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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0월호
연구성과 소개 _ 손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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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희, 근대 동북의 중개상인: 營口의 유통 네트워크와 ‘大屋子’의 운용, 중국근현대사연구71, 2016.9.

 

이 글은 영구의 중개상인 대옥자를 통해 중국 내지의 관행이 어떻게 동북에 이식되어 정착되었는지 현지의 특수성과 만나 어떻게 변화되고 재구성되었는지를 검토한 것이다. 특히 전통적 아행(牙行) 관행의 근대적 전환, 내지 관행의 동북 이식이라는 이중적 관점에서 영구의 대옥자 관행을 분석하고, 대옥자 발달의 외적조건으로서 대옥자의 유통 네트워크를 살펴보고 내적조건으로서 대옥자의 운영시스템과 작동방식을 파악했다.

 

대옥자는 근대시기 객잔과 창고를 운영하면서 위탁매매, 통관대리, 보험대리 등 중개업과 함께 무역업에 종사했던 영구의 중개상인을 일컫는다. 대옥자는 근대시기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중국 내지의 행잔과 그 성격이나 기능이 동일했다. 특히 산동성의 개항장 연대(煙臺), 청도(靑島)에서 행잔업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이 산동인의 동북이주를 통해 영구에 이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구의 대옥자는 전통 중개상인인 아행 혹은 근대적 의미의 행잔 관행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구의 대옥자는 개항이후 영구의 급속한 발전, 대두의 수출과 이민의 증가에 따른 물자 수입의 급증이 만들어낸 과도기적인 산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옥자가 부의 상징이 되었고 거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구가 동북의 어떤 개항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전방위적인 오랜 유통 네트워크에 기인했다. 이러한 관점으로 대옥자가 영구에서 특별하게 발달할 수 있었던 특수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구는 전통적인 정크무역의 이점을 살리고 근대적인 행잔 기능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전통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를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다. 영구는 요하의 정크무역을 통해 요하 연변의 도시들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영구의 번영에서 상해와의 무역관계가 중요했는데, 영구는 외국과 직접 교역하기 보다는 주로 전국 중계무역의 중심축이었던 상해를 통해 물자를 수입하여 동북에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대개 영구에 본점을 두고 상해에 주재원이나 출장원을 파견하여 활동했으며, 객상으로서 동향관계에 있는 행잔에 기거하면서 본점과 통신을 주고받으며 상업활동을 했다. 이로써 중국상품과 외국상품을 고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고 상해와의 과로은에 의한 환거래를 통해 자금을 안정적으로 융통할 수 있었다. 특히 과로은 결제가 상해와의 무역에서 편리성을 발휘하면서 은로(銀爐)와 대옥자가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정크무역이나 상해와의 무역관계에서 모두 대옥자의 중개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전통과 근대의 이점을 살린 이중적인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둘째, 영구의 상인 자치단체인 공의회가 영구의 상업 시스템을 총괄했으며, 공의회의 회원들은 영구의 유력상인들로 대옥자, 은로, 유방(油坊), 잡화점을 겸영함으로써 영구의 상업을 좌지우지했다는 점이다. 일종의 금융시스템이었던 과로은제도가 영구 상인 자치단체인 공의회의 관리감독 하에 유지됨으로써 남북의 객상들을 영구에 흡인할 수 있었다. 영구는 대련과 같은 근대 항구시설이나 시스템은 갖추지 못했지만 과로은제도에 의해 일반거래와 금융, 결산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로은 체제를 실제로 움직였던 것은 은로와 결부된 대옥자였고, 대옥자는 공의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셋째, 연호(聯號)관계를 통해 대옥자는 막강한 자금력을 확보함으로써 영구사회의 유력 상인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영구에서는 기업들이 여러 업종을 겸영하거나 연호관계로 얽힌 확고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민으로 구성된 영구사회에 이미 정착한 대옥자와 타지 객상 사이에서 이주지와 원적지 고향과의 동향(同鄕) 관계가 작용했고, 상해 등 중국 내지 개항장에 파견된 주재원 등을 통해 이러한 도시들과 대옥자 사이의 유통 네트워크도 작용했다. 따라서 지연을 통한 산동 출신의 동향 네트워크와 무역관계를 통한 유통 네트워크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영구의 대옥자는 중국 내지 관행의 동북 이식으로 이해할 수 있고, 영구의 특수성이라는 것도 내지와 완전히 다르다거나 특수한 것이라기보다는 내지 관행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옥자의 여러 업종의 겸영이나 연호제도가 동북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구에서 특징적으로 발달했던 것은 공의회라는 강력한 상인단체가 과로은체제를 통해 영구 경제를 총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의회는 러시아 및 일본군정 시기 행정과 경찰업무 기능을 담당했던 것을 계기로 영구의 상업 질서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정부의 행정 보조기관으로서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통해 영구 사회에서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공의회가 상무총회로 개조된 이후에도 그 기능과 영향력은 남아서 다른 도시의 상무총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고했다. 소수의 거상에 의해 장악된 영구의 사회경제는 그 자체로 운영되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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