, 포천에 있는 25사단, 1사단. 출장요리 안 다닌 데 없어. 팁은 정해져 있어. 5만원. 지금으로 따지면 50만 원 정도 되는 거야. 또 부대 가면 면세니까 물건 값이 싸잖아. 베리나인골드 한 박스 샀어, 면세로. 어떨 땐, 내가 그래. 5만원 주지 말고 대신 양주 한 박스 달라고. 포천에 출장 갈 땐, 따로 전화가 와. “어이, 손 주방장. 이번엔 맛있는 거 따로 가져와.” 알았다고. “뭐, 그게 내 거야?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거지, . 해삼, 전복 따로 해서 50인분 시키면 20인분 따로 해줘. 자기도 기분 좋으니까 베리나인골드 두 박스 그냥 줘. 내가 열빈 있을 때에는 사단장, 부사단장이 직접 반달곰 잡아서 곰발바닥 잘라가지고 와서 요리 해 달래. 앞발, 뒷발 다 해서 네 개야. 제일 비싼 거 뭔지 알아? 왼쪽이야. 원래 반달곰이 왼손잡이거든. 그땐 다 그랬어. 포천 사단에 가면, 여의도에서 두 시간 걸려. 별 한 번 뜨면 수십 개 떠. 또 재미있는 거 하나 있어. 돈 있는 재벌 집 가면 일식, 양식, 중식, 한식 다 같이 가. 3백 명 모이는 파티야. 재벌 회장집이야. 누군지는 나도 모르지만, 일단 가면 수영장에 아이스 얼음 맥주, 소주 죽 떠 있어. 일하는 식모도 여럿 있어. 여름에 파티 끝나면, 자기네들 처치하기 싫으니까 우리보고 다 가져가래. 그러면 출장 박스에 술 한가득 담아오는 거지. 부잣집 식모도 부자인가 봐. 하하! 가면, 자기네들도 파티 열지만, 우리도 파티 여는 거야. 군부대 가잖아? 우린 사단장 밥 해주지만, 졸병들, 그 식사 만드는 취사병들은 우리 밥 해줘. 출장 가기 전에 항상 미리 졸병들 줄 담배 한 보루 사가. 너 밥 맛있게 해, 그거지.

 

: 재미있네요.

 

: 가끔 파티가 늦게 끝날 때도 있어. 그때 당시는 통행금지 있었어. 시간이 넘으면 손에 도장 찍어주는 거 있어. 그것만 있으면 파출소 어디 가도 무사통과야. 그거 닦지 않고 다음날 또 써 먹어. 그때 당시는 젊었을 때이니까. 참 재미있었어. 지금은 기력도 없지만…. 출장가면서 가끔 재료 빠뜨릴 때도 있어. 당시 어느 부대 사단장이 제일 좋아하는 게 덩어리 삭스핀이야. 근데 깜박 잊어버렸어. 난리 나는 거지. 여섯시 반에 파티인데 벌써 네 시야. 큰일 났어. 삭스핀 없어. 그 양반 그거 없으면 안 되는데. 다시 가서 가져와야지 뭐. 차로 왔다갔다 왕복하는데 두 시간 반, 늦으면 세 시간 걸려. 그럼, 어떻게 해? 방법 하나 있어. 졸병 데려와. “너희 둘, 열빈 갔다 와. 두 시간 넘으면 안 돼. 이거 명령이야.” “예, 알았습니다.” 비상라이트 켜고 죽 달리는 거야. 겨우겨우 먼지투성이로 부대에 도착했는데 10분쯤 늦었다. 그러면 “이 새끼들, 명령을 어겨?” 야단치고. 그때 난 우리 와이프하고 연애할 때야. 여의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봉고차로 가면 늦어. 지프차 하나 보내줘. 비상라이트 켜고 에―앵 하면서…. 하여튼 재미있었어.

 

: 그럼, 열빈에 계시다가 프라자호텔 잠깐 계셨고. 다시 열빈으로 돌아가셨어요?

