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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1 /2011.07] 사업단소식 _ 제14회 중국관행연구포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58

[Vol.11 /2011.07] 사업단소식 _ 14회 중국관행연구포럼

14회 중국관행연구포럼이 2011 6 22일 인천대 인문관 329호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조윤미 상임연구원이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본 범죄자의 인권: 인도네시아 사례 연구”라는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이날 발표는 지난 198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했던 초법적 범죄자 처형 사건의 과정 중 작동한 관습법인 아닷(adat)의 역할과 함께 인도네시아의 인권지형전반을 조망한 흥미로운 발표였습니다. 다음은 조윤미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발표 요약문의 전문입니다.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본 범죄자의 인권: 인도네시아 사례 연구

                                          

조윤미 _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        

 

본고는 1980년대 초 수천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던 인도네시아의 초법적 범죄자 처형 사건(Petrus)과 이 사건에 대해 대다수 현지인들이 보이는 지지와 옹호의 입장을 인도네시아의 관습법 맥락 속에서 이해해 보고 인도네시아의 전반적 인권 지형 속에서 조망해 본 것이다.

 

페트루스라는 말은 “의문의 총격”이란 뜻으로, 인도네시아 말 Penembakan Misterius(Mysterious Shooting)의 줄임말이다. 1980년대 초 인도네시아 군부는 민생 치안의 안정을 위하여 4, 5천 명 이상의 범죄자 및 우범자들을 정당한 사법 절차 없이 암살하였는데 바로 이 사건을 이르는 말이 페트루스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국가법에 의하면 엄연한 납치 살인 행위이며 정당한 사법 절차를 무시한 처형이었던 이 암살 사건들에 대하여, 대부분의 시민과 관료들은 불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수하르토에 의한 독재가 종식되고 개혁의 시기가 도래한 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인도네시아 시민 사회 일반의 이 사건에 대한 태도는 그리 변한 것 같지 않다. 수하르토 하야 후 신질서 체제에 의해 희생, 착취, 주변화 했던 빈민, 노동계층, 소수종족, 지방사회 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인권 담론이 전개되고, 이러한 담론들이 민주와 인권의 가치 실현을 위한 정치적 제도화와 시민사회운동의 활성화, 관습법 공동체 운동, 더 나아가 데모와 폭력의 사태로까지 확대되어 가는 와중에서도, 유독 “도둑”에 관해서만은 인권의 개념이 작동을 멈추었다. 수하르토 통치 시기의 다양한 인권유린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 요구가 빗발쳤지만 페트루스 사건만은 그러한 요구를 거의 빗겨갔으며, 오히려 이제는 더 이상 “도둑”을 처단 못하는 국가에 대하여 시민들은 “국가가 인권이 무서워 도둑 잡기를 포기했다”는 힐난을 하기에 이르렀고 드디어는 “도둑”을 처단 못하는 국가를 대신해 시민들이 “도둑” 처단에 직접 나서기를 주저 않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개혁시기 초기 인도네시아 전역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도둑”들이 군중재판에 의해 목숨을 잃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군중재판을 인도네시아인들은 마인 하낌 슨디리(main hakim sendiri)라 부른다. 물론 마인 하낌 슨디리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옹호담론 역시 지극히 미약하여 “도둑”의 인권을 언급하는 것은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에서 범죄자의 인권이 부정되는 맥락과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위하여 연구자는 인도네시아 전통 촌락 사회의 구성과 운영 원리가 되는 관습법 아닷(adat)을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주목하고, 페트루스 사건의 발생, 전개 그리고 정당화 과정 속에서 발견되는 논리를 관습법의 논리와 비교해 논하였다. , 아닷-상의 응징의 주체, 범법성 판단 논리, 처벌 규정 결정 논리, 공동체 중심의 법운용과 공동체 구성원의 지위에 따른 차별적 권리체계, 그리고 현재성과 결과를 주목하는 논리 들을 페트루스 전 과정의 논리들과 비교하였다. 이러한 비교 분석을 통해 연구자는 페트루스 작전의 시행자와 시민 그리고 범죄자들이 모두 아닷-식의 논리, 아닷-식의 사고체계에 참여하여 치안과 관련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주장하고 있음을 밝혀내었고 최소한 인도네시아 촌락 공동체 사회에서만큼은 정의란 인권을 수단으로 달성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며 오히려 인권이라는 개념이 전제하는 바가 촌락 공동체 속에서 정의가 구성되고 관철되는 논리와 과정들을 방해함을 밝혀내었다. 그럼으로써 치안당국의 초법적 조치들이 관습법적 논리들에 부합했던 점이 치안당국의 초법적 조치들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저항을 불식시키고 지지를 이끌어낸 요인이었음을 밝히었다. 이러한 논의들은 정의(justice)와 도덕성의 내용은 그 정의가 존재하는 특정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으로 채워짐을 밝힌 법인류학의 민족지적 성과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고 인권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문화적 특수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주장해 온 인류학적 전통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정의가 구성되고 관철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동시대라 할지라도 그 사회의 또 다른 맥락에 따라 변이를 보일 수 있음을 연구자는 그 다음 논의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1998년 수하르토 몰락 이후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민주와 개혁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인권이 절대적 가치로 부상한 상황임도 불구하고, 어떤 연유로 민생치안사범의 인권만은 인권 신장의 열외 지대로 남아 있는지를 질문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현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인권의 가치가 형식상으로라도 인정되고 관철되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이 분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인도네시아의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사회구성 원리와 법문화, 그리고 이러한 다원적이고 중층적인 구조의 사회가 전 지구적 맥락에 차별적으로 접맥하는 방식들과 연관 지어 논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본고는 전 지구적 가치로 자리매김한 인권의 가치가 로컬사회의 개인, 집단, 공동체, 그리고 국가 들 간의 이해관계 속에서 경합적으로 해석, 흥정, 조정되고 있는 인권의 민족지적 국면을 제시한 것이고, 그럼으로써 인류학의 오랜 논쟁거리인 인권의 보편성과 문화적 특수성에 관한 논의를 인권의 민족지적 지형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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