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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5월호
그 많은 중국인은 다 어디에 있을까? _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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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현장조사를 수행하고 있는 키르기즈스탄에서 중국의 경제적 위상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반면 소비에트 붕괴 후 러시아의 경제적 위상은 상대적으로 하락 추세다. 2018년 키르기즈스탄 재정부 발표에 의하면, 국가 총 채무 46 억 달러 중 중국에게 진 대외 채무가 17억 달러 이상이다. 대부분이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나왔고, 용도는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구축이었다. 중국수출입은행이 4억 달러를 차관으로 제공하고, 유라시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이 투자하여 건설하고 있는 비쉬켁-오쉬 간의 남북 간선도로 공사의 책임 시공자는 중국로교공정유한책임공사(CRBC)다. 무역규모도 10억 달러를 넘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중국의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턱없이 자본이 부족한 이 국가에게 중국의 지원은 경제 개발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탐문한 바로는 오쉬에 만 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상주하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오쉬를 통한 중국-우즈벡 중계무역이 성할 때는 숫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쉬 거리에서 대낮에 중국인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딘가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있는지, 아니면 모두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지 모르겠다. 중국계 상점은 물론 쉽게 찾을 수 있다. 알라이 산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중국 자본이 운영하는 광산들이 수두룩하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중국인들을 찾기 힘들다. 중국 직원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일까? 물론 광산 운영자들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고급 차량들이 도로를 가끔 질주하지만 그런 차들은 여기서는 흔한 히치하이킹에 응하지 않으므로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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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변경도시 사르타쉬 삼거리

 

 

다만 필자가 사르타쉬 삼거리 도로에서 한 시간 동안 실제로 세어본 바에 의하면 신강의 카쉬가르와 접하고 있는 에르케쉬탐에서 들어오는 대형 화물차는 90%가 중국산이 확실하다. 운전사들도 중국인이 다수다. 한편 사르타쉬에서 키질 강을 따라 타지크스탄으로 이어진 석탄 광석을 나르는 차들을 약 반이 시노 트럭을 비롯한 중국산이다. 나머지는 유라시아 대륙을 전전하다 이곳까지 온 구형 유럽산이다. 과적 단속 시설에서 한 시간 동안 목격한 바, 운전기사들은 전원 키르기즈인이었다. 도로에서 한 두 시간 매연을 마시며 관찰하면 대략 어떤 화물이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살필 수 있다. 현재까지 본 바로는 중국의 첫 번째 관심은 중국의 화물을 유라시아 전역으로 실어 나를 도로, 두 번째가 광물 위주의 원자재 개발, 세 번째가 키르기즈스탄 소매시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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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석탄 운반차량 시노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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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자세히 보면 섬기(陝汽, 섬서기차)라는 한자가 보인다

 

이 정도면 키르기즈스탄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그러니 비쉬켁 도로 정비 사업에 중국 업체들이 주시공자로 나서고, 스마트 시티 사업에 중국의 IT기업이 주사업자로 나서는 것도 당연지사일 것이다. 스마트 도시 사업에는 엄청난 수의 감시카메라를 다는 것도 포함되는데, 중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이는 분야이다. 그러나 올해 3월 키르기즈스탄 정부는 중국 기업측(주로 화웨이)과 맺은 비쉬켁 스마트 도시 프로젝트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뭔가 수가 틀린 것일까?

 

중국과 키르기즈스탄의 경제관계가 밀접해질수록, 어쩔 수 없이 민간의 접촉면도 늘어난다. 전혀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히치하이킹에 응한 두 대의 차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두 개의 인터뷰는 이상기류를 알려주고도 남는다. 29세의 누를란은 알라이 고원 사람이다. 옛날 대우자동차 시절의 티코를 끌고 다닌다. 기꺼이 나를 차에 태우더니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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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인터뷰이 누른란


“중국인이야?” “아니, 한국인.”
“모양을 보니 중국인인데?” “한국인 맞아.” (수염을 더부룩한 내 외양 때문에 두 번째 인터뷰에서도 꼭 같은 대화가 반복되었다.)


그가 말 보따리를 푼다.