 

: 내가 열빈 그만뒀잖아요? 그리고 내가 프라자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람 운이란 게 그런가봐. 내가 그만 두고 그때서부터 열빈 장사가 푹 떨어지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열빈이. 매출이 한 절반 뚝 떨어지는 거야. 매상이 확 떨어지는 거지. 사장이 총지배인 시켜서 나한테 전화했어. “덕준아, 너 오늘 여의도 좀 와라.” 난 아무것도 몰랐어. “왜 그러시는데요?” “룸살롱 가서 술 한 잔 살게, .” “그럽시다.” 술 한참 먹을 때니까. 술 한참 먹고 노래 부르고 있는데, 열빈 사장이 딱 들어와. “손덕준, 야 인마! 이 삼천만에 의리 없는 놈아!” “사장님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기는 인마! 너 어떻게 그렇게 의리도 없어? 네 아버지 돌아가실 때, 나 인천까지 갔다 온 사람이야. 근데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열빈에서 그만둘 때, 그 양반 나한테 한 얘기 있어, 프라자호텔 간다니까. 프라자호텔, 그때 당시 최고였어. 월급도 더 올려준다는 거 싫다고 그랬거든. “손덕준, 네가 마음에 든다. 너 거기 가는 거, 내가 더 이상 못 말리니까 가라.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마. 너 언제든지 여기 위생복 다시 입는 날이면 주방장 있든지 없든지 그날부로 너 주방장 시켜준다.” 나한테 그런 약속을 했었어. 나를 잘 본 거지. 열빈 있는 기간, 다 합치면 10년 가까이 되는데, 얘기하면 엄청 많아요. 간단하게 한 가지 추려서 얘기하면… 하루는 학생이 하나가 열빈에 왔어. 한국 대학 졸업하고 얼마 있으면 미국인지 어딘지 유학 간다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중국요리에 대해서 좀 관심이 많았나봐. 여의도에 사는 친구야. 하루는 지배인인 나를 불러. 젊은 친구인데 돈 좀 있는 집안 자식 같대. 주방장 좀 만나고 싶다고. “나를 왜 만나?” 열빈 단골손님이래. 그래 알았다고.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열빈 요리 먹었다 이거야. 근데 궁금하대. 중국요리가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지. 그 학생, 중국요리 관심 있었어. 그래 그랬지. 그건 한이 없다고. 북경요리도 있고, 사천요리도 있고, 절강요리도 있고, 산동요리, 광동요리도 있는데 가지 수는 누구라도 말할 수 없다. 다만, 현재 메뉴판에 있는 건 한 200가지 정도 되고,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는 대충 900가지 정도 된다. 부탁 하나 해도 되냐고.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먹고 싶다고. 매일 올 테니 하루에 요리 세 가지만 해 달래. 그때 당시는 속으로 그랬지. 젊은 놈이 하루 세 가지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느냐고. 근데 요리는 재료에 따라 다른 거야. 물론, 재료값이 비싼 요리도 있지만, 기술 값이 비싼 요리도 있어. 그건 인정해야 한다, 그랬지.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루는 나를 다시 찾더라고. “주방장님, 감사합니다. 약소합니다만 제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오. 나이 어린놈이 건방지다고 생각마시고.” 그러면서 수표 한 장을 내밀더라고. “ 저를 위해 신경 써주신데 대한 감사표시입니다. 저 내일 유학 갑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약주 한 잔 사 드시라고. 나도 하도 고맙기도 하고 해서, 그럼 오늘 마지막 요리니까 내가 서비스하겠다고 했지. 무엇으로 해줄 거냐고 묻기에, 통닭에다가 계란 삶은 거 양 날개에 끼우고, 조그만 완자를 그 안에 채운 거라고 했지. 이 요리 이름이 뭐냐고 물어. 그 친구, 항상 요리에 대해 적어갔대. 그래 내가 그랬지. 닭은 원래 잘 가라는 뜻인데 양쪽에 끼운 계란은 좋은 일 많이 하고 잘 다녀오라는 뜻이라고. 사실, 이건 내가 개발한 거야. 사실, 자칭 요리 연구가들 많잖아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옛날 스타일, 요릿집 스타일, 호텔 스타일 다 해본 사람들이야. 가지 수도 많고 창의적인 부분도 있어야 하고…. 나도 마음먹었으면 큰 호텔 조리부장도 할 수 있었어요. 근데 우리 같은 사람들 항상 두려운 게 있어. 그건 못 배웠다는 거야. 배우지 못한 주방장들, 공부 좀 하고 영어 좀 할 줄 아는 애들 비서로 써. 돈 많이 주고. 하지만 요즘은 학벌 주방장이야. 시대가 바뀌었어. 다들 전문대 조리학과 나오고, 영어도 하는…. 다 학벌 주방장이야. 일류 대학 호텔경영학과 나와야 하는 거야. 나도 공부 좀 했으면 호텔 조리부장 했을 거야.

 

: 그럼, 다시 열빈으로 가셨어요?

