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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9월호
이반 데니소비치, 국경의 하루 1 _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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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1)는 작가이자 여섯 달째 키르기즈스탄의 이상한 마을에서 인류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이상한 마을이라고 하는 까닭은 인구 6천에 달하는 그곳에 경찰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점은 거기서 아직까지 이반이 강력 사건은커녕 사소한 주먹다짐도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가 약간 무정부주의를 동경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목축 가구들를 조사한다는 애초의 계획은 틀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종종 키르기즈스탄의 이상한 마을을 떠나 신장을 경유하여 동쪽으로 여행한다. 동부에 그의 학교가 있고, 그보다 더 동쪽에 그의 모국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거의 반(半)무정부상태의 ‘마(魔)의 산’에서 내려와 국경을 건널 때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파미르의 거봉들을 바라보며 거대한 하곡 평원에서 반(半)유목민들과 함께 몇 달을 지내다 보면 대개 내면이 느슨해져서,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좋게 말하면 소위 ‘법 없이 사는 사람’, 비꼬아 말하면 ‘정신 상태가 흐트러진 사람’이 된다. 이런 느슨한 사람들에게는 매번 가는 국경도 낯설게만 느껴진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고원에서 내려와 그 반대방향에서 비현실적으로 숨막히는 국경의 철조망을 마주하면, 마치 산을 치달아 내려온 물이 댐의 벽에 부딪치는 듯한 충격을 경험한다. 그 국경의 철조망은 모조리 근래에 바꾼 것들이라 충격은 더 크다.


국경 사정을 잘 아는 이반과 아내는 8월 14일 새벽에 아이들을 깨웠다. 이반 부부와 친구의 아들 각각 둘이 마침 방학을 고원에서 보내고, 중국을 경유해 귀국하려는 시점이었다. 경험 많은 이반은 국경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에게 흥분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니까.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오전에 키르기즈스탄 국경을 가볍게 통과하고, 중국 측 시각이 두 시간이나 빠름에도 불구하고 한 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시부터 점심시간이라 늦게 가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 안면인식기는 유독 아이들을 인식하는데 취약했기에 키 작은 녀석들을 곰 인형 들듯이 들고 이리저리 돌릴 수밖에 없었지만, 느긋하게 수속을 마쳤다. 전신 스캔, 휴대전화 카피 등은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래서 한 시 무렵에 우리는 문제의 국경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런데 세관은 150km가량 떨어진 울룩차트, 문제는 그곳으로 가는 차가 없었다는 점이다. 검문소 직원들은 1시 30분에서 4시30분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식사를 한다. 차가 오더라도 검문소가 업무를 시작해야 여권을 받을 수 있다.


4시 40분경에 직원들은 업무에 복귀했고, 검문소와 세관을 오가는 차는 5시 무렵에 들어왔다. 이반은 지난번에 그를 불쾌하게 했던 운전사와 약간 언쟁을 했지만 금방 잊었다. 그때는 8시까지 세관에 도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국경검문소와 세관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검문소를 여섯 명이 모두 짐을 가지고 내려 통과하는데 반시간 이상이 걸렸다. 안면인식기는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불친절했다. 잘 참던 이반의 중국인 아내도 슬슬 짜증을 냈다.


“여덟 살 애가 뭔 휴대전화가 있다고 다 써 넣으라는 거요?... 그런데 왜 자꾸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대시오? …”


이반은 조바심이 일었다. 여덟 시까지 세관에 도착하지 못하면 또 몇 시간을 기다릴지 모르니까. 차는 달려 울룩차트 세관의 철문에 이르니 일곱 시 40분. 안심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철문으로 다가온 군인이 다시 여권을 확인했다. 그 사이 다시 5분이 속절없이 흘렀고. 차가 세관에 도착하자 이반은 아내와 아이들을 채근했다. 짐을 내리려는 순간 세관 직원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일단 짐을 내리지 마시오.”


아내가 곧이곧대로 듣고 멈칫할 때 이반이 말했다.


“빨리 내려요. 지금 수속을 안 해주려는 거야.”


