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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2 /2011.08] 논단 _ 난제촌(南街村) - 싹트는황화자본주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52

[Vol.12 /2011.08] 논단 _ 난제촌(南街村) - 싹트는 황화자본주의

이용재 _ 인천대학교 HK 연구교수

 

중국 내륙의 핵심이자 중화 문명의 발상지인 허난성(河南省)에는 중국 전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한 마을이 있다. 허난성(河南省) 뤄허시(河市) 린잉현(臨潁縣)에 속한 아주 자그마한 마을 난제촌(南街村)이 그 곳이다.

 

총면적 1.78 평방킬로미터, 인구수 3,100여명에 불과한 이 난제촌(南街村)이 이처럼 관심과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된 데에는 그럴만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작은 난제촌에서 현재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실험 즉, 자본주의적 가치인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가치인 ‘집체주의(集體主義)’를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경제모델이 실험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시대적 조류 하에 난제촌의 지도자 왕훵빈(王宏斌)은 심사숙고 후 이 마을의 전통적 생활 기반이었던 농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공업화 정책을 폈다. 마을 당국은 인스턴트 라면에서부터 맥주, 플라스틱 포장지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기업(향촌기업)과 공장을 설립했으며*, 상당한 규모의 시장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향촌기업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시장 경제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 난제촌은 사유화와 민영화에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국의 여타 지역과는 달리 기업의 운영과 소유 및 주민의 생활 방식에 있어서는 ‘집단소유제’와 ‘집체경제(集體經濟)’라는 사회주의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난제촌의 마을 주민에게는 그 어떠한 형태의 개인적인 사유권이나 소유물, 사욕(私欲), 1인이 운영하는 개인상점이나 개인 기업 등은 어떤 경우에도 불허되며, 마을 내 모든 재산은 오직 모든 주민이 함께 공동으로 소유하는 집단공유제와 집체주의의 형태를 견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대신에 난제촌의 모든 촌민들에게는 가족 수에 따라 방2개에 거실이 하나 딸린 78m2의 집 혹은 3개의 방과 하나의 거실을 가진 현대식 아파트가 무료로 제공되며, 집안의 가전제품이나 가구 등도 모두 마을의 향촌 기업에서 제공한다. 전기세, 수도세, 난방비, 식용유 등의 제반 공공비용 역시 난제촌에서 설립한 집체기업에서 기본적으로 부담한다. 이 밖에도 난제촌 주민에게는 임금의 일부 대신에 정해진 수량의 용품이 배급되거나 마을 상점에서 자유롭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상품 구매권(福利券)이 주어진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의 교육비용 및 의료비 역시 마을에서 공동운영하는 집체기업이 책임을 지며, 다양한 문화와 오락 활동, 방역·양로·건강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공공서비스와 높은 수준의 복지가 향촌기업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이와 같은 특유의 집단적 소유제도와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난제촌에서는 ‘임금+공급’이 결합된 분배 제도 및 3:7제 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3:7제란 향촌기업의 운영을 통해 창출된 이익의 30%만 임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70%는 기금으로 적립하고 이 적립된 자금을 근간으로 하여 주민에게 높은 복지를 제공해주는 “낮은 임금, 높은 복리(低工資, 高福利)”라는 난제촌의 독특한 정책을 말한다. 그래서 현재 난제촌 주민들의 소득수준은 8,200 ()으로 중국의 어느 지방보다도 높은 편이지만 마을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수령하는 임금수준은 상당히 낮아 그들의 월평균 임금은 1인당 150, 연평균 1800원 정도에 불과하며, 소득의 나머지 6,800원은 전부 주민 복지 혜택을 위해 활용되어 진다. 