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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8월호
‘격대지정(隔代指定)’은 파기될 것인가? _ 양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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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순정차이 (우) 후춘화


724일 중공중앙은 순정차이 전 충칭시 서기를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입건하여 조사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천민얼의 갑작스런 충칭시 당위원회 서기 임용 이후 순정차이의 거취가 주목받는 상황이었다. 의구심의 심화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음모론의 확산을 야기한다. 특히 19차 당대회가 임박하면서 인사문제에 대한 의혹의 증폭은 지도체제의 안정성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당중앙의 순정차이에 대한 입건 및 조사 발표는 이러한 의구심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는 큰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기존 관행 파괴라는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시진핑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앞둔 중국 정단에 한차례 극심한 갈등의 소용돌이가 불 것으로 보인다.

 

격대지정(隔代指定)’, 이른바 세대를 뛰어 넘어 차세대 최고지도자를 지정하는 방식이다. 이는 취약한 중국의 후계구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덩샤오핑을 위시한 개혁개방 시기 원로들의 합의 결과이다. 원로들의 합의를 가능케 한 동력은 바로 최고지도자의 안정과 권위가 정치안정의 근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랜 정치 경험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후계구도의 안정화가 체제안정의 근간임을 체득했다. 따라서 후계구도를 어떻게 안정화시킬 것인가는 늘 최대 정치현안이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후계자로 린뱌오나 화궈펑을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덩샤오핑 역시 후야오방이나 짜오즈양의 실패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 바로 전현직 고위간부들의 합의에 의해 새로운 지도자를 미리 정하지는 것이고 그 결과가 바로 격대지정이다

 

덩샤오핑은 이 논리에 따라 199214차 당대회에서 장쩌민과 함께 후진타오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장쩌민 이후시기를 이끌도록 했다. 그리고 후진타오는 후계자 수업을 마치고 200216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올라 10년 동안 중국을 통치했다. 장쩌민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 등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집권하는데 길을 열어 놓았다. 물론 덩샤오핑의 원톱후계자와 달리 18대 후계구도는 투톱의 경쟁구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 18대에서는 후춘화와 순정차이가 제6세대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하여 후계구도에 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이들은 국내외에서 이른바 제6세대를 대표하는 전도유망한 지도자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들 역시 시진핑과 리커창의 경쟁구도와 마찬가지로 양자 경쟁구도를 형성해왔다.

 

양자 경쟁구도였던 순정차이가 탈락하면서 일단 후춘화 1인 후계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국면(局面)이 계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순정차이와 후춘화의 양자 경쟁구도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격대지정의 관행에 따르면 순정차이와 후춘화의 양자 구도는 후진타오의 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집권 10년 동안 제대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은퇴한 장쩌민이 이른바 상왕역할을 하고 그 측근들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포진하여 집단지도체제를 명분으로 후진타오의 권력을 견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소한 정치적 공간에서 순정차이와 후춘화의 격대지정을 후진타오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의중이 반영되었든 아니든 취약한 후진타오의 권력을 직접 가까이서 목격한 시진핑으로서는 자신의 권력을 제약하면서까지 후춘화, 순정차이라는 양자구도의 후계체제를 굳이 받아들여야 하는 절대 요인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201610186중전회에서 시진핑은 이미 당중앙의 핵심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정책과 인사의 최종 결정권은 바로 자신이다. 따라서 그 어떠한 결과도 자신의 책임으로 귀결된다면 시진핑은 굳이 자신의 권력을 제약하면서까지 양자경쟁의 후계구도를 가져갈 필요는 없다. 순정차이와 후춘화로 대표되는 이른바 차기 후계구도를 유지해야 하는 명분을 찾기 어렵다면 시진핑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현 구도를 파기해도 정치적 리스크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새로운 관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관행이 어떤 이유로 파기되었는지 혹은 파기되어야 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당내 합의를 위해서 설득을 통한 명분의 축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중순경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는 2017년 상반기 규정과 법규 위반 처리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전국기율검사와 감찰기관에 민원이 접수된 것이 1319천 건이었다. 이 가운데 256천 건이 입건되었다. 여전히 기율위반 처분이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간부에 대한 처분 결과이다. 처분 결과 21만 건 가운데 당 기율 위반 처분 사례가 17만 건을 넘어섰다. 물론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주요 감찰 대상은 당 조직과 당원들이다. 기율 위반이 중점 처분 내용이라는 점은 기율이 여전히 당원과 당 조직을 옭죄는 수단임을 잘 보여준다. 순정차이 역시 엄중한 기율 위반으로 입건되었다.

