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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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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호
아름다움과 추함의 가치가 뒤집어진 세상을 노래하다 - 나찰해시(羅刹海市) _ 박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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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와 신기루

   

20237, 중국에 <나찰해시> 열풍이 불었다. 원래 나찰(羅刹)은 인도 힌두 신화에 나오는 악귀 라크샤사(raksasa)를 음역한 것이고, 해시(海市)는 바다 위에 환영처럼 보이는 마을이나 저잣거리 즉 신기루를 말한다. 악귀와 신기루라니, 뭔가 낯설고 몽롱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 단어의 조합은 청나라 초기 문인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이 지은 단편 소설집 요재지이』 속 작품 제목이 됐다. 소설 나찰해시는 악귀들이 사는 나라 나찰국과 신기루와 같은 바다 속 용궁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로서 『요재지이』 가운데 볼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실현시킴으로써 결핍을 채우고 대리만족을 준다. 또 미처 인지하지 못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욕망, 모순 등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득의하지 못한 가난한 서생으로서 포송령은 바로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수많은 지기(知己)를 창조하고,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세태를 꼬집고, 도덕적 가치보다 세속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삐뚤어진 욕망과 폐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풍자했다. 300여 년 전에 나온 요재지이』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현대에도 여전히 읽히고 각색되어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버전과 매체로 확장되고 있다. 단지 그것이 기이하고 신기한 이야기여서가 아니라 낯섦(공포)과 친숙함(쾌감) 속에 우리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찰해시」라는 낯익은 제목이 다른 장르로 변주되어 다시 한번 현대 중국의 문화계를 요동시켰다. 이번에는 소설, 영화가 아니라 노래다.

  

다오랑의 <나찰해시>와 포송령의 「나찰해시」

 

10여년 만에 컴백한 중견 가수 다오랑(刀郎·52)의 신곡 <나찰해시(羅剎海市)>는 단순한 리듬과 민요풍의 곡조로 이루어진 묘하게 중독성 있는 노래이다. 비록 현대 가요계의 세련된 노래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발표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100억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중국 남녀노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찰해시> 노래가 실린 앨범 제목은 <산가료재(山歌寥哉)>이다. 직역하자면 산가가 거의 없구나라는 탄식이다. 산가는 민간곡조의 노래들 즉 민요를 말하며, 료재는 원래 쓸쓸하다, 적막하다, 텅 비었다는 의미로 적다, 거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옛 민요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지금 이 곡들을 통해 사라지고 있는 민요를 선보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한편, 해음(諧音)이라는 중국어 발음상의 특성으로 인해 이 제목은 쉽게 또 다른 의미를 연상시킨다. 료재(寥哉: liáozāi)요재(聊齋: liáozhāi)와 발음이 비슷하다. 따라서 이를 산가요재(山歌聊齋)로 보면 민요 요재』, 즉 요재지이』 이야기에 민간의 곡조를 붙여 창작한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 수록된 노래 제목에 <나찰해시>를 비롯하여 <화피(畵皮)>, <화벽(畵壁)>, <편편(翩編)> 등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요재지이』에 수록된 이야기 편명과 똑같다. 그러니 제목만 보아도 이들이 요재지이』 내용을 가지고 만든 곡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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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산가료재(山歌寥哉)>                               사진 2. 다오랑(刀郞)

  

이 곡들의 가사는 요재지이』 원작의 내용을 반영하면서도 현대 사회에 대한 다오랑 특유의 풍자 의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데, 알 듯 모를 듯한 언어 유희로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곡이 바로 <나찰해시>.

  

원작 「나찰해시」는 수려한 외모와 재능을 지닌 마기(馬驥)의 기이한 여행담이라고 할 수 있다. 상인의 아들인 마기는 열네 살에 동자시를 통과하고 수재(秀才)가 될 정도로 글을 잘 짓는다고 소문이 났으나 경제적 현실을 우선시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학업을 포기하고 장사를 배웠다. 한 번은 몇몇 장사꾼을 따라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물건을 팔러 갔다가 큰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요행히 나찰국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그는 큰 혼란을 겪는다.

