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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4월호
역사 소비와 대중역사 이해의 현실 _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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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지식은 오랫동안 크게 두 경로를 통해 형성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전승이라는 방식의 대중역사학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 역사학자들(그 구성은 복잡하다)의 연구를 통해 축적된 권위있는 역사학이었다. 대중 역사학으로서의 전승은 보통은 신화나 이야기 같은 서사형식을 통해 전승되었고, 전문역사가들의 관심권 밖에 존재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적 정서를 만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교육체제의 정비를 통해 육성된 직업적 역사학자들의 등장과 그들에 의한 역사연구 성과는 각종 시험체제나 교육체제를 통해 대중에게 주입되었으며, 거의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사료들과 축적된 수많은 연구들을 검증하고 비평하는 전문역사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특히 교과서 편찬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시험체제를 사실상 지배한 직업적 전문역사학자들의 권위는 역사지식의 생성, 유통 등의 영역에서 절대적 지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지식의 표준화, 유일화 현상이 역사지식의 유통체제 전반에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적 전승을 사실상 절대화한 재야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이나 일부 종족적 전통을 맹신하는 집단의 저항(자기 조상을 모욕하지 말라는 등)이 있기는 했으나, 학문적 방법론으로 훈련된 전문역사학자들과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를 깨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군부독재체제와 유신시대를 통해 강제되었던 국난극복사형식의 정신교육이나 1980년대 시도되었던 신군부에 의한 역사교과서 집필 시도 등이 그것이었다. 대중적 전승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변형하여 주입하려 했던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했으나, 전문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지식의 허구성들을 지적하여, 과도하게 정치목적의 도구화된 역사지식정보의 생산에 대해 저항함으로써 상대적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도 교과서 국정화 논란 과정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역사지식 생산/유통체제의 특정 정치집단 장악의 시도가 진행되었고, 이번에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전문 역사학자들의 역사지식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서 수행하는 절대적 지위에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전문적 영역에서는 그래도 합리적 의견 교환이 어느 정도 가능했고, 그 결과 결국 역사교육을 지배하려던 특정 정치세력의 시도는 좌절되었으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이용한 대중역사학 특히 유사역사학은 사익의 관점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낸 가장 큰 배경은 역사지식/정보 유통 환경의 변화를 가져온 뉴미디어의 확산이었다. 뉴미디어의 발전은 역사의 대중소비를 확장시켜왔으며, 일부 영상서비스 산업과 결합된 대중소비는 사익을 위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소비용 역사지식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 한 연구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 관객은 역사의 재현에 참여하게 됐고 역사 재현물과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역사를 구분해내며 스스로를 역사의 구경꾼으로서 뿐만 아니라 참여자와 재판관으로 보고 있다. 역사의 본질, 형태와 기록을 둘러싼 현재의 논쟁은 더는 학문적인 역사학자만의 영역이거나 영화와 문학 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역사는 대중의 영역에서 지금 발생하고’ 있다.1)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 한다면 만인이 역사가인 시대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역사교육계에서는 일찍이 주목하고 있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에서는 미국역사표준(National History Standard)’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었었다. 이 논란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랬듯이 정치적 논쟁으로 진행되었고, 역사지식의 생성과 유통의 문제를 노출시켰다. 한 미국의 역사교육학자는 이 논쟁에서 역사를 왜 가르쳐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정치적 논쟁 과정에서 사라졌다고 비판함으로써 그 논쟁의 허망함을 지적했다.

 

사실 뉴미디어에 익숙한 세대가 성장해 가면서, 또 역사관련 정보가 네트워크 상에서 대량으로 축적되면서 교육이라는 역사지식/정보의 권위는 근본적인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 교육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이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데 거의 기여하고 있지 않거나, 기여하는 바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고 있다. 20세기 식 표현을 사용한다면, 역사를 포함한 인문교육(관료/언론/기업들에서는 이것을 인성교육이라고 불렀다)은 학생들을 거의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학생들은 가족의 전승, 영화, 그럴듯한 다큐멘터리 필름, 자극적인 개인방송 등 학교 교육 밖에서 보다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학교교육은 입시목적에 맞게 기능화되어 그러한 변화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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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조선구마사의 홍보용 포스터


최근 국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조선구마사는 그러한 역사소비의 확장이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 사례였다. 여론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련성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 사극제작체제의 허술함을 지적하거나, 한걸음 더 나아가 재현의 윤리에 관한 논의를 확장할 것을 제안하는 등 역사소비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이제 역사를 어떻게 소비하는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흥미가 이 드라마의 대본을 집필한 현실적 배경일 것으로 짐작되고, 방송국 측이나 제작사 쪽에서 드라마 방영중단을 결정하게 된 것은 역사판타지가 역사적 소재를 통해 특정 시대를 재현할 때, 어느 수준까지 재구성이 가능한가에 대한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광고주의 이탈 등 자본의 논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는 남아있다. 제작사나 집필자 측의 사과는 대중의 반응에 집중하고 있다. “불편하게 느끼셨다면등 보통, 기업 등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놓는 사과문은 주체가 배제되고, 대상만이 존재하는 기묘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나 제작자/방송국 측에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모호성의 태도는 대상을 바꾸면 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사실상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드라마가 한참 한심한기원논쟁으로 동아시아 역사패권을 창조하려는 애국주의적중국 대중역사의 역사왜곡문제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조선구마사에 대한 비판을 국뽕들의 대응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었다. 판타지에도 민족의식을 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중국에서 제5세대 감독집단의 대표자 중의 한사람이었던 장이머우의 영웅이라는 영화가 21세기 초에 공개되었을 때, 내부에서는 열광했으나 전문가들이나 외부의 여론은 싸늘했다. 장쩌민의 독재체제에 대한 헌사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는 이 이후 과거를 미화하거나 미장센에 집중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보다는 중국적 현실(승자의)에 매몰된 결과였다. 생존 혹은 부와 명예를 위해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전통을 판타지를 빌려, 혹은 사실주의적 기법을 빌려 화려하게 묘사함으로써 대중과 당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북경대학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화면이 등장하는 수준의 중국에서 장이머우의 변화(혹은 변절?)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장이머우의 변화와 역사의 조선구마사식 재현은 사실은 동일 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기법, 묘사의 수준 등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의적인 역사 재현의 내부에 작동하는 인식의 구조는 크게 차이가 없다. 검증되지 않고 유통되는 네트워크 위의 수많은 역사정보나 자신의 인식틀 속에서 성찰없이 재구성된 역사지식들을 자의적으로 이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인식은 진지한 독서나 성찰적 역사이해를 통해서 얻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탈진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역사소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자의성의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성찰은 사라지고 오직 인용의 방식으로만 역사를 소비하는 현실 속에서, 역사의 잘못된 소비를 통한 역사기억의 왜곡은 그 결과가 심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22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1) 제롬 드 그루트 지음, 이윤정옮김,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22412510003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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