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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7월호
송중기는 왜 ‘인민남편’이 아니라 ‘국민남편’인가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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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어는 한 사회가 당면한 상황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을 가장 압축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여 이제는 우리 입말에 딱 붙어버린 멘붕이나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해 학계와 언론에서도 대놓고 언급하기에 이른 헬조선이 대표적이다. 이 두 단어만으로 우리의 후예들은 21세기 대한민국 시민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신조어를 살펴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중국어 어휘를 늘리거나 트렌드를 추적해 경제적으로 활용해보겠다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비록 많은 것들이 오도되거나 생략될지라도 하나의 단어를 통해 지금 여기에 있는 중국을 직관적으로 느껴보려는 것이다.

 

첫 단어를 한류(韓流) 열풍의 새로운 상징이 된 <태양의 후예(太陽的後裔)>와 송중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방금 언급한 고지식한 목표에서 한참 벗어나 지겨운데다 유치해 보이기까지 한. 여기에 '인민(人民)''국민(國民)'이라는 추상적이고 학술적일 수도 있는 단어를 연결해보고자 한.

 

중국에서 송중기를 지칭하는 단어 중 하나가 '국민남편(國民老公)'이다. 송중기 팬들을 송씨 남편의 부인이라는 의미에서 '송부인(宋太太)'이라고 부르 송부인 선발대회(宋太太招聘會) 개최기도 했다. 우리 연예매체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니 한국에서 유래된 단어가 중국으로 건너가 번역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한 기원을 찾기는 힘들다. 송중기한테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중국에서 국민남편의 대표주자는 송중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소한 왕쓰총(王思聰)이란 인물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인 완다그룹(萬達集團) 회장 왕젠린(王健林)의 외아들이다. 왕쓰총이 얼굴은 송중기보다 약간 못하지만 돈은 훨씬 많으니 일등 국민남편이 될 만하다.

 

 <태양의 후예> 때문에 실제 새로운 단어가 유행되기도 했다. 자극하다는 뜻의 랴오()에 여자를 뜻하는 메이()가 결합된 '랴오메이(撩妹)'라는 단어. 이전에도 파오뉴(泡妞), 바메이(把妹)처럼 비슷한 뜻의 단어가 새로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파오뉴와 바메이가 돈이나 지위로 여자를 꾀어내는 부정적 뉘앙스인데 반해, 랴오메이는 극중 송중기처럼 매력적인 외모, 매너, 진심으로 미인을 사로잡는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긍정적인 뉘앙스라고는 하지만, 송중기로 인해 유행됐다는 점에서 파오뉴와 바메이보다 더 어렵다. 매너가 신사까지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송중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송중기가 매너를 만들 수는 있어도.

 

그런데 왜 '국민남편'인가? 다소 황당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을 사로잡은 남자는 마땅히 '인민남편'으로 불려야 하지 않는가?

 

중국에서 한때 인민과 국민은 동일한 범주가 아니었다. 일찍이 1957년 마오쩌둥 주석이 인민내부의 모순을 정확히 처리하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거창한 제목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 사업을 옹호하고, 이에 참여하는 자만이 인민에 속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인민의 적(人民的敵人)'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 국민은 인민과 함께 인민의 적이 함께 포함된 범주였다. 그 시대에 강제적으로 팬덤이 형성된 사회주의 혁명의 스타들은 '국민영웅'이 아니라 '인민영웅'이라 불렸다. 이에 앞서 1949년 임시헌법으로 선포된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지만, 1954년 공식적으로 제정된 헌법에서는 '국민경제' 외에 독자적인 '국민'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이는 '공민(公民)'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수차례 개정된 현재의 헌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 사람들은 여전히 '국민'이라고 불렀지만, 마땅히 인민으로 구성되어야 할 중국에 속한 사람들은 더 이상 국민이라고 불리지 않았으며 그렇게 불리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약간이나마 인민의 적에 걸쳐있는데다 철천지원수인 국민당이 연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국민'은 불온하지는 않을지라도 왠지 불안한 단어였으며 독자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지위를 잃어버린 단어였다.

 

이런 점에서 송중기가 인민남편이 아니라 국민남편으로 불린다는 점은 중국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인민남편이라고 하면 이제 중국인민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에나 통할 촌스러움을 연상할 듯하다. 마찬가지로 '인민미녀'보다는 '국민미녀(國民閨女)'가 훨씬 덜 어색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되었다. 인민과 국민의 지위가 더 이상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서서히 역전될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새로 만들어진 단어뿐 아니라 새롭게 의미와 범주가 바뀐 단어도 신조어라고 부를 수 있다면, 20세기 중국의 최대 신조어는 '인민'이고 이에 대응되는 21세기 중국의 신조어는 다시 되돌아온 '국민'일 것이다. 송중기와 <태양의 후예>라는 세속적이고 트렌디한 소재에서 인민과 국민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연결해 보았.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냅니다, 내가(那么难的事我却总能做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건 극중 송중기의 대사.

 

【신조어로 보는 중국문화 1】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cnxz.cn/fashion/201603/25/3468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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