“나는 중국인이 정말 싫어.” “왜?”
“지뜰러, 독일인 지뜰러 알아?” “아, 히틀러?” “그래, 중국인은 히틀러야.”


그는 메카에 다녀온 적이 있는 독실한 무슬림이다.

 

“한국 사람들은 개 먹지? 우리는 안 먹는다.” “내가 비쉬켁에서 개 먹는 키르기즈스탄 사람 봤는데.” “그 자들은 진짜 무슬림이 아니지.” “한국도 사람들이 즐겨 먹지는 않아.”
“근데, 중국인들은 아무거나 다 먹는다.” “…… .”
“한국도 데모크라트지?” “그래, 민주주의 국가지.”
“한국 인구가 얼마냐?” “오천만” “와, 키르기즈스탄 열배네.”
“중국은?” “14억” “그래, 중국은 너무 많아.”


그리고는 알라는 유일하다 등등 자잘한 설교를 이어갔다. 짧은 대화였지만 결국 “진짜 무슬림과”과 “인구가 엄청나게 많은, 히틀러의 나라 중국”의 대립구도가 드러나는데, 그의 태도를 요약하면 간단히 혐오와 두려움이었다.

 

이 무슨 엄청난 우연인지 사리모골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름대로 볼만한 차들은 나를 다 외면하고 색깔만 다른 티코가 내 손짓에 호응했다. 오쉬에 사는 43세 콜랴(러시아식 이름이다)와 부르한(몽골식?)이 짐을 잔뜩 싣고 서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똑 같았다. 중국인이냐? 아니다. 그 직후에 나오는 거북스러운 험담.


“중국 녀석들은 당나귀도 먹어. 개는 당연히 먹지. 못 먹는 게 없다구. … 그 녀석들이 땅을 다 파내. 전부 광산이지. … 키르기즈스탄 여자들은 돈을 너무 좋아해. 중국인들은 부자니까 그 친구들에게 시집가서 안 와. 정말 좋지 않아.”


내가 되물었다.


“돈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없지, 나도 좋아하지.”

 

한국에서 임금이 얼만지, 자기 나이에 거기서 일할 수 있는지 등등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오갈 때, 사르모골 근처의 큰 석탄 광산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저것도 중국인들 건가?”
“아니 저건 키르기즈스탄인 것, 근데 저 바로 너머 것은 중국인 것. 금광도 있고.” 


첫 인터뷰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결론은 약간 달랐다. 중국인이 키르기즈스탄 여자들을 돈으로 사간다. 키르기즈스탄 지하자원을 긁어서 돈을 번다. 이상한 것을 먹는 중국인에 대한 문화적인 우월감과 그들의 돈에 대한 열등감이다.
 
두 인터뷰를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크기와 돈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와 체제는 열등하다.’ 물론 그들이 한 말은 사회과학적인 근거는 거의 없는 말이다. 그들이 접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중국인이 당나귀를 먹는 것을 몸소 목격했을까? 그냥 들은 것 아닐까? 또 실제로 중국인을 태웠으면 다를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은 아주 크다는 둥. 그리고 그들은 본국에서 중국의 경제적인 위상, 혹은 중국이 제공하는 원조의 유용성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명확하다. 티코를 타고 다닐 정도의 보통 사람들은 실제로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무슬림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적개심 수준이다. 또 한 가지도 명백하다. 중국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 확인할 수 없지만, 중앙 아시아인들은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관습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존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대신 쉽사리 혐오를 선택한다. 인간을 극도로 혐오할 때 식인종이란 말을 쓴다. 중국인을 당나귀, 까마귀, 개를 먹는 인간이라 부르는 것은 옛날 아프리카인을 ‘식인종’이라 부르던 관행의 현대적인 변형일 수도 있다.
 
중국의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 때문에, 근거 없는(?) 혐오는 퍼지고 있다. ‘오만과 편견’은 쌍둥이다. 저쪽에서 오만이 오면 이쪽에서는 편견이 간다. 대여도 넓은 의미에서는 증여다. 국가 주도의 증여에서, 모스가 말한 증여의 미학, 즉 상호존중의 아름다움을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일까. 다음에는 오쉬의 중국인 밀집구역을 찾아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아야겠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8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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