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알림
Information / News

열린게시판

제목 [Vol.13 /2011.09] 기획 _ The Story of SUN(孫)’s Family: 인천화교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4)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101

[Vol.13 /2011.09] 기획 _ The Story of SUN()’s Family: 인천화교 손덕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4)

구술: 손덕준 _ 인천 중화루 사장 

채록: 송승석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연재를 시작하며

인천대학교 HK 중국관행연구사업단은 화교연구의 일환으로 화교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인천화교의 대표적 인물 손덕준(孫德俊)과 그의 가족이다. 어느 일개인의 가족사가 화교 전체의 기억과 역사를 온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화교 개인의 인생 궤적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것은 삶의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본 연재에서는 구술채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도록 하겠다.

 

*. 본 연재는 기본적으로 구술기록의 일부를 발췌해서 싣되, 지나치게 문맥이 어색한 부분은 임의로 수정을 가했다.

*. 문중에 말줄임표()가 있는 부분은 공개하기에 적절치 않은 부분이나 반복되는 내용으로, 구술대상자와 상의 하에 생략한 부분이다. 또한 지면의 한계로 인해 기본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채록자 임의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 (???) 부분은 성명이나 상호명으로, 구술자가 한자표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추후에 조사를 해서 보충하도록 하겠다.

 

송승석(이하 송): 아서원 정도 규모였군요?

 

손덕준(이하 손): 주방장이 우리 아버지 친구야. 그쪽에선 꽤나 기술 좋다는 평을 받았던 분이야. 그때 당시 그 양반이 나이가 60여세인데, 나를 제자로 받아준 거지. 원래 제자 안 받는 사람인데 내가 마지막 제자라고 보면 돼요. “내가 앞으로 이 생활 해봤자 몇 년 하겠냐. 기껏해야 몇 년이다. 그렇지만 가르칠 수 있는데 까지는 가르쳐주마. 네 사형들은 다 미국 갔어.”…식당엔 이런 거 있어요. 프라이팬 부대, 면판부대, 칼판부대 이렇게 과가 세 개야. 마지막은 설거지과야. 주방장, 조리장, 프라이팬 부대야. 튀김은 튀김 담당이 따로 있어. 그리고 고급요리만 뽑는 사람이 따로 있고, 두 번째로 식사, 짜장면, 볶음밥 같은 거 하는 사람이 있어. 프라이팬 부대는 프라이팬장, 칼판부대는 칼판장이 있죠. 고기만 써는 사람, 해물 다루는 사람, 많으면 칼판 다루는데 20번째까지 있어. 그게 다 팀워크야. 아침마다 티타임에 아침회의해요. 예를 들면, 오늘 인천대학 단체예약이다. 그러면 여기서 웨이터 역할 중요해요. 그 사람들 무슨 요리 좋아하는지 단골손님마다 그 식성까지 장악해야 하는 거야. 이 사람은 유산슬 좋아하는데 특히 부드러운 거 좋아해. 해물 좋아하고 고기 안 좋아해. 저 사람은 닭고기 안 좋아해. 옛날엔 메뉴판 따로 없어요. 재료가 철따라 달라요. 가격도 시가야. 철따라 받는다는 얘기야. 미팅할 때 홀에서 어제 어떤 손님 음식 먹다가 짜다고 하더라, 어떤 음식이 재료가 안 좋더라, 냄새가 좀 나더라…. 이렇게 아침 짧은 시간 30분이 하루 영업을 좌우해. 나도 초보자는 아니죠. 우리 아버지 빽도 좋았어. 우리 아버지하고 친했어, 주방장이. 그런데 하루는 나를 바로 자기 옆자리, 그러니까 나한테 조리장을 시킨 거야. 내가 19살 때인가 그랬어.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에 뭐했냐면…, 사부님이 딱 보면 이놈이 일 배울 놈인지 아닌지 견적이 다 나와. 처음에 튀김을 했어. 요즘 가스불이잖아요? 그땐 연탄불로 불을 땠다고. 새벽에 일어나야 돼. 연탄불 피워야 해. 요즘 애들은 기분 나쁘면 그 자리에서 그만둬 버리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 잘못하면 주방장이 “그만 둬!”하고 이불 포대기를 밖으로 집어 던져. 그럼 다시 싸들고 몰래 들어가고 했지. 그렇게 일하기가 힘들었어. 기술 배우려면 자기가 먹을 쌀은 가져가야 돼. 월급이 어디 있어?

