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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11월호
명·청시대 관원의 행정실무 지침서 _ 김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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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복혜전서.jpg

황육홍의 복혜전서

청 강희33(1694)년 완성, 강희38(1699)년 초판본 발행



송대 이후 과거제(科擧制)가 정착된 이후 과거시험에서의 합격은 관료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되었다. 과거 합격자들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오로지 유학경전만 읽고,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해설서만을 읽었기 때문에, 사실상 지방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행정적 실무 능력은 거의 준비되지 않았으며, 또한 그 능력이 검증된 상태도 아니었다. 즉 과거 합격자들은 세금 징수, 소송 및 사법안건 처리, 범죄 사건의 심리 등 형명(刑名: 사법)’전곡(錢穀: 세금)’이나 기타 행정사무를 감당할 지식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행정사무 처리를 위한 각종 규범과 형식, 의례 및 공문서양식 등을 체득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에 의해서 출현한 것이 관잠서(官箴書)이다.

 

관잠(官箴)’은 경계나 권고라는 의미이며, ‘은 종정(從政) 즉 정치나 행정에 관여한다는 의미이다. 즉 관원에게 정치행정 사무를 맡길 때 주의하도록 권고경계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관잠의 기원은 『좌전』 양공(襄公)4년조에 보이지만, 서적으로서의 관잠의 기원은 1975년말 호북성 운몽현 수호지에 위치한 진()나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위리지도(爲吏之道)이다. 송대 이후 특히 명청시대가 되면 관잠서의 출판이 성행하게 되고 그 수량이나 내용 면에서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송대 이후 인구증가와 과거제의 정착에 따라 중앙지방 행정기구의 증가, 관원과 서리의 분리, 지방행정의 복잡화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위로는 황제에서 고급 관료나 지방관, 지방관을 보좌하는 개인비서인 막우(幕友)에 이르기까지 관잠서의 편찬 주체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청대(1644~1912) 관잠서의 수량은 대략적으로 500종 남짓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여 관잠서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말단 행정단위인 주현의 사무를 다루는 지방관이나 그를 보좌하는 막우를 위한 지침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황제가 직접 관잠서의 편찬과 보급에 참여한 사례도 있는데, 국가에서 지방행정과 이치(吏治)의 개선에 적극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관잠서는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가 가능한데, 청대 강희연간 산동서 담성현 지현을 역임하기도 했던 황육홍(黃六鴻)의 『복혜전서(福惠全書)』(강희38(1699)년 출간)는 지방관 자신의 경험을 축약하여 초급 지방관을 위한 실무지침서의 성격이 강하면서 동시에 복합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춘 관잠서이다. 이 책에 대해 청말 학자 왕선겸은 복혜전서는 서점에서 널리 성행하고 있어 처음 관직에 나간 사람은 이것을 금침으로 받든다. 내가 살펴보니 이 책은 지금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 무릇 처음 관직에 나간 사람은 거의 한 사람이 한 편씩을 옆에 두고 있을 정도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처음 임명된 신임 지방관들이 행정적 사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정무 지침서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이 송대 이후 중국 관료제의 관잠서 편찬 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으며, 복혜전서는 여러 관잠서들 중에서 지방관에 임명될 준비를 하는 과거 수험생이나 신임 지방관의 필독서가 된 것이다.

 

황육홍의 복혜전서는 지방관이 다스리는 지방사회에 행복[]을 조성하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한 종합적인 지침서[全書]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지방관으로서 경력을 수행하기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지방관의 올바른 행정 업무가 곧 지역사회의 행복, 나아가 천하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복혜전서3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 지방관의 임명과 임용부임 준비, 부임과 인수인계, 지방관의 승진과 전임(이임), 둘째 부임 이후 가장 중요한 업무인 세금 징수와 이를 위한 호구조사와 등록, 토지대장 조사, 그리고 셋째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형명(刑名; 사법)’, 마지막으로 전례(典例)교양(敎養)과 풍속, 재해구제, 역참 및 기타 행정 등의 순서로 기술되어 있다. 황육홍이 복혜전서를 편찬한 주된 이유는 바로 평범한 자질의 지방관들에게 도움이 되는 안내지침을 주기 위해서였으며, 여기에는 위민사상(爲民思想)이 근본에 깔려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관료들도 한 번쯤 참고해볼 만한 책이라 여겨진다.

 

관습과 중국문화 12


김두현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연구교수

                                       


[참고문헌]

김형종, 청 시대 중국의 관잠서-황육홍(黃六鴻)과 『복혜전서(福惠全書)』를 중심으로, 다산과현대7, 2014

郭成偉.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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