또한 마을 특유의 집체주의 경제와 공동체 의식을 지켜가기 위한 사상적 노력의 일환으로, 난제촌의 주민들은 지금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유행했던 혁명곡인 《東方紅》의 나팔 소리를 들으며 기상하고, 《大海航行舵手》 혁명 가곡을 들으며 점심을 먹으며, 《社會主義好》노래를 들으며 퇴근할 정도로 마오쩌둥 사상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의무적으로 마오쩌둥의 저작과 철학을 학습해야 하며, 정기적인 상호 비판과 자아비판을 통해 사회주의의 정신과 도덕 품성을 강화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난제촌의 이와 같은 특이한 모습과 현상은 한편으로 보면 개혁 개방 이후 그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간주되는 마오주의로의 귀환이나, 마오쩌둥 철학의 부활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난제촌은 마오쩌둥 시대의 유산인 집체주의를 강고하게 견지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평가와 인식은 어느 정도는 타당하며, 그래서 이 마을은 최근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는 ‘홍색문화 부흥(紅色文化 復興)’ 혹은 ‘마오열풍(毛熱)’의 대표적이고 전형적 사례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난제촌 현상을 단순히 과거 마오주의의 복벽() 내지는 문화대혁명 시대의 악몽이 부활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난제촌이 비록 마오쩌둥 사상을 상당히 강조하고 마오쩌둥을 높이 추숭(追崇)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마오주의는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에 대해 철저히 적대적인 태도와 반감을 드러내었지만, 난제촌은 결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요소들을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난제촌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난제촌의 삶을 특징짓는 높은 수준의 복지는 난제촌에서 운영하는 향촌기업에서 창출되는 이익과 이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복지의 지속과 유지를 위해서 난제촌은 시장과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다양한 상품개발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난제촌 모델이 과거의 마오주의와 다른 또 한 가지 점은 마오주의는 경제보다는 정치, 그리고 물질적 삶보다는 순수하고 소박한 공산주의 정신을 우선시함으로서 중국 인민 대중을 빈부에 있어 평등하나 발전이 없는 맹목적 평균주의로 이끌어 갔다면, 난제촌은 인민의 물질적·경제적 삶도 중시하여 ‘모두가 평등하고’, ‘공동으로 부유해지는 길(共同富裕)’을 자신들의 목표로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의 시간동안 그와 같은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과 위기를 겪기는 했어도, 난제촌의 시도와 실험은 중국에서 ‘全國文明村”、“中國十大名村’, ‘全國優秀鄕鎭企業” 등의 이상적인 모범 촌락으로 선정되고, ‘第一紅色一億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2010년 현재 난제촌 집체기업의 연생산액은 14억으로 16년 전보다 무려 2100배 이상 증가하는 놀라운 성장을 거두었으며, 향촌기업이 축적한 자산은 이미 30億에 이르고, 난제촌을 줄곧 괴롭혀왔던 은행 부채는 4億으로 감소했으며, 난제촌의 1인당 연평균 수입은 8,200원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부와 경제적 성취를 이룩해 내었다. 다만 난제촌은 향촌기업의 운영을 통해 형성된 부()가 특정 소수 계층이나 어느 한 개인에게 집중되고 독점되는 등과 같은 부의 분배상에 있어서의 불평등 현상을 막고, 부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균등하게 재분배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가치이자 요소인 ‘평등’과 ‘집체경제’, ‘복지’라는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저서에서 난제촌을 극찬함으로써 그곳을 유명하게 만든 학자인 추이지위안(崔之元)은 이 난제촌에서 시도되고 있는 역사적 경험과 실천을 ‘外圓內方’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는 ‘外圓’이란 곧 외부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상품경제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며, ‘內方’은 내부적으로 마오이즘에 입각하여 집체경제와 부의 ‘평등주의’를 견지하고 사회주의적 이념과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난제촌은 단순히 과거의 경직되었던 사회주의로의 회귀나 그것의 부활로 간주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난제촌 모델은 사회주의적 소유제와 자본주의적 운영 방식이 결합된 혼합체에 가깝다. 다시 말해 난제촌의 실험은 시장경제 요소와 사회주의 요소라는 두 이질적 경제 체제를 융합하여 새로운 종류의 경제 모델을 창조해내려는 혁신인 것이다

 

