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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4월호
나시인들로 붐비던 롱판 장날 풍경 _ 유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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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명이 중국을 여행하는 중에 시골장을 만나는 일은 단체여행에서 누릴 수 없는 호사 중의 호사다. 내가 시골장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물론 어릴 때의 달달한 추억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다. 그보다 역사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지역사회의 구조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중에서도 미국의 역사인류학자인 윌리암 스키너의 시장과 사회 구조론에 눈을 뜨면서 역사와 사회를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의 전통시장은 한국과 달리 장날이 지역에 따라 달랐던 점이 눈에 띄었다. 물건이 많고 시장에 참여하는 인원이 넘칠수록 장날의 주기가 짧고 그렇지 않은 경우 열흘 혹은 보름 만에 열리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전통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은 운영시스템이 달랐다.

 

이 때문에 2007년 1월 말에 있었던 윈난 여행에서 나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동네에서 장 구경을 한 것은 행운이었다. 부부가 여행길에 나섰기 때문에 장구경도 가능하였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편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좋았다. 장이 펼쳐진 곳은 윈난 서북부의 도시 리장[麗江]에서 후타오샤[虎跳峽]진으로 가는 도중에 있던 롱판[龍蟠]이었다. 우리가 후타오샤에 간 날이 1월 28일이었는데 바로 그날이 롱판 장날이었던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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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롱판진의 시가지와 장거리 풍경

 

롱판은 리장에서 샹그리라현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자그마한 읍 규모의 동네였다. 양자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금사강이 남쪽으로 흘러내리다 유턴하면서 북쪽으로 흐르는 곳에 스구진[石鼓鎭]이 있는데, 롱판은 이 스구진과 후타오샤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리장시 위롱[玉龍] 나시족 자치현 롱판향이다. 위롱설산으로 이름난 위롱현내에 모두 18개의 향(鄕)과 진(鎭)이 있는데 롱판은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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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  롱판 일대의 마을 풍경

 

롱판향의 규모나 환경은 어떠한가. 자연환경으로 보자면 위롱설산이 상징하듯 높은 산과 대협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어서 산물은 제한되어 있고, 교통 역시 원만하지 않았다. 협곡 사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전답 복판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 형세였다. 또한 롱판향만의 인구나 면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위롱현의 인구가 2002년을 기준으로 약 21만 명 정도였고, 그 중 나시족이 12만 명 정도이므로, 전체 인구 중 57%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대개의 소수민족 지역이 안고 있는 인구 구성과 비교해 보면, 60%에 가까운 비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다만, 위롱현의 현청 소재지가 리장 시내에 있으므로 향진쪽으로 갈수록 나시족의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한편 위롱현 내에는 나시족 이외에 한족, 티베트족, 바이족, 부미족, 그리고 이족 등이 있다고 하였으나, 롱판향에도 이런 민족 구성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향진 중에는 런화리수족향[仁和傈僳族鄕], 리밍리수족향[黎明傈僳族鄕], 쥬허바이족향[(九河白族鄕)처럼 리수족이나 바이족 자치향도 있었으나, 롱판향은 전체적으로 보면 나시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향이 아닐까 한다.

 

내가 찍은 시장 사진에 담겨있는 주민들도 대체로 나시족 복장을 한 사람들이었다. 등에 배대를 한 사람들이 그렇고, 모자가 그러하며, 갓난아이를 포대기로 업은 모습이 그렇다. 배대란 나시족들이 등에 짐을 지기 위해 만든 등보호대로서, 우리가 지게를 질 때 등이 아프지 않도록 등과의 접촉면에 짚이나 부드러운 헝겊을 덧대는 것과 같은 이치의 등짐 용품이다. 롱판에서도 그랬지만, 리장에서도 이 배대를 남성들이 착용한 경우는 보지 못하였으니, 여성 전용품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또 배대 중에는 칠성배대라고 하여 7개의 별이 등판에 붙어있는 형식의 것이 있는데, 이는 좀 더 고급스러워서 관광 가이드나 전통무용단이 착용하기도 하였다. 또 이들은 대부분 대나무나 혹은 비닐로 된 바구니를 등에 메고 있었다. 이 바구니는 남녀 구분 없이 지고 있었으니 배대와 달리 어느 특정의 성에게 한정된 용품은 아닌듯했다. 이 바구니 속에는 대부분 시장에서 거래한 물건들을 담았으나, 일부에서는 아이를 담고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그 중에는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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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3  배대와 등바구니를 메고 장보러 나온 나시인들