 

: 한창 요리 배우실 때 얘기 좀 해주세요.

 

: 옛날 어려서 배울 때는 일하는 사람들 다 큰 방에서 함께 자고 그랬어. 사부님 이도 잡아주고…. 지금 생각해도 참…. 그렇게 이도 잡아주고 그랬다니까? 옛날 주방장은 왕이야. 내복 딱 벗어던지면 이 잡아줘야 돼. 짜증나고 귀찮고…. 그래도 난 시다바리 별로 안 했어. 시다바리 하는 애들 보면, 뜨거운 물에 그걸 삶아.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거 나일론이거든. 쭈글쭈글해지지. 그럼, 실컷 얻어터지고…. 주방장들 다 똥배 나왔어. 다 술 배야, 술 배.

 

: 주방일이 워낙 힘들고 하니까.

 

: 주방장은 좋은 건 다 먹어, 술안주로. 곰발바닥 요리 같은 거 하면, 그 진국은 주방장들 다 처먹었어. 있는 거, 없는 거 다 먹으니까 나중엔 더 먹을 게 없더라고. 하도 먹으니까 나중엔 속 쓰릴 거 아냐? 그럼, 돼지비계 기름을 빼. 거기다가 춘장, 양파, 고춧가루 넣고 하면 그거 참 별미야. 아무리 여름에 냉수, 얼음물 팍팍 먹어도 설사하는 법 없어. 우리 그 사부님 옛날 얘기하면 며칠 해도 안 될 거야. 그 대관원 주방장 노인네 말이야. 노인네, 마작을 참 좋아했어. 점심때 바쁜 거 대충 끝나면 가서 마작 한 바퀴 해. 돈 따면 흥흥 거리면서 기분 좋아가지고…. 근데 돈 잃었다? 그럼 그날은 다 죽은 목숨이야. 막 짜증부리고 혼내고 하니까.

 

: 사장님도 마작 할 줄 아세요?

 

: 난 마작 못해. 안 배웠어요

 

: 대관원 계실 때 얘기 좀 더 해주세요.

 

: 대관원 가니까 나이 먹은 이씨란 사람이 있어. 조리장이었지. 6개월쯤인가? 튀김을 하고 있는데 주방장이 나하고 이씨를 불렀어. “너희 둘 이리 와봐.” 하더니 “내일부터 네가 요리 뽑고 이씨가 튀김 해” 이씨 그 사람 기분 나쁠 거 아냐? 저녁에 나를 부르는 거야, 이씨가. 젊었을 때 우리는 진짜 주먹이면 주먹, 할 거 다하는 사람이야. 그 이튿날로 그만 두더라고. 그런 사람들은 언제든 그런 준비가 다 되어 있어. 그 사람 떠나니까 그 자리에 그때서부터 나를 조리장으로 시킨 거야. 19살에 조리장. 이씨도 40대이고 나머지도 다 삼사십 먹은 사람들이었어. 그러고 보면 내가 유별나게 튀는 부분이 있는가봐. 뭘 해도 빠르고. 사부님의 눈에 가르치면 빨리 배울 놈인가 했나봐. 한방에 큰 거지. 대관원 조리장이면 그 세계에서 대단한 거지. 사부가 나한테 그러는 거야. “너 앞으로 스물세 살이라고 해” 내가 너무 어려보이니까 주방장이 그렇게 하라고 한 거야. 조리장이 되니까 월급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한 6, 7만원 받았을 거야. 2년 하니까 그 영감이 나한테 “여기 오래 있어서 뭐하냐? 내가 취직 하나 시켜줄 테니까 그곳으로 가라.” 가보니까 자기 큰 제자인 거야. “난 늙어서 가르칠 수도 없고 하니 너 거기 가서 배워.” 그곳이 바로 서울에 있는 홍보석(紅寶石)이야. 거기에 날 보내주는데. 주방장은 떵()씨야. 떵팡즈(鄧胖子)라고 불렀어. 그 사람이 원래 좀 뚱뚱했거든. 아주 그 사람 노래도 좋아하고 건달 같아. 내가 스물한 살 때야. 거기서는 바로 조리장 밑이었어. 주방장, 조리장 밑에. 그때 홍보석은 이제 막 개업하는 집이었어. 대관원하고는 다르지. 대관원은 옛날 전통방식이야.

