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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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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아버지가 나의 원수라면? _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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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고아의 위대한 복수[조씨고아대보구(趙氏孤兒大報仇)]


1. 인류 보편의 화두,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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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1736년 발표된 <조씨고아>불역본


조씨고아대보구(이하 조씨고아’)는 중국 원()나라의 대표적 희곡 양식인 원잡극(元雜劇)으로 창작되었으며, 원잡극 가운데 4대 비극으로 꼽히기도 한다.(나머지는 두아원(竇娥冤), 한궁추(漢宮秋), 오동우(梧桐雨)) 이 작품을 쓴 기군상은 원대 후기 작가로, 대부분의 원대 극작가와 마찬가지로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원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작가인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 안에 들지도 않고, 평생 여섯 편의 작품을 썼으나 현재 완정한 형태로 남아 있는 작품은 조씨고아하나뿐이어서 문학사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그가 남긴 조씨고아는 복수라는 인류 보편의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 현재까지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조씨고아는 주인공 조씨고아가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이야기로, 오랜 세월 흥행에 성공했고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극에서 주요 인물인 정영(程嬰)은 조씨고아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며,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목숨을 바쳐 조씨고아의 복수를 돕는다.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게다가 원수인 도안고(屠岸賈)는 악한 인물이기 때문에 조씨고아의 복수를 위한 여러 사람들의 희생은 정의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극의 마지막까지 복수라는 대의(大義)를 향한 의인들의 희생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작품 전체에 비장미가 넘치며, 이는 역사극으로서의 무게를 더한다

 

중국에서 조씨고아는 경극(京劇) 등 전통극의 형식을 통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을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 영상 매체를 통해 재창작되기도 했다. 2013년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41부작 드라마 <조씨고아안(赵氏孤儿案)>2013년 상하이 TV페스티벌 백옥란상[上海电视节白玉兰奖] 드라마부문 대상, 중국 금매드라마예술제[中国电视金鹰奖] 우수드라마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방영되었다. , 천카이거(陈凯歌) 감독의 <천하영웅>(2010)에서는 갈우, 왕학기, 판빙빙 등 유명 배우들이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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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무협활극 조씨고아


한국에서는 2006년에 연극 조씨고아가 초연되었다. 중국의 연출가 티엔친신(田沁鑫)이 원작을 현대극으로 개작했고, 극단 미추가 공연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황준형 연출의 <무협활극 조씨고아>(극단 해를 보는 마음’)가 무대에 올랐고, 2015년에는 고선웅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국립극단)이 공연되었다. <무협활극 조씨고아>는 무협 요소를 첨가해 원작을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으로 재탄생시켰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재치 있는 연출과 깊이 있는 해석을 더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제52회 동아연극상 대상, 연출상, 연기상, 시청각디자인상, 8회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상, 연출상, 연기상 등 그해 주요 상을 휩쓸었고, 이듬해 중국 무대에 올라 주목을 받았으며, 2017년과 2018년의 재공연에 이어 20207월에도 공연되었다

 

2. 동양의 햄릿

 

중국 고전 희곡은 통속성을 큰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원만한 결말을 선호하며 서양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비극이 매우 드문데, 조씨고아는 원잡극사대비극 중에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중국 근대 최고의 학자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왕국유(王國維)는 중국 희곡의 연원과 발전의 역사를 탐구한 송원희곡고(宋元戱曲考)에서 원대의 희곡 중 가장 비극적인 성격을 갖는 작품으로 두아원과 함께 조씨고아를 꼽으며, “세계적 비극들 가운데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평했다.


이처럼 작품성을 인정받은 조씨고아는 중국 고전 희곡 중 최초로 서양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대(元代)의 잡극 1731년 중국 장시성(江西省)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예수회의 죠셉 앙리 마리 드 프레마르(Joseph Henri Marie de Prémare) 신부가 처음으로 조씨고아(L'Orphelin de la Maison de Tchao)’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의 노래를 제외한 부분을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이후 이 작품은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로 번안되었다. 볼테르(Voltaire)는 프레마르 신부의 번역본을 보고 감명을 받아 작품의 시간적 배경을 칭기즈칸 생존 시기인 13세기 초로 바꿔 도덕극 <중국의 고아(L'Orphelin de la China)>를 발표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유럽에서 조씨고아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작품의 결말에서 주인공 조씨고아는 드디어 자신의 가문을 멸족시킨 원수를 갚는데, 그 원수는 다름 아닌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준 양아버지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이뤄진 복수는 순식간에 끝이 나고 남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다. 이 비극적 복수극은 유럽의 독자와 관객들에게 햄릿의 결말에 버금가는 강렬한 여운과 울림을 준 것이다.

 

3. 원수를 키운 아버지, 원수 밑에서 자란 아들

     

조씨고아는 춘추전국 시대 진() 나라 영공(靈公) 재위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영공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인 도안고, 조순(趙循), 조삭(趙朔), 한궐(韓厥)은 실존 인물이며, 이야기의 모티브는 춘추(春秋)사기(史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서에는 진나라 경공(景公) , 도안고가 조순을 역적으로 몰아 조씨 일족을 몰살하려 하나, 조순의 손자 조무가 살아남아 장성한 후 충신 한궐이 간언하여 관직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이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도안고를 악인으로 만들고 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하여 조씨고아를 완성했다

 

작품의 주요 줄거리는 도안고의 참언으로 300여명이 몰살당한 조씨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 조씨고아가 결국 도안고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조씨고아가 살아남고 복수에 성공하기까지 조씨 가문을 돕는 조력자로 떠돌이 의원 정영이 등장하는데, 정영은 실제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극의 서사를 끌고 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4. 복수의 씨앗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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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조씨고아의 내용 중에는 극적인 연출을 위한 신의 한 수라 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도안고가 정영의 아이를 자신의 양아들로 키우겠다고 제안하고 정영이 이를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정영의 아이는 바로 조씨고아다. 도안고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이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조씨고아를 키우게 되고, 조씨고아는 자신의 가문을 멸족시킨 원수의 손에 자라게 된다. 이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조씨고아가 받게 될 충격과 정영의 계략을 알게 된 도안고가 느낄 배반감은 이 장면에서 이미 예정된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처절한 열망의 끝에 찾아온 복수의 순간은 허망하다. 영공은 이번에는 도안고의 가문을 멸족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유유히 퇴장하는데, 이는 또 다른 복수의 씨앗을 심는 일임을 서늘하게 간파하는 순간 복수를 했다는 기쁨 대신 끝없는 공허만 남는 것이다. 이처럼 복수의 허망함에 집중한 것은 천카이거의 <천하영웅>에서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결말에서 도안고와 정발은 정영이 보는 앞에서 검으로 대결을 펼친다. 가문을 위해 복수하려는 정발의 분노에 가득 찬 칼끝과 그 동안 극진한 사랑으로 키워온 아들이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조씨고아임을 알게 된 도안고의 실의에 찬 칼끝이 쉴 새 없이 부딪힌다. 그리고 결국 정발의 칼끝은 도안고를, 도안고의 칼끝은 정영의 심장을 꿰뚫는다. 작품은 햄릿의 결말과 같이 복수하려는 자와 복수를 막으려는 자 모두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조씨고아700여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이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은 복수를 통한 쾌감이 아닌 복수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비극과 허망함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2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27Orphelin_de_la_Maison_de_Tchao.jpg

사진 2. https://www.news1.kr/articles/?2487334

사진 3. https://blog.naver.com/padmeamidala/22215139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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