 

: 그렇지. 열빈 지배인이 그러는 거야. “야, 손덕준. 말해. 얼마를 원해?” 내가 얼마 달라면 얼마 준대. 그때 당시만 해도 아마 대한민국 주방장 중엔 월급을 제일 많이 받았을 거예요. 그때 당시 보통 일반 사람들 월급이 한 이십 몇 만 원 할 때야. 옛날에 열빈 있을 때, 내가 140만원을 받았잖아? 그래 내가 그랬어. 월급 얘기는 하지 말라고. 옛날 그대로 주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솔직히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도 그때 돈이 필요할 때야. 한 푼이라도 더 받으면 나도 좋지.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한텐 다 은인이야. 내가 다시 열빈 오니까 이상하게 장사가 잘 돼. 그때 사실 월급 180만원 받았어. 사실 그랬으니까 지금 대만 가 있는 우리 여동생들 가르치고 했지. 그냥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그때 당시 돈 좀 벌었을 거야. 근데 난 다시 인천 내려와서 주안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내 장사 해보겠다고. 내가 말 안 해서 그렇지, 배달하는 장사도 중간 중간에 몇 번 했어. 그러다가 결국은 또 열빈에 끌려가고 했지. , 근데 우리 사부님, 그 열빈 장 사부님한테 술 배운 얘기 했나?

 

: 안 하셨어요.

 

: 그 양반 지금 치매 걸렸어. 치매 걸린 사람 내가 가보면 뭐해?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그 양반 술 먹었다 하면 삼일 밤낮 안 가리고 먹어. 그 양반이 날 술 가르친 장본인이야. 내가 전철 개통되면서 타고 다닌 사람인데, 대방역에서 내려서 여의도까지 걸어가요. 아침에 열빈에 도착하면, 열빈 지하에 가면 다방 있어. 그 양반이 그래. 커피 한 잔 하러가자고. 말이 커피지. 다방에 가면 위스키 더블, 위스키 팔았어요. 국산지 양주, 도라지 양주인가 있어. 거기에다가 설탕물 한 잔 타. 마담이, “야, 아가야. 두잔 줘.” 위스키 한 잔씩 마셔. “두 잔 더 줘.” 그렇게 한 잔씩 더 마셔. 그러면, “야, 올라가서 일하자.” 열한시 반에 올라가. 준비는 밑에 애들이 하는 거야. “야, 장사 준비 빨리 해. 바빠!” 그렇게 두어 시간 땀 뻘뻘 흘리고 나면 아침에 위스키 먹은 거 다 깨지. 그럼, 또 다방 내려가는 거야. 아니면 일층 슈퍼 가 가지고 네 살짜리 하나 하지, . 네 살짜리가 뭐냐 하면 삼바 25, 캡틴 Q. 그게 소주 4홉만 하거든그렇게 술 배웠다니까. 알사탕하고. 캡틴 Q 한 병씩 먹어. 난 이상하게 알사탕 안주 하면 안 취해. 딱 올라가면 여섯시야. 다방은 현찰 준 적 없어. 외상 걸어놔. 누가 계산하느냐 하면 재료상들이야. 재료상들이 한 번씩 오면, “아, 주방장님. 커피 한 잔 하러 가시지요? 제가 쏠게요.” 재료상이 물건 팔아먹으려고 온 건데, 주방장한테 커피 사라고 하겠어? “사장님, 제가 낼게요.” “아, 많이 나올 텐데.” “뭐가 많아요? 얼마요?” 그럼, 다방 아가씨들 미리 다 알아. 마담이 위스키 장부 다 꺼내놔. “아, 그래서 내가 내지 말랬잖아?” “아, 아니에요. 됐어요, 됐습니다.” 그렇게 내고 간다고. 나도 그 양반한테 많이 배웠어, 그런 걸! 하하! 나도 나쁜 짓 많이 했지. 그러면, 이제 외상값 다 냈잖아? 그럼 다시 아가씨들 앉혀. 한 잔씩 더 해. 나중에 세시 정도 바쁜 거 다 끝나고 또 내려가. 아가씨들은 마담 눈치 보고 매상 올려야 하니까 막 권하지. 그러다보면 여섯시에 저녁 장사 준비해야 하는데… 한잔 두잔 그렇게 먹다가 의자에서 푹 떨어져. 그날 다방 문 닫아야 해. 장사 다 한 거지. 또 하나 얘기해 줄까? 시장은 남대문시장에 가. 갈 때 일부러 빵구 난 신발 신고 가. 야채 발로 차면서 이거 얼마야? 눈치 있는 사장, 다 알아. “주방장님, 왜 떨어진 신발 신고 오셨어요?” “살 돈이 있어야지.” 이게 뭐냐면 일종의 수금이야. 주방장한테는 재료 팔아주면 술값 좀 들어와. 삼년만 고기 팔아주면 아파트 하나 산다고 했어. 좋았어. 하하! 그 주방장 노인네, 점심 때 밥 먹고 아홉시에 저녁 먹어. 가게에서 요리하면 술 써야 하잖아? 하루 두병씩 나와. 그럼, 내 앞으로 하나, 자기 앞으로 하나. 일하면서 그 한 병 다 먹어. 그럼 막상 요리할 때 없잖아? 그럼, 간장 몇 방울 떨어뜨리고 물 채워. 요리할 때, 그걸 써. 술은 자기들이 다 먹고. 퇴근하면, 노인네가 그래. “대방동 가서 한잔 더 해야지?” 포장마차 있어, 대방동에. 칼판장 몇 명 데려가요. 낮에 남대문시장 가서 돈 좀 걷었으니까 그걸로 먹어. 포장마차에서 소주 먹는데, 테이블에 소주병이 하나 가득이야. 못 치우게 해. 테이블에 꽉 차면 가야 된다는 거야. 날마다 새벽 두세 시에 집에 들어가는 거지. 대방동에서 한 정거장 오면 영등포야. 거기서 총알택시 타는 거야. 2,500, 3,000원이면 인천 왔어. 나중엔 총알택시 기사들 중에 나 모르는 사람 없었어. 총알택시 있잖아? 한 사람만 타면 안 가. 꽉 채워야 가지. 어디라고 안 해도 송월아파트 앞에 딱 내려줘. 그때 내가 송월아파트 살았거든.