 

: 잠깐만요. 그 당시 우리나라 유명한 중국 요릿집 하면 어디 어디예요?

 

: 금문도(金門島), 아서원, 안동장(安東莊), 대려도(大麗都)… 좀 오래된 집들이야. 다 서울에 있지.

 

: 인천에는 큰데 없었어요?

 

: 평화각이지. 공화춘은 아직 장사하고 있을 때지만 얼마 있다가 문 닫았고. 송죽루(松竹樓)는 지금 주차장 그 자리야. 옛날 진씨 집인데 헐어버리고. 공화춘, 평화각 그리고 중화루는 헐렸고…

 

: 중국 요릿집도 전통방식, 신식방식 따로 있었어요

 

: 중화루, 평화각, 송죽루, 공화춘, 서울의 대관원, 안동장, 아서원 다 옛날 스타일이야. 전통이야. 옛날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 내려오던 방식.

 

: , 한국에서 내려오던 방식?

 

: 지금 중국영사관 자리, 대우빌딩 지하가 옛날 홍보석 자리였어요. 서울역 뒤에 있는 만리성(萬理成), 홍보석 다 신식이야.

 

: 신식하고 전통식하고 어떻게 달라요?

 

: 호텔식도 있고, 스타일이 달라요. 전문 요릿집이지. 신식 중국요리야. 주방장 요리사들 홍콩에서 데려와서 사천, 광동 요리. 옛날에는 북평(北平) 요리 밖에 없었어요. 북평 요리도 원래는 다 산동 요리고. 요즘 메뉴판 보면 칠리소스 같은 거 다 신형 요리야.

 

: 그러니까 북경요리 아니 산동요리는 전통방식이고 사천이나 광동 요리는 신식이었네요?

 

: 그렇지. … 한국에서도 이제 옛날 구닥다리로 하지 말자. 신식으로, 새로운 스타일로 디자인하자. 옛날에 우리 만화책에 나오는 맛있는 거 하면 뭔 줄 알아요? 통닭 뒷다리야. 맛있는 거 냠냠. 옛날엔 닭이 비쌌어요. 맛있는 축에 들어갔어요. 요즘은 치킨 맛있는 거라고 안 해요. 로브스터(lobster), 왕새우, 전복, 자연송이 이런 게 비싼 거잖아요? 그때 당시 대관원은 구식, 신식은 홍보석. 한국의 중국요리는 세 갈래가 있어요. 홍보석이 옛날식을 도태시킨 거지. 이제 홍보석 스타일, 홍콩, 대만 사부(師傅) 초청해서 그 사람들한테서 뽑은 스타일이고. 또 한 가지는 호텔식. 호텔식은 고급스타일이지. 삭스핀이고 게살 스푸, 일인당 10만원, 20만원하는. 실컷 돈 쓰고 나오면 집에 가서 라면 먹는. 그 영감이 나한테 그러는 거야. 앞으로 주방장은 신식으로 배워라. 젊은 놈이 옛날식도 알아야 하지만. 젊은 새끼 의리도 좋고 그 아버지 그 아들이야. 참 빨리도 배웠다 그거지. 그 아들도 일류 주방장이었어. 이거 얘기하면 복잡해.