물론 난제촌의 실험과 모델이 진정으로 시장경제나 사회주의라는 전통적 경제체계를 초월한 새로운 이상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으며, 난제촌의 안정적인 성공가능성과 그 경제 모델은 치열한 쟁론의 대상이기도 하다. 난제촌의 실험과 모색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고 보편화되기 위해선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며, 극복해야 할 많은 장애와 문제들이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는 시장 경제 환경 속에서 난제촌의 집체 경제의 운영방식이 과연 계속 살아남아서 지금처럼 발전과 성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사유제와 사욕에 대한 맹목적인 불허와 억제가 과연 옳은 것인가?, 개인을 강력히 통제하고 규제하는 체제인 집체경제 속에서 개인의 창의성이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유도해 낼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그러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제촌 모델과 이 마을에서 실행되고 있는 실험은 여러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의와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무엇보다, 부의 평등한 분배와 균형 발전을 강조하는 난제촌의 모델은 개혁과 개방이후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고 분배나 환경과 같은 그 이외의 가치들에 대해서는 소홀하거나 희생시키는 서구식 자유 방임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도전이며, 경제적 번영과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그동안 잊혀져왔던 사회주의적 가치를 결합한 또 다른 자본주의 곧 중국적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중국이 지난 20여 년 간 시스템의 전환을 의미하는 체제 개혁을 이루기 위해 서구식 시장경제 모델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모방해왔다면, 난제촌의 실험과 모색은 중국이 그와 같은 모방과 수용의 단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메카니즘을 발명하고자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한다. 곧 난제촌은 서구식 자유시장 경제를 거부하고, 그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경제와 대안을 창안하려는 중국의 실험과 노력을 보여주는 시도이며, 이제 중국적 특색을 갖는 황화 자본주의가 중국에서 서서히 싹트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난제촌의 이와 같은 실험이 최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속단할 수 없겠지만, 만약 이러한 혁신적인 실험과 모색이 성공을 거두어 중국의 경제가 새로운 발전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면 중국은 경제발전에 대한 세계인의 생각을 바꾸어 버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둘째, 난제촌 향촌기업은 적극적인 시장 개척과 상품 개발과 판매를 통해 상당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고 여기서 생겨난 이윤과 이득을 구성원들의 복지에 투자함으로써, 성장과 복지라는 두 개념이 반드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며, 상호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난제촌의 성공은 임금, 노동조건, 사회적 복지와 사회 보장 등의 가치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높은 경제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으며, 또한 시장이 사회적 복지를 위한 재원 조달에 적절히 이용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난제촌의 성공은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 오히려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을 향상시킬 수 있음도 깨닫게 해주었다

 

셋째, 난제촌 기업들은 부의 분배방식에 있어서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소수의 특정인에게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업의 이익에서 발생한 이익을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이와 같은 방식은 얼핏 보기에 따라 과거 사회주의의 기계적 평균주의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은 과거의 사회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미국의 알래스카 주의 방식과 흡사하다. 알래스카 주는 그곳에 매장된 석유를 개발해 얻은 수입의 일부로 그곳의 주민을 위한 거액의 신탁 기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매년 수천 달러에 달하는 ‘사회 배당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한다. 난제촌의 기업들도 알래스카 주의 경우처럼 기업에서 발생한 이윤을 소수가 아닌 주민 다수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의 균등한 분배는 노동의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저하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난제촌 경제가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 나가는데 있어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비록 난제촌이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 완벽한 이상적 모델은 아니지만, 이상에서 언급한 난제촌의 시험과 모색은 “복지냐? 성장이냐?”하는 문제로 시끄러운 논쟁에 휩싸여있고,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및 부의 사회적 분배 문제로 인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난제촌의 역사적 경험과 실험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으며,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난제촌의 모색과 시도가 우리에게 갖는 중요한 의미도 여기에 존재한다.


* 현재 이 마을에는 모두 28개의 향촌 기업이 있으며, 그 중 대외 합작 기업이- 중외 합작이 5, 국내 합작이 3개 기업- 8개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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