 

: 열빈에 두 번째로 가셨다가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어요?

 

: , 그 얘기는 빠뜨려 먹었는데, 첫 번째 그만 두고 다시 두 번째 그만 둘 때에는 만다라에 들어갔어요. 대우빌딩 지하에 있는. 이건 설악개발주식회사라고 대우 소속이야. 대우 있을 때는 과장 대우였지. 내가 거기서 한 2년쯤 있을 땐데 그때부터 거기는 2부제를 했어요. 비오는 날이면 그날 아주 힘들어서 죽는 날이야. 대우빌딩 상주인구가 얼마인지 알아? 수천 명이야. 하지만 대우 직영이니까 조건은 아주 좋았어요. 8시간 근무하는 거요. 요리사도 2부제였거든. 내가 총 조리과장을 했지. 설악개발까지 포함해서.

 

: 그곳은 누구 소개로 가신 거예요?

 

: 옛날 거기 총지배인이 잘 아는 사람이야. 내가 열빈에 있을 때, 장사 잘 될 때 소문이 났었나봐. 제 자랑 같지만 서로 데려가려고 스카우트 경쟁하고 그랬어요. 내 짧은 생각엔, 거기는 정식 대우 가족이에요. 애들도 생기고 그러니까 회사 들어가는 게 훨씬 안정적이고 나을 것 같았어. 다 보장이 되잖아요.

 

: 그렇죠. 학자금도 나올 테고.

 

: 그렇죠. 학자금 다 나오고. 대우 김우중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요리 뭔지 알아요? 난자완스야. 또 왕만두 좋아했어요. 열빈에도 난자완스 먹으러 오고했어요. 내가 대우빌딩 있을 때 왕만두를 팔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 만다라 오면 그날 점심에 손님 개미 한 마리 없어.

 

: 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 거군요?

 

: 사장이고 뭐고 다…. 대우 직영이니까 회장님 회사 안에서 먹는다고 하면 일반 손님 일절 안 받아. 기본 메뉴가 난자완스, 왕만두. 전복은 요리할 때, 옆에 지느러미 다 잘라내야 돼. 그걸 안 먹거든.

 

: 대우 만다라에서는 대우가 어떠셨어요?

 

