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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2월호
운남 대리의 ‘풍화설월’ 문화를 보면서 _ 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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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지역에 사는 중국인들은 운남에 대해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봄 같은 날씨가 일 년 내내 이어지고, 항시 꽃이 피는 자연은 그대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게다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까닭에 볼 만한 민족 풍경도 많고 차와 같은 물산조차 풍부해서 먹을 걱정거리가 없는 듯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운남 서북부에 건설된 샹그리라라는 새 도시는 그 반영인 셈이다. 허나, 멀고 가난하며 전염병이 잦기 때문에 잠시 구경하는 것은 좋지만, 살기는 힘든 곳이라는 인식도 있다.


이국적인 풍광의 동네인 듯하지만, 정작 중국 문화도 그만큼 깊숙이 배어있는 곳이다. 하긴 원대 이래로 중국의 지배 영역에 편입된 곳이니만큼 한족문화가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 도리어 이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지의 오랜 전통과 이식된 한족문화가 절충되어 창출된 제3의 유형도 여기저기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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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바이족의 전통모자인 풍화설월모를 쓰고 민족무를 추는 바이족 무용단.


'풍화설월' 문화가 그렇다. 특히 운남의 옛 도시인 대리를 가면 어디에나 풍화설월이라는 구호와 상징물을 볼 수 있다. 풍화설월이란 말 그대로 바람, 꽃, 눈, 달을 지칭한다. 대리의 주인공들인 바이족의 여성들이 쓰는 모자가 바로 이 풍화설월을 상징한다. 반원통형의 이 모자는 맨 위쪽에 눈을 상징한다고 하는 백색의 띠를 둘렀다. 그 아래 두 번째 원은 검은 색으로 달을, 세 번째는 붉은 색의 꽃을, 그리고 귀 옆으로 흘러내려온 한 움큼의 흰 술은 바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운남의 특산인 차에도 풍화설월차가 있으며, 호텔에도 풍화설월 빈관이 있다.


이러한 자연물이 대리의 상징이 된 이유는 현지의 자연조건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람은 대리의 남쪽 관문에 해당하는 하관 지역에 겨울바람이 많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고, 꽃은 상관 지역에 조주화가 많았던 탓에 붙여졌다는 것이다. 또한 눈은 창산의 눈을 지칭한다. 창산은 옛 대리시의 서쪽에 있는 해발 4,122미터의 산으로서, 돌의 색깔이 청회색이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한편, 달은 대리의 큰 호수인 얼하이에 비친 달을 상징한다. 상관이나 하관 모두 옛 대리시의 남북쪽 관문이며, 창산과 얼하이는 대리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호수이므로, 풍화설월이란 결국 대리시의 자연 경관을 총칭하는 사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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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옛 대리시 지형도.

중앙에 얼하이호, 좌측에 창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옛대리시가 있다. 남쪽과 북쪽에도 각각의 관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 풍화설월을 대리시의 자연과 연계시킨 전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1960년대에 저명한 시인이 대리를 여행한 이후 이곳의 바람, 꽃, 눈, 달로 구성된 풍경을 감탄하면서 시를 한 수 지었다고 한다. 그것은 “하관의 바람이오, 상관의 꽃이라. 하관의 바람이 상관의 꽃으로 부는구나. 창산의 눈이오, 얼하이의 달이라. 얼하이의 달이 창산의 눈을 비추는구나.”라는 것이었다.


하관의 바람이 상관의 꽃으로 분다든가, 얼하이의 달이 창산의 눈을 비춘다라고 하는 부분이 이 시의 핵심부일 터이다. 이러한 시구로 인해 대리의 각 자연은 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지에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자연과 문화의 전통에 한인적 시상이 더해지면서 자연이면서 멋진 문화경관을 만들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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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얼하이의 달.

대리인들에게 얼하이는 생명의 호수이지만, 비극적인 전설도 담겨 있는 곳이다.


물론 이 시가 바로 풍화설월 이야기의 시원을 말해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4개의 자연물이 4계절을 상징한다고 간주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한가하고 정취 있는 풍경으로 묘사되었고, 심지어는 남녀간의 상열지사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인 중에서도 특별히 이 네 글자를 좋아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이 일상적이고 관조적일 수 있는 풍화설월을 이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물이자 대리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도록 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특히 상관의 바람에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남아 있어 이방인들의 마음을 잡아당긴다. 바람이 중요한 풍광을 구성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데, 대리는 예외일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다소 비극적인 전설이 있다. 공주 사냥꾼 부부와 나전(羅荃)법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조(南詔)의 한 공주가 창산에 사는 한 사냥꾼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 사랑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안 공주는 산으로 도피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공주 출신인 아내가 이곳의 혹독한 기후를 견디기 어려워하자, 나무꾼 남편은 나전법사가 가지고 있는 신통한 팔보가사를 가져오려고 하였다. 티베트의 법승으로 알려진 법사의 옷은 풍우를 불러오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사냥꾼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 옷을 이용하여 이곳의 나쁜 기후를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법사는 사냥꾼을 때려잡아 얼하이에 빠트린 다음, 그를 돌 노새로 만들었다.


공주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창산에 사는 백여우신에게 호소하였다. 이를 들은 백여우는 남해의 보타산 관음이 가지고 있는 여섯 개의 병 속에 들어있는 바람을 사용하면 얼하이의 물을 전부 말려버리고 그곳에 빠진 남편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공주의 간청을 들은 백여우는 천신만고 끝에 남해에 가서 바람병을 얻어 왔으나, 나전의 사술로 이 중 5개를 천생교 부근에서 깨트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백여우는 하는 수 없이 병 하나의 바람으로 물을 없애려고 하였으나 파랑만 일으킬 뿐 역부족이었다. 돌노새는 보였지만, 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공주도 죽어 흰구름으로 변하였고, 후세 사람들이 이 구름을 망부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여우도 결국 자신의 실수로 괴로워하다 원한을 안은 채 사망하였으니, 창산 기슭에 있는 호선동(狐仙洞)은 이렇게 해서 생긴 곳이라고 한다. 이후 하관에는 1년 내내 바람이 부는데, 이는 천생교 부근에서 깨진 병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서 남조와 오늘날의 대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곧 남조의 공주와 이곳의 나무꾼, 티베트 불교 승려, 남해의 관음, 그리고 백여우가 핵심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 승려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악인으로 묘사되는 반면 남해의 관음은 선인으로, 백여우는 양쪽을 오고 가는 메신저로 등장한다. 남조 시대에 이곳에 존재하였던 종교의 실체와 현지인들의 그에 대한 인식도 보여준다. 또 나무꾼과 선녀라고 하는 우리의 고전적 서사구조와도 무언가 유사한 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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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옛 대리의 시가지 풍경.

오랫동안 독자적인 왕국을 유지해왔던 남조와 대리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운남이 중국의 영토인 것은 맞지만, 내부에 존재하는 갖가지 사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그곳 사람들이 숙성시켜온 삶의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문화란 최근에 침투하여 그곳의 전통과 조금씩 융합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바이족 여성들이 애용하는 풍화설월 모자를 한족들이 쓰지 않는 한, 그 융합조차도 표면적인 것으로 그칠 수 있다. 반면 그 모자조차 복식의 일부이기보다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으로 변모하는 것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10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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