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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8월호
낸시 펠로시는 왜 대만에 가려는 걸까? _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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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회 의장이 대만 방문을 강행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728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은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玩火必自焚)’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결연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미 여러 차례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대응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놀라운 점은 미국 내에서조차 왜 이 시점에 펠로시 의장이 굳이 대만을 방문하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올가을 시진핑 주석의 연임이 최종적으로 확정될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가 예정된 데다 당대회의 구체적 내용을 합의하고 결정할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펠로시 의장의 방문 일정과 거의 겹칠 듯하다. 중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수밖에 없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으며, 미중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펠로시가 가지 않겠다고 하면, 중국에 굴복하는 꼴이 되어 바이든 행정부가 비판에 내몰리고 대만에 대한 미국의 보장 수준을 설정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의 레드라인을 미국이 제공하는 셈이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 강행으로 중국이 대응하게 된다면, 미국도 다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의 상호 반응이 향후 미중 관계의 최저선으로 작용하여 향후에는 상대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은 대만 정책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영역에서 대만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중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일종의 미국식 살라미 전술을 펼치면서 실질적인 대만의 방어력 향상을 도모해 왔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양단간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아 이러한 방식의 유효성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에 우호적인 미국의 학계와 언론들이 전략적으로든, 전술적으로든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별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분석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굳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냈었다.

 

펠로시 의장으로서는 자신만큼 중국에 미국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듯이 펠로시 의장은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중국을 꾸준히 괴롭혔던 정치인이다. 정치 초년생 시절 1989년 천안문 사건이 터지자 누구보다도 먼저 미국 내 중국 유학생들의 보호에 앞장서고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미온적인 중국 대응을 비판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다졌었다. 19919월에는 미국 의회의 중국 방문단으로 베이징에 갔을 때, 공식 일정에서 몰래 빠져나와 다른 두 명의 의원과 함께 천안문 광장을 방문했다. 두 해 전 광장에서 희생됐던 학생들을 기리는 꽃을 들고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열사들에게(献给为中国民主事业牺牲的烈士, To those who died for democracy in China)'라는 중문과 영문이 쓰인 현수막을 들었다. 당시 미국 하원의원을 체포할 수 없었던 중국 공안들은 대신 기자들을 잠시 구금했었다. 2019년부터 두 번째로 연방 하원의장을 맡아 미국 의회의 중국에 대한 압박을 주도했다. 같은 해 천안문 사건 30주년을 맞아 미국 국회의사당에 인민해방군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이른바 '탱크맨' 동상을 세우고 직접 천을 벗겨 세상에 공개한 사람도 펠로시 의장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지 의심을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두 살이 더 많은 펠로시 의장으로서는 이번 대만 방문을 통해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치적 유산, 이른바 '레거시(legacy)'를 수미쌍관하게 완성하고 싶었던 듯하다. 문제는 중국이 1989년 천안문 사건 즈음의 중국이 아니고 펠로시 의장도 일개 하원의원이 아니라 미국의 공식 권력서열 3위라는 점이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을 직접 무력으로 저지할 수는 없겠지만, 1991년 천안문 광장에서 펠로시 대신 기자들이 잠시 잡혀있었던 것처럼 대만 방문이 강행된다면 펠로시 아닌 누군가가 그때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펠로시.jpg

 사진 1. 1991년 톈안먼 광장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현수막을 펼친 낸시 펠로시

 

 

 조형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pelosi.house.gov/news/pelosi-updates/undermining-childrens-nutrition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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