  

그곳 사람들은 모두 다 기괴하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기를 보자 요물로 생각하여 고함을 지르며 도망쳤다. …… 마기가 그들에게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물었더니 “우리나라에서 중시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외모랍니다. 제일 잘 생긴 사람이 중앙의 최고 관리가 되고 그 다음 사람이 지방관이 되며 그 이하 사람이라도 귀인의 총애를 얻게 되면 그들이 베푸는 은전으로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지요. 저처럼 못생긴 사람(마기의 관점에서는 가장 자신과 닮은 정상적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불길하다고 여겨 내다 버리기 일쑤랍니다. 만약 당장 내다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대를 잇기 위함이지요.” …… “저 사람이 재상입니다.” 마기가 그 사람의 생김새를 살펴보았더니, 두 귀는 거꾸로 뒤집혀 늘어지고 콧구멍이 세 개였으며 눈썹은 마치 주렴처럼 축 늘어져 두 눈을 뒤덮고 있었다. 

  

마기가 도착한 나찰국은 학문과 도덕적 수양에 힘쓰는 것보다 외모를 중시하고, 외모가 추하면 추할수록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나라였다. 이처럼 아름다움과 추함의 가치가 뒤바뀐 곳에서 괴물 취급을 받던 마기는 자신의 얼굴에 석탄 가루를 잔뜩 묻혀 추하게 만든 이후에야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는 분장한 가짜 얼굴로 왕 앞에 나아가 춤과 노래 솜씨를 선보이며 총애를 받는다. 그러나 그를 질투하는 이들의 의심과 견제도 점점 심해진다. 마기는 결국 거짓된 삶을 끝내고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겠다며 해시(海市)로 떠난다. 해시에서 용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인도된 마기는 글솜씨로 실력을 인정받고 용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고향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나찰국과 용궁은 서로 대비되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이쪽에서는 괴물로 저쪽에서는 훌륭한 인재로 평가받는다.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는데 기준에 따라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과연 어느 쪽이 참일까?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본래의 실력보다 꾸며진 외모로 평가하는 세상에서 존재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실제 실력보다 과도한 평가는 결국 손에 닿을 듯 닿을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이야기 말미에서 포송령은 거짓으로 꾸민 얼굴로 아부하는 일만은 인간 세상과 귀신 세계가 다를 바가 없다고 일갈한다. 나찰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위선과 가식으로 치장하고 권력자에게 아부함으로써 부귀를 탐하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찰해시」는 전통적인 사‧농‧공‧상의 사민관(四民觀)에서 벗어나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주장하고 가난한 사인(士人)보다 생계를 도모할 수 있는 상인이 낫다는 생각이 만연해진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또한 나찰국과 용궁에서의 경험은 해외로 상업 활동을 넓힌 상인들이 겪을 수 있는 위험과 모험, 나와 다른 타자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찰해시」가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지만 그 안에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겹쳐지기에 지금 읽어도 매우 흥미롭다.

  

한편, <나찰해시>의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원래 이야기의 주인공 마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매우 상징적이고 모호한 언어를 사용하여 위선적인 세상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한 내용은 『요재지이』「나찰해시」 본 이야기를 약간 비틀면서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과연 무엇을 풍자하고 있는 것일까? 가사의 단어들이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노래는 해석하기에 따라 풍자의 대상이 달라지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당나귀와 닭

  

마호(马户)는 자신이 당나귀()인 줄 모르고       那马户不知道他是一头驴

우조(又鸟)는 자신이 닭()인 줄 모르고              那又鸟不知道他是一只鸡

  