 

: 아서원이나 평화각처럼 큰 요릿집은 개인 혼자서 차리지 않잖아요?

 

: 아니에요. 한 사람 거였어요. 다 개인 거요. 안동장도 개인 거였어요. 초창기 때 공화춘, 중화루는 주식제로 했죠. 그건 옛날이고. 그 후론 주식회사 식으로 한 거 없어요. 다만 한 개 있었어요. 바로 신동양. 사장이 7명이었어요. 홍보석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떵팡즈한테는 바로 밑에 수제자가 있었어요. 프라이팬장이었는데 자꾸 나를 질투하는 거예요. 요리사도 타고 나야 해요. 떵팡즈는 나를 한 6개월 일 시켜보고 내가 마음에 들었나봐. 지배인 통해 전화오더라고. 제자로 받아줄 생각이 있으니 자기를 사부로 모시라고. 그래 내가 그랬지. 난 그런 거 않겠다. 그 사람 제자들 보니까 넷인가 다섯 명이었어. 내가 들어가면 여섯째인데. 선후배 따지고 하면…. 난 그럴 생각이 없었어. 왜냐면, 그 수제자란 놈이 나를 질투해서 항상 시비를 걸고 그랬으니까. 나중에 그 양반이 직접 얘기하더라고. “너 실력 좋다. 너는 내가 제자로 받아주마.” “죄송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런 거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고 해서” … 핑계가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서 좀 더 생각할 기회를 달라 그러고 넘어갔지. 그 후로도 그 수제자가 자꾸 집적거리는 바람에 짜증나서 그만 둬버렸어. 원래 이 요리계통에서는 사부님이 있고 자기가 수제자인데 솔직히 질투가 나죠. 나도 다른 큰 요릿집 가면 조리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사실 홍보석 같은데 들어가려면 힘들어요. 인맥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 겨우 들어가는 곳인데 내가 그만 뒀어요.

 

: 큰 중국집에는 주방장, 칼판장, 프라이팬장이 따로 있잖아요. 같은 팀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따로 움직일 수도 있나요?

 

: 예를 들어, 예를 들어서 태화원 주방장. 주인이 원해서 칼판장만 남기고 주방장을 새로 데려오려고 한다하면 그때 그 주방장은 자기 왼팔 오른팔 다 데리고 올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뭐냐면 기존의 사람들과 새로 온 사람들의 호흡인데, 그걸 사장이 중간에서 보는 거야. 어느 쪽이 실력이 좋은가? 결론은 뭐냐면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거야. 같은 주방 안에서도 주방장하고 칼판장하고 요리 가지고 다퉈. 예를 들어, 내가 주방장인데 태화원에 새로 들어왔어. 주방에선 주방장이 제일 어른이잖아? 근데 칼판장보다 늦게 들어왔다. 그럼, 칼판장 얘가 고참이잖아? 처음 들어가면 얘가 못 살게 굴어. 자기 입장에서 보면 떫거든. 나이도 자기하고 비슷하고 실력은 어떤지 모르고…. 떫다, 그러면 칼판장이 코스 요리에 없는 거, 아주 희한한 거 썰어내. 요즘에는 메뉴판 다 있어. 옛날엔 메뉴판 어디 있어? 칼판장이 재단사야. 요리를 써는 거지. 근데 좀 어려운 거 썰어내는 거야. 막말로 엿 먹이려고 하는 거지. 만드는데 시간 많이 걸리는 까다로운 요리. 그럼, 주방장이 이 요리 모를 수도 있어. 반대로 주방장이 실력이 좋단 말이야. 칼판장이 썰어낸 어려운 요리 다 척척 해냈어. 자기를 공격한 거 다 받아넘겼단 말이야. 그러면 이놈아, 이젠 내 차례다! 주방장이 반격하는 거야. 어이, 칼판장! 오늘 저녁에 20명 예약한 거 이대로 썰어 줘. 메모한 거 넘겨 줘. 무슨 요리? 까다로운 거. 내가 옛날 왕사부님한테 배운 공개되지 않은 요리 턱 던져줘. 지가 썰어 내야 지. 낮에 나 엿 먹이려고 이래저래 다 했는데…. 저녁 요리 이대로 썰어줘. 칼판장이 메모 딱 봐. 보면 모르거든. 썰 줄 몰라서 머뭇머뭇 하는 거야. 거기서 기가 죽는 거지. 자기가 그만 둘 입장 아니면 수그러들어야 돼. “손 사부, 이거 썰 줄 모르겠는데요.” “그럼, 네 아는 거 썰어.” 앞으로 그런 식으로 하지 말라는 거지. 아니면 앞치마 딱 풀어. 그만 두겠다고. 만약 푹 수그러들었잖아. 그럼 인정하고 내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해. 그 다음부터는 썰면서 고분고분 해지는 거야. 저녁에 끌고나가 술 한 잔 먹여. “너 낮에 그런 요리, 솔직히 말해서 바쁜데 그런 요리 썰어내면 되겠어?” “앞으로 상의해서 잘 하겠습니다.” 그럼 내 식구가 된 거야. 앞치마 풀고 가면은 자존심 강한 거야. ‘내가 그만 두고 말지.’ 실력으로 사람을 다루는 거야.

