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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7월호
조상신이 된 『삼국지연의』의 영웅들: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량 _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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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수호전(水滸傳)』, 『봉신연의(封神演義)』, 『서유기(西遊記)』 등의 통속소설은 동업자들이 조상신이나 수호신을 정할 때 활용했던 재료의 보고(寶庫)였다. 물론 「삼국희(三國戲)」, 「수호희(水滸戲)」, 「봉신희(封神戲)」와 같이 통속소설을 저본으로 지어진 희곡(戲曲)이나 곡예(曲藝) 등의 문예작품도 각 업종 종사자들이 조상신을 설정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통속소설이나 유관 문예작품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이 숭배할 조상신을 골라냈다.


조상신을 숭배하는 업종별 종사자들은 대부분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하층민이었다. 따라서 이해하기 쉽고 생동감 넘치는 통속소설이나 유관 문예작품이 그들의 정서와 수요에 적합하였다. 통속소설 등은 하층민에게 여러 가지 지식을 보급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통속소설 등은 하나의 교과서였다. 그들이 평소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자신들의 교과서에서 자신들이 섬길 조상신을 찾아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요컨대, 조상신 설정의 근거가 되는 사항이 역사서나 고전에 나오고 동시에 소설에도 나왔다고 한다면, 해당 업종의 종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은 틀림없이 소설이었을 것이다.


또한, 통속소설은 내용이 풍부하고 이야기가 사소하더라도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조상신 설정의 소재로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예컨대,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노군(老君)이 팔괘로(八卦爐)을 이용해 연단(鍊丹)했다거나, 관우(關羽)가 칼을 잘 썼다거나 하는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일화에서 힌트를 얻어 조상신을 정하였는데, 사서전적(史書典籍)에서는 이런 사소한 일화들이 부각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통속소설 중에 역사물이나 판타지물이 많다는 점도 통속소설이 조상신 선택에 인기가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였다. 각 업종의 종사자들은 자기 업종이 다른 업종보다 유래가 깊다는 것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가급적이면 유서 깊은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소설에서 자신의 업종과 관련이 있는 인물을 찾으려고 했다. 또한, 자기가 섬기는 조상신이 이왕이면 뛰어난 신통력을 가진 존재이기를 바랐을 것이고, 판타지소설에는 신령스런 존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각 업종의 종사자들은 이러한 통속소설과 유관 문예작품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인물과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었고, 경건한 마음으로 조상신을 섬기는 근거로 삼았다.


『삼국지연의』는 가장 인기 있는 통속소설 중의 하나였다.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유포되어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였다. 전통시기 조상신을 설정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관행중국』 2016년 8월호에 게재한 「행업신 최고의 스타, 관우」에서도 서술했듯이, 관우는 가장 많은 업종에서 숭배한 조상신이었는데, 이는 『삼국지연의』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예컨대, 이발사, 재봉사, 요리사, 도살업자 등이 관우를 조상신으로 섬긴 것은 관우가 청룡도(靑龍刀)를 사용했고 칼을 잘 다루었다는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향초를 취급하는 업자들이 관우를 숭상한 것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향초 관련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유명한 ‘도원결의(桃園結義)’ 장면에는 “향을 피우고 절하여 맹세했다”는 묘사가 있다. 또한, 조조가 관우로 하여금 군신의 의리를 어기게 하려고 유비(劉備)의 소열황후와 밤새 한 방에 있게 하였으나, 관우는 촛불을 들고 다음날 아침까지 문밖에 서서 황후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연의』에는 관우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아래에서는 유비(劉備), 장비(張飛), 제갈량(諸葛亮) 등이 어떤 이야기를 근거로 어떤 업종의 조상신으로 숭배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유비현덕.JPG

劉備玄德


유비는 일부 지역의 편직(編織) 수공업에서 조상신으로 섬겼다. 사천성(四川省)의 합강현(合江縣)과 신번현(新繁縣)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유비를 조상신으로 섬긴 것은 유비가 어렸을 때에 돗자리를 짜서 팔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삼국지연의』에는 유비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짜서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남성(湖南省) 익양(益陽)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옛날에 유비가 심지진(沈知進)이라는 사람에게 돗자리 짜는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그가 유비의 기술 전수에 감사하여 유비를 위한 사당을 짓고 섬겼다는 것이다.