: 스카우트 되어서 갔지만 만다라에서는 열빈만큼은 못 받았어. 당시는 만홍(萬紅, 손덕준의 장녀)하고 만평(萬平, 차녀)이 벌써 태어났을 때야. 내가 못 배웠으니 이놈들은 잘 좀 키워야지. 그게 내 생각이었어. 그래서 대우 가족으로 들어간 거야. 2년 있었어. 원래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하는 거야. 밥도 주방에서 못 먹게 해. 빌딩 안에 구내식당 있어. 식권 따로 나와. 완전 회사 체제죠. 보너스는 4백이었던가? 그렇게 되고. 힘들게 일하던 사람이 회사 체제 들어가니 외려 안 맞아. 11시에 출근했다 좀 있으면 점심시간이야. 1시간만 바쁜 거야. 내가 뭔 일을 해? 할 일 없어. 일하는 애들도 많아. 사무실 하나에 비서 하나 있어. 그게 오히려 사람 못할 짓이야. 고생하던 놈은 팔자가 너무 편해도 안 돼. 인천역에서 전철만 타면 빌딩 지하실로 바로 들어가. 전철 통로로 해서. 어떤 줄 알아? 편하면 편할수록 사람은 더 편해지려고만 하는 거야. 어떤 때는 출근도장만 딱 찍고 다시 전철 타고 돌아와. 낚싯대 준비해서 하인천으로 망둥이 낚시 하러 가. 있잖아? 만석동. 집에 와서 망둥이 회쳐서 소주 한잔 해. 친구들은 다 일하는데 나 혼자 편하니까 그거 재미없는 거야. 나한텐 안 맞아, 그게. 거기가 회사 체제니까 날마다 프로테이지 따져서 장부에 재료 들어온 거 기입하고…. 난 영어도 할 줄 모르잖아? 정말 귀찮아서 못해 먹겠더라고. 그런 찰나에 옛날 열빈에 있을 때부터 단골 한 분 계세요. 신성건설 회장이 바로 그 열빈 단골손님이었어. 나도 처음엔 잘 모르던 분인데…. 뚱뚱하신 분인데…. 그 분이 어떻게 수소문해서 날 스카우트 했어. 그때 막 인천에 신성쇼핑 지었을 때거든. 원래 신성건설 계획은 호텔 지으려고 했던 건데, 하도 주먹 쓰는 것들이 이권 가지고 다투니까 쇼핑센터로 바꾼 거래. 어느 날 신성건설 인사과 직원이 날 찾아왔어. 자기네 사장이 날 잘 안다고. 여의도 열빈에 수년 동안 단골이었는데 음식 참 맛있다 하더라고. 신성쇼핑 5층이 식당가인데 조리부장으로 모시고 싶다고. 부장 대우래. 그래 내 그랬지. “인천이고 하니까 오픈할 때 한 번 가 볼게요.” 며칠 후에 쇼핑센터 가 봤지. 그런데 그렇게 안 큰 거야. 인사과 들어가서 내가 그랬어. “이게 규모가 너무 작아서 내가 있을 데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딴 사람 소개해 줄게요.” 그러니까 그 직원이 이게 규모는 작아도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다 있대. “이거 다 관리하시는 거예요.” 보수는 원하시는 대로 다 드릴 테니, 면접 한 번 하시라는 거야. , 참 신기하게 오히려 나한테 매달리는 거야.

 

: 그러니까 식당가를 경영하시는 거네요?

 

: 그런 셈이야. 일단 좋다. 그리고 며칠 후에 만나기로 했지. 형식은 갖추어야 하니까 면접 날짜를 잡은 거야. 그 사장 뚱뚱해. 완전히 미식가야. 먹는 거 좋아하게 생겼어. 술도 좋아할 것 같고. 토끼띠야, 그 양반이. 쇼핑센터 마크도 토끼야. 만나니까 나를 보고 그냥 웃기만 하더라고. “당신 열빈 주방장 오래 하셨네. 나 거기 단골이라고. 혹시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가다 잡탕밥 시키면서 꼭 밥을 볶아달라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그게 나야.” 그러더라고. 나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아. 원래 잡탕밥은 맨밥으로 하는 건데, 어떤 손님이 꼭 잡탕밥 시키면서 볶음밥으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것 같아. 나도 기억나. 맞아. “중식당은 내가 기술 좀 가지고 있지만, 일식하고 한식은 제가 잘 모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 사장 하는 말이, 앞으로 자기네는 이걸 발판으로 외식산업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만 보지 말고 멀리 보라고. 인사과에 다 지시해 놓았으니 아마 불편한 게 없을 거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한 가지 물어봅시다. 술 주량이 어떻게 되요?” 재미있는 분이야. “많이는 못 먹고요. 소주 세병 먹으면 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랬더니 “나하고 비슷하군.” 참 털털하고 사람 좋더라고. “인사과에 말해놓을 테니까 될 수 있으면 우리 회사 오셔.” 만다라는 근무시간이 8시간이고, 부장 대우였고 무엇보다 대우 가족이었다. 보수는 얼마였고 보너스는 400%였다. 그러니까 같은 대우 해준다면, 또 집이 인천이니까 올 수 있다. 그럼, 맞춰보겠대.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일하는 사람 다 나보고 뽑으래. 그래서 보수만 맞으면 내가 알아서 채우겠다, 했지. 오픈 전인데도 월급 주고 사무실 책상까지 내주더라고. 출근 하시라고. 그래서 내가 오픈해 줬지.