이 노래에는 원래 주인공 마기가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또 다른 존재들이 눈에 띈다. 당나귀와 닭이다. 일단 나찰국에서 만난 기괴한 존재들을 이러한 동물로 비유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사를 살펴보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다오랑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마호는 당나귀(+=)이고 우조는 닭(+=)이라고 하는 것을 들을 때만 해도 이건 한자를 쪼개(破字) 그 의미를 가지고 노는 문자 유희임을 눈치챘다. 어라, 이거 재미있네. 또 노래를 들어보니 마호와 당나귀, 우조와 닭이 리드미컬하게 반복되어 나온다. 저절로 머리가 끄덕끄덕, 몸이 흔들흔들, 매우 흥겹다. 내용이 「나칠해시」에서 나온 것이니 가사의 뜻은 금방 알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미추와 시비, 흑백이 전도되어 헷갈리고 어지러웠던 나찰국의 상황처럼 가사 첫 부분부터 해석이 모호하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심지어 그 당나귀와 닭이 우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라니,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심호흡을 하고 단어의 숨은 뜻을 유추하며 「나찰해시」 내용에 비추어 다시 천천히 해석해보았다.

  

罗刹国向东两万六千里                 나찰국은 동쪽으로 26천리 1)
过七冲越焦海三寸的黄泥地         칠충을 넘고 초해를 건너 세 치의 누런 진흙밭 2)
只为那有一条一丘河                    그곳엔 일구하라는 강이 하나 있어 3)
水流过苟苟营                           강물은 흘러 흘러 구구영을 지난다 4)
 
苟苟营当家的叉杆儿唤作马户       구구영을 관리하는 포주 이름은 마호
十里花场有浑名                             십리 화류계의 유명 인물

她两耳傍肩三孔鼻                         어깨에 닿는 두 귀와 구멍이 세 개인 코

未曾言先转腚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엉덩이부터 먼저 흔들흔들

每一日蹲窝里把蛋来卧                  매일 둥지에 쭈그리고 앉아 알을 품고 부화시키고
老粉嘴多半辈儿以为自己是只鸡   유들유들 입 놀리며 반평생 자기가 닭인 줄 아네
 
那马户不知道他是一头驴              그 마호는 자기가 당나귀인 줄 모르고
那又鸟不知道他是一只鸡              그 우조는 자기가 닭인 줄 모르고 5)
勾栏从来扮高雅                             구란(송대 공연장)의 예인은 본래 고상하고 우아한 척 꾸미고
自古公公好威名                             자고로 내시(측근)들은 위세 부리기 좋아하고
 
打西边来了一个小伙儿他叫马骥   서쪽에서 한 젊은이가 왔네. 그의 이름은 마기
美丰姿 少倜傥华夏的子弟            멋진 외모에 젊고 기개 넘치는 화하(중국)의 청년
只为他人海泛舟搏风打浪             그는 세상에 배를 띄운 후 바람과 파도에 휩쓸리다
龙游险滩流落恶地                        용이 험한 여울에 밀려오듯 험악한 곳에 떨어졌네
他见这罗刹国里常颠倒                 마기는 보았네, 이 나찰국에서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바뀐 것을
 
马户爱听那又鸟的曲                     마호가 우조의 노래 듣는 걸 좋아하니
三更的草鸡打鸣当司晨                 한밤중에 암탉이 울면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인 양하고
扇门楣上裱真情                         반쪽짜리 문 위 가로지른 나무 위에다 자신의 진정을 표현하네 6)
 
它红描翅那个黑画皮                     붉게 그린 날개, 검게 칠한 피부
绿绣鸡冠金镶蹄                            녹색으로 꾸민 벼슬, 금으로 장식한 발굽
可是那从来煤蛋儿生来就黑          그러나 석탄 같은 검은 알은 태어날 때부터 본디 검은 것이라
不管你咋样洗呀那也是个脏东西   아무리 씻어봐야 여전히 더러운 것일 뿐
 
