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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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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호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 _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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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소식(蘇軾)은 중국 북송(北宋)의 문인이다. 그는 문장에 뛰어나 부친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으며 구양수(歐陽修) 등과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예부상서(禮部尚書) 등 주요 관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했고, 항주(杭州) 등지에서 지주(知州)를 지내며 선정을 펼쳐 백성들 사이에서 덕망이 높았다.

 

그러나 만년에는 왕안석(王安石) 등 신법파(新法派)가 집권하면서 구법파(舊法派)의 중심인물이었던 그는 극심한 당쟁에 휘말려 오랜 유배 생활을 했다. ‘동쪽 언덕에 은거하는 선비라는 뜻의 동파거사(東坡居士)’ 역시 그가 황주(黄州)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다. 이후 휘종(徽宗)이 즉위하면서 그는 사면을 받아 조봉랑(朝奉郎)에 봉해졌으나 수도로 오던 도중 안타깝게도 객사했다.

 

<전적벽부>는 그가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47세 때 황주 황강(黃岡)의 적벽(赤壁)을 유람하고 쓴 문장이다. 적벽은 그 유명한 삼국시기의 영웅 조조와 주유가 격전을 벌였던 명승지다. 그런데 소동파가 유람했던 황강의 적벽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배경이 된 적벽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곳이다. 그래서 <전적벽부>의 적벽을 동파적벽(東坡赤壁)’, ‘문적벽(文赤壁)’이라 부르고 삼국지의 적벽을 주유적벽(周瑜赤壁)’, ‘무적벽(武赤壁)’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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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배를 타고 적벽을 노니는 소동파와 나그네

 

<전적벽부>는 소동파가 정치적으로 실권하여 정신적 고통이 컸던 시기에 쓴 글임에도 인생을 관조하는 달관적인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글의 구성이 독창적이고 경치와 감정 묘사 속에 주제가 잘 어우러져 있어 오랜 세월 천고의 명편으로 꼽혀 왔다.

 

임술년 가을 716, 나는 친구와 적벽 아래에서 배를 띄워 놀았다.”로 시작하는 글의 도입부에서는 밤중에 배를 타고 본 적벽의 풍경과 감회를 담았다. 강 위에 보름달이 떠 있고, 배 위에는 술상이 차려졌다. 배야 사공이 노를 저어 가고 있으니, 바쁠 것도 없고 남은 일은 술 마시면서 시 읊고 노래 부르다가 슬슬 잠자리에 드는 것뿐이다. 소동파는 슬슬 술기운이 올라 기분도 내볼 겸, 노래 한 곡조를 뽑았고 신선이 된 듯 들떴다. 그러나 이토록 좋은 분위기에 초를 치는 작자가 있었으니, 바로 소동파와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나그네다. 그가 소동파의 노랫소리에 맞춰 퉁소를 부는데 하필 그 소리가 무척 구슬펐던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게 구슬픈지요?”

소동파가 물었다. 그러자 그 나그네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조와 주유는 한 시대의 영웅이었건만, 지금은 어디로 갔소? 하물며 나와 그대는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 베며 물고기와 새우, 고라니와 사슴을 벗하는 하찮은 처지니 오죽하겠소. 일엽편주를 몰아 표주박 잔을 들고 서로 권하며 하루살이 인생을 천지에 맡기니 넓고 넓은 바다 속의 좁쌀처럼 보잘것없소. 우리 인생이 한순간임을 슬퍼하며 장강의 무궁함이 부럽구려.”

 

나그네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인생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도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하물며 큰 업적도 못 이룬 나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나?’ 이는 현대인들도 누구나 한번쯤 해 봤을 고민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기 쉽고, 그러다보니 개인의 인생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만약 심리 상담센터에 가서 이런 하소연을 한다면 심리상담가들은 이런 조언을 해줄 것 같다. ‘나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공동체를 위해 기여한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등등..

 

소동파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 이 나그네에게 현대의 심리상담가 뺨치는 신박한 답변을 들려준다. 그리고 둘은 신이 나서 동이 틀 때까지 술을 마신다. 소동파의 대답은 이렇다.

 

그대는 강물과 달에 대해 아시는지? 강물은 흘러가기는 저렇게 계속 흘러가지만 아주 가 버린 적은 없소. 달은 차고 기울기는 저렇게 계속 변하지만 끝내 완전히 커지거나 줄어들지는 않소.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천지는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만물과 우리 모두가 끝이 없소.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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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변하는 것들 속에서 불변하는 것을 발견한 소동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달을 두고 한 얘기가 그렇다. 결국 변하지 않는 측면을 본다면 영원히 그대로인 것들이 있다. ,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순환도 그렇다. 계절의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그러한 계절의 순환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개인의 측면에서는 끊임없이 변화해 결국 사멸에 이르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이치는 변하지 않고, 각 개개인의 삶도 그러한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한다. 이처럼 인간 역시 만물과 동등하게 영원한 이치 안에 존재하며, 한 개인의 삶도 전체 인간 집단의 영속성 안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거시적인 관점은 개인적 영달에 대한 집착이나 내적으로만 침잠하는 허무감에서 훌훌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정신없는 요지경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하지만 인간의 이상,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와 상호 관계의 덕은 변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일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에 나오는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 (Some things never change)’라는 노래도 그런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호박이 거름이 되는 겨울에 쓸쓸함을 느끼던 주인공 앤은 눈사람 요정 울라프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다시 삶의 활기를 되찾는다.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                                                   Some things never change

내 손 안의 너의 손의 감촉처럼.                                         Like the feel of your hand in mine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                                                   Some things stay the same

우리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처럼.                       Like how we get along just fine

허물어지지 않을 오래된 돌 벽처럼                           Like an old stone wall that’ll never fall

어떤 것들은 언제나 진실이야.                                                   Some things are always true!

어떤 것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                                                   Some things never change

내가 너를 꼭 붙들고 있는 모습처럼.                             Like how I’m holding on tight to you.

 

그리고 <전적벽부>가 주는 위안도, 내가 좋아하는 옛 글들의 향기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누워서 읽는 중국 고전 8



윤지양 _ 인천대학교 중어중국학과 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그림 1. https://www.sohu.com/a/162196863_782050

그림 2. http://www.360doc.com/content/18/0213/09/10101824_729715161.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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