 

이러한 풍경은 한인들의 장날에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곳 나시 사회가 적어도 남녀가 사회경제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양성사회이거나 그보다 모계중심사회라는 증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배대가 상징하는 바는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었다. 사실 이곳에서 가까운 루구호 주변에는 모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모숴족들도 있으므로 이 일대는 강력한 부계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중원의 한족과는 구분되는 모계사회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시장의 거래품목에서 볼 수 있는 생활상은 어떠하였을까. 그곳에서 발행된 여행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특산물은 대부분 산간지에서 나오는 약재, 버섯 등과 소규모 농지에서 나오는 농산물이었다. 이러한 특징이 시장 상품에도 반영되었을 것이지만, 내가 본 것들은 대부분 채소류와 일반 공산품이었다. 가장 흔한 채소는 대파, 쪽파, 고추, 생강, 무 뿐만 아니라 브로콜리도 있었다. 한두 가지 잘 알 수 없는 채소도 있었으나 대부분 눈에 익은 것이었다. 다만 위롱설산 부근에서 채취한 약재를 보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거나 날씨 탓에 판을 벌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에 못지 않게 많은 것이 플라스틱으로 만든 양동이나 그릇, 의복을 비롯한 공산품이었다. 또한 뜨끈뜨끈한 국수집이나 강정을 파는 점포도 있었다. 등짐이나 배대 등 나시인들의 고유한 풍경을 제외한다면 거래품으로서는 중국의 여느 장과 큰 차이는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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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4  장거리에 펼쳐 놓은 각종 야채

 

장날은 4일과 8일 장이었다. 곧 14일, 18일, 24일, 28일인 셈이다. 4일 간격을 두고 열리는 경우는 드문데, 중국의 전통 장날은 보통 3일, 5일, 6일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4일 장이 최근에 시장 경제의 도입 이후에 나타난 것인지, 과거부터의 오랜 전통인지는 분명치 않다.

 

중요한 것은 전통적 기층 시장이 이처럼 생생하게 소수민족 사이에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보아온 장날 풍경이었다. 아침에 우리가 후타오샤로 들어갈 때에는 장으로 가려는 주민들이 걷거나 차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던 데 비해,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는 대체로 장을 본 주민들이 귀가하는 중이었다. 가장 붐비는 때를 놓친 것이 좀 안타까웠다.

 

우리가 장에서 산 것은 없었다. 강정을 좀 사보려고 했으나, 가게 주인은 바가지부터 씌울 궁리를 하였다. 한바가지 정도의 강정을 무려 8원이나 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낯선 이방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상인들에게 공통의 상행위인 듯하다. 결국 이리 저리 구경만 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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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5  물건을 팔아 제법 돈을 번 할머니.

                   머리에 쓴 모자로 보아 나시인이다.

 

소수민족들의 시골장은 한족의 영향이 그들에게 미치기 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신들이 모시는 신들의 생일날이나 부처님의 탄생일 등 기념일에도 장을 열어 물건을 사고팔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종교가 전파되었고 소수민족간의 교류를 통해 더 넓은 공동체를 만들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푸이족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구이저우[貴州]의 안순[安順]장에서도 본 바와 같이 거래품으로 한정시킨다면, 그들 특색의 물품이 거래되는 양상을 보기는 어려웠다. 장날의 주체나 그 형상은 전통적이지만, 물건은 이미 한족화 되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이러한 소통과 물류가 장의 특징일 것이다.

 

현장에서 마주친 관행 12

   

유장근 _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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