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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시사&테마
3월호
팬덤정치 혹은 매혹의 정치 _ 김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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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프랑스의 한 인문주의자 에티엔 드 라보에시(Etienne de la Boetie 1530~1563)18세 전후 때 작성된 『자발적 예속』이라는 노트에서 폭군들이 사용하는 지배전략 가운데 하나가 자유에 대한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중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의심하고 자신을 속이려는 자에 대해서는 신뢰를 던진다. (중략) 연극, 놀이, 익살극, 공연, 검투경기, 신기한 동물들, 동전들, 그림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다른 마약들은 고대 민중들에게는 복종의 미끼였고 빼앗긴 자유의 대가였으며, 독재의 도구였다. (중략) 속박에서 태어나 복종에서 양육되고 키워진 인간들은 더 이상 앞을 바라보지 않고 태어난 상태 그대로 사는 것에 만족하고, 그들이 찾아내었던 행복이나 권리가 아닌 다른 행복이나 권리를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특정 지배에 대한 민중의 자발적 예속의 문제에 주목했던 라보에시는 왜 인간들은 자유를 포기하는가, 왜 정치적 지배가 사회에 정착되는가”, “어떻게 이러한 자유의 포기가 지속될 수 있으며, 어떻게 정치적 지배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데 생각을 집중했고, 그가 발견한 자발적 예속의 비밀은 소유의 욕망이었다. 즉 라보에시는 소유의 욕망을 통해 자유라는 자연적 욕망이 예속으로 치환된다고 생각했다.


연구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측면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라보에시의 통찰력은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억압과 복종의 물리적 강제현상으로 단순화했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현상적 지배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적 접근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민중의 자발적 예속을 이끌어내는 지배자들의 전략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폭력이나 혈통과 같은 비합리적 권위에 의한 지배가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21세기에 와서 머나먼 프랑스의 그것도 16세기 10대 소년 저술가를 소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식은 다양하지만 오늘날 정치체제는 어쨌든 동의에 기초한 지배체제의 형식을 취한다. 심지어 북한 같은 혈통이 지배권력을 지탱하는 나라에서도 선거라는 형식은 중요한 권력기반의 원천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라보에시는 이러한 현상을 동의를 이끌어내는 지배자들의 전략과 관련되어있다고 말하면서 그 전개방식을 고민했던 것이고, 안토니오 그람시는 그러한 관점을 이어받아 동의에 기초한 지배를 헤게모니적 지배로 개념화했다. 이러한 인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성찰하지 못하는 피지배층의 현실이해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예컨대 히틀러와 같은 독재권력 조차 독일국민의 동의에 기초한 권력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러한 자발적 예속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지배체제에 대한 이해에서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권력자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이다. 피지배자들은 권력자에 매혹되어 자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라보에시가 지적했던 소유의 욕망은 열광이라는 현상 속에 은폐되었다.


라보에시의 분석은 오늘날의 사회/정치 현상에서 많은 영감을 준다. 예컨대 대중의 자발적 예속 혹은 복종을 이끌어 내는 지배층의 중요한 전략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대중문화 팬덤형성의 과정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며, 최근의 전 세계적 정치의 흐름은 대중문화적 팬덤 기반의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정치 집단에 맹목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정치 팬덤의 형성과 등장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하고, 사회를 분열시키며 합리적 의사결정 체제에 위험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팬덤 정치는 중심이 되는 정치적 인물의 매력에 매혹된 영혼들에 의해서 작동되는 자발적 예속 상황을 초래하고 이러한 팬덤의 확보와 육성은 대중문화 영역에서처럼 정치적 영역에서도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트럼프의 등장과정에서 위력을 드러낸 팬덤 정치는, 실제로는 정보화 사회의 진전과 함께 이미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특정의 경향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검증의 과정 없이 동질 집단에 기반한 정치세력을 형성하여 권력화되는 모습을 우리는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SNS에 기반한 의사소통 형태의 확산은 팬덤 정치의 확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였다. 길고 논리적 관점이나 언설 보다는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언설의 유행은 진실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느 팬덤에 속해 있는가가 중요한 판단의 척도로 작동하는 세계를 출현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감시에서 벗어나 도구적, 기술적 합리성에 매몰된 중국의 공산당 지배체제는 팬덤 정치의 중요한 실험장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것은 2019년 입소스라는 여론 조사업체가 발표한 세계는 무엇을 걱정하는가에 대한 조사결과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에 따르면, 조사대상 28개국 국민들 가운데 중국은 자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가장 긍정적(조사 대상자의 94%)으로 생각하는 나라였다. 과반수의 나라에서 비판적인 평가가 우세했음에 비해 중국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기술에 대한 신뢰도 평가에서도 중국은 91%가 신뢰한다고 답해 조사 대상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최하위는 러시아와 일본으로 66%였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동질성이 매우 강한 나라라고 평가할 수도 있으나, 그 실상은 단일의 세계관이 지배하는 무서운 나라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김태승 1.png

