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6월호
연구성과소개 _ 이정희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이정희 연구성과.jpg



이정희, 근대 조선화교의 중화상회 설립과 그 역할: 대구중화상회를 중심으로, 중국지식네트워크, 17, 2021.5.31., 93-141.

 

근대 중국의 상회는 190311월 청조 상부의 상회간명장정의 공포 이후 설립되기 시작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상회가 강제로 해산당해 관변 단체인 공상업연합회가 조직될 때까지, 전국 각지에 보급되어 해당 지역의 상공업 발전 및 지역사회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민간단체였다. 그런데 중국 근대의 상회는 중국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화교사회에도 설립되어 운영되었으며, 중국 국내에서는 중국공산당 정권에 의해 민간단체로서의 상회가 해산된 데 반해, 해외의 중화상회는 그러한 역사적 단절이 없이 연속적으로 지속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본고는 대구중화상회를 사례로 들어 조선의 중화상회의 설립 과정과 역할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조선총독부경무국의 외사관계통계자료와 주한사관보존당안자료를 비교한 결과, 1930년 초 시점까지 당안 자료보다 더 많은 중화상회와 화상 단체가 조직되어 있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화상 단체는 지방 중소도시에 소재하여 아직 중화상회로 개조되어 중화민국정부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지 못한 곳이 많았다. 화상 단체에서 중화상회로 개조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대구화상공회였다.

 

대구화상공회는 1921년 대구화상동향회로 조직되어 활동하다, 화교 인구의 증가와 화상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기존의 조직으로는 업무를 처리할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19285월 대구화상공회로 개조되었고, 회관도 건축했다. 공회의 회관 건축에는 대구부와 경상북도 군지역 그리고 경성과 인천 소재의 주단포목수입상점 등이 다액의 기부를 했다. 대구화상공회의 본회성립건축급연관일람표에 의하면, 화상공회는 화교사회 질서유지를 위한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는 벌금을 부과했다. 화상공회 운영을 위해 문두연, 방연과 같은 회비를 징수하고, 대구부청에는 일반 기부와 소방조 유지비 등을 납부하여 지역사회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중화민국 남경국민정부는 19298월 신 상회법을 공포하면서 조항 내에 중화상회 설립의 기준을 완화하고, 정부가 중화상회 설립을 독려하면서, 대구화상공회는 1930년에 대구중화상회로 개조됐다. 대구중화상회 장정은 대구화상공회 장정과 비교할 때, 신 상회법의 규정을 철저히 적용했으며, 기존의 의원제에서 집행위원과 감찰위원으로 구성된 위원제를 채택했다. 대구중화상회는 정기적으로 남경국민정부에 중화상회 운영을 보고하고 심사를 받았으며, 정부 공공기관의 모금운동에 참가하여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중일전쟁 시기, 대구중화상회는 이전의 위원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직원(임원)의 구성은 1930년 출범 시에 비해 주단포목상점 경영자가 대폭 감소한 반면에 식당 경영자가 대폭 증가했다. 대구중화상회는 화교등기증, 회국증명서, 거주허가증 등의 신청과 수취 등의 서비스를 화교에게 제공했으며, 왕징웨이 남경국민정부의 주부산중화민국영사관에 관내 화교 관련 각종 변동 사항을 보고했다. 또한 대구중화상회는 화교 자제의 교육을 위해 대구화교소학을 설립하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