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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2월호
통합의 두 얼굴 _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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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떤 소수민족 친구의 SNS 담벼락에 놀랄 만한 글귀가 눈에 띄었다

 

«신장(新疆) 남자(사람)들의 창상(滄桑), 그것은 모두 제국주의의 괴롭힘 아래 받은 상처의 흔적이다


오늘날 신장 일대에서 벌어지는 강력한 사상통제 경향으로 볼 때 일단 이런 문구가 불러올 파장이 나는 무척 두렵다. 중국의 준() 국가소유 통신업체는 물론 사영 SNS 기업들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국에 정보를 넘기고 있기에. 이 짧은 문장의 주어는 '신장 사람(물론 친구는 '신장 남자'라고 했지만, 이는 질문자가 남자를 언급했기 때문으로, 사람으로 보아도 된다)''제국주의'. 21세기 통일 국가 안에서 말하는 제국주의란 무엇이며, 신장 사람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이 호명법은 좌종당(左宗棠) 신장 재점령 후 군벌시기와 국민당 통치기 동안 끊임없이 벌어졌던 민족 간 혹은 집단 간의 상쟁에서 무상하던 피아(彼我)의 구분 기준을 떠올린다. 그때도 지금도 어떤 집단도 하나의 단어로 정의될 수 없다. 청대 한족 관리들의 입장에서, 위구르가 문제였던가 무슬림이 문제인가? 무슬림의 입장에서, 회족(回族)은 한인(漢人)들의 조력자인가, 아니면 피억압 무슬림인가? 위구르 농민의 입장에서, 키르기즈인은 무슬림 동지인가 아니면 농민들의 전통적인 적 유목민인가? 아니면 용병이나 마적떼에 불과한가? 민국초 한족 이주 농민들의 입장에서, 시버인은 압제자 만주족의 동류인가, 힘을 합쳐 땅을 지켜낼 이주 농민인가

   

원래 신장은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새로 얻은 변경 땅'으로 부른 이름이니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명 만으로는 수면 아래의 알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변경 집단들의 정체성이 계속 변하고 그들의 정치적인 목표도 계속 진화하므로, 이 호칭 아래 숨어 있는 관계는 영원히 한 두 마디로 정리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다 사회경제적인 긴장이 악화되면 정리되지 않은 갈등관계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집단들이 각자 적()을 찾아다니며 이합집산하면서 새 정체성을 만든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모리배인 군벌들이 이 혼돈의 공간을 파고들어 권력을 얻었다. 신장 군벌 성스차이(盛世才) 따위가 비근한 예겠지만, 중원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인민들이 피아가 모호한 진흙탕 싸움에 넌더리를 낼 때, 기존의 체제를 살짝 고치거나 개혁자 시늉을 내는 군벌들이 등장해서 운이 좋으면 전국의 지배자가 되고 운이 나쁘면 지역에 할거했다. 그러므로 인류학적 입장에서, 아니 차라리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이 사회경제적인 긴장이 어디에 존재하며 어디서 커지는가를 감지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의무다

 

국경의 유목지대 연구를 포기하고 좀 더 안전한 연구지를 찾던 중 한 친구가 신장 동부의 상황은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신반의하며 동쪽으로 이동했지만, 동부의 초원지대는 빠르게 농경지로 바뀌고 있었고, 목축지대를 연구하자면 역시 행정부서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여전히 초원이 건재하다는 최동부 하미(哈密)의 바르콜 초원까지 닿았다. 하지만 기대는 쉽사리 깨졌다. 하미는 내지로 분류되는 깐수(甘肅)와 변경인 신장의 경계지에 있었으므로, 국경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또 하나의 변경이 되어 있었다.


바르콜 전경.jpg

바르콜 전경


꼭두새벽에 고속철에서 내려 역사를 나서려니 출구쪽 검문소에서 시간을 끈다.


역사로 들어갈 때 붙잡아두는 것은 봤지만 사람을 못 나가게 하는 것은 첨 봤소. 왜 그러오?”


외국인 관리 규정입니다.”


사실 말단 경찰은 규정이 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대는 동시에 내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턱대고 수집한다. 여권 복사는 물론이고 얼굴 사진도 찍는다. '왜 하미에 왔는지, 그리고 언제 떠날 것인지'를 증명해야 했다. 역시나 이동전화 번호를 등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덤덤히 대답했다.


이동전화를 쓰지 않습니다.”


'이동전화를 왜 쓰지 않는지'를 또 증명하라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리에서 공안이 전화기를 추적하는 바람에 이제 꺼 놓았거니와, 번호를 알려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돈이 없어서요.”


그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오늘 내로 돌아온다는 근거로 열차표를 제시하고, 그가 그 표를 사진으로 찍은 후 역사를 나설 수 있었다. 이렇게 변경 기관들은 비교적 동부에서도 왕성하게 세포분열을 하고 있었다.


간신히 역사를 빠져나와 합승 택시를 타고 바르콜로 떠났다. 천산 동부 끄트머리의 하미 오아시스와 북부의 바르콜 초원을 연결하는 도로 공사 때문에 새벽 인력시장에는 인부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동부에서 온 농민공들일 것이다. 또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신장인인가 외지인인가?


