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20세기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피해자의 입을 통해 제기되면서 2차 세계대전 중의 성폭력/성노예라는 전쟁 피해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억압되었던 전쟁피해의 기억이 오랜 세월을 지나서야 재발견되었고, 망각 속에 묻혀있던 피해자들은 이제야 발언할 기회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상황 전개에 대해 가해자인 21세기 초 일본의 상황은 재일 한국인 저술가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전쟁의 기억은 그야말로 은폐·부인·왜곡·말소·횡령이라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서경식, 타카하시 테츠야지음,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의 「기억과 증언」모두 발언)
망각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이 증언되면서 ‘기억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거의 60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죽음을 눈앞에 둔 피해자들이 억압되었던 기억을 힘들게 꺼내 들면서 우리는 우리가 무시해왔던 고통의 현재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5·18의 기억을 힘들게 탐구해 들어갔던 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그 기억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문의 고통에 직면하고 증언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 여성 고문 피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 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중략)-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한강, 『소년이 온다』, 167쪽)
전쟁터의 현실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어디까지 증언할 수 있을까? 왜 내내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야 말하는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위의 인용문은 보여준다. 과거 기억의 문제는 왜곡과 은폐가 지속되는 한, 결코 과거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성찰되어야 할 현실의 문제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이 되겠다고 법이 보장한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은 채 관직을 그만두고 출마한 정치인 가계의 ‘친일’ 관련 검증 논란에 대하여 100세를 넘긴 한 ‘원로’ 철학자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은 지금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노인들은 ‘일제강점기에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친일, 항일 싸움은 그만하지. 할 일이 그렇게 없는 가’라고 말한다. (동아일보 2021년 9월 24일 자. 김형석 객원논설위원 기고문)
한국에서의 친일/항일 논란이 일부에서 정략적으로 다루어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일/반일의 문제가 오늘날 되살아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적 성찰의 문제이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진실의 문제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안의 식민지성에 대한 끊임없는 인문학적 문제 제기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냥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다. 한강은 위의 소설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134쪽)
결코 할 일이 없어서 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그것을 다시 기억 속에서 불러낼 수 있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또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흑백논리”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어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 미국이나 이제 영국이나 캐나다나 이제 이런 그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그런 나라들은 경험주의 사회를 살았기 때문에 제일 흑백 논리가 없어요. 그쪽 사람들하고 이렇게 얘기를 해보면요. 흑백 논리가 없어요. 예를 들어 말하자면 독일이나 불란서 사람들이 국회 같은 데 모이게 되면 영국, 미국 사람들은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고, 그 사람들 토론회에서 이기게 되면 따라가고.” (MBN 뉴스 2021-09-19일 자)
위의 ‘원로’ 철학자는 자신의 지식에 내재된 식민지성에 대한 성찰 없이, 과거의 망각은 강요하면서 ‘신성한’ 백인문화는 기억을 역사화하는 ‘경전’처럼 사용한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의 세계에서 탈식민의 문제가 진지하고 치밀하게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이런 말을 되풀이하는 것조차 진부하지만, 트럼프의 사실상의 ‘기획된 광기’와 그를 지지하는 미국 사회, 선거 불복소송이 현재진행형인 미국을 그처럼 절대화하는 그의 견해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원로’철학자를 정략적/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일부 극보수 언론의 행태일 것이다. 자신들의 당파적 관점에서 이용 가능한 것이라면 모두 찾아서 이용하는 이들의 상업주의적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많은 ‘허위의 맥락’을 창출하는 그들의 ‘창의성’에 경의를!!
사진 1.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의 표지
언제나 현실왜곡과 그것을 통해서 상업적 이익을 얻는 집단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러한 이익추구의 경향에서 자유로워야 할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역사학은 항상 ‘기억의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분단과 좌우대립이라는 해방공간의 유산이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며, 친일과 반일의 유산 역시 마찬가지로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지평을 제약하고 있기 때문이며, 과거의 유산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회 세력이 강력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시에는 뻔했던 일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전혀 새롭게 왜곡되는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지식권력의 문제를 항상 고민해 왔었다. 예컨대 초등학교 2학년 때 겪었던 4.19혁명 이후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기억을(항일/외교 등은 제외) 학교에서 교육받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그의 하야를 기뻐했고, 그의 하와이로의 망명을 당연히 생각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그는 위대한 건국 대통령으로 재탄생하고 사회적 논의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왜 일부 전문가들은 그를 축출했던 4.19혁명과 대중의 당시 정서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가? 그의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등. 역사적 기억은 이해관계에 따라 재조립되고 다른 쪽의 기억은 망각을 강요받게 마련이었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기억의 전쟁은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소설가 한강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가슴 속 깊이 여운을 남긴다.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 이상 폴리지 않을 것 같은 상태.....심장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이미 떨어져나갔으며. 움푹 파인 그 자리를 적시고 나온 피는 더 이상 붉지도, 힘차게 뿜어지지도 않으며, 너덜너덜한 절단면에서 오직 단념만이 멈춰줄 통증이 깜박이는...(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316쪽)
【김태승의 六十五非 25】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해당 글은 중국학술원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9/07/20210907016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