 

: 만다라에 얼마쯤 계시다가 옮기시게 된 거에요?

 

: 1년 넘었을 거야. 어차피 신성도 회사 체제고 외국에 외식산업 진출한다니까 전망도 좋을 것 같고….

 

: 정식으로 신성 사원이 되신 거네요?

 

: 사실 정식으로 계약하면 정식 직원이고 부장 대우가 되는 거야. 근데 정식으로 계약 하자는 거, 나 안했어요. 사실, 신성이 장사가 별로였어. 일식, 한식, 내가 주방장 다 심어줬는데 이상하게 장사가 안 돼. 지금이야 쇼핑센터 식당가, 많이 세련되어 있잖아요? 근데 그때는 일반 사람들 잘 몰라. 인식이 안 되어 있어. 1년쯤 지났을까? 사장이 간부직, 이사, 과장들 다 모아놓고 회식을 시켜주더라고, 일식집에서. 사장이 일일이 술 따라주더라고. 그 양반 술 참 좋아하시더라고. 그날 그 양반 직원들한테 업혀 갔어, 취해서. 난 그날부로 거기 관두었어.

 

: 왜요?

 

: 그날 술자리에서 다 모여 있는데 식당가 적자 얼마 봤냐고 묻는 거야. 정말 사람 김 팍 새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시 세 번째로 열빈 간 거야. 만약에 신성에서 잘 되었으면, 외식사업에 진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지. 근데 사실 쇼핑센터 자체가 장사가 별로였어. 분양받는 사람들 사장실 들이닥쳐서 항의하고 그랬어. 그렇지만 그 사장, 나하고 많이 친해졌어. 술도 자주 먹고 했으니까. 그 양반이 하루는 나한테 이러는 거야. 자기 빌딩이 역삼동에 있는데, 거기 앉아 있으면 인천 쪽으로는 오줌도 싸기 싫대. 하도 사람들이 욕을 하고 항의하고 그러니까. 마지막 날 술 한 잔 사주면서, 만리향, 거기 중국집 이름이 만리향이었어. 만리향 깨진 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참 괜찮은 분이야. 그래서 다시 열빈으로 갔다다 나중에 하림각으로 간 거야.

 

: 여기서 잠시 기록을 보면서 정리를 해볼게요. 사장님은 1956 1 29일에 출생하셨고, 1962 8월에 인천화교소학에 입학하셨고, 1969년에 인천화교중학을 중퇴하시면서 바로 사장님 아버님이 경영하셨던 송월반점에서 일을 하시게 된 거죠?

 

: 그렇죠.

 

: 그리고 1971년에 인천 송도에 있는 동태관에서 2년간 수타를 하셨고, 제주도에 아버지와 함께 잠시 계시다가 1972년에 서울 종로에 있는 대관원, 74년에 을지로에 있는 홍보석에 차례로 입사하셨고…. 여기까지 맞죠?

 

: .

 

: 홍보석 그만두시고 인천에 내려오셔서 1975년 동천홍 그리고 1978년에 평화각에서 일하셨고…. 그렇죠?

 

: 맞을 거예요.

 

: 그러다가 다시 1980년에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열빈으로 가셨고…. , 중간에 만홍이 낳던 해, 1984년에 드디어 정식으로 사모님과 결혼하셨고. 다시 1986년에 서울 프라자호텔 중식관 1급 요리사로 입사하셨다가 1988년에 두 번째로 열빈에 총주방장으로 들어가시고. 그리고 1991년에 대우 만다라에 스카우트 되어 가시고 1992년쯤에 신성쇼핑 만리향으로 옮기셨고, 다시 잠시 열빈에 계셨다가 마지막으로 하림각으로 가시게 된 거죠? 1993년에. 그런가요?

 

: 중간에 우리 만평이 태어나고, 1986년에. 그리고 우리 만승이 1988년에 태어났지. 지금 그 기억나요. 그리고 중간 중간에 내 장사도 몇 번 하고….

 

: 마지막으로 직장생활 하신 게 하림각이셨죠?