……


爱字有心                                       사랑()’이라는 글자에는 마음()’이 들어 있고
好歹                                       마음에는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있다네
百样爱也有千样的坏                     수백 가지 사랑에는 또 수천 가지 나쁜 것이 있고
女子为好非全都好                        여자(+)’좋은 것()’이 되지만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며
还有黄蜂尾上针                            나나니 벌의 아름다운 꼬리에는 침이 숨어 있다네
 
西边的欧钢有老板                        서쪽에 있는 유럽의 어느 철강 회사 주인이
生儿维特根斯坦                                      아들을 낳았는데 바로 비트겐슈타인 7)
他言说马户驴又鸟鸡                     그가 말하길, ‘마호당나귀우조닭이라 하면
到底那马户是驴还是驴是又鸟鸡   대체 그 마호가 당나귀인가 아니면 당나귀가 우조 즉 닭인가
那驴是鸡那个鸡是驴                     그 당나귀가 닭이라면 그 닭은 당나귀인가
鸡是驴那个驴是鸡                     그 닭이 당나귀라면 그 당나귀는 닭인가
那马户又鸟                                    그 마호우조(당나귀와 닭)

是我们人类根本的问题                  우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라네

   

첫 부분에서 나찰국의 위치와 그곳의 지형을 설명한다. 중국에서 동쪽으로 26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찰국은 힘든 고비 고비를 넘어 도착한 곳이지만 매우 작고 더러운 곳이다. 그 곳에는 교화가 되지 않은 악인들이 가득하고 이들은 이익추구를 위해 개나 파리처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아첨과 간사한 행위를 일삼는 구구영이라는 지저분한 곳으로 흘러든다. 여기서 구구영은 기녀나 배우들이 사는 기원(妓院) 또는 연예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곳에는 기괴하고 추한 외모의 주인 마호(당나귀)가 권력을 휘두르며 닭이 알을 소중히 품고 있듯 돈과 이익만을 소중히 여긴다. 즉 자신이 당나귀인지 닭인지 어떤 자질을 가진 존재인지 모르고 행동한다. 그곳에 모여든 기녀나 배우들은 자신들을 한껏 꾸미고 뽐내지만 그것은 거짓으로 꾸미고 분장한 것이지 결코 그들의 본질이 아니다

  

서쪽에서 온 즉 중국에서 온 마기라는 젊은이는 험한 풍파를 견뎌내고 나찰국에 와서는 그곳의 가치 기준이 전도됨을 목도했다. 주인인 마호가 자신이 거느린 무리들의 아첨을 좋아하니 그 무리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비위를 맞춘다. 암탉인데 수탉 흉내 내며 한밤중에 울어대고 진정(眞情)을 가장한 채 손님을 유혹하는 기녀처럼 온갖 가식의 탈을 쓰고 있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도록 화려하게 날개를 붉게 칠하고 벼슬을 녹색으로 꾸민 우조, 나찰국에서 검은 석탄 가루를 얼굴에 칠하고 잘 생긴 것으로 위장한 마기처럼 몸을 검게 칠하고 발굽을 금으로 장식한 마호. 그러나 아무리 치장하고 꾸민다 해도 새까맣고 악한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자신의 이익과 욕망만을 추구하는 마호와 우조는 자신들의 모습이 만들어진 가짜이며 위선인 줄 모르고 그저 고상하고 멋지다고 착각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도덕적이고 훌륭한 존재가 아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모두 좋은 마음만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도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뒤섞여 있고, 여자와 나나이 벌과 같이 아름다운 것에도 독침과 같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치명적인 것이 숨어 있다. 즉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는 것들이 보이는 그대로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기에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다오랑는 노래 가사에서 언어유희를 사용하며 즐기더니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아예 언어게임 이론을 제기한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을 거론한다. 언어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기하며 언어가 일정한 환경 아래 의미가 발생한다고 주장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고려해본다면 다오랑 스스로 이 가사가 상황에 따라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은근히 밝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나귀+++(马户驴又鸟鸡)으로 이루어진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마호는 당나귀이다, 마호 당나귀는 우조 닭이다. 그럼 당나귀는 우조 닭인가? 그럼 당나귀가 곧 닭인 것인가? 그 당나귀와 닭은 본디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욕망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천하고 악한 본성과 자질을 가진 존재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치장을 해대는 가식 덩어리이다. 이러한 당나귀와 닭의 문제는 단지 나찰국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과 추함,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어 추한 것과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다오랑은 포송령과 마찬가지로 환상적이고 기괴한 나찰국의 추한 모습 속에서 현대 사회의 병폐를 꼬집고 있다.

