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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12월호
애니미즘에서 유래한 조상신들 _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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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업종의 조상신은 각 업종의 종사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각자 자기의 필요와 기준에 의거해,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하나의 대상을 선택해 만들어냈다. 선택된 대상 중에는 사람도 있고 신령도 있다.


사람 중에서 역사적 인물이 조상신으로 숭배되는 경우에는 일정한 신격화 과정을 거쳐 신성(神性)을 갖추게 된다. 재신(財神)으로서 탁월한 신성을 갖추게 되는 관우(關羽)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장인(匠人)들의 영원한 조상신 노반(魯班)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민간에 유포되어 있던 신령이 동업자들의 조상신으로 선택되는 경우도 있다. 신화나 전설 속의 신령은 애초부터 인격화되어 있는데, 이미 다룬 바 있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자연물에서 유래한 신령들은 의인화, 인격화의 과정을 거쳐 조상신으로 숭배된다. 이런 과정은 원시 애니미즘(animism)에서 유래하였다. 애니미즘은 모든 동식물, 장소와 사물, 자연현상에 정령(精靈, 즉 의식과 감정)이 깃들어 있어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용어 자체가 ‘생명과 사고의 원천을 이루는 영혼이나 정신’을 뜻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 어원을 두고 있다.


애니미즘은 원시시대 수렵채집인 사이에서 매우 일반적이었다. 애니미즘에서 인간과 사물, 사물의 정령들 사이에는 특정한 장벽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령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의 종교의식이 유신론(Theism)으로 발전하면서, 우주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이 존재하고 우주의 질서가 인간과 신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를 바탕으로 다신교가 출현하였고, 다신교를 믿는 신자 가운데 일부가 하나의 신만을 우주의 최고선으로 믿기 시작해 일신교가 나타났다. 그러나 다신교나 일신교의 출현으로 애니미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신교를 구성하는 핵심요소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동업자들의 수호신 숭배에도 원시시대에 비롯된 애니미즘이 남아있다. 대개 숭배의 대상은 의인화 내지 인격화된 동식물, 장소나 사물, 자연현상이다. 도교와 결합한 경우에는 신선(神仙)으로 꾸며지기도 한다. 인격화되더라도 자연과 사물은 어떤 업종의 원천 기술을 발명한 존재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조상신보다는 대개 수호신으로 자리매김 되었다.(조상신과 수호신의 구분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첫 번째 글 참조) 이런 애니미즘에서 유래한 각 업종의 수호신들은 원시시대 애니미즘의 살아있는 화석(化石)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어떤 자연물 숭배가 어떤 업종과 연계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동식물


당연히 해당 동식물과 일정한 관련이 있는 업종에서 수호신으로 섬겼다. 예컨대, 말(馬)은 예부터 교통, 운송, 경작, 작전(作戰) 등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말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아문(衙門), 관리(官吏), 군대, 경찰, 역참, 마부, 수레꾼, 군마 관리병사, 말 장사꾼, 마방집, 마부 여관, 편자 장인 등이 마왕(馬王)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마왕옹(馬王翁)


소(牛)도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생산 및 생활 수단이었다. 소의 힘이 매우 긴요한 농토나 염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왕(牛王)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이밖에 소와 관련된 판매상, 거간꾼, 수의사, 소몰이꾼, 우골 제품 제조업자 등도 우왕을 섬겼다. 뿐만 아니라, 마왕이나 우왕은 간장, 된장, 절인 야채, 사탕, 과자 등을 제조하는 업종이나 방앗간 등에서 숭배했는데, 원재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말이나 소의 힘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제당 과정에서 사탕수수를 압축해 시럽을 뽑아내는 모습 (출전 : 明代 『天工開物』)


농업은 자연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 농민들은 상대적으로 자연물을 많이 숭배하였다. 그 중에 메뚜기 떼로 인한 충해는 농업에 엄중한 위해를 가하였던 중대한 재해였다. 농민들은 메뚜기 떼를 퇴치할 뾰족한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충왕(虫王)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지역에서 충왕묘(虫王廟)를 짓고 제사를 지냈다. 충왕은 농민들에게 모든 벌레를 관장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충왕은 각종 벌레가 가득 든 병을 손에 들고 있다. 평소에는 벌레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병마개로 막아 둔다. 그러나 누군가 악행을 저지르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병마개를 열어 벌레들을 내보낸다. 농민들이 충왕을 경건하게 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 지역의 전당포에는 호신(號神=耗神)에 제사를 지냈는데, 호신은 바로 쥐이다. 그래서 전당포에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고 쥐를 잡지도 않았다. 이는 쥐가 저당 잡아놓은 물품을 갉아먹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쥐를 퇴치하기보다는 쥐의 정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익을 보호하려는 농후한 애니미즘을 보여준다.


식물로는 청묘신(靑苗神)이 대표적이다. 청묘(靑苗)는 씨를 뿌린 후 처음 올라온 새싹을 말하고, 청묘신은 튼튼한 새싹의 성장을 관장하는 신령이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민들이 청묘신을 섬겼다. 대개는 토지묘(土地廟)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새싹이 한창 무성할 때 청묘회(靑苗會)라는 묘회(廟會, 일종의 축제)를 열고 제사를 지냈다. 말할 것도 없이, 각종 침해를 막아 새싹이 튼튼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것이었다. 이밖에, 화훼농민, 꽃가게, 궁궐의 정원을 관리하는 관원들이 화신(花神) 또는 화왕(花王)을 섬겼다.


