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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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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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웨이(老威)의 『중국저층방담록(中國底層訪談錄)』(일부가 이향중, 『저 낮은 중국』으로 번역됨)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회의 변화가 기층 민중들의 삶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문학가에서 책장사로 변한 한 40대 인물은 처음 간 나이트클럽에서 여성을 사고파는 행위에의 적응을 통해서 개혁개방의 의미를 이해하며, 문혁의 반성적 결론은 “지도자를 사랑하느니 자기를 사랑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 되어 성매매를 합리화하는데 이용된다. 또 청두에 사는 한 노인에게 새로운 변화는 “부자들이 시내로 들어오고, 없는 사람들은 시외로 쫓겨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20세기말에 이미 중국은 시장사회의 잔인한 측면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분식되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당국의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었고, 그 해석 역시 당에 의해 독점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시장사회를 통해 정치적, 사적 모든 영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되돌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 결과 시장사회의 진전은 강력한 성과만능주의, 경제지상주의의 사회를 출현시켰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대학의 시장사회화였다.
중국의 <2018 대학교장논단>이 산시(山西)성 타이위안(太原)시에서 10월 25일 시작되었다. 세계의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쌍일류(双一流 일류대학과 일류학과)”로 표상되는 대학의 서열화 정책이 고등교육정책을 지배하고 있다. “회귀(回歸), 창신(創新), 육인(育人)”을 표어로 내건 이번 회의에서도 “쌍일류”는 핵심적 주제가 되었다. 그와 아울러 지난 5월 4일의 베이징대에서 발생했던 몇 가지 ‘작은’ 소란(총장이 기념식에서 한자를 잘못 읽었다거나, 몇몇 교수들이 시진핑의 장기집권에 항의하여 사표를 제출했다거나 등)에도 불구하고 대학문화 건설에서의 ‘덕으로서 인재를 육성한다(立德樹人)’는 원칙은 강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교육부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고등교육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실제로 중국 교육예산의 약 80%가 고등교육에 집중되고 있다.
2015년 중국 국무원의 주도로 시작된 “세계 일류대학과 일류학과 건설의 총체적 방안”은 2030년까지 많은 대학과 학과들이 세계일류수준에 도달하여 중국을 고등교육강국으로 부상시킬 것을 목표(42개 대학, 95개 학과)로 하고 있었다. 예산도 그러한 평가결과에 따라 차등 지원되었다(대략 청화대, 북경대, 절강대, 상해교통대, 천진대, 복단대의 순서). 대학의 서열화와 강화된 경쟁체제는 대학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질문을 어딘가에 묻어버리고, 오직 순위표에 이름을 올리는 데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대학이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한 이러한 논리는 결국 대학을 시장의 논리 하에 포섭하는 야만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미 미국 등지에서 이러한 교육체제는 “영혼 없는 수월성”만을 강조함으로써 대학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물며 덕으로써 인재를 육성한다는 중국에서 미국식 시장주의에의 전면적 투항이 불러올 부작용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직면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이다. 덕으로서 인재를 육성한다는 표어는 어느새 장식어로 전락하고, 대학은 천박한 숫자경쟁의 장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방문한 적이 있는 마이클 샌델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방문한 나라들 가운데 미국을 제외하면 중국의 젊은이들이 자유 시장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와 믿음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학조차 시장의 지배를 받게 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반 대중들의 삶은 더욱 살벌해졌다. 2011년 중국 남부의 포산(佛山)이라는 도시의 시장에서 한 어린아이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혼잡한 시장에서 어린아이가 차에 칠 위험은 상존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도 그냥 묻혀 지나갈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17명의 행인이 차에 치인 어린아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18번째 행인이 비로소 어린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부모를 찾아 아이의 사고를 전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병원에 간 아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 ‘충격적 사건’은 중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떤 이는 “위협당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공포”가 그런 현상을 낳았다고 주장하고, 2006년 11월 난징(南京)시에서 발생했던 펑위(彭宇)사건(도움을 준 사람이 가해자로 바뀌는 그래서 도움을 준 사람에 벌금형이 부과된 사건)과 같은 사례들이 타인의 상황에 대한 무관심을 강화시켰다고 주장했다. 관변 언론은 이런 문제가 “국가의 도시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로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의 부모에게 소식을 전했던 시골출신의 할머니는 그를 자신의 선전에 이용하려는 기업가, 관리 등에게 시달렸으며, 그녀가 받은 얼마되지 않은 포상금 때문에 주변의 엄청난 기부압박에 고통 받아야 했다. 그녀의 아들은 자신이 부자가 아니라고 동료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동료들로 인하여 결국은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 가족의 삶은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가난해 지고 불행해졌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 역시 처음에는 전국에서 답지하는 성금과 위로 전화에 감사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죽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악의적 이야기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시장화 사회가 심화되면서, 사회적 신뢰가 완전히 붕괴된 불신사회가 출현했고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은 중국사회가 개혁개방 이후 겪어 온 수많은 사례 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중국 안에서는 2008년 멜라닌분유사건의 경험과 그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조치강조에도 불구하고 불량식품, 불량약품의 문제는 상존하는 위협으로 여겨져 왔다. 금년 7월 아이들에게 접종하는 백신에서 문제가 생겼다. 오염된 백신을 접종한 아이들이 급성척추염 등을 앓거나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자 피해를 입은, 분노한 부모들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상경투쟁을 벌렸다. 이에 놀란 중국정부는 1조5천억 원에 달하는 징벌적 벌금 외에 백신을 생산한 기업의 업계영구퇴출 등을 지시했으나, 여론은 냉소적으로 보인다. 멜라닌 분유파동 시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었으므로 국가가 무어라고 말하던 간에 그것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돈이 권력의 박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중국인들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불신사회의 전개와 합리적 권위체제의 해체에 대해서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산당의 통제 하에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 언론인과의 인터뷰(馬國川저/강영희역, 『중국을 보다』, 2016)에서 외교부 판공청 부주임을 지낸 당사전문가 허팡(何方)은 빈부격차, 만연한 부정부패, 도농간 지역격차의 확대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봉착한 문제들을 시장경제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근본적 원인은 시장화과정에서 동시에 정치민주화를 실시하지 못한 것에 있습니다.” 그는 “시장화는 경제발전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자 주요동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중국이 직면한 실질적 문제와 급선무는 한마디로 세계추세를 똑바로 보고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당과 국가를 시장이 장악한 사회에서 중국은 개인숭배형 전제주의 방식으로가 아니라 개방된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대응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김태승의 六十五非 6】
김태승 _ 아주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