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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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6세대 영화감독 지아장커(賈樟柯)는 “스틸 라이프(Still Life)”에서 술, 차, 사탕, 담배를 소재로 중국인의 삶을 묘사한 바 있다. 이 영화는 싼샤댐 건설현장을 배경으로 고단하고 위태로운 삶에 내몰리는 중국 노동자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거대한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집은 수몰되고 가족은 해체되고 삶은 더 팍팍해졌지만, 술, 차, 사탕, 담배는 이들에게 작은 기쁨을 나누고 실날같은 희망을 품게 하는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술, 차, 사탕, 담배, 이 네 가지는 중국인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기호품이다. 영화에서도 이것들은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중국인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이 낯선 사람들과 담배를 나눠 피며 관계를 만들어가고, 고향에서 가져온 술을 건네면서 처의 오빠에게 호감을 사려하고, 주인공 남녀가 달콤한 사탕을 나눠 먹는 것으로 화해를 연상시키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차는 중국인이 늘상 손에서 놓지 않는 공기와 같은 존재이지만, 그 쌉싸름한 맛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는 이혼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듯 이 네 가지는 모두 중국인들의 인간관계를 상징하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기호품들이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는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 그럴 때면 이들 앞에 ‘기쁠 희(喜)’자가 붙여지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결혼할 때 희탕(喜糖)을 나누고, 희주(喜酒)를 마시며, 희연(喜煙)을 나눠 핀다. 결혼식은 최소한 몇 시간에 걸쳐 거행되는데, 차는 결혼식 내내 음용된다. 조상을 숭상하고 후사를 잇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고대 중국인들에게 가족을 구성하는 행위로서 혼인은 각별히 중시되었다. 부부는 의(義)로 맺어진 존재였고, 혼례를 ‘예(禮)’ 중에서도 ‘으뜸’이라 생각했던 것은 그런 연유이다. 인적 결합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인륜대사에서 친척과 이웃들의 축하를 받으며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술, 차, 사탕, 담배이다. ‘국수를 먹는다’가 우리에겐 결혼을 의미하듯, 중국인들에게 ‘희탕을 먹는다’ 혹은 ‘희주를 마신다’는 바로 결혼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술은 혼인의 과정에서 특히 고상하고 특별한 존재이다.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술이 빠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술은 정혼과정에서부터 중요한 상징성이 있었다. 중국의 전통시기 혼인은 정식 혼인 전에 혼인을 약속하는 정혼제도를 두었다. 우선 정혼을 해두고 정식 혼례를 치르기까지 여러 단계와 절차를 거쳐 혼인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서’(혼인문서)를 주고받고 약간의 예물과 음식이 오가는 ‘빙례(聘禮)’를 행했다. 빙례는 신랑집에서 신붓집으로 보내는 일종의 예물인데, 지금도 다수의 지역에서 ‘차이리(彩禮)’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빙례는 정혼에서 정식 혼례까지 상대방을 구속하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정혼을 보장받기 위한 절차였다. 이렇듯 혼인의 성립 요건으로 혼서나 빙례를 요하는 것은 전통시기 법률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이는 1930년까지의 현행법이기도 했다.
‘혼서’와 ‘빙례’ 이 두 가지 조건은 동일한 법적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재물을 얻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에 혼서는 없어도 빙례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빙례는 명청시대를 거치면서 그 규모가 커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빈한한 가정에서는 무거운 빙례를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빙례는 원래 ‘예’에 근거했고 그 의미는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혼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컸다. 따라서 품목이나 그 다과를 신랑 가정의 형편에 따라 정한다고 한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에 언제부터인지는 특정할 수 없으나 신붓집에 술 한 병을 보내어 빙례를 대신하고 혼인의 증거로 삼는 경우가 생겨났다. 신랑집이 보낸 술을 신붓집에서 받으면 혼인을 허락하는 징표로서 간주되었다. 술 한 병으로 혼인을 확정하는 이러한 관습은 민국시기에도 다수의 지역에서 행해졌다.1) 산서성 보덕현(保德縣)처럼 혼인에서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과정으로 자리잡은 지역도 있었다.
혼인 양가의 주혼인 간에 술잔을 나누는 관습도 전해진다. 혼인은 전문 중매인에 의해 중개되었고, 전통 혼인에서 중매인을 두는 것은 법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중매인은 혼인 양가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정보를 전달하고 혼인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중매인의 언설이 양가의 혼인 결정과정에서 중요한 요소였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러나 혼인 양가가 상호 방문하여 혼인을 확정하는 경우도 민국시기 다수의 지역에서 보고되어 있다.2) 물론 이때에도 중매인을 대동했다. 상문호(相門戶), 상간(相看), 상친(相親), 단충(端盅), 환충(換盅)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렸던 이 관습은 남자측 부모 등이 여자측 가정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고, 혼인 양가가 순차적으로 상호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랑 신부의 용모나 행동거지를 살피고 해당 가정의 형편도 알 수 있었다. 봉천성 도안현(洮安縣)에서는 남자측 부모 혹은 고모 등이 여자측 가정을 방문하여 신붓감으로부터 ‘연례(煙禮)’를 받으면, 신부 가정에서 반례(飯禮: 식사대접)를 행했다. 만일 신붓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례를 받지 않았고 신부 가정에서도 반례를 하지 않았다. 연례가 정확히 어떻게 행해지는 ‘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연(煙)’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담배와 관련된 ‘예’인 듯하다. 중국인들은 아랫사람이 웃어른께 담배를 권하고 시중드는 것을 하나의 중요한 ‘예’로 생각했다. 이것은 연초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새로 생겨난 관습이었다.