장비는 염업(鹽業)과 도축업에서 조상신이나 수호신으로 섬겼다. 전통시기 염업은 대규모 기간산업 중의 하나였다.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임에도 아무 곳에서나 생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산과 유통에서 많은 이윤이 보장되었다. 업종의 규모에 걸맞게 각지의 염업 종사자들은 3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염신(鹽神)’을 섬겼다고 한다. 그 중에 산서성(山西省)의 염업 종사자들은 관우와 장비를 수호신으로 모셨다. 그들은 치우(蚩尤)와 그의 아내인 염효(鹽梟, 소금밀매업자라는 뜻도 있음)가 소금 못(鹽池)에 살면서 소금의 생산과 유통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이들을 진압하여 방해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신령은 관우와 장비뿐이었다. 특히 장비는 치우의 아내를 무서워 떨게 만드는 존재였다. 이들 염업 종사자들은 『삼국지연의』에서 드러나듯이 무장(武將)의 용맹을 상징하는 관우와 장비가 염전의 악신(惡神)으로부터 자신들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장비.JPG

張飛


청대 이후 가축을 도살해 파는 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장비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는 장비가 출세하기 전에 도축 및 정육점을 운영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장비의 직업 이야기는 정사(正史)인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고, 『삼국지연의』에서만 볼 수 있다. 장비가 유비를 처음 만나 자기를 소개할 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현명한 재상의 대명사인 제갈량은 담배제조업, 요리사, 제과업, 악사(樂士) 등이 숭배하였다. 중국에 연초(煙草)가 처음 들어온 것이 명대 중기였기 때문에 담배제조업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수연(水煙)으로 유명한 난주(蘭州)의 담배제조업자들은 일찍이 제갈량이 연초(煙草)를 처음으로 감숙(甘肅)에 들여왔다고 믿고 그를 조상신으로 섬겼다. 간단히 말해서, 제갈량이 노수(瀘水)를 건널 때 질병에 걸린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현지의 은사(隱士)를 찾아가 약초를 받아왔는데 그것이 바로 담뱃잎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역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노수(瀘水)를 건너는 이야기가 나온다. 병사들이 노수(瀘水)를 건널 때 병을 얻어 사망하는 것을 보고 현지인에게 물으니 ‘조용한 밤이 되어 물이 차가워지면 독기(毒氣)가 일어나지 않아 배불리 먹고 건너면 탈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제갈량의 박학다식과 지혜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제갈공명.JPG

諸葛孔明


요리사 중에서는 일부 만두를 만드는 분야에서 제갈량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이는 제갈량이 만두를 처음으로 만든 인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군대를 이끌고 노수(瀘水)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광풍이 불어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주위에서 49인의 사람 머리를 바쳐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한 제갈량은 소고기와 양고기로 만두소를 만들고 이것을 밀가루 반죽으로 감싸 사람 머리처럼 만들었다.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 무사히 강을 건널 수가 있었다. 『삼국지연의』에도 제갈량이 노수에 이르러 목축 고기로 사람 머리를 대신해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부 지역의 제과업자들도 제갈량을 조상신으로 숭배했다. 이는 제갈량이 만두를 발명했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만두에서 빵이나 떡, 과자 등을 유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악사(樂士)들의 조합(行會)에서도 제갈량을 숭배했는데, 이는 제갈량이 음악을 잘 알고, 거문고 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성을 비우는 공성계(空城計)를 쓰면서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행업신(行業神)’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놓은 이교(李喬)의 『행업신숭배 : 中国民衆造神史硏究』(북경출판사, 2013년 8월판)에 따르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또 다른 주요 인물인 조조(曹操)나 손권(孫權)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업종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지하듯이, 역사서인 『삼국지』의 중심축은 조조인데 반해 통속소설인 『삼국지연의』의 주인공은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했듯이 이들 주요인물에 대한 민간의 관심과 애정은 아무래도 통속소설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업의 조상신에서 조조와 손권이 빠진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11

 

박경석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baike.baidu.com/item/%E5%88%98%E5%A4%87/30564

http://baike.baidu.com/item/%E5%BC%A0%E9%A3%9E/3622

http://baike.baidu.com/item/%E8%AF%B8%E8%91%9B%E4%BA%AE/21048?fr=alad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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