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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9월호
한국을 사랑한 웨이하이 _ 손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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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산둥성은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입가에 한가득 검은 흔적을 남기며 맛있게 먹던 짜장면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고 진출한 지역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산둥성은 친근하다. 지도상에서 산둥성은 한국과 마주보며 주거니 받거니 마치 역사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형상이다. 위도나 기후도 한국과 비슷하고 눈에 들어오는 풍광도 왠지 낯설지 않다. 그중 예전에는 무심했지만 최근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한 친구 같은 도시 웨이하이에 주목하게 된다

 

웨이하이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푸른 바다와 화창한 날씨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웨이하이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이다. 웨이하이에서 한국어를 제법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이렇게 상냥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한국인들에게 언제든지 친절을 베풀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한류가 중국전역을 휩쓸고 있고 한국의 연예인이 수백억 스타가 되었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 시점에서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그러나 중국이 많은 산업분야에서 이미 발 빠르게 한국을 추월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G2로서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을 내보이는 지금,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의 뉘앙스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이하이가 여전히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호감을 드러내는 것은 의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웨이하이는 이미 우리 역사의 한 부분에서 필연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신라인 장보고가 웨이하이의 적산(赤山)에 법화원(法華院)이라는 신라인의 사찰을 세웠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찍이 당나라에 건너갔던 장보고는 807년에 무녕군(武寧軍)에 입대하여 무녕군 소장(小將)이 되었다. 그 후 장보고는 무녕군을 떠나 적산을 중심으로 무역에 종사하여 큰 부를 축적했고, 824년에는 법화원을 세워 신라인의 구심점이 되었다.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한중일 해상의 패권을 장악하여 해신(海神)으로 불렸던 것은 그가 신라로 돌아온 후의 일이었다.

  

사진 1  법화원(法華院)의 장보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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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적산에 남아있는 법화원 건축물은 일본 승려 엔닌(圓仁)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토대로 중국정부가 복원하여 1990년에 개관한 것이다. 입당구법순례행기에는 장보고가 적산에 법화원을 세워 한중일 승려들을 모아놓고 법화경을 읽었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엔닌은 일본으로 돌아가 교토에 적산선원(赤山禪院)을 건립하고 일본 천태종의 효시가 되었다. 따라서 한중일 불교 천태종의 구심점이 법화원이었다는 사실은 불교계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화원이 가진 이러한 역사적 상징성을 중국정부가 복원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을까. 여기에는 한국과의 인연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방문이 이어져서 한국과 더욱 가까운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하는 웨이하이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되었던 것은 아닐까.

 

사진 2  웨이하이 적산(赤山)의 법화원(法華院)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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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하이가 긴 식민의 역사를 지나 지금과 같은 면모로 개발되기 시작했던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다. 개혁개방 초기에 지역 GDP10억 위안이 채 되지 않았던 웨이하이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는 웨이하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기도 전인 1990년에 이미 인천-웨이하이 간에 한국과 중국을 잇는 국제 여객선 항로가 처음 개통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성화가 이 항로를 이용하여 웨이하이에서 인천으로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0년에 한국과 경제교역을 시작한 이후 웨이하이의 경제 성장 속도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국이 웨이하이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해서 한국은 웨이하이에게 더없이 중요한 국가이다.

 

그 하나의 증거가 중국 최초의 한국식 테마 상업관광단지인 한러방(韓樂房)의 건립이다. 우리나라에 차이나타운이 있듯이 한러방은 웨이하이에 조성된 코리아타운이다.1) 여기에는 한국상업거리, 여수문, 경회루, 낙천문화광장, 야시장, 각종 한국문화 테마공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한러방은 한국의 여수시와 웨이하이시 간의 합작품으로, 그 상징이 된 여수문은 2012년 여수시가 기와 2만장을 지원하면서 건립되었다. 기와 하나 하나에는 우리나라의 국화인 무궁화 도안이 새겨져 있고, 여수문 현판은 김충석 여수시 시장이 친필로 쓴 것이다. 이곳 한국식 먹자골목에는 불고기, 비빔밥, 떡볶이 가게가 즐비하고, 곳곳에 한국식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한국상품 교역전시장도 갖추고 있어 한국의 일용품과 식품도 전시 판매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코리아타운이 한국인들이 하나 둘 모여살기 시작하고 한국 상점과 음식점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면, 한눈에 봐도 한러방은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 코리아타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조성한 웨이하이시의 야심찬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그럴까, 아직은 어설프고, 아직은 한국인들보다 중국인들로 북적인다.

 

사진 3  한러방(韓樂房)의 여수문(麗水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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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웨이하이에게 한국은 특별하다. 웨이하이는 산동성의 끝부분에 위치하여 한국과는 가깝지만 중국 내에서는 역사적으로 변방을 면치 못했던 곳이다. 문화의 전파도 늦었고 문명의 혜택도 별로 받지 못한 곳이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웨이하이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는 늘 동북 아니면 한반도였다. 그러한 지정학적인 위치는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웨이하이의 산업구조를 살펴보면 어업, 수산품가공업, 관광업 이외에는 이렇다 할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 따라서 현재의 돌파구는 바로 한중 FTA이고, 한국이며 인천이다. 이것이 웨이하이의 한국에 대한 적극성의 원동력이다.

 

특히 웨이하이가 한중 FTA 시범도시로서 인천과의 파트너십을 내세우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웨이하이가 현재 한중간의 해상 국제전자상거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웨이하이는 중국 내 한국상품의 물류집산지,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한 중국상품의 물류집산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웨이하이에서 저녁에 선적한 물품이 다음날 아침 인천항에 도착하고, 통관을 거쳐 당일 오후에 출고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칭다오(靑島)나 옌타이(煙臺) 등 산둥성의 다른 항구나 톈진(天津)에서도 거리상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이다. 따라서 웨이하이시는 항공의 속도로 해운의 가격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우며 웨이하이를 중국내의 대한국 전자상거래의 황금통로로 삼고자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천공항의 동북아 허브기능을 활용하여 해상과 항공을 연계하여 유럽으로 가는 통로가 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국영 웨이하이항(威海港) 그룹은 96규모의 국제물류원을 설립하여 한국전자상거래 업체의 입주를 유치하고 있다. 또한 웨이하이시는 인천에 중하이촨(中海川)이라는 공공해외창고를 설립하여 한국상품의 수입과 제3국 상품의 중계무역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2)   

 

상하이나 광저우 같은 동부 연안의 물류항구에 비해 편벽된 위치에 있는 웨이하이가 중국 내에서 한국상품과 중국상품의 성공적인 물류 집산지가 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웨이하이가 한국과 더욱 가까운 도시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고, 한국과의 교역을 그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의 사드배치 결정으로 중국정부가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제한을 시작하고, 공공연히 한국과의 공식적인 교류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웨이하이의 이러한 희망도 보류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모처럼 웨이하이가 추진하고 있는 야심찬 계획과 양국의 평화로운 교류가 걸림돌로 막히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도시이야기 2】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한중 FTA 체결 후 중국의 지방정부들이 경쟁적으로 한중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산둥(山東)성의 지난(濟南), 칭다오(青島), 옌타이(煙臺), 웨이하이(威海), 장쑤(江蘇)성 옌청(鹽城),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자치주, 충칭(重慶) 등이 그것이다.

2) 중하이촨은 웨이하이 시정부 산하 기업인 웨이하이란창수출입유한공사(威海藍創進出口有限公司)1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인천 서구 아라뱃길 물류단지에 설립한 5규모의 해외 물류센터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dianping.com/topic/459331/lz

http://www.hrtv.cn/zt/lts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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