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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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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
두려움 없는 삶을 위하여 - 소철의 「맹덕전(孟德傳)」 _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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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두려움 없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내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까? 송나라 문인 소철(蘇轍)맹덕전(孟德傳)을 읽으며 두려움의 정체와 두려움 없이 사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글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천한 인물인 맹덕(孟德)의 삶을 기록한 전기다. 그의 삶이 어떠했기에 소철은 그에 대한 전기를 쓴 것일까? 먼저 글의 도입부를 읽어보자.


맹덕은 비범하게 용감했던 퇴역 병사다. 어려서부터 산을 좋아했지만 병사가 되고 나서는 뜻대로 하지 못했다. 가우(嘉祐) 연간에 진주(秦州)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진주에는 명산이 많았다. 맹덕은 아내를 쫓아내고 자식은 남에게 줘버리고는 화산(華山) 근처로 도망쳤다. 옷을 칼 한 자루와 떡 열 개로 바꿔 가지고 산에 들어갔다.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궁을 지키는 병사였지만 이제 여기에 왔으니 붙잡혀도 죽고, 먹을 것이 떨어져도 죽고, 맹수나 독사를 만나도 죽는다. 이 세 가지 죽을 일을 나는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겠다. 오직 깊은 산이면 그리로 가겠다.”

떡이 다 떨어지자 풀뿌리와 열매를 먹었다. 하루에 열 번 병이 났다가 나았는데, 구토, 설사, 복부 팽만, 가슴앓이 등 앓지 않은 병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하기를 몇 달이 지나자 마치 오곡을 먹은 듯 편안했다.

 

맹덕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하는 남다른 사고방식을 지녔다. 그는 붙잡혀 죽거나, 굶어 죽거나, 맹수나 독사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산이 좋아 산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세 가지 위험에 대해 근심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풀뿌리와 열매로 연명하며 곧 새로운 음식에 적응한다. 하지만 고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산에 들어가 두 해가 되도록 굶지는 않았지만 맹수를 만나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죽지 않았다. 맹덕은 이렇게 말했다.

무릇 맹수들은 사람의 기운을 아는 것 같다. 백 보 밖에서 가까이 오지 않고 엎드려 포효했는데, 그 소리가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나는 죽음을 돌아보지 않는 까닭에 일찍이 그 소리에 동요했던 적이 없다. 잠깐 사이에 펄쩍 뛰어올라 마치 내게 덤벼들 듯했지만, 열 발자국도 딛기 전에 곧 걸음을 멈추더니 앞뒤로 어슬렁거리다가 귀를 늘어뜨린 채 떠났다. 맹수가 올 때마다 시험해 봤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굶주림의 위험보다 더욱 즉각적인 두려움을 주는 것은 맹수의 위험이다. 하지만 그는 맹수가 지척까지 다가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맹수를 관찰한다. 맹수도 그의 기에 눌려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만다. 더욱 놀라운 부분은 맹수가 올 때마다 시험해 봤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고 한 대목이다. 매번 맹수가 공격해 올 때마다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맹수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는 것은 그가 용감함과 침착함을 갖췄음을 잘 보여준다.

 

맹덕은 이렇게 맹수의 위험도 피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죽을 위험에 처한다. 정찰병에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얼마 후 맹덕은 상주(商州)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이 상주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정찰병에게 붙잡혔고, 그는 이제 죽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상주를 다스리는 송효손(宋孝孫)이 그에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도를 갖춘 사람인 것 같다.”

맹덕이 자초지종을 아뢰자 이를 자수한 것으로 간주하여 진주로 송치했다. 장안도(張安道) ()이 마침 진주를 다스리고 있었다. 맹덕은 병을 핑계로 병적(兵籍)에서 벗어나 평민이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산속을 다니고 있는데, 별다른 특이한 능력은 없다.