상대 가정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양가의 혼주가 대면하게 되기 때문에 이들 간에 자연스럽게 합주(合酒)를 하는 관습도 생겨났다. 민국시기에도 섬서성 정변현(靖邊縣)에서는 이러한 절차를 거쳐 혼인이 확정되며, 혼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이는 영원히 유효’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혼인 양가가 서로 만나서 상대방 가정의 사정을 살피고 주혼인 간에 술과 음식을 나누는 이러한 행위는 곧 정혼의 징표로서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서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합의를 못하면 여자측에서 술과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고, 남자측 사람들도 그냥 돌아갔다.
정혼하여 빙례하고,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혼례가 거행되었다. 혼례에는 가족과 친지, 이웃 등이 참석했고 참석한 하객들은 술, 차, 사탕, 담배를 나누며 새로 탄생한 부부의 연을 축복했다. 혼례의 하이라이트는 신랑 신부가 교배주(交杯酒)를 나눠 마심으로써 한 가정을 이루었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고대에는 이를 합환례(合卺禮, 혹은 합근례)라고 불렀다. 합환례는 주대부터 시행되었는데, 『예기(禮記)』의 기록에 의하면 신랑 신부가 ‘환(卺)’을 한 모금씩 마시는 것이다. ‘환’이라는 것은 표주박을 둘로 쪼개 나누어 만든 잔이다. 표주박 잔에 술을 담아 나누는 것은 부부가 평생토록 동고동락과 환난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둘로 나눠진 표주박을 합치면 하나가 됨을 상징하기도 했다. 즉 합환주는 신랑 신부의 화목과 협조를 의미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표주박 잔은 술잔으로 바뀌었고, 송대 이후에는 한 잔의 술을 함께 마시는 교배주로 바뀌었다. 오늘날 결혼식에서 사람들이 합환주나 동심주(同心酒) 또는 교배주를 마시는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그 의미는 전통시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수많은 명주가 존재하고 희주로도 여러 술이 사용되지만, 결혼에 사용되는 희주로 유명한 것은 소흥주(紹興酒)이다. 소흥주의 역사는 춘추전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소흥주에도 종류가 많은데 가장 유명한 것이 ‘여아홍’(女兒紅)이다. 소흥주가 희주로 유명해진 것은 서진(西晉)시기 계함(稽含: 262~306년)이 쓴 『남방초목상(南方草木狀)』에 기재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소흥에는 옛날부터 부잣집에서 딸을 낳으면 그날 바로 술을 담가 계수나무 밑에 묻어 두었다가 딸이 결혼할 때 꺼내서 혼인잔치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여아홍’이다. 혹은 ‘화조주(花雕酒)’라고 불리기도 했다. 묻어두었던 술을 꺼내 술병에 담을 때 술병에 여러 가지 상서로운 조각을 새겨넣었기 때문이다. 이는 딸이 시집가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한 땀 한 땀 정성껏 새겨넣는 부모의 마음을 상징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퍼져 나중에는 아들을 낳아도 술을 담그는 관습이 생겨났다. 그 아들이 장성해서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장원홍(壯元紅)’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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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관습은 하루 이틀의 산물이 아니다. 한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정마다 지역마다 민족마다 혼인과 관련된 수많은 관습과 이야기들이 존재할 것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에게 술, 차, 사탕, 담배는 서로 간의 관계를 만들어주는 좋은 도구이다. 이것들은 앞으로도 중국인들의 기호품으로 지속될 것이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각각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가고 강산은 변해도 중국인들의 관습은 누대를 거쳐 기나긴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중국문화오디세이 12】
손승희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1) 민국시기의 『민사습관조사보고록』에 의하면, 열하성 皐新, 平泉, 凌源縣, 섬서성 永壽縣, 府谷縣, 鄜縣, 감숙성 紅水, 定西縣 등에서도 술이 정혼의 중요한 상징성을 나타내는 관습들이 보고되어 있다.
2) 『민사습관조사보고록』에 의하면, 흑룡강성 湯原縣, 克山縣, 綏塄縣, 泰來縣, 璦琿縣, 섬서성 武功縣, 長武縣, 延長縣, 靖邊縣, 永壽縣, 府谷縣, 鄜縣, 산서성 祈縣, 屯留縣, 長治縣, 淸源縣, 열하성 皐新, 平泉, 凌源縣, 감숙성 紅水, 定西縣 등에서도 비슷한 관습이 보고되어 있다.
* 참고문헌
前南京國民政府司法行政部編, 『民事習慣調査報告錄』, 中國政法大學出版社, 2005.
姚讓利, 「婚禮爲什麽要交杯酒?」, 『尋根』, 2017-3.
** 이 글에서 사용한 그림은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www.yynews.com.cn/system/2017/04/06/011543668.shtml?from=groupmessage
사진 2. https://www.china.cn/huangjiu/42302456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