 

: 무엇보다 주방장이 실력이 있어야 하겠네요?

 

: 주방장 실력 없으면 거느리지 못해. 이 사회에도 족보가 있어요. 어느 스승 밑에서 일 배웠다 그러면 아, 그 사람 밑에 있었으니 일 잘하겠네. 그게 바로 족보야. 족보 형성이 되는 거지. 주방장들끼리 다 연결이 돼. 자기가 주방장인데 사람 하나 모자란다 하면 다른 주방장한테 추천을 받아요. “네가 데리고 있는 칼판장 중에 잘 하는 친구 있으면 소개 좀 해라.” 어느 주방장 밑에 있었는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어. 누구 밑에 있었다 하면 ‘아, 얘는 월급 얼마 주면 되겠네’ 하는 것까지 채점이 다 나와요. 서울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호텔에 있는 사람이면 월급 채점이 이미 나와 있어. 어떤 요리사가 취직하러 왔어. 대화를 해보지. 그럼 면접하는 도중에 이 친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파악이 되요. 일단 어디서 누구 밑에서 뭘 했는지 또 몇 년 했는지 물어보면 이 친구가 얼마짜리다 하는 시세가 나오는 거야. 예를 들어서 딴 데서 120 받았다, 부산에서 왔다, 그러면 판단이 다 나와. ‘얘는 거기서 얼마 받고 일했을 거다’ 하는…. 그럼, 물어보지. “자네 거기서 120만원 받았지?” 그럼 틀림없어. 정확해. 그럼, 그 친구 여기서도 그 월급 똑같이 받고 하겠어? 10만원 더 줘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해서 쓰는 거지.

 

: 그럼, 칼판장도 나중에 주방장이 될 수 있는 거지요?

 

: 프라이팬 돌린다고 다 주방장 되는 거 아니에요. 칼판장도 주방장 할 수 있어. 칼판장이라고 프라이팬 못하는 거 아니요. 단지 출신이 칼판장이면 특색이 칼인 거야. 요즘 호텔 주방장들은 프라이팬만 돌릴 줄 알아. 칼질 못해. 우리처럼 밑바닥부터 큰 사람은 칼질, 만두 싸기, 수타면 다 할 줄 알아. 설거지부터 거쳐서 올라간 사람은 전천후야. 다 할 줄 알아. 밑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이렇게 하지 말라는데 왜 이렇게 해?” 그럼 눈치가 딱 나와. “그럼 네가 한번 해봐.” 가서 탁탁 해주면 역시 주방장이 나보다 잘 하는구나. 잡는 거야. 잔소리가 안 나와. 자기가 썰어도 이것만 못하니까. 무서운 건 전천후야. 다 할 줄 아는 사람. 만두면 만두, 칼질이면 칼질.