이렇게 해서 맹덕의 삶에 대한 서술은 일단락된다. 세상의 일반적인 눈으로 봤을 때 맹덕에게는 결점이 많다. 군에서 도망친 것,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친 것, 병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을 핑계 삼은 것 등이 그렇다. 게다가 용감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이한 능력도 없다. ‘()’보다는 ()’을 숭상하고, 비교적 섬세한 취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송나라 문인들의 입장에서 이처럼 산에서 짐승처럼 사는 일자무식 병사의 삶이 그리 훌륭하게 보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소철이 많은 인물들 중에서도 맹덕에 대한 전기를 쓴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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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소철의 초상

 

소철은 맹덕의 두려움 없는 삶의 태도를 동경했다. 이는 그가 맹덕에 대해 총체적으로 평가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맹덕은 도를 갖춘 사람이라고 이를 만하다. 세상의 군자들은 모두 돌아보는 바가 있기 때문에 연모하는 것이 생기고, 두려워하는 것이 생긴다. 연모와 두려움이 마음속에 오락가락하니, 그것이 작용해 꼭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 기색이 얼굴에 나타나 남이 알아차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약자는 욕을 당하고 강자는 조소를 당하니, 지금까지 세상에 그리 대단한 사람이 없었다.

맹덕은 그 마음속에 돌아보는 바가 없기에 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밖으로 넘쳐 드러나므로, 그 자신은 모르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를 미뤄보면, 천지와도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니 맹수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소철은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소동파(蘇東坡, 본명은 소식(蘇軾))의 동생이다. 소동파가 자유분방하고 호기로우며 낙천적인 성격으로 세속에 초연하고 이상을 갈구한 데 반해, 소철은 신중한 성격으로, 형에 비해 소심하고 용의주도했으며 현실적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소동파가 조정을 풍자했다는 죄명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되었을 때 소철은 형 대신 스무 명이나 되는 그의 가족을 돌보는 한편, 연좌되어 균주(筠州)로 좌천되었다. 균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그는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가던 형과 만나 회포를 푸는데, 이때 소동파는 낙천적 태도로 상황을 받아들이며 황주 사람이 되면 그만이지 무슨 걱정이냐고 묻는다. 소철은 기가 차서 형에게 다시는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말과 글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이렇게 형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던 소철이지만 그는 평생 형을 존경했다. 그는 형이 벌여놓은 사고를 수습하느라 고생하면서도 형의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성격을 동경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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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삼소기념관(三蘇紀念館)의 동상.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 소식, 소철은 모두 문장에 뛰어나 

삼소(三蘇)’라 불렸다. 세 사람 모두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힌다.

 

맹덕전의 마지막 대목에서 소철은 세상의 군자들은 모두 돌아보는 것이 있다(世之君子皆有所顧)”고 하면서 그로 인한 연모와 두려움, 모욕과 비웃음에 대해 말한 후, 이것과 대비하여 맹덕은 그 마음속에 돌아보는 것이 없다(孟德其中無所顧)”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호연지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했다. “세상의 군자들에는 소철 자신이 포함되고, 그는 자신의 한계가 바로 돌아봄[]’에 있다고 인식했다. ‘돌아본다는 것은 마음을 쓴다는 것이다. 마음을 쓰기 때문에 연모가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그는 이러한 마음 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러한 갈망에 찬 시선의 끝에 형 소동파가 있고 또 맹덕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두려움의 본질은 돌아봄이다. 무언가에 마음을 쓰고 아끼기에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 무엇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애초에 두려움이 생길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맹덕과 같이 돌아보는 것이 없는(無所顧)’ 마음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대신에 나는 무엇을 돌아보는가?’를 질문한다면, 이는 내 안의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어 줄 것이다. 맹덕이 맹수를 관찰하던 그 형형한 눈빛을 상상하며 나의 두려움을 직시한다면, 두려움 역시 저 멀리 도망가지는 않더라도 한 두 걸음쯤은 뒷걸음치지 않을까?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11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1 : https://baike.baidu.com/pic/%E8%8B%8F%E8%BE%99/597591/1

그림2 : https://www.meipian.cn/2bneh0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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