  

언어의 힘과 예술의 힘

  

그렇다면 최근 들어 부쩍 중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글이나 노래 등을 검열하는 중국 당국이 어째서 이 노래를 허용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중국 당국과 매체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는 것이다. 첫째, 중국 민가를 활용하고 고전소설에서 소재를 취해 중국 전통 문화를 보급, 확대시킬 수 있다는 측면이 강조됐다. 중국 국영 CCTV노래에 짙은 민족적 정서를 담았다고 이 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둘째, 가치가 전도되고 비도덕적인 사회인 나찰국이 바로 미국을 비유한다고 보아 이 노래를 반미 애국송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에서 동쪽으로 대략 26천리 떨어진 곳에 미국이 있으며, 미국 민주당의 마스코트가 바로 당나귀이다. 또한 닭은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의 비유다. 이렇게 보면 마호와 우조는 우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가사도 미국이 문제라고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이 노래가 중국을 풍자한다는 프레임에 걸리지 않고 검열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강도 높은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백지 시위나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전례에 비추어보면 공산당 간부의 부패 문제나 능력, 인품 모두 떨어지지만 아첨과 파벌로 고위직을 꿰차는 현실 등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중국의 사회문제들을 고전과 민요라는 안전장치로 무장한 노래로 풍자한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또 다른 해석이 중국 네티즌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는 비주류였던 다오랑을 배척한 중국 주류 가요계의 문제를 풍자한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사천성에서 태어난 다오랑은 17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스스로 음악을 익혔다. 서북 신강 지역에서 활동하며 2001년 첫 앨범도 신장에서 발표했다. 그의 노래에 티베트와 신강 지역 소수민족의 음악풍이 짙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그의 이력이 한몫한다. 첫 앨범은 실패로 끝났지만 20042002년의 첫눈이란 앨범을 성공시키며 중국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당시 중국 본토 주류 가요계의 거물이었던 왕펑(汪峰)과 양쿤(杨坤), 나잉(那英), 가오샤오쑹(高晓松) 4인방은 그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노래 수준도 낮고 가치도 없다, 다오랑 열풍은 음악계가 슬퍼해야 할 일, 다오랑 노래는 음악이 아니다, 다오랑 앨범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라는 등의 혹평과 비난을 쏟아내며 다오랑을 짓밟았고 결국 다오랑은 팬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던 그가 긴 공백기를 깨고 절치부심하며 만든 작품 <나찰해시>를 들고 다시 나타났고 대중들은 또 한 번 환호했다

  

이 노래가 다오랑을 공격했던 주류 가요계의 허위와 실력 없음을 풍자한다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나찰국은 중국의 주류 가요계이며 구구영은 절강위성TV에서 방영하는 중국의 훌륭한 소리(中国好声音)와 같은 가요 경연 프로그램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다오랑을 비난했던 주류 가요계의 인사들은 자신의 좋은 평가만을 바라며 실력보다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연출된 개인사로 치장한 예비 가수들의 멘토로서 그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정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아첨과 가식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 못하는 마호(당나귀)라 할 수 있다. 특히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엉덩이부터 먼저 흔들흔들한다는 모습은 노래도 들어보지 않고 심사대에 앉아서 회전의자를 흔들흔들 돌리며 거만하게 평가부터 늘어놓는 가요 프로그램 심사자들의 허위를 꼬집은 것이다. 또한 마호가 우조의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는 표현은 자질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수준도 모르고 남을 평가하고 있는 모습을 풍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건실한 청년 마기는 곧 다오랑 자신이다. 가치가 뒤집어진 나찰국-진정한 음악 실력을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국의 주류 가요계에서 이러한 문제를 음악으로 통렬히 비판하는 다오랑의 반격에 대중들이 힘을 보태주는 양상이다.

