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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Vol.11 /2011.07] 논단 _ 중국 기업의 官利 慣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09 조회수 52

[Vol.11 /2011.07] 논단 _ 중국 기업의 官利 慣行

김지환 _ 인천대학교 HK교수

 

1949년 이전 중국 기업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관행 가운데 하나가 바로 官利慣行이다. 官利慣行이란 경영의 회계년도가 끝날 때에 이익의 유무와 관계없이 주주의 출자에 대해 우선적으로 일정한 이자를 지불하는 것으로서, 官利는 股息, 股利, 保息, 正利, 正息이라고도 불리웠다. 다시 말해 기업은 이윤의 유무와 관계없이 투자자본에 대해 지불해야 할 이자를 반드시 확보해야 했으며, 그 수준은 통상적으로 연리 11.5%~13%에 달하였다.

 

이에 반해 경영의 결과 획득된 순수한 이윤(순익)에 대한 배당은 紅利라 지칭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 기업에서는 연말 회계년도의 결산 이전에 먼저 官利를 지급한 이후 비로소 영업이익에 대해 결산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官利를 지불하고 난 이후 이익이 부족하면 결손을 내게 되는 것이고, 이윤이 있을 경우 다시 紅利를 지급하는 방식이 매우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官利가 중국 기업에서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일차대전 시기 중국 경제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차대전의 발발로 말미암아 구미로부터 중국으로 수입되던 공산품의 수량이 대폭 감소하자, 일용필수품을 중심으로 공산품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가 바로 대전 및 대전 직후의 ‘황금시대’에 해당되며, 이 기간 동안 중국의 공업은 비로소 근대적 기계공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차대전 시기의 고이윤에 편승하여 우후죽순으로 난립한 기업의 자기자본 비율은 현격히 낮았다. 중국 기업은 설립 시에 기계와 토지, 건물 등의 비용만을 계산하여 보유 자본을 고정자산에 충당할 뿐, 유동자본은 매우 부족하여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차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업들은 은행, 전장 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막대한 자본을 차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업경제의 발전과 관련하여 금융기관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는 당시 중국 정부의 공채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공채를 남발하였으며, 금융업으로 하여금 이를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높은 이윤을 보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공채의 수용을 통해 보다 많은 이윤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금융 자본가들은 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주로 공채와 토지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더욱이 1929년 세계공황 이후 이러한 투자 편중 현상은 한층 심화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높은 대출 이자를 지불하더라도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업가들은 기업과 공장을 창설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본을 차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기업의 官利慣行이 보편적인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나아가 중국 기업의 경영 형태를 강하게 규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官利慣行은 중국 공장과 기업에서 일상적인 경영자금의 부족을 보충하고 자본 투자와 유치의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청말 이래 사회의 자본이 고리대와 토지에 집중되는 현상에서 이것이 곧바로 산업자본으로 전환되기 어렵자, 투자자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서 투자자본에 대한 이자의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투자자의 심리에 영합하고 이를 통해 자본을 공업, 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 마련해 둔 장치가 바로 官利慣行이었던 것이다.

 

遊資를 공업투자로 이끌기 위해서는 당연히 높은 이윤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이를 위해서도 官利慣行이 불가피하였다. 官利는 차입한 바로 다음날부터 연리로 계산되었으며, 이윤의 유무와 관계없이 회계결산 이전에 반드시 먼저 지급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만일 지급이 미루어질 경우 다시 미루어진 시기만큼 이자를 가산하여 계산하였다. 따라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실질적으로는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결손을 내는 상황에 처하곤 하였다.

 

더욱이 官利의 존재는 경영의 계속성을 위해 유보되어야 할 경영자금의 부족을 초래하여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였다. 기업은 官利의 지불로 말미암아 마땅히 마련되어야 할 재생산을 위한 준비금이나 혹은 감가상각을 위한 비용의 확보가 용이하지 않았다. 官利를 우선적으로 지불하고 난 이후에 비로소 적립과 감가상각을 실시할 수 있었으나, 자금부족으로 차입금의 비율이 높아 이를 위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다.

 

재생산을 위한 준비금이나 감가상각 등 경영자금의 부족은 무엇보다도 기계 등 설비상의 미비로 나타났으며, 이는 결국 생산비의 제고와 생산된 제품의 질량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설비의 규모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구입되고 사용된 기계의 품질과 성능이 매우 열악했다는 점이다. 공장을 신설할 경우에도 자본 부족으로 말미암아 중고기계를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며, 각종 기계는 생산지가 잡다하여 규격화되지 못하였다. 심지어 일부 기계 설비들은 구미계 기업, 공장에서 사용한 후 폐기한 기계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였다.

 

기계 설비의 미비는 바로 낮은 생산성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열악한 기계 설비로 말미암아 기계의 파손, 마모 등의 결함이 종종 발생하였으며, 이는 다시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료의 구매에서도 투기적 교역 관행이 출현하였으며, 이는 다시 생산된 제품의 품질과 통일성을 저해하였다. 더욱이 동일 품목의 생산비 항목에서 이자 부담의 항목은 중국 기업과 외자 기업 양자의 생산비 차이를 결정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동일 품목의 생산비 항목에서 양자의 차이를 초래한 결정적인 항목이 바로 官利 혹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의 지불이라는 사실로부터 잘 알 수 있다.

 

官利慣行은 중국에서 사회의 유휴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용이하게 전환시키기 위해 마련된 독특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치가 기업의 창설과 발전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일부 긍정적 측면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윤 유무나 혹은 조업단축, 조업정지와 관계없이 항상적으로 반드시 지불되지 않으면 안되는 官利의 부담은 중국 기업 경영에서 매우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윤을 내지 못하면서 몇 년간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부채의 누적으로 말미암아 도산이나 매각이 불가피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불황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官利慣行은 경제 전반의 불황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기업을 연쇄 도산으로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이 중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충분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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