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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8월호
중화주의 세계로 편입된 우루무치의 천지 _ 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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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는 우리나 만주족에게 신비의 연못이지만, 저 멀리 서역의 신강에도 그 지역인들이 숭배해 오던 천지가 있다. 천지는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산중 호수로서, 우루무치에서 대략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천산 산맥 중, 약 1,980미터 쯤의 높이에 있는 담수호이다. 호수 뒤편에는 해발 5,500미터의 보거다봉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고, 깨끗하고 시원한 호수가 넓고 길게 누워있으며 그 주변에는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침엽수림이 산을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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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하늘에서 본 천지모습.

천지 주변에서는 막상 천지의 전체 모습이 들어오지 않았으나, 구글 어스를 통해 바라보니 그것이 뚜렷하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흰산이 보거다봉이며, 좌상단에서 중앙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곳이 천지이다. 호수물이 흘러나가는 곳에 관광객들의 출입구가 있다.


필자는 이런 꿈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 두 번이나 이곳에 가려고 시도한 바 있다. 첫번째는 상하이에 체류하던 시절의 2006년 겨울이었는데, 결국 우루무치 일대에 폭설이 쏟아지는 바람에 시내에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귀가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2년 뒤 여름, 가족들과 함께 중국인들 틈에 끼어 신강을 일주하는 여행길에 올랐을 때였다. 초원과 설산, 호수, 녹음이 우거진 숲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뒤늦게 온 게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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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천지 입구에서 본 천지와 보거다봉.

울창한 침엽수림과 푸른 호수, 설산이 어우러져 이상향처럼 보인다.


설산도 그렇지만, 고산의 봉우리에 있는 연못은 현지인에게 자못 신비롭고 영험한 신물(神物)로 인식되곤 한다. 백두산의 천지에도 선녀가 내려왔다는 전설이 있는 것처럼, 천산의 천지에도 서왕모(西王母)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 것이다. 주나라의 목왕이 기원전 1000여년 경에 서역으로 순수(巡狩)하러 갔었는데, 호수에서 서왕모가 알몸으로 나와서 목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다. 그 바람에 목왕은 순수는 둘째 치고 돌아가는 것조차 잃어버렸다고 한다. 마치 나무꾼과 선녀 같은 이야기인데, 백두산과 천산의 천지 뿐만 아니라 운남 대리에 있는 얼하이호 등 고산의 호수에는 저와 같은 전설들이 남아 있는 것이 흥미롭다.


중국의 고전인 <산해경>에서 서왕모는 사람의 얼굴, 호랑이 이빨, 표범의 꼬리를 한 신인(神人)으로 알려져 있다. 곤륜산에 살고 있다는 불사의 신인 것이다. 사실 곤륜산도 신화의 산이고, 서왕모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지상에 재현하느냐 하는 문제는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흥미 있는 주제였다. 한나라의 무제는 대표적으로 곤륜산과 서왕모를 결합시킨 황제일 것이다. 어떻든 현재의 곤륜산은 청해성과 티베트, 그리고 신강 남부 사이에 동서로 장쾌하게 뻗어있는 산인데, 본래 서왕모 전설은 이곳에 있는 요지(瑤池), 곧 황하의 시원지와 관련되어 중국문화의 한 뿌리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리하여 매년 8월이 되면 신선들이 먹는다는 선도(仙桃) 복숭아 잔치를 열어 여러 신들을 초청하곤 했다는 것이다. 서왕모의 요지는 이 때문에 도교 신도들에게 숭앙받는 곳이 되어 있다. 그러한 서왕모 전설이 언제 이곳 천산의 천지에 전해졌는지는 알 수가 없고, 그와 관련된 자료도 현재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서술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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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숲 가운데에 위치한 성전형 건물이 마치 공자를 모신 서원처럼 배치되어 있다. 출입구의 문을 들어섰을 때, 오른쪽에 장방형으로 서 있는 것이 낭낭전으로서, 이 곳에 서왕모가 있으며, 가람의 정전은 가장 뒤편 중앙에 있으며, 이곳에는 황제, 신농, 복희가 안치되어 있다. 한족의 조상을 천지에 이식한 대표적인 종교 공간일 것이다.


