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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4월호
중국인은 행동하지 않는 이방인인가?: 19세기 노만 아싱(Norman Asing)과 이익(Lee, Yick) _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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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여파는 서구의 인종 역학 속에서 여전히 거세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 반중국, 반아시안 혐오에 의한 총격 및 폭행 사건이 다수 발생하면서,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관련 혐오범죄에 대한 우려와 저항이 이제 거리로 뉴스미디어로 터져나오고 있다. 인종적 혐오를 멈추어야 한다는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여러 시위에 등장한 구호 중 “We belong here!”라는 외침은, 미중갈등 및 중화민족의 부흥(해외화인을 포함)을 표방한 현 중국정부에 대한 반향으로 새로운 국면을 내포하고 있으나, 사실 전혀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모국어가 영어인데도 영어를 어떻게 그리 잘하냐?”는 말을 들어온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 역사의 마디마디마다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고 이곳 미국 사회의 진전에 참여하며 기여하고 있다고 외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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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Stop asian hate 시위


아시아계가 그 어떤 소수자보다 백인 중심 미국 주류의 타자로 설정되며 영원한 이방인으로 인식되어온 담론 속에서, 중국인은 종종 참여도 저항도 하지 않는 조용한 체류자(silent sojourners)로 인식되었다. 뿌리내리지 않을 것이기에, 정치나 사회 참여에 관여하지 않고 불이익이 있어도 나서지 않으며 조용히 경제적 이득을 챙기고 자기 발전에 몰두한다는 이미지는 정착 사회에 익숙지 않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붙여지는 딱지이기도 하지만, 특히 전 세계 중국인 이민자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중국인은 정말 조용한 체류자였을까? 주류사회로 많은 이들이 진입해 있는 21세기 현재뿐 아니라 이민 초기부터 미국의 중국인은 음소거되었을지언정 침묵하지 않았다.


발견된 자료 중 아마도 최초의 자료는 1852년 노먼 아싱의 신문사 공개서한일 것이다. 그 해는 약 2만 명의 중국인이 금을 쫓아 캘리포니아에 가면서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완전히 부정적인 국면으로 돌아서던 때였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중국인들이 주의 광산업에 위협이 된다는 보고서를 냈고, 이에 더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비글러(John Bigler)는 의회에 아시아 이민을 견제할 즉각적이고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특별 성명을 냈다. 이민을 환영하는 미국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쿨리 노동으로 오는 중국인은 도움이 되지 않고”, “아무도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문화적 차이 등 여러 요소로 인해 그들은 절대 동화될 수 없으며 좋은 시민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중국인 노동자로 인해 백인노동자들이 임금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했던 상황과 더불어, 남성 노동자가 절대적 다수였던 초기 중국인 이민사회(bachelor society)에서 매춘, 도박, 아편 사용, 갱 다툼 등이 목격되면서 전체 중국인에 대한 반감과 비하가 확장되던 때였다. 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며 중국인 커뮤니티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던 노먼 아싱이 당시 캘리포니아의 선도적 언론 중 하나인 The Daily Alta California친애하는 비글러 주지사님께(To His Excellency Governor Bigler)’라는 공개 서한을 썼고 신문사는 1852425일에 이를 게재했다. 서한에서 아싱은 대담하고 솔직하게 주지사의 성명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유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 말씀 올리는 자유를 허락해달라. 우리 주의 수장으로서 주지사님의 메시지는 중국인에 대한 공공의 편견을 심화시키고 이 땅에서 땀 흘려 이룩한 보상을 강도질할 기회를 주는 힘을 가졌다.

2) 평화와 발전을 위해 아시아 이민을 제한한다는 것은 퇴행적인 조치다. 이민은 미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근거이고 당신도 이민의 후예이다. 미국이 백인만의 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은 미국의 역사가 증명한다.

3) 중국인은 저열한 인종이 아니다. 미국이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중국은 문명을 갖추었고, 수세기에 걸쳐 각종 산업과 학문을 일으키고, 대학, 병원, 자선기관 등의 시설을 발전시켜왔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중국인은 일꾼으로, 상인으로 기여해왔다. 노동을 비하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일을 비하할 수 없다.