 

당원에게 기율 위반은 당장(黨章)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본적인 당원으로서의 덕목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바로 당에 대한 충성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에 대한 충성은 또한 당의 핵심인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충(不忠)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기율 위반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범법 사실과 같은 실증(實證)에 입각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율 위반을 범용(汎用)하는 이유는 기율 위반은 사상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율 위반은 사상적 각오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즉 당과 당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덜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특정 법규 위반이 아니라 광범위한 성격의 기율 위반은 특정 간부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017년 상반기 입건된 성부급 간부 38명 모두 기율 위반 처분을 받았다. 순정차이 역시 기율 위반 특히 엄중한 기율 위반 처분을 받았다. 향후 조사과정에서 이 기율 위반 처분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실이 적시될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당원의 기율 위반을 국민의 법규 위반보다 더 엄중하게 처리한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당원의 일탈, 특히 핵심 당원들의 일탈이 국민들의 신뢰와 신임에 기반을 둔 중국공산당의 중국 통치 정당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범법에 의한 단죄보다 기율에 대한 위반으로 당원을 처리하는 것이 통치 정당성의 유지와 당의 안정 유지에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당원으로서의 지위 박탈이 재기를 어렵게 하는 이유이고 그 출발은 바로 당기 위반 조사로 시작된다. 결국 순정차이는 당의 기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고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순정차이로 대표되는 제6세대 후계구도와 직결되어 정치적 파급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순정차이와 후춘화라는 양자 경쟁구도에 시진핑이 그리 절실한 애착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그 파고는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순정차이의 낙마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먼저, 순정차이의 낙마는 시진핑에게 후계구도 전반에 대한 새로운 관행을 만들 공간을 제공한다. 양자 경쟁구도가 시진핑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한 축인 순정차이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낙마했다면 시진핑으로서는 굳이 양자구도의 후계체제 그림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양자구도가 아닌 다자구도의 그림도 가능한다. 예컨대, 천민얼, 천지닝, 리창 등 다양한 후보군의 다자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경우 룰 메이커로서 시진핑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경우 후춘화의 원톱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후춘화의 지위를 흔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기존 관행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당내 합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진핑의 권력이 절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집단지도체제를 명시적으로 파기하거나 변화시키려는 조짐은 아직 발견할 수 없다. 시진핑이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권력을 확실히 장악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진핑 독자적으로 1921년 당 창건 이후 100여 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집단지도체제를 온전히 흔들 수는 없다. ‘핵심이라 할지라도 명목적으로는 여전히 7명의 집단지도체제 성원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물론 집단지도체제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시진핑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현상을 변경할만한 모험을 하기에는 순정차이의 낙마가 가져온 충격이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순정차이의 낙마는 시진핑이 후계구도 국면을 전환하는데 매우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마오쩌둥 방식과 같이 군중과 직접 소통하는 노력을 강화할 것이고, 당내에서도 사상 공작을 강화하는 노력이 병행될 것이다. 이른바 시진핑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사상 학습 열풍이 불 조짐이 이를 반증한다.

 

시진핑의 타깃은 우선 순정차이에 맞춰졌다. 이는 격대지정을 파기하는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격대지정의 파기가 시진핑의 오랜 숙원이라면 이번 기회에 이 관행이 파기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시진핑은 종엄치당(從嚴治黨)의 관건은 '관건적 소수'인 각급 영도간부를 틀어쥐는 것이다. 고급간부가 착오를 저지르면 그 위험과 해악(危害)은 크고 당의 이미지와 위신에 대한 손해도 크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순정차이의 입건 조사는 재차 당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에게는 일종의 반부패 성역을 깬다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분명컨대 당내에서는 격렬한 권력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물론 보시라이 사건 때처럼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을 것이다. 통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원화되어 가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당내에서도 시진핑의 광폭 행보에 대한 피동적 수용 혹은 부분적 타협 아니면 전면적인 반기 등 여러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그 일단은 격대지정의 파기를 둘러싼 논쟁이 될 것이다


양갑용 _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www.molihua.org/2016/01/blog-post_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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