 

: . 지금 세검정에 있는 하림각, 그 터가 원래 돌산이에요. 청와대 앞에. 사실, 열빈에 있을 때 남상해씨가 나를 여러 번 오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난 차마 열빈을 못 떠났어, 의리 때문에. 그 남상해씨가 날 잘 본 거요. 요리사는 널렸지만, 손덕준이만큼 통솔력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야. 성깔도 있고 요리도 잘하고. 날 인정한 거요. 직원들은 내가 아침에 출근하면 아주 꼼짝 못했어. 나이 먹었든 안 먹었든 간에. 그렇게 했는데. 그래서 남상해씨가 나한테 엄청난 유혹을 했어요. 결국은 내가 마지막으로 갔지. 오래는 안 있었어요. 그럼, 왜 갔냐? 그때 열빈을 새로 맡게 된 사람이 전임 사장의 동서였는데, 그 사람하고 잘 안 맞았어. 젊은 사람인데 마지막 판에 몇 년 같이 있었는데 나하고 더럽게 안 맞았어. 차라리 원래 사장이 그대로 있었으면 내가 그렇게 떫지는 않았을 거야. 새로운 사람이 사장으로 오니까 내가 못마땅했어요. 잔소리도 하고. 자꾸 날 두고 나쁜 소리만 하고. 결론은 안 맞았던 거지. 그래서 내가 그만두고 하림각으로 오게 된 거지. 하림각은 직원이 한 100명 돼요. 프런트, 주방 다 합쳐서. 하림각은 장사 정말 잘 됐어요. 단체손님도 많고. 또 직원들이 하도 인원이 많다 보니까 나중에 노조 같은 거 생기고 그랬어. 막 데모하고. 그러면 한두 달 문을 닫고 그랬지. 원래 내가 가기 전에는 열빈에 있던 그 장 주방장 있잖아? 그 분이 거기 계셨는데, 그 분이 그걸 잘 못하셨던 같아. 통솔력이 부족했던 거지. 자꾸 데모하니까 그만 뒀어. 그래서 내가 하림각 갈 때, 그 양반 다시 열빈으로 간 거요. 그러니까 서로 맞바꾼 셈이지. 그 양반 주방장 생활, 거기서 마무리했어. 열빈에서 내가 키운 제자들, 지금도 열빈에서 일하고 있어. 주방장 하고 있어. 20년 넘었을 걸? 하여튼 그 장 주방장, 나하고 인연 많아. 그때는 그 양반하고 나하고 여의도에서 한창 주름잡을 때야. 국풍 81 알죠? 삼바 25, 그때 그 술 나왔어. , 그 술 생각나네. 나도 벌써 알코올중독 되었지만…. 안 먹으면 이상해. 나 옛날에 그 양반한테 술 배우면서 안 먹어본 술 없어. 완전히 알코올 쓰레기 되었다고. 진짜 쓰레기야. 먹고 취하면 돼. 그렇게 술 배웠어. 나 지금도 생각하면, 그 옛날 주방장 장씨 아저씨…. 이미 70이 넘었어. 참 나한테 잘해 주었는데…. 그 사람, 인복도 있었어. 그 양반도 어렸을 땐, 성깔도 좀 있고 그랬대. 그래서 그런 경험으로 나한테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보듬어주고 했는데…. 그렇게 좋은 사람 밑에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요. 사실, 나쁜 친구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 안 그래? 근데 다행히 그런 양반들 만나다 보니까….

 

: 하림각 계실 때 얘기도 간단하게 해주세요.

 