짐을 들고 검색대 입구로 들어갔을 때, 시간은 일곱 시 50분. 직원들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중이었다. 그날 오후에 국경검문소를 통과한 이들은 우리와 스위스인 어르신들 셋뿐이니, 그들은 오후 내내 일없이 지내다가 저녁 식사를 하려 좀 일찍 일어선 모양이다. 그날 밤까지 카쉬가르에 도착하자면 그 때쯤 통관을 해야 했다. 이반과 아내는 거칠게 항의했다.


“통관시켜 주시오. 하루종일 아이들이 하나도 못 먹었소.”
“우리도 식사를 해야 하오. 원래 45분에 식사를 하러 가는 것이오. 9시면 오겠소. 식당을 알려줄테니 당신들도 식사를 하시오.”
“우리는 1시 전에 검문소에 도착했는데, 이제야 여기에 왔소. 우리 때문에 늦은 것도 아닌데, 통과시켜 주시오. 아직 업무종료 시간이 안 되었소.”


이반과 아내는 재삼 항의했고 직원도 삿대질을 해댔다. 그 사이 나머지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한명이 그들의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 찍지마!”


아내의 날카로운 고함은 이내 군중 속에 묻히고, 그들을 둘러싼 직원들의 고성은 높아만 갔다.


검색대 인원이 모두 몰려 나왔기에 물론 통과할 희망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9시에 통과해서 한밤중에 택시로 카쉬가르로 가면 그뿐이다. 이반은 싸움을 포기하고 조금만 참으면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을 달랬다. 따라온 스위스인 노인들이 한탄했다.


“조금도 아이들을 배려하지 않네요(No consideration for children).”


이반이 답했다.


“인간 전체를 배려하지 않죠.”


9시 10분 그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반 본인의 여권은 돌려주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가야 하오. 무슨 문제가 있소?”
“아뇨, 조금도 문제가 없습니다. 수속이 좀 길어질 뿐입니다. 먼저 가족을 통과시키시오.”


이반은 그들이 얼마나 거짓말에 능한 지 전혀 모르고, 시키는 대로 기다렸다. 아이들이 지나가고 스위스인이 지나가고, 그리고 반 시간 한 시간이 지나도 이반의 여권은 나오지 않았다. 아내 말로는 그 스위스인 중 하나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듯하다고 했다. 그가 유에스 운운하며 ‘저 한국인과 함께 가겠다’고 직원들에게 거칠게 따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반의 아내는 그들을 달래고 먼저 보냈다.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오늘 카쉬가르까지 도착하려면 먼저 떠나세요.”


이반으로서는 그들의 우정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반은 기다렸다. 검색대 저 멀리서 이반의 둘째 아들이 우두커니 서서 아빠를 쳐다볼 때는 눈물이 슬쩍 나려 했다.

 

이반의 여권에 아무 문제가 없으며 평상적인 절차가 늦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역시 거짓이었다. 그들은 엄청난 경찰 정보망을 이용해 이반에 관한 정보를 모조리 파악하느라 그렇게 늦었던 것이다. 열 시 무렵 출입국관리 경찰 한 명이 다가와서 반말로 말했다.


“너 이리 와(你过来).”


가족과 떨어져 상당히 풀이 죽은 그는 직원들의 방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과장 P를 만났다.2)


(2편에서 이어짐)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11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1) 이반 데니소비치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다. 전체주의에 대항한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의 소설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 글은 전적으로 이반과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듣고 본 것을 가지고 재구성했으므로 객관적일 수 없음을 밝힌다. 그러나 지어낸 것은 하나도 없음을 밝힌다. 

2) 실제 그의 이름 이니셜은 P가 아니다. 이반의 아들은 그를 돼지(pig)라 불렀지만, 꼭 그런 의도로 이니셜을 채택한 것이 아니다. 이 글은 이반과 그 동행들의 일방적인 기록과 기억에 의거해 쓴 주관적인 것이므로 그의 본명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하여 엉뚱한 이니셜을 쓴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https://bit.ly/2N6UF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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