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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4월호
단둥, 한국과 북한을 잇다 _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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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과 거리상 가장 가까이 있지만 실제 가장 먼 곳으로,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에서 구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조선족 집성촌이나 베이징, 상하이 등에 있는 코리아타운에 가면 북한산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특히 북한 김치는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맛에 비싸지만 항상 인기가 좋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북한 제품을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단둥(丹東)을 통한 북중 무역에 있다. 단둥은 동북진흥 정책으로 최근 국경지역의 경제협력이 활발해 지면서 교통인프라가 개선되고 대북 무역이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단둥에서 신의주까지 400m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1965년 안둥시(安東市)에서 단둥시(丹東市)로 이름이 바뀐 단둥은 남북조 시기 고구려의 영토이기도 했지만, 현재 중국 랴오닝성(辽宁省)의 지급시로 압록강을 경계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구분되는데 압록강의 직경 길이가 400m에 불과하여 단둥은 북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우선 단둥시에는 한족과 조선족(한인 교포) 그리고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이 공존해 있다. 단둥시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의 95% 이상이 북한 평안도 출신이라는 점은 단둥시가 북중 관계에서 매우 특별한 지역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사람의 교류뿐만 아니라 물자의 이동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1954년 중국이 북한과 철도운송협정을 체결한 이후 베이징에서 평양 그리고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국제노선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압록강에서 신의주까지 연결된 중조우의교는 북중 교역의 주요 통행로 역할을 하고 있다. 중조우의교는 1909년 설립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파괴 된 후 2002년 재건되었다. 이 다리는 열차운행과 차량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2016년 북한 5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수단으로 차량 이동이 제한되기도 했었다. 중조우의교 길이는 944m로, 늘어설 수 있는 화물차를 약 70대 정도로 계산해보면 하루 수 백 대가 통행할 수 있는 다리이다. 화물차 한 대에 20-30톤의 화물이 실리는 것을 감안하면 북중 무역의 70-80%가 단둥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단둥철교

단둥철교.JPG



민족적 유사성과 문화적 동질성
 

중국은 14개 국가와 접해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와 민족적 유사성,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교류해왔다. 국경지역의 이러한 유사성과 동질성은 일반적으로 지리적 근접성, 자연환경의 유사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단둥의 경우 역사적 사건에 의해 민족 간 이동이 많았던 점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 중에는 1931년 9·18사변으로 중국 동북 지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국경지역의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단둥으로 이동했다가 1945년 광복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인으로 살아온 사람들, 한국전쟁 당시 중국으로 이동한 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중국인으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로 북한 주민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단둥의 민족적 유사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더 강하게 만들고 있고 북중 교역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북중 교역이 증가하면서 단둥으로 이동한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상대 국가에 남아있는 친인척이 중개상이 되거나 직접 교역 대상자가 됨으로써 이들은 친인척을 활용한 교역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국경무역이 증가하고 있다.


북중 무역의 중심지
 

1646년 청나라의 요청으로 시작된 국경무역은 관의 통제를 벗어난 호시무역(互市貿易)의 무질서한 발전으로 폐지되었다가, 다시 1882년 청나라와 조선의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체결로 압록강 지역의 란즈다오(兰子岛)에서 국경무역이 시작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문화대혁명 시기 호시무역이 중단되는 과정이 있었지만 개혁개방 이후 국경무역이 활성화 되면서 호시무역이 재개되었다. 단둥의 경우 랴오닝성 정부가 2015년 6월 25일 단둥 종조변민호시무역구(丹东中朝边民互市贸易区)를 설치하기로 하여 100년 만에 단둥시의 호시무역이 부활되었다. 호시무역의 부활로 정부 허가를 받은 단둥 국경지역 주민은 생활용품을 8000위안 범위 내에서 무역할 경우 관세 면제 혜택을 받게 되어 북중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4년 단둥의 대북 수출입총액은 약 18억 6천만 달러로 중국 전체 대북 교역액의 70-80%를 차지하는 등 북중 교역에서 단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 지고 있다.


단둥, 한국과 북한을 잇다
 

단둥 지역의 북중 교역은 원칙적으로 중국기업과 북한기업 혹은 중국사람과 북한사람 간의 교역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중국기업의 실제 경영자가 한국인인 경우도 있고 호시무역을 통해 많은 한국 물품이 북한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그렇게 단둥시는 거리상 가장 가깝지만 너무나 먼 북한과 한국을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압록강에는 신의주 강변까지 가 볼 수 있는 유람선이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단둥 강변에는 고층 빌딩과 공원이 늘어서 있고 북한의 신의주 강변에는 허름한 벽돌집과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이 보인다. 강줄기는 그대로 흐르고 있지만 두 지역의 풍경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먼 훗날 단둥이 우리에게 그 세월의 흔적을 좁혀줄 날이 올지 기대해 본다.


【중국도시이야기 6】

 

이주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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