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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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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한유의 「송궁문(送窮文)」 _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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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로 큰 부를 이룬 지인이 얼마 전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2021)을 추천했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안 읽어볼 수가 없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얻은 것은 주식 투자 꿀팁이나 금융 흐름을 읽는 안목이 아니었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해서 읽었던 책이 오히려 지금 삶에서의 자족을 가르쳐줬다. 저자는 책에 실린 부록 나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금융 조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은 네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네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함께, 원하는 만큼 오래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고가의 물건이 주는 기쁨보다 더 크고 더 지속적인 행복을 준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부자가 되겠다는 탐심은 간데없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적 자유에 대한 감사함이 차오른다. 탐심에 이끌려 읽은 책이 오히려 탐심이 부끄러워지게 만든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자 당() 나라 문인 한유(韓愈, 768~824)의 글 한 편이 떠올랐다. 제목은 송궁문(送窮文)’. 가난을 송별하는 글이다.

 

이 글은 저자 한유가 한대(漢代) 작가 양웅(揚雄)축빈부(逐貧賦)의 발상을 모방하여 쓴 글로, 기발하면서도 빼어난 한유의 문풍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다. 가난을 의인화한다는 참신한 착상에서 출발해 유희적 필치로 자신의 궁핍함을 자조했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한 주인(主人)이 가난을 가져오는 신()인 궁귀(窮鬼)들을 떠나보내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항변에 설득되어 결국엔 그들을 제사상에서도 윗자리에 모신다는 것이다. 궁귀들을 내쫓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그들을 윗자리에 모시게 되었다는 결말이 부자가 되고 싶어 책을 읽었다가 부자가 아닌 내 삶에 자족하게 된 내 경험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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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음력 16일 궁귀(窮鬼)를 보내는 중국 풍습

중국 민간에서는 정월에 재신(財神)을 맞이하고 궁귀, 혹은 궁신(窮神)을 전송한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주인이 궁귀들에 설득되어 그들을 떠나게 하지 못한다는 다소 유머러스한 내용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안빈낙도하는 삶에 대한 저자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다. 동시에 자신처럼 지혜롭고 학문을 추구하는 사람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규탄과 맹목적으로 부귀만을 추구하는 세태에 대한 불만 역시 담겨 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은 궁귀들을 쫓아 보내려는 마음에 나름대로 의식을 갖추고서 조용히 그들에게 말을 건다.

 

원화(元化) 6년 정월 을축일(乙丑日) 그믐날에 주인이 하인 성()을 시켜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어 식량을 싣고, 소에 멍에를 메우고 돛을 당겨 돛대를 세워서 궁귀(窮鬼)들에게 세 번 읍하고 이렇게 말했다.

 

듣건대 그대가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 하여 내가 감히 경로는 묻지 못하지만 직접 배와 수레를 마련하여 식량을 가득 실어 놓았소. 날이 길하여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니,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시오. 먼지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바람 타고 배 몰아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굼뜨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고, 내게는 노잣돈을 갖추어 전송한 은혜가 있게 될 것이니 그대들은 떠날 뜻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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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중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송궁문삽화


그러자 휘파람 소리인 듯, 흐느끼는 소리인 듯,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그대와 함께 지낸 지 사십여 년이 되었다. 그대가 어렸을 때 나는 그대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고, 그대가 공부하고 밭 갈면서 벼슬과 명예를 추구하는 동안 오로지 그대를 따르며 초심을 바꾸지 않았다. 잡귀를 쫓는 문신(門神)들이 나를 꾸짖어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 따르면서 다른 데 뜻을 두지 않았다. 그대가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갔을 때는 뜨겁고 덥고 습하며 나는 그 곳 출신이 아니라 여러 귀신들이 괴롭혔고, 태학에서 4년 동안 아침에는 무친 야채, 저녁에는 소금을 먹으며 지낼 때 오로지 나만이 그대를 보살펴 주었고, 사람들이 모두 그대를 싫어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를 배반한 적이 없다.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입으로는 떠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내가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단 말인가? 이는 필시 그대가 모함하는 말을 믿고 내게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나는 40년 넘게 의리를 버리지 않고 당신 곁을 지켰는데, 나를 쫓아내다니 어디서 모함을 들은 모양이구나.’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아랑곳 않고 주인은 다섯 궁귀들이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성토하고, 다섯 귀신은 다시 이렇게 맞받아친다.

 

그대가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니 작게는 교활한 것이고 크게는 바보스럽도다. 사람이 태어나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살겠나? 우리는 그대의 명성을 세워 백 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서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다. 천하의 사람들 중에 누가 우리보다 그대를 더 잘 알겠는가? 비록 배척받아 쫓겨나더라도 차마 그대를 소원하게 대하지 못하리니, 나를 믿지 못하겠거든 청컨대 시경(詩經)서경(書經)의 내용을 가지고 검증해 보도록 하라.”

 

잘 들어보면 궁귀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자신들은 주인의 명성이 백 세 뒤에도 사라지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운 시경서경에는 위대한 현자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가난했지만 오래도록 아름다운 이름이 전해 내려온다. 주인은 이러한 궁귀들의 말에 설득되어 머리를 떨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죄한 다음 수레와 배를 태우고 그들을 윗자리에 모셨다.”

 

한유는 이 글에서 궁귀를 의인화하고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주인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는 내용을 통해 스스로 가난을 감내하는 삶을 선택했음을 보여주었다. 의인화한 궁귀가 하는 말 중에 군자와 소인은 그 마음이 같지 않으니, 오직 시대와 맞지 않아야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곧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소인들은 시대에 영합하여 부귀를 추구하는 반면 군자는 하늘의 뜻을 따르며 안빈낙도한다는 인생관을 담은 것이다. 또 궁귀는 주인이 자신들을 내쫓는다면 이는 아름다운 옥을 가지고서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저 쌀겨와 죽을 흠모하는 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름다운 옥기름지고 단 것은 가난하지만 하늘의 도()를 따르는 삶을, “한 장의 양 가죽쌀겨와 죽은 도를 버리고 맹목적으로 부귀영화만을 좇는 세속적 삶을 비유한다. , 저자는 궁귀의 입을 빌려 자신은 비록 가난할지언정 하늘의 도를 따르는 군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내비친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송궁문이지만 내용을 보면 결국 궁귀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궁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부귀와 가난 중에 가난을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부귀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기로 결심한 것을 뜻한다. 부귀에 집착하지 않고 가난을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가치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행복연구센터장인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2018)에서는 행복한 사람들은 돈의 힘보다 관계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행복한 사람들은 돈보다도 좋은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두가 돈을 좇는 머니러시의 시대다. 송궁문을 읽으며, 돈이 주는 배당금뿐만 아니라 돈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배당금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9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baijiahao.baidu.com/s?id=1723887808636819597&wfr=spider&for=pc

그림 2. https://max.book118.com/html/2020/0521/5121202342002244.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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