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사진 1 보름달
가을을 주제 삼는 시가(詩歌)에는 유독 ‘쓸쓸함’을 노래하면서 그 쓸쓸함을 밤하늘에 떠 있는 달(月)로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이 오면 인간의 생체시계가 단번에 알아채는 듯 무언가 모르게 이렇듯 쓸쓸해진다. 중추지월(中秋之月)이 오고 열닷새 날이 되면 가을의 한가운데라고 하여 ‘가위’ 즉 ‘중추(仲秋)’가 돌아온다. 이 무렵이 되면 명절 분위기가 물신 풍기며 “달도 한가득 행복도 한가득”과 같은 광고카피가 텔레비전에 등장하고 거리에는 추석맞이 명절용 선물세트가 눈에 띤다. 가장 바쁜 곳은 재래시장의 방앗간이겠지만 한국의 화교 사회의 과자점(菓子店)도 방앗간 못지않게 바빠진다. 명절 음식으로 한국에서는 송편을 먹지만 중국에서는 월병(月餠)을 먹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두 문화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의 화교들은 자연스레 월병도 먹으면서 송편도 먹고, 월병을 선물하면서 선물세트도 선물한다. 특이하다면 특이하지만 한국의 추석 풍습처럼 성묘, 차례 지내기, 추석 민속놀이도 한다. 추석의 송편과 월병,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공통되는 의미 속에서 서로 다른 컨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이 상이한 컨텐츠에 모두 노출되어 있는 한국 화교의 입장에서는 송편이 반달 형태를 띠고 월병이 보름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 의문이 들곤 한다.
사진 2 송편
사진 3 월병
사실 송편이 왜 반달의 형태를 띠고 월병이 보름달의 형태를 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월병이 보름달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일종의 ‘간섭현상(Interference)’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미 습득하고 알고 있는 보름달이 둥글다는 정보 때문에 ‘餠(병)’이 원래 둥근 형태였다는 기억을 방해하는 것이다. 중국의 《한어대사전(漢語大辭典)》에서는 ‘餠(병)’을 ‘원형 혹은 평평한 원형의 반죽음식(圆形薄片或扁圆形的面制食品)’ 또한 영어로도 ‘ cake 혹은 a round flat cake’으로 번역한다. 즉 월병은 원래 둥근 모양으로 보름달과는 관련 없다는 것이다.
월병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많으나 모두 전설의 형태로 전해진다. 중국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시기의 ‘太師餠’이야기에서부터 주원장(朱元璋)과 원(元)나라의 ‘주원장항원조(朱元璋抗元朝)’이야기 그리고 ‘상아(嫦娥)’이야기 등 무수히 많다. 이중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당(唐)나라 태종(太宗, 598~649) 때 이정(李靖) 장군이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투루판(Turpan, 吐魯番) 상인이 승전을 축하하는 마음에 둥근 모양의 호병(胡餠)을 태종에게 바쳤다. 이때가 8월 15일이라 태종은 호병을 상자에서 꺼내 “호병으로 달님을 초대한다”라고 외치면서 신하들과 함께 먹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8월 15일에 호병을 먹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 후 현종(玄宗, 685~762)이 양귀비(楊貴妃, 719~756)와 함께 달구경을 하며 호병을 먹다가 현종이 ‘호병’이라는 이름을 싫어하자 양귀비가 “그러면 ‘월병(月餠)’으로 부르죠”라고 하여 그 뒤부터 월병이라는 이름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진 4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
위 이야기는 비록 전설이지만, 중국에서는 월병이 실제 ‘호병(胡餠)’에서 유래 된 것으로 본다. 월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공갈빵과 같은 종류의 음식이다. 공갈빵을 중국에서는 ‘탕구쯔샤오빙(糖鼓子燒餠)’이라고 하는데 월병이 바로 이 샤오빙(燒餠)에 속한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에 가면 중국 과자점에서 공갈빵과 월병을 함께 판다. 차이나타운의 과자점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호떡집’으로 불렸다. 당시 ‘호떡집’에서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월병을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샤오빙’에 소를 넣어 구우면 바로 월병이 된다. 현재 우리가 먹는 소위 말하는 ‘기름호떡’이 둥근 모양인 것도 ‘병(餠)’에 속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월병은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음식이다. 한국 화교의 시초를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광둥성(廣東省) 수사제독(水師提督) 우창칭[吳長慶] 휘하의 군대를 따라 온 40여 명의 상인으로 본다면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사실 전쟁에 의해 생겨난 음식들은 많다. 가깝게는 한국전쟁 후의 ‘부대찌개’가 그렇고, 멀게는 징기스칸의 ‘분유’나 나폴레옹의 ‘통조림’ 등도 그러하다. ‘호병’ 또한 일종의 전쟁 식량이었다는 설도 있다. ‘호병’은 일종의 건량(乾糧, 먼 길을 가는 데 지니고 다니기 쉽게 만든 양식)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오가는 정기여객선 이통환(利通丸)이 제물포에 닿으면 두꺼운 호떡을 마치 탄대처럼 들쳐 멘 중국 남자들이 새까맣게 내렸다”고 한다.