 

: 아무튼 주방에선 팀워크가 제일 중요하겠네요?

 

: 제일 중요한 건 주인이야. 장사하는데 주방하고 티격태격 해봤자, 손해 보는 건 주인이야. 주인이 잔소리 많이 하면 안 돼. 요리사들은 말이야. ‘곤조’가 있어. 내가 옛날 조그만 집에서 주방장 할 때야. , 자존심 강하고 성질도 더러워. 옛날엔 조미료가 비쌌어요. 아침에 주인한테 요만한 조그만 그릇에다 조미료 한 숟갈 타 와. 용각산 있잖아? 그 숟가락으로 떠서 썼다고. 비싸니까.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된 짓 많이 한 거지. 주인 여자가 말이 되게 많았어. 조미료를 카운터에 놓아둬. 애들 시켜서 타다 쓰라는 거야. 아침에 한번 타오잖아. 점심때 되면 한 번 더 타 와야 하거든? 하루 이렇게 두 공기야. 점심에 애들이 조미료 타 가지고 와서 그러는 거야. “주방장님, 조미료 아껴서 쓰래요.” 열 안 받겠어? “야, 매출이 있는데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 조미료 이리 가져와.” 조미료 선반 위에 올려다 놓고 아예 안 써버려. 저녁에 끝나고 다음날도 조미료 써야 하잖아? “야, 조미료 있으니까 타 오지 마.” 점심때가 되면 원래 타러 와야 하잖아? 그럼, 주인이 물어봐. “조미료 남았어요?” “어, 있는데요.” 그럼, 처음엔 아, 아껴서 쓰는가 보다 하지. 근데 다음날도 또 안타러 오거든. 그럼 또 물어봐. “조미료 있어요?” “아, 여기 있잖아요!” “아니, 조미료 안 쓰신 거예요?” “아니, 자꾸 날마다 많이 쓴다고 하는데 아예 쓰지 말죠, !” 말 많은 여자, 기를 확 죽이는 거지. 앞치마 확 풀어버려. 그 다음부턴 조미료 많이 쓴다는 얘기 쏙 들어가 버려. 주방장들 똥고집 있어. 어느 놈도 마찬가지야. 왜냐하면 주방장한테 재료 많이 쓴다고 잔소리 하면 득보단 손해를 본다는 거야. 물론 조미료라는 게 사람한테 이롭지도 않고 굳이 안 넣어도 되니까 그러는 거지. 물론 맛을 내는 데는 좀 뒤지지. 큰 업소에서는 부장 있고 상무 있고 관리체제가 딱 잡혀 있지만, 일반 영업집은 그렇지 않잖아? 주인들 말 많았어. 솔직히 말해서 아주 지독한 사람들 많았어. 옛날 못 사는 시절, 쌍놈 양반 따지던 시절. 자기 집에서 일하면 완전 자기 밑으로 봐 버려. 그런 업소, 잘 되는 없소 없어요. 사람대접을 해 줘야 하는데, 인격을 대접해야 하는데…. 옛날에 어느 정도 지독했냐면, 직원들 점심 먹잖아? 그럼, 수타면 굵은 거 있어. 손님 테이블엔 나갈 수 없는 거. 그런 것만 골라내면 점심때만 지나도 소쿠리로 하나야. 그걸 일하는 사람한테 먹으라는 거야. 그것도 우동으로만 만들어서 먹으래. 짜장면은 양념이 많이 들어가니까. 옛날에는 그랬어. 그 시절에는 그랬어. 먹는 건 절대 버리지 않았어. 쌀이 비싸니까 아침에 빵을 쪄요. 반찬은 옛날엔 자반고등어가 제일 쌌어. 또 뭘 먹었냐 하면, 옛날엔 전기밥솥 없잖아? 철 가마솥으로 밥을 했어. 그럼 밑에 시커먼 누룽지 이만큼 나와. 요즘에야 누룽지 별식이다, 뭐다 해서 좋다고 먹지만…. 그거 긁어다가 까맣게 탄 부분만 물로 씻어내고 죽을 끓여. 물론 주인은 안 먹지. 대신 일하는 사람한테 먹으라는 거야. 죽 끓여서 말이야. 물론 이건 중국식당 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없던 시절엔 없는 사람들 더 천대받고 살았어. 내가 보고 느낀 건, 직원들한테 지독히 굴던 사람들 다 망하더라는 거야. 남한테 지독하게 하면 될 일이 없거든. 직원한테 잘하는 집들 계속 유지해 나가. 수십 년 동안 짜장면 장사해서 성공한 사람들, 그 수십 년 동안 마음을 잘 쓰니까 유지할 수 있었던 거야. 마음 못되게 쓴 사람들 다 망했어. 생각해봐. 어린 애 둘 데려다 놓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게 큰데 남의 것도 탐이 나느냐고 물어봐. 애들은 마음씨 착해. 당연히 애들은 내 것이 큰데 남의 것을 왜 먹어요? 그러지. 마찬가지야. 내가 남의 것을 먹는다면 그건 바로 내가 남의 집 생활한다는 거야. 반대로 내 것을 남보고 먹으라고 하면 그건 바로 내가 크면 사장된다는 거야. 직원들 거느리면서 산다는 거야. 남이 내 것을 먹어야 그만큼 출세가 있어. 왜 남을 줘? 내가 먹어야지. 그러면 그건 남의 집 생활한다는 거야.