바르콜은 천산 동부에서 가장 크고 생산력이 좋은 초원이다. 예부터 커다란 호수가 있었으며, 청대에는 군마 공급 기지였다. 바르콜-우루무치-이리를 연결하는 선은 신장을 크게 남북으로 나눈다. 청대 신장 점령군의 입장에서 보면 천산의 거대 목장지대가 시작되는 곳이 이곳이라, 먼저 여기에 유목민을 공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세웠다. 바르콜은 10년 전 방문한 적이 있어서 내심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산을 넘어 목장을 내려다보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따로 분석할 필요도 없이 참혹했다. 호수는 도랑처럼 줄어들었고, 초지는 바싹 말라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가축만 가득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에 성급호텔이 줄줄이 서고, 눈 녹은 물이 내려오는 산 중턱은 끝 모를 밭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밭과 건물이 물을 빨아들이니 호수의 물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도 양과 우마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으니, 그 많은 가축은 무엇을 먹는가? 가축은 가을임에도 벌써 건초를 먹고 있었다. 겨울에는 사료를 대량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으리라. 건초는 농업지대에서 나오고 있었다.


바르콜의 죽어가는 양.jpg

바르콜의 죽어가는 양


이렇게 당국의 변경-내지 통합정책은 '성공'했다. 농업(농민의 다수는 한족이다)과 목축(카자흐족이 담당한다)'성공적'으로 결합되었고, 도시와 농촌과 목장은 하나로 붙었으며, 민족들은 '공존'하고 있었다. 단 하나 공존하지 못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땅이다. 원래부터 건조했던 대지는 물을 빼앗겨 말라죽는 중이었다. 거대한 축사로 변한 초원에 밀집해서 사는 짐승들의 건강도 의심스러웠다. 하루 동안 치워지지 않은 짐승의 시체를 여러 번 목격했다. 유사 이래 이 대지가 이토록 학대당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돌아와 신장통계국에서 발표한 자료를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본격적인 통계가 시작된 이래 신장의 인구는 대략 두 배로 늘었고, 가축도 그에 따라 늘었다. 신장의 인구 증가 원인은 소수민족(주로 위구르족)의 높은 출산율과 한족의 높은 유입률 두 가지 때문이었다. 유입인구 대다수가 도시로 모였으니, 주변부의 목장이나 농경지가 도시의 소비를 충당하면서 상업경제로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맨 아래 표 참조) 추가로 지적하면 대략 최근 100년 만에 신장의 인구가 10배로 증가했다. 물론 물 사용량은 10배 이상일 것이다. 이에 비해 강수량의 변화가 클 리는 없고, 그나마 줄어드는 추세이므로 신장의 지표수가 마르고 지하 대수층의 수위가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런 이치다.


여기에, 국가주도의 대규모 사민(徙民)은 멈췄지만 산업주도의 이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신장은 맬서스의 예측이 맞아 떨어지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될지 모르겠다. 자연이 인구 압박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 인구증가가 멈출지도 모른다. 자연 스스로는 조정능력이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의 형태로 팔리는 물건은 초자연적/초도덕적이라 자연의 조정능력은 발휘될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자연이 고갈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통계표를 슬쩍 보거나 현지를 한 번 훑어만 봐도 자연의 고갈이 바로 내지와 변경의 통합을 추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야 나는 '제국주의''신장'이라는 지명으로 뭉뚱그려진 친구의 한탄을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사전적으로 제국주의란 민족이든 공동체든 그 어떤 하부 단위도 인정하지 않는 초거대 정치단위다. 하부 단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사민을 통할 균질화는 필수적이다. 청의 신장 점령이 시작된 이래 300년 동안 멈춘 적이 없는 인구 이주 하나만으로 이미 제국주의의 한 요소는 성립된 셈이다. 균질화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는 두 힘, 즉 중앙의 정치력과 이익을 찾는 산업사회의 경제력의 압력 아래 물리적인 땅 자체가 파괴되면서 이 두 힘이 운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 구분 없이 '상처 입은 신장' 이라고 말한들 큰 오류가 없다. 그러나 대지의 희생과 맥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곳에서 대지의 생산력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 즉 초원에서 가축을 키우던 카자흐/몽골 등 유목민, 오아시스에서 작물을 키우던 위구르 농민들임도 분명하다. 그들 중 일부는 분명 시장을 발견하고 돈을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의 대부분이 도시의 부동산에 집중된 상황에서 한족이 압도적인 도시의 인구 구성으로 보아 이들 목동과 농민이 보유한 부가 상대적으로 얼마나 적은지도 자명하다

 

두렵게도 들판과 도시에서 동시에 긴장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사상의 통제 아래 그 임계치도 임계시점도 심연 속에 숨어 있다.


** - 신장의 인구/가축 수 변천

연도

 

1978(단위 만)

2015

증감(%)

국가 전체 인구

 

96,000

138,000

44

신장자치구 인구

전체

1,200

2,400

100

한족

513

861

68

위구르족

555

1,130

104

우루무치시 인구

위구르족

 

34

 

한족

197

자치구가축수

200

400

100

2,000

4,000

100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5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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