서왕모 전설 이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곳에 어떤 유목문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우루무치 시내에서 천지로 오는 길목에 빠오를 설치해 놓고 사는 모습으로 보아 유목사회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위구르인인지 몽골인인지, 아님 카자흐인인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물론 소수민족 중에서도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이 눈에 자주 띄는 것을 보면 위구르 유목사회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교도 모자를 쓴 남성들이 자주 보였던 것이다. 


이 지역의 종교적 전통과 관련해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이곳 천지에는 원래 몽골 제국 시대에 세워진 조그만 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유목민들의 종교 사원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또한 위구르인들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힘과 용기를 가진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초자연물로 하늘을 인식하였다(원 제국 때 몽골 정부가 발행한 통행증에는 '영원한 하늘의 힘에 기대어 이를 두려워하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때문에 한족이 도덕적으로 인식하였던 하늘과는 구분이 된다고 한다. 특히 천산의 천지는 하늘과 가까이 있는 데다, 설산이라는 성스러움까지 더해져 유목민들에게는 더없이 숭배 받는 존재였을 것이며, 몽골 시대 사원은 그와 관련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좀 더 확실한 종교적 증거는 청대의 것이다. 아래에서 보게 되는 최근의 도관 자리에 청대에 세워진 철와사(鐵瓦寺)가 있었다고 한다. 건륭 연간에 푸른 벽돌로 벽을 쌓고 쇠기와로 지붕을 이었다고 해서 철와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니, 청의 위구르정복 이후의 일일 것이다. 철와사의 경내가 도관의 넓이와 비슷하다고 하였다면, 상당한 규모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건륭제의 서역 정복은 영토의 확장이나 이민족에 대한 통치권 확보와 같은 정치적인 의미와 함께 종교와 그 표현 양식까지 전해진 것이니, 이른바 중화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우루무치를 비롯한 서역에 이식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좀 더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중국 정부가 2007년에 이곳에 복수관(福壽觀)이라는 도교 사원을 세우고, 그 중심부에 '황제, 신농, 복희'라는 삼황을 모신 일이다. 나로서는 서왕모 전설을 생각하면서 당연히 서왕모를 모신 사당이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가이드를 따라갔는데, 뜻밖의 현장을 만난 셈이었다. 서왕모는 오히려 도관의 입구 오른쪽에 자리한 '낭낭전'에 다른 여신과 함께 초라하게 앉아 있었다. 그곳을 찾은 관광객 중 어느 누구도 그에게 예배를 하러 가지는 않았다. 뒤꼍으로 밀려난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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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2007년에 새로 생긴 복수관의 전경. 정면에 있는 정문을 지나 후면에 위치한 큰 건물이 정전인 영소전이며, 이 안에 황제, 복희, 신농의 상이 모셔져 있다.


천지에 온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영소전(靈宵殿)이라 이름붙인 정전(正殿)의 중앙에 폼 나게 앉아있는 황제와 복희, 신농씨에게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이제 중국의 어느 구석에 가든 전설상의 시조인 황제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인이 가는 곳에는 항상 그들의 신이 같이 간다'는 사실은 중국의 역사에서 아주 낯익은 종교적 관행이었으니, 천지의 문화도 중국인을 따라 중국식으로 개조된 것이 분명하였다.


중국신화 연구자인 김선자, 이유진 박사에 따르면, 지난 1996년부터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주요 사업이 바로 신화의 역사화와 이를 통한 위대한 중화민족 만들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로 이 천지에 삼황을 모시는 작업도 그것의 일부였을 것이다. 유목민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중심을 잡아주던 유목문화는 이제 관광객에게 옷 빌려주기나 말태우기 등 중화 관광의 한 자락으로 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천지 부근은 이곳의 유목민에게 더 이상 생기 있는 삶터는 아니게 되었다. 특히 복수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의 개조 양상을 보면서 나는 문화제국주의라는 말이 다른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5】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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