 

: 그 말은 사장님이 만드신 말씀이세요?

 

: 내가 만든 거야. 하하! 남보고 내 것을 먹으라고 하는 아이는 바로 나중에 사장이 돼. 왜 내가 남을 줘? 그런 애는 남의 집 생활해야 돼.

 

: 참 재미가 있으면서도 깊은 뜻이 있는 말씀이세요.

 

: 직원들보고 손님 먹다 남은 거 먹으라고 하는 집 많아. 그거 얼마나 찝찝하겠어? 그게 바로 상대방, 그러니까 일하는 사람 무시하는 거야. 먹다 남은 거 먹으라니? 일하는 사람, 직원들은 사람 아냐? 난 남는 음식은 무조건 버려. 같이 일하는 우리 직원들 다 알아. 김치 그거 몇 푼 돼? 마음을 정직하게 써야지. 난 아침에 직원들하고 똑같이 같은 테이블에서 같은 거 먹어. 따로 먹는 건 내가 싫어. 우리 와이프 집에서 밥 안 해. 와이프는 혼자 집에서 알아서 챙겨먹고 나는 직원들이랑 같이 먹어. 사장이라고 따로 먹고, 직원이라서 따로 먹고…. 그거 안 돼. 난 가게가 세 개라서 다 같이 먹지는 못하지만. 중화루에 가서 아침 먹을 때도 있고, 태화원에서 같이 먹을 때도 있고. 내가 같이 먹어봐야 반찬이 소홀하면 내가 얘기할 수도 있어. “날마다 이거 먹으면 되냐? 다른 반찬도 사다 줘야지.” 그래야 집안이 되는 거야. 난 절대 우리 직원한테 사장 티 안내요.

 

: 그게 사업을 오래 할 수 있는 길이죠.

 

: 우리 식구들, 직원들 말이야. 반찬 투정 없어. 이게 조그만 부분이지만 사람의 기본 문제야. 소문 다 나 있어. 일하는 사람들 다 통해. 우리 사장 어떻고 우리 사장 어떻고…. 하하!

 

: 그렇죠. 원래 직원들 사이에 사장 얘기 많은 법이죠.

 

: 요즘은 직원들 거의가 다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야. 이 중국대륙에서 온 친구들은 5만원, 10만원 차이 나면 금방 옮기는 사람들이야. 난 항상 많이는 못 줘도 딴 집보다 10만원 정도는 더 줘. 덜 줬다는 소리 듣지 말아야지. 내가 술 한 잔 덜 먹으면 되고.

 

0 comments
작성자 패스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