   

이처럼 다오랑의 <나찰해시>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둔 흥미로운 노래이다. 중국고전소설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풍부한 함의를 갖는 작품들이 자꾸 소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고전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어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고전을 가공하여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은 그 파급력이 매우 크다. 지난 해 많은 이가 본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 성공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려운 역사책보다 잘 만든 역사소설이나 영화가 훨씬 낫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감동적으로 본 역사 소재의 영화로부터 다시 역사서를 찾아 읽는 분위기가 형성되듯 다오랑의 「나찰해시」 열풍으로부터 『요재지이』 다시 읽기가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추함이 뒤집어진 세상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안목을 길러야 할 때이다.

  

  

박계화 _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이 글은 연세대학교 중문과에서 발간하는 『연중지』 2(2024.2)에 기고한 아름다움()과 추함()이 전도된 세상을 노래하다- 다오랑(刀郞)과 포송령(蒲松齡)나찰해시(羅刹海市)’의 내용을 재구성한 글이다.


*참고문헌

1) 『요재지이』나찰해시에는 나찰국에서 서쪽으로 26천리 떨어진 곳에 중국이 있다고 되어 있다.

2) 七冲, 焦海, 三寸, 黄泥地 등은 원래 중의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인체의 소화, 흡수, 배설 계통에 관한 명칭으로 이 계통이 원활하게 통하지 않고 막히게 되면 큰 병이 생긴다. 이 구절은 험난하고 위험한 여정을 거쳐 나찰국에 도착함을 의미한다. 黄泥地는 배설기관을 가리키므로 나찰국이 그만큼 더러운 곳임을 비유적으로 쓴 것이다『요재지이』나찰해시에서 마기가 탄 배가 폭풍우에 휩쓸려 나찰국에 떨어진 내용에 상응한다.

3) '一丘河一丘()와 발음이 같아서, 표면적으로 일구하라는 강이름처럼 보이지만 실은 언덕 위에 가득한 오랑캐라는 뜻이다. 즉 도덕이나 예의범절을 모르는 악인들이 그곳에 가득하다는 의미이다.

4) '苟苟营狗苟蝇营의 의미이다. 부귀공명을 위해 개처럼 꼬리치고 파리처럼 들러붙는다는 뜻으로 아첨과 간사한 행위가 난무하는 더러운 곳을 의미한다.

5) '마호(马户)’우조(又鸟)’는 하나의 한자를 해체해 놓은 문자유희로서 각각 당나귀()’()’을 의미한다.

6) '半扇门은 기녀가 손님을 기다릴 때 열어 놓고 손님이 들어오면 닫는 반쪽짜리 문으로 기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기녀는 손님에게 자신의 정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 문 위에는 진정(眞情)’이라 써서 붙였다고 한다. 마음을 속이고 손님에게 영합하는 진실하지 못한 모습이다.

7)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로 특히 언어와 현실 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으며 철학의 역할은 언어 분석이라고 여기며 분석 철학의 시대를 열었다. 그는 언어, 의미, 사고의 본질을 탐구하며 언어게임, 사용론, 의미론 등의 개념을 도입했다.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www.360doc.com/content/23/0801/10/1090794514_1090794514.shtml

사진 2. http://www.360doc.com/content/23/0801/10/1090794514_1090794514.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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