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2020년 12월 30일 EU와 중국은 포괄적 투자협정(Comprehensive Agreement on Investment, CAI)의 원칙적 합의를 선언하였다. 이후 본 협정은 유럽의회와 EU 27개 회원국 전체의 비준을 받아야 하지만 올해 5월 유럽의회가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문제로 중국에 제재를 가하고 중국이 이에 맞대응하면서 비준 논의가 동결된 상태이다. 중국은 최근까지도 EU 개별 회원국과의 고위급 회담과 방문을 이어가면서 논의 재개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중국과 EU의 CAI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협정으로 EU는 경제적 실리를, 중국은 외교적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도 그럴 것이 협정 내용에는 외국인 지분 한도, 최소자본, 합자회사 등의 요건 폐지와 서비스 시장개방 확대 등이 포함되면서 중국 시장접근권이 전례 없이 확대되었고, 국유기업과 보조금에 대한 규제 및 투명성 강화,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의 합의를 통해 공정경쟁의 장이 마련되었다. 또한 EU의 핵심 투자가치인 국제적 수준의 환경과 노동 기준, 지속가능한 개발 관련 의무 등도 포함되면서 중국보다 EU의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으로서는 과도한 양보로 경제적 실익이 큰 협정으로 평가될 만도 하지만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발맞춰 높은 수준의 투자협정 체결로 시장개방과 경제협력 확대, 공정경쟁을 위한 시장환경 조성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일각에서는 서비스업을 포함하여 대부분 산업에 대한 네거티브 리스트 형태의 개방을 약속한 최초의 협정, 국유기업의 의무나 보조금 투명성 규정을 강화한 최초의 협정, 지속가능한 개발을 별도의 장으로 삽입한 최초의 협정 등 숱한 ‘최초’ 수식어가 붙으면서 2001년 WTO 가입 이후 가장 중요한 경제협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적 이익보다는 외교적 실리에 방점을 뒀다고 본다. 즉, 미국과의 대립 속에서 거대 시장을 무기로 EU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EU와의 경제협력 확대를 통해 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을 뚫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협정의 구성과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세계 경제의 약 15%를 차지하는 중국과 규범 선도국인 EU가 역사상 가장 선진적이고 개방적인 투자협정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향후 해당 투자협정이 글로벌 투자협정의 모델로서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알다시피 EU는 투자와 관련하여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선진적인 규범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국제질서 수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WTO 개혁 등 글로벌 경제질서 새판 짜기와 디지털 경제, ESG 관련 각종 규제(기준) 등을 선제적으로 발표하면서 국제질서 주도권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중국은 이번 협정을 통해 규범 선도국 도약을 위한 든든한 우군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반중 감정이 확산하는 가운데 EU와의 투자협정 체결을 통해 국가 신뢰나 국제질서 선도국으로서의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도 ESG 경영과 지속가능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만큼 EU와의 투자협정을 계기로 중국판 ESG 규범 수립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시장개방과 경쟁, 환경 등에 있어서도 상당한 규제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장기화 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지만, 국제 경제질서 측면에서는 상당한 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한 몫한 측면도 있지만, EU가 유연하고 전략적으로 중국의 변화를 끌어냄으로써 오히려 미국보다 긍정적 역할을 하는 측면도 있다. 현재 유럽의회의 비준 논의 중단으로 CAI 발효에 먹구름이 끼면서 중국의 규범 선도국 도약기에도 험로가 예상된다. 하지만 논의 재개를 위해 중국이 적극적 자세를 보이는 만큼 중국 시장환경이 급변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신지연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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