청묘신(靑苗神)


장소 및 사물


토지신은 원시적인 대지 숭배에서 유래한 신령으로서, 거의 모든 촌락에 토지묘(土地廟)가 세워졌고 향촌공동체가 공동으로 숭배했다. 말하자면, 농업과 촌락을 직접 관할하는 수호신이다. 이승에 하급관리가 있어 백성을 직접 보살피듯이, 토지신은 저승의 하급관리로서 사람들을 보살핀다. 따라서 사람이 죽으면 ‘보묘(報廟)’라 하여 제일 먼저 토지묘에 죽음을 보고해야 했다.


하지만, 업종의 조상신 차원에서는 일부 지역의 도자업(陶瓷業)이 숭배했을 뿐이다. 도자업은 본래 다양한 조상신을 섬겼는데, 일부 지역에서 특별히 토지신과 화신(火神)을 섬겼던 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에 흙과 불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도자기나 기와를 굽는 사람들은 가마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겨 수시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신령을 요신(窯神)이라 하였다.


성황신(城隍神)도 토지신과 마찬가지로 광범위하게 숭배되었던 지역 수호신이다. 다만, 성황신은 토지신보다 넓은 지역을 관할했다. 성황(城隍)이 성(城)과 해자(隍)를 뜻하는 것에서도 현(縣) 단위의 넓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성황신은 토지신의 상급자로서 저승의 지방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승의 지방관들이 성황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더불어 지방관의 막료(幕僚)로서 관직 없이 지방관의 업무를 보좌하던 사람들도 일부 지역에서 성황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일반 가정에서는 부엌신(灶神)을 섬기는 일이 매우 흔했다. 부엌신은 가정의 주신(主神)으로 여겨졌고, 위패를 부엌 부뚜막에 설치했다. 부엌신을 위해 전용 사원을 짓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매우 드물었고, 기껏해야 집에 목주(木主) 위패를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정도였으나, 이는 매우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역시 각 업종의 수호신 숭배에는 그다지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부엌과 밀접히 관련된 식당, 찻집, 제과점 등에서 숭배했을 뿐이다.


수렵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은 주로 산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산신(山神)을 숭배했다. 일이 워낙에 위험천만했기 때문에 수호신에 의지하는 마음도 그만큼 강했다. 사냥꾼들은 산신이 허락해야 비로소 짐승을 포획할 수 있고, 자신들이 무사한 것은 모두 산신의 자비로운 보살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산신에 대한 숭배는 지극히 경건하고 엄숙했다. 사냥을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산신의 구체적인 양태는 지역마다 달랐다. 산악 자체를 산신으로 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산신이 되기도 하고, 동물이 산신이 되기도 한다. 동물로는 대개 호랑이가 많았다.


중국 동북지역의 심마니와 벌목공도 산신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섬겼다. 특별히 이를 ‘노파두(老把頭)’라고 불렀다. 노파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손량(孫良)이라는 사람이 산삼을 캐러 백두산에 들어갔다가 변고를 만나 굶어죽게 되었는데, 죽기 직전에 사력을 다해 심마니를 위한 안내자가 되고 싶다는 시를 남겼고, 결국 백두산을 관리하는 산신이 되었다. 이밖에 왕고(王皋), 노한왕(老罕王), 반덕마(班德瑪), 유고(柳古) 등이 등장하는 전설이 있다.


자연현상


전통시기의 농업은 자연현상(기후)에 크게 의존하였다. 특히 자연재해의 유무가 농업생산의 관건이었다. 따라서 농사꾼들은 자연재해를 관장하는 신령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앞에서 언급한 충왕(虫王)과 함께 우박을 관장하는 박신(雹神)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많은 지역에서 주로 섬겼는데 박신(雹神)은 하나의 총칭(總稱)이고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지역마다 매우 다양했다.


박신(雹神)


감귤을 재배하는 일부 지역의 과수농가에서는 태양신(太陽神)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이를 태양보살(太陽菩薩)이라고도 했는데, 매년 ‘태양회(太陽會)’라는 축제를 열어 제사를 지냈다. 햇볕이 과일의 풍흉(豐凶)을 좌우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현상과 관련해 가장 많은 업종에서 숭배했던 수호신은 화신(火神)이다. 불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러 종류의 금속을 녹여 제품을 만들거나 도자기, 과자 등을 구워내는 업종이다. 또한, 불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업종에서도 ‘불의 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예컨대, 책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업종, 소방(消防)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 저당 잡은 물건을 잘 보관해야 하는 전당포 등이다. 이밖에, 다소 특이하게도 담배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관우(關羽), 제갈량(諸葛亮) 등과 함께 화신을 수호신으로 섬겼는데, 이는 담배를 피울 때 불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14

 

박경석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馬王翁 : https://baike.baidu.com/pic/%E9%A9%AC%E7%8E%8B%E7%88%B7/1713007/0/38dbb6fd5266d0162dad1286972bd40734fa35e3?fr=lemma&ct=single#aid=0&pic=38dbb6fd5266d0162dad1286972bd40734fa35e3

畜力 :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8, 273.

靑苗神 : https://baike.baidu.com/pic/%E9%9D%92%E8%8B%97%E7%A5%9E/9757206/0/5882b2b7d0a20cf48f85786676094b36acaf9976?fr=lemma&ct=single#aid=0&pic=aa64034f78f0f736141245a10a55b319eac413a5

雹神 : https://baike.baidu.com/item/%E9%9B%B9%E7%A5%9E/988437?fr=alad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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