4) 유럽인에 대해서는 미국의 관대한 이민 방침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미국 헌법의 원칙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정하는 것은 당신의 권한 밖이다.

5) 나는 남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의 시민으로 기독교인이다(cf. 미국은 1790년 귀화법 이후 자유로운 백인에게만 귀화를 허가하고 있었지만, 몇몇 동부 지역에서는 중국인의 귀화를 받아들였다. 아싱은 뉴욕을 거쳐 남캐롤라이나에 정착했다가 캘리포니아로 재이주했다). 어떤 아시아인도 귀화하려 하지 않으니 시민 자격이 없다는 말씀은 수정하셔야겠다. 또한 중국인이 금을 탐욕하여 캘리포니아에 왔다고 하셨지만, 여기에 온 백인이나 다른 외국인들은 그렇지 않은가? 중국인들이 금만 캐서 재빨리 돌아가려 한다 하셨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살아가고자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반중국인 움직임은 미 전역으로 퍼져 1860년대와 1870년대 중국인에 대한 폭행, 약탈, 축출 등 폭력을 낳았고, 1882년 급기야 중국인 노동자의 입국을 금지하는 미 연방정부의 중국인 배척법(The 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되었다. 아싱의 글 한 편이 이 흐름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현대의 사고방식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그 저항의 논리는 중국인 이민자가 일시체류자로서 행동하지 않는 희생자일 뿐이었고 미국 사회가 지지하는 시민성(citizenship)을 갖추기 힘들다는 인식에 수정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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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익우판결


샌프란시스코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던 이익은 1886년 캘리포니아 주 정부 관리에 대한 소송에서 미국 최초로 인종적 편견에 의한 행정 집행은 헌법의 침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받은(Yick Wo v. Hopkins, Sheriff 케이스) 중국인 이민자이다.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외에도, 캘리포니아 정부는 각종 허가서를 요구하여 중국인 이민자의 일자리를 막았고, 중국인의 귀화를 막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중국인이 세탁업으로 돌아섰고, 세탁업은 청소, 요리와 함께 중국인에게 허락된 거의 유일한 업종이 된 상태였다. 1880년 샌프란시스코 시는 안전을 이유로 목조건물 세탁소는 모두 시 감독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약 320개의 세탁소 중 95%가 목조건물로 되어있었고 그 중 3분의 2를 중국인이 경영하고 있었다. 모두가 허가를 신청했으나, 중국인이 신청한 200여 개 신청서 중 허가를 받은 업장은 단 하나였고, 80여 개의 비중국인 업장 중에서는 하나만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익워(Yick Wo, 益和, yi he) 세탁소를 20년간 화재 없이 운영해온 이익은 허가를 취득하지 못해 부과된 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안관 합킨스(Peter Hopkins)에 의해 투옥되자 구속적부심(인신보호)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행정 명령은 인종 중립적이고 합법적이라 해도 그에 대한 행정 집행이 인종적으로 차별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세탁업을 하던 중국인들이 대체로 미국 시민은 아니었지만, 미국에 사는 모든 이들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미 연방헌법 수정안 제 14(Fourteenth Amendment, 1866)에 따라, 그들도 동등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했고, 같은 명목으로 수감된 다른 중국인 세탁업주들도 석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익우 케이스도 이후의 비슷한 인종차별적 케이스에 한동안 제대로 적용되지는 못한 채 묻혀졌다. 그러나 익우 케이스는 1862년 중국인 이민자에게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 데 대한 소송(Lin Sing v. Washburn) 등 미국 내 중국인들이 법정 투쟁을 저항의 도구로 삼는 계기가 되었고, 인종차별적 행정 집행에 저항하는 미국 최초의 법적 선례를 만들었다.


【미국의 중국인 2

정은주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nbcdfw.com/news/local/asian-american-community-leaders-across-texas-uniting-against-hate-on-tuesday/2586565/

 

사진 2.

https://twitter.com/cspan/status/97353655761656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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