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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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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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4학년에 재학중인 A군은 졸업논문으로 한국화교와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를 비교하는 논문을 쓰고 있다. A군은 재일한국인 3세로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국에 유학 온 학생이다. 일본사회의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 온 A군에게 비슷한 처지의 한국의 노화교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의 노화교와 재일한국인은 근대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거주해 온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노화교 중심의 인천차이나타운
A군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재일한국인과 한국의 노화교의 법적지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에서 전전부터 거주해 온 재일한국인은 단기체류의 일반 외국인과 똑같은 자격을 부여받았다. 1965년 한국과 일본 간에 국교가 수립된 것을 계기로 재일한국인에게 영주할 권리를 명문화 한 ‘협정영주권’이 부여되었다. 1991년에는 ‘협정영주권’의 한계로 지적되어 온 지문날인제도, 강제퇴거문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양국 간에 합의각서가 채택되어 재일한국인에게 ‘특별영주권’이 부여되었다. 특별영주권을 부여받은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개선되었다.
A군의 재일한국인 친구 가운데 교원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아직도 교사가 되지 못한 친구가 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분명하지 않지만 특별영주자는 일본의 공립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 일본의 공립학교에는 초중고와 농아학교, 장애인학교, 유치원이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관리된다. 특별영주자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각 공립학교의 교사 임용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합격자는 공립학교 교원으로 채용된다. 단, 교사 임용의 지위는 임용기간의 제한이 없는 ‘상근강사’이며, 장기간 근무하더라도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필자는 일본에 거주할 때 공립병원에서 재일한국인 의사의 진찰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특별영주자로서 공립병원의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처럼 특별영주자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다. 단, 일반사무직을 개방해 놓은 지방자치단체는 매우 적지만, 의사, 의료기사, 영양사와 같은 전문직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개방해 놓고 있다.
필자가 일본의 인권 관련 회의에 참석했을 때 재일한국인 출신 변호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일본의 사법시험에 응시하여 합격,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일본은 재일한국인에게 사법시험 자격을 부여했지만, 합격이 되더라도 한국 국적인 채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일한국인 김경득(金敬得)이 최고재판소에 그 부당성을 몇 차례에 걸쳐 호소,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수 있었고, 외국인 첫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재일한국인은 사법연수원의 과정을 수료하더라도 판사, 검사로는 임용될 수 없다. 김경득 이후 변호사가 된 재일한국인은 급속히 증가, 2001년에는 재일코리아변호사협회가 조직되어 있다. 또한 특별영주자는 국민연금과 각종 의료 및 복지 혜택도 일본인과 거의 동등하게 향유하고 있다. 올해부터 한국에서 도입된 아동수당도 특별영주자는 1980년대부터 수령하고 있다.
한국의 노화교의 법적지위는 재일한국인과 비교할 때 어떨까? 한국정부는 2002년 노화교에게 영주권을 부여했지만 법적 지위는 매우 취약하다. 노화교는 일본처럼 공립학교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으며 변호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도 없다. 한국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복지혜택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아동수당의 대상에서도 노화교는 제외되어 있다. 이 때문에 국백령(鞠栢嶺) 한성화교협회 고문은 노화교의 영주권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현재의 영주권은 5년마다 출입국관리소에 가서 거류 연장 허가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을 덜어준 것 이외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노화교는 어떠한 법적지위에 있을까? 일본의 노화교는 대만계와 대륙계의 2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는데, 대만출신의 노화교는 재일한국인과 마찬가지로 특별영주자의 지위에 있다. 일본의 식민지 출신자가 아닌 중국 대륙 출신 노화교는 특별영주자가 아니라 (일반)영주자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영주자와 특별영주자의 법적지위는 거의 동일하다. 특별영주자는 재류카드의 상시휴대의무가 없는 대신 일반영주권자는 상시휴대의무가 부과되어 있다는 점, (일반)영주자가 될 수 있는 조건에는 선량하고 일본의 국익에 합치된다고 인정되는 자에 한하지만 특별영주자에게는 그러한 제한이 없다는 점,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즉, 일본의 노화교도 재일한국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A군은 한국의 노화교의 법적지위가 재일한국인 및 일본의 노화교에 비해 낮은 데도 불구하고 지방참정권이 부여된 것을 의아해 한다. 일본정부는 아직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A군은 일본사회가 특별영주자에 대해 일본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제도적 차별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이전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을 인정한다. A군은 한국정부가 노화교에게 지방참정권을 부여하기 이전에 한국의 노화교에게 재일한국인과 비슷한 법적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국백령 고문은 “지방참정권 부여는 재일한국인의 지방참정권을 부여하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A군은 일본의 재일한국인 차별문제를 분명히 밝히려는 목적에서 시도한 졸업 연구에서, 자신의 모국인 한국이 법적지위의 측면에서 재일한국인보다 노화교가 훨씬 열악한 사실을 알고 상당히 당황해 한다.
한국의 노화교는 이처럼 거주국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이지만 대만과 중국으로부터도 배척당하고 있다. 한국인이 대만에 입국할 때는 비자가 필요 없는 반면, 대만(중화민국)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노화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필요하다. 노화교가 소지하고 있는 대만 여권에는 신분증번호(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만인이 소지한 여권과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에 입국할 때는 대만인이면 무비자로 갈 수 있지만, 한국의 노화교는 사전에 해당 국가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 대만정부는 1950년대 초반부터 대만에 유학 온 노화교에게 호적을 부여하여 대만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우대했지만, 이등휘(李登輝)총통 이후 국적법과 호적법을 개정하여 그러한 혜택을 철폐했다. 이것이 화교중학을 졸업한 한국의 노화교 학생의 대만 유학이 1990년대 들어서부터 급격히 줄어든 이유의 하나이다.
중국은 어떠할까? 중국정부는 입국하는 한국의 노화교에게 여행증을 발급한다. 여행증은 비자와 같은 것이지만 중국 국내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도 없다. 이 여행증으로 숙박할 수 없는 중국의 호텔도 많다. 노화교가 중국대사관에 여권을 신청하면 여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만정부가 발급하는 여권처럼 신분증번호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 중국대사관은 중국과 대만의 여권 모두 소지하고 있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암암리에 대만여권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대만의 주한대북대표부도 마찬가지로 중국 여권을 취득한 노화교에게 암암리에 중국 여권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한다.
국백령 고문은 지난해 출판한 책, “나라 없는 난민: 여한화교의 간곤 역정의 증인(沒有國家的難民: 見證旅韓華僑的艱困歷程)”에서 한국의 노화교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들이 그동안 소지하고 있던 것은 중화민국(대만) 여권이다. 우리들의 국적은 당연히 중화민국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정부의 외국인 등록 상 우리들의 국적은 ‘CHINA TAIWAN’이다. 중화민국이 아니고, 중화인민공화국도 아니다. 그래서 한국화교는 스스로 우리들을 ‘나라 없는 난민’이라 자조한다.”
이정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