: 하림각에서 360 받았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월급이요. 경제적으로 참, 도움 많이 됐어. 근데 내가 왜 하림각에 오래 있지 않았냐 하면, 그때 옛날 대관원 사부님 있잖아? 그 아들이 하림각 구관에서 주방장을 하는 거야. 난 신관 주방장 하라고 해서 간 거야. 구관은 900평에 3층이고, 신관은 1,200평에 2층이요. 연말이 되면 예약손님 4천 명씩 받아. 연말에 하림각 하루 매출이 1억쯤 되었어요. 월 매출이 30억이야. 근데 요리계통엔 족보가 있어. 내가 하림각 가면서 내가 데리고 있던 애들 다 데려갔어. 군대나 마찬가지야. 걔들 다 내 밑에서 얻어터져 가면서, 내가 두드려 패가면서 가르치고 했던 애들이야. 다 형제나 마찬가지죠. 내가 원래 미워서 그렇게 했겠어? 다 훌륭한 요리사 만들려고…. 그런데 내가 가니까 원래 있던 애들이 하나둘씩 사표 쓰고 나가는 거야. ‘야, 손덕준이 왔다. , 이거는 옛날 장씨하고는 달라.’ 내 ‘곤조’를 아는 거지. 그렇게 한 놈씩 사표내고 나가더라고. 그때마다 내 애들로 채우고 했죠. 남상해 회장이 3년 계약하재. 안 했어. 월급 360만원만 달라고. 자동차 기름 값만 주고 월급 360만 다오. 이런 조건으로 들어갔어. 괜히 3년 계약하면 그건 문제가 있어요. 나는 자유인 되고 싶었어. 구관 주방장은 아까 말했지? 우리 사부님 큰아들이야. 아주 착했어요. 근데 내가 그 분 멤버들을 정리해버린 거야. “야, 더 그만 둘 사람 있어? , 갈 때 가더라도 나한테 시간을 달라. 그만 두어도 좋다. 다만 사람 쓸 시간은 달라.” 갈사람 다 갔어. 정리 싹 됐어. 하림각은 식당이 아니고 공장이라고 해야 돼. 냉동보관창고로 트럭이 들어가. 예를 들어, 한 테이블에 열 명씩 따져서 4천 명이면 4백 테이블이야. 냉채 하나 썰면 400개야. 하루에 코스요리 얼마나 나가는지 알아? 왜 매상이 1억이 되냐 하면, 코스요리 보통 2만원, 3만원이야. 난 원래 성격도 급하고 좀 팍팍해. 게다가 젊었으니까 일을 얼마나 열심히…. 회장이 그런 날 보고 마음에 딱 든 거요. “역시 손덕준이다. 대한민국 최고 요리사는 바로 나야. 두 번째는 너다.” 날 띄워주려고 하는 웃기는 소리지만. 하루는 나보고 얘기 좀 하재. “이건 비밀인데, 네가 요리사 40명 더 준비해라.” 당시 주방에 멤버가 40명이었거든. “네가 다 물갈이 해버려. 네가 총대 좀 메라.” 그 소리 딱 듣고…. 그건 너무 심한 거야, 방법이. 내 생각엔, 그건 나하고 안 맞는 거야. 장사라는 게 돈이면 다 되는 게 아니거든? 난 그때 삼십대 초반이었어. 한창 잘 나갈 때지. 결국, 데모하던 직원들 나한테 싹 물갈이하라는 거였어. 그 총대를 나, 손덕준이한테 메라는 거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월급 400으로 올려준다는 거야. 그때 대한민국 주방장 치고는 최고의 월급이야. 사실, 고민이 좀 되더라고. 한 달 후에 회장하고 면담했어. 거긴 회장, 사장, 전무, 상무 다 있어. 완전히 주식회사야. “제가 좀 생각해 봤습니다. 제가 돈 몇 푼 벌려고 40명이란 사람들을 자른다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일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만 두는 게 낫지 어떻게 40명 밥그릇을 깹니까?” 그리고 사표 던졌어. 그 대신 한 달의 시간은 주겠다고 했어. “제가 새로 사람 구하실 때까지 한 달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볼 사람들이니까, 여기 있는 사람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대체 왜 그러냐는 거야. 그래서 그랬어. 나도 내 사업 해보려고 한다. 다른 뜻은 없다고. 오히려 내가 계속 있으면 하림각에 지장을 주는 것 같으니 미리 그만두는 거라고. 나갈 때, 그 구관 장 주방장 식구들이 아주 성대하게 송별식을 해주더라고. 그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이유를. 장 주방장이 그래. “그래도 화교 중에 너 같은 친구가 있다는 건 나로서는 같이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정말 고맙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 “형님도 앞으로는 사장도 다루어가면서 하시라고. 맨날 당하지만 말고.” 중국집 중에 데모하는 집은 하림각 밖에 없어. 남상해 그 양반은 자칭 한국에서 중국요리 최고라고 그래. 실력이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 분, 한평생 열 몇 살 때부터 중국집 다녀가지고 진짜 죽을 고생해서 식당계에서 대한민국 최고일 거야. 열두 살 때부터 매 맞아 가면서 중국집에서 배웠는데, 대한민국 뿐 아니라 중국집으론 세계에서 제일 클 거야, 하림각이.

 

: 완전히 자수성가한 분이시네.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 진짜 자수성가한 사람이야.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지만 참 머리는 귀재야. 중국요리계에서도 아주 중요한 분이고.

 

: 그 분은 요리 실력도 아주 훌륭하셨어요?

 

: 최고야. 그 분은 심심하면 주방에 들어와 일일이 직접 손가락으로 찍어 봐. 맛을 보는 거야. 그게 아주 습관이 된 분이야. 그 분, 옛날 인간시대인가? 한 번 TV에 나왔어. 처음 서울에 왔을 땐 거지생활 하다시피 했대. 식당에서 남은 짬밥 손으로 먹었던 분이야.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야. 아마 재산도 엄청날 거야. 완전히 재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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