그러면 송편은 왜 반달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송편 또한 월병처럼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지만 삼국시대 백제 의자왕 때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궁궐 안 땅속에서 거북등이 올라와 그 거북이 등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만월(滿月)은 보름달을 의미한다. 이 글귀의 내용이 궁금해서 학식이 많은 사람을 찾았고, 학자는 “만월인 백제는 둥근달이 환하게 뜨니까 이제부터는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고, 신라는 반달이기 때문에 앞으로 차차 커져서 만월이 되므로 승승장구의 역사는 신라 쪽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다. 이때부터 반달 모양의 송편을 먹으면 전쟁터에 나가서도 승리를 하고, 가정에서도 화목하고 모든 일이 잘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송편의 모양이 둥근 모양이 아닌 반달 모양이 된 것이라고 한다.
위 이야기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전쟁’에 관한 얘기다. 그렇다면 송편이 반달이라고 하는 것 또한 일종의 ‘간섭현상’은 아닐까? 송편의 모양을 사람의 ‘귀 모양’으로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아래의 기사를 보자.
그림 1 1978년 07월 18일 경향신문 3면 사회 기사
-기사의 일부 내용-
…청나라에 대한 국민 감정도 별로 좋지 않아서 떡국에 메밀로 빚은 만두를 넣어서
「胡國놈 귀」라면서 씹어 먹는 풍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아마 丙子胡亂 때문일 게다. …
위 기사는 1978년 7월 18일 경향신문 3면 사회면에 실린 기사이다. 만두를 빚어 “호국놈의 귀라면서 씹어 먹는 풍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만두의 모양이 귀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실 ‘교자만두(餃子饅頭)’의 원래 이름이 ‘교이(嬌耳)’라고 하는데 귀 ‘이(耳)’ 자가 들어간다.
귀와 전쟁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가질 ‘取(취)’자의 갑골문 형태를 보면 귀와 전쟁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취할 取(취)자의 자형변천과 해석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取’는 ‘잡아 죽인다’ 자형으로는 ‘又’자와 ‘耳’자를 쓰며 회의(會義) 문자에 속한다. 《周禮》에서는 “승리한 자가 적의 왼쪽 귀를 베어내다(獲者取左耳)”라고 하고 《司馬法》에서는 “헌납할 귀를 싣다(載獻聝)”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又’자는 손으로 잡는 모양 그리고 ‘耳’자는 귀의 모양으로 ‘손으로 귀를 잡아 베는 모습’이다.
그림 3 取(취)자의 갑골문
이렇듯 반달의 모양을 하고 있는 송편이 어쩜 귀 모양일 수도 있다. 원래는 전쟁 때 적군의 머리를 베어 오면 그 머리의 수만큼 포상이 주어진다고 한다. 사람의 머리가 부피도 크고 무게도 무겁고 해서 왼쪽 귀를 베어 포상을 대신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또 하나의 명절음식인 만두(饅頭)의 두(頭)자가 머리 ‘頭(두)’자이다. 전쟁에 있어 ‘귀’는 적군의 죽음에 따른 승리를 나타낸다. 또한 전군의 ‘귀’는 포상으로 이어져 곧바로 ‘돈(錢)’이 된다. “반달 모양의 송편을 먹으면 전쟁터에 나가서도 승리를 하고, 가정에서도 화목하고, 모든 일이 잘된다고 믿게 되었다고 한다”는 이야기와 부합한다. 설날에 먹는 떡국에서도 이와 같은 풍습을 발견할 수 있다. 떡국의 모양이 바로 엽전(葉錢)의 모양이다. 떡국에 당면을 넣는 지역도 있는데 이것은 엽전을 꿰는 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렇게 떡국을 먹으면서 한 해의 부(富)를 기원한다고 한다. 이렇게 송편이 반달 모양이 아닌 귀의 모양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는 상동(相同)하면서도 상이(相異)해서 매우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元寶(원보, 중국에서 쓰던 화폐의 하나)’를 먹는다는 의미로 설날에 만두를 먹는데, 한국에서는 엽전(葉錢) 모양의 떡국을 먹는다. 같은 날에 이런 금전(金錢)을 상징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한 해의 부(富)를 기원하는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같은 날에 서로 다른 음식을 먹는다는 다른 점도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추석을 매우 비중 있는 명절로 쇠지만, 중국에서는 2008년에서야 국가가 공휴일로 지정했을 정도로 한국과는 다르다.
현재 이러한 문화적 흥미는 한·중 두 나라의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로 전략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이러한 자문화중심주의는 민족 간 또는 국가 간 협력을 모색하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자기 문화의 발전을 위한 통찰을 얻는 데도 저해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중 양국의 문화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문화적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의 관점을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중화요리, 그 '식(食)'과 '설(說)' 19】
주희풍 _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수료 / 인천화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image.baidu.com
http://blog.naver.com
서울 명동 도향촌(稻香村)제공
http://image.baidu.com
http://newslibrary.naver.com
http://www.vividict.com/WordInfo.aspx?id=564
필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