텐왕공정의 감시카메라를 이용한 수배자 확인 예


사실 중국공산당은 개혁개방이 심화되고, 시장경제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공산당 권위체계의 동요와 국가 체제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정서적/감성적 정서 조작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20세기 말 이후의 회고/복고열풍을 통한 대약진/문혁 등 잔인한 시절의 재구성 작업, 홍색관광 열풍을 이용한 공산당 권위의 절대화, 뇌봉과 같은 인물의 위인화 등, 감정선을 활용한 정치적 선전을 통해 현실에 대한 합리적/비판적 인식을 차단하고 공산당의 매력을 확산하는 전략을 취해 왔고, 이러한 전략은 결국 공산당 팬덤을 상당 수준에서 형성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사회장악 시도를 지속적으로 진행시켜 왔다중국공산당은 도시에 AI/네트워크화된 감시카메라 망을 설치하는 텐왕(天網)공정, 같은 사업을 시골에서도 진행하는 쉐량(雪亮)공정 등으로 촘촘한 사회적 감시망을 완성해 가면서도 감시카메라의 사회적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제대로 이끌어 내지 않았다.


6억대의 감시카메라가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에서, 한 일본 학자의 지적처럼, 중국공산당은 “‘시민적 공공성에 위협이 되는 감시사회’”더 안전하고 쾌적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활용하여 정당화시키는, 도구적 합리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사실상 그 위험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가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던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정책적 의도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팬덤들에게 맡겼고, 그들은 공산당의 의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공산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판단하면(사실은 당이 결정하면) 전 세계를 몰려다니면서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모든 인터넷 정보를 당이 관리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이러한 네티즌들의 활동을 묵인하고 있는 것은, 중국 팬덤정치의 현실을 보여준다.


정보화 기술과 결합된 팬덤 정치적 환경의 성숙은 중국과 같은 당국체제 국가에서는 사회적 다양성의 기회를 차단하고 오직 사실상 당이 관리하는 의견만이 대중의 의견인 것처럼 여론을 지배해 갈 것이고, 관습의 관성적 힘에 익숙해진 젊은 중국의 청년들은 변화하는 세계의 진실에 다가서기 힘들게 될 것이다. 처음에 인용한 라보에시의 견해를 빌려 표현한다면, ‘자유에 대한 기억을 박탈당한이들이 성장했을 때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이웃 나라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김태승의 六十五非 27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언급한 라보에시에 대해서는 이기라,「에티엔 드 라보에시와 자발적 예속의 문제」, 『정치사상연구』 22, 2016 / 손주경자발적 복종과 자유에 대한 인식」,  『프랑스 문화예술연구 64, 2018 등을 참조, 인용하였다.

* 중국과 관련된 내용 중 여론 조사결과 등은 가지타니 가이, 다카구치 고타 박성민옮김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 2021. 눌와에서 인용하였음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baijiahao.baidu.com/s?id=1603932143694801929&wfr=spider&for=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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