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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1월호
충돌하는 두 개의 중국 인식 _ 전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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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한국 사회에는 對中國 인식에 관한 한 우려할만한 분열적 시각이 존재한다. 다음 두 개의 모순된 중국 인식이 그것인 바, 이러한 분열적 시각의 병존은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 전반, 정부 차원, 민간 차원을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선 그 하나의 관점은 중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중국은 경계의 대상이며, 역사와 문화, 영토 갈등의 주범이라는 입장에서 중국을 ‘해석’하려 한다. 또한 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을 反共의 대상으로 보며,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 특히 개신교의 입장 - 억압적, 독재적, 전제적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생산해 내고 있다. 이 관점은 유럽 및 미국 중심의 근대적 보편가치와 규범에 대한 도덕적, 이념적 의무감을 중시하고, 중국이 인류의 보편가치와 규범을 무시한다고 인식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보수적, 우파적, 기독교적, 친미적 성향을 띠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강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중국을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하나의 관점은 중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이 우리의 생존 기반이며, 중국은 이제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고려해야 할 常數가 되었다고 인식한다. 지금까지는 미국만 고려하면 되었지만 앞으로는 중국 역시 그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고려하여 한국사회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논자들은 중국이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 패권을 넘어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거대 문명 전략을 구상하며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와 새로운 글로벌 질서를 설계하기에 이르렀다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치, 경제적 비대칭성 뿐 아니라 보편가치/보편문화 담론에서도 문화적 비대칭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이 볼 때 중국은 자신들의 거대 문명 전략을 실현해가는 데 한국이 적극 참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중국의 이러한 강력한 요구에 대해 한국은 들어갈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실용주의적 해법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현 상황에서 중국의 문명담론과 세계질서 구상을 한국의 국가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진보적, 좌파적, 친중적 성향을 띤다고 여겨진다.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분열적 시각은 한중관계, 한미관계, 미중관계, 북한문제, 세계질서의 재편 등과 연동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이러한 분열적 시각의 대립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심각한 국론 분열을 초래할 위험성조차 내포하고 있다. 실제 최근에 대중국 인식을 둘러싼 상이한 관점이 심각한 사회적 균열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일부 보수적, 친미적 지식인들에 의해 浮薄하게 소환되고 있는 조공사대론과 이에 대한 반론이다.


[자료 1]
“최근 한국 사회엔 때 아닌 '중국 찬양'이 터진 봇물처럼 넘친다. 편향되고 왜곡된 중국 미화는 위태롭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부정이자 인류 보편 가치의 폄훼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수 없다. 국제 공조를 무시하고 암암리에 핵실험을 거듭하는 김정은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김씨 왕조'란 종양을 제거하기보다 더욱 키우는 반인류적 선택을 해왔다. 국제사회는 그 때문에 중국 정부를 불신한다. 대체 이런 중국에서 전 인류를 위한 새로운 보편 이념이 나올 수 있을까. 중국적 가치는 절대로 중국 국경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혹자는 "50년 우방인 미국보다 5000년 우방인 중국 편에 서자"고 한다. 반(反)서양적인 불합리일 뿐이다. (중략) 문화혁명 이후에야 뒤늦은 개혁개방으로 개발독재를 이어가는 권위주의 체제일 뿐이다. 섣부른 중국 찬양 대신 냉철한 중국 비판이 필요한 때다.”(「親中事大는 시대착오다」, 『조선일보』 2016.10.04.)


[자료 2]
“21세기에 등장한 ‘조공론’은 조공체제의 이러한 가변성과 역동성은 무시하고, 형해화된 중국 중심성만을 남겨두고 중국의 부상을 마치 새로운 ‘중앙 제국’의 등장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현실적 이해에 대한 고려를 조공론이라고 ‘딱지 붙이기’를 하고 있다. 기실 이들 조공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이야말로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현실적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못한 모화론자들의 진정한 계승자들이다. 이들은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의 현실적 이익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매불망 20세기 ‘재조지은’을 잊지 못하고 냉전적 ‘사대’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신형 ‘모화론자’이다. 21세기 ‘조공론’은 신형 ‘모화론자’들이 자신들의 내재적인 ‘사대’를 가리기 위해 역사로부터 불러온 유령일 뿐이다.”(안치영, 「21세기 ‘조공론’을 평함」, 『관행 중국』 2016년 10월호)


위 두 글의 간극은 매우 크다. 한쪽은 친미 사대를, 또 다른 한쪽은 친중 사대를 각각 비난하고 있다. 자신들과 다른 입장의 논자들을 친중 사대 혹은 친미 사대를 비난함으로써 국내의 지적, 정치적,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데 중국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양자의 간극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사회의 대중국 전략, 대미전략 나아가 한국의 미래 전략을 만들어 가는데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Ⅱ.

냉전시대라는 짧은 시기 동안 한국은 중국과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한중관계의 긴 역사 속에서 볼 때, 이는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아직은 지구적 차원에서 제국적 기획을 시도하거나 그럴 만한 능력을 확보한 것은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지역제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은 확고하다. 또한 중국은 이미 ‘신형대국’론을 외교정책의 기본이론으로 제시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주도자를 넘어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편성 주체임을 천명하였다. 이에 앞서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취임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2013.3)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의 꿈(中國夢)’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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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꿈은 반드시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걸어야 하고, 중국의 정신(中國精神)을 선양해야 하며, 중국의 힘(中國力量)을 결집하여 실현해야 한다”는 그의 언급은 한마디로 글로벌 표준( Global Standard)이 아닌 중국의 표준에 근거하여 대국의 내실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형대국’론과 시진핑의 비전을 통해 볼 때, 중국의 ‘제국화’ 즉 중국의 제국 만들기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중국이 ‘(지역)제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동아시아가 미래 세계질서의 또 다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음과 동아시아 지역질서가 향후에 중국 중심으로 재구축될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총아로 미국과 일본이 주도했던 슈퍼컴퓨터 분야의 지형도를 중국이 바꾸고 있다는 보도(『연합뉴스』 2016.8.12)는 중국을 새롭게 보아야 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찌 보면 중국은 지금 ‘문명의 슈퍼컴퓨터’를 창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성공과 실패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세계가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도전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보편가치 그리고 그것에 근거하여 형성, 유지, 발전하는 문화를 창안하는 한편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것을 치국(治國)의 요체라고 여겼다. 이것이 문화주의이며, 문화/이념은 국가건설 구상의 원천이었다. 문화/이념은 현재 및 미래의 중국과 괴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미래를 기획하는 ‘대전략(大戰略)으로 기능하게 됨으로써 이것은 극히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띤다 하겠다.


문화주의에 입각하여 통치되는 국가를 이상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이상을 실천해 왔던 문화가 강하게 지속되는 현재의 중국에서 중화 문화를 재평가하여 ‘중국적 표준’을 설정하려는 사상적 모색은 “제국몽”의 실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겠다. 과거를 모델로 미래를 기획하는 중국의 문화사적 관성을 생각할 때, 유교 이념의 적극적 재해석, 전략적 의도를 내포한 기획된 역사연구의 확산 등은 문화주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으며, “위대한 중국의 꿈”을 향한 21세기 중국의 미래기획과 밀접히 연동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이럴진데, 한국 사회에서 충돌하는 두 개의 중국인식은 어찌 보면 진영 논리에 빠져 미래를 건설하는데 안일한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전인갑 _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storm.mg/article/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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