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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현장&공간
11월호
마치는 글 - 서글픈 자백 _ 공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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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나는 실제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애초의 기획은 감정의 격랑 속에 좌초하고 말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지친 것이다.


10월 말 상트 페테르부르그 에르미타쥐 박물관 앞은 깃발 물결로 펄럭였다. 거리의 노래꾼 누군가가 부르는 낯선 노래의 가사는 중국어로 된 것이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메운 인파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거리의 가게마다 유니온페이(銀聯)’알리페이(支付寶)’ 로고가 붙어 있으니 중국에서 가져온 카드 하나면 문제없이 사고 먹을 수 있었다. 지극히 이국적인 건물 몇몇만 아니면 이곳은 이국이라기보다 중국의 어떤 변경(邊境)이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단체를 이끄는 깃발을 잠시만 벗어나면 연신 웃는 가게의 점원과는 다른 싸늘한 얼굴들을 대해야 하니, 두 얼굴 사이에서 그분들이 겪는 심경은 꽤나 불안할 것이다. 서방의 제재를 의식하여 동방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중앙아시아에서 소비에트식 표준을 중국식으로 바꾸려는 중국의 시도들(소위 일대일로一對一路를 위시하여)을 바라보는 러시아 정부의 심사 또한 그처럼 복잡할 것이다

 

그 동안 전인대는 주석의 연임제한 당헌 조항을 철폐시켰다. 북경에서 일어나는 정치의 내막은 너무나 은밀하여 우리는 어떤 컨센서스를 통해 그러한 일을 행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무려 20년간 이어진 모택동과 임표의 양두체제와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으로 일궈낸 성과가 연임제한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조항은 거의 만장일치로 폐기되었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조항이 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요체로 불과 몇 년 전에도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그들은 어떤 체제를 버리기 직전까지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필자를 포함하여 폐기안이 통과될까 말까를 저울질하던 전문가들과 언론은 다시 한 번 중국 정치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자발적인 침묵과 강요된 침묵 사이에 어떤 변경이 있는지 사회과학적으로 확인하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일인지배체제가 대외적으로 힘의 과시로 이어지고 있는 현상을 관찰할 뿐이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기획의 목적 중 하나가 자본수출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자본부족 국가에서 잉여 국가로의 변환이 이토록 빠른 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굴기는 중국식 표준을 관철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현 지도부는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개혁개방의 핵심은 소위 국제적인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제 중국의 기준을 수출할 차례, 현재 자본수출은 언론통제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므로, 이것은 이제 받아들일 것이 내보낼 것보다 적다는 것을 웅변한다

  

모든 사회현상은 자체의 관성이 있고, 하나의 변화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이 연재를 시작한지 겨우 한 해. 그 동안 변경에서는 분석하지 못할 정도의 변화들이 이어졌고, 그 변화를 해석할 능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신장(新疆) 변경에서의 인류학 조사 계획은 애초에 좌절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접경국가 외 국민은 이르케쉬탐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금지 목록이 얼마나 늘어날 지 알 수가 없다. 금지목록을 기준으로 정의한다면 동부 대도시들이나 사회관계망(SNS)까지 변경은 확장되었다. 스스로 행하는 검열까지 고려한다면 개인의 내면이나 신체를 가르는 날카로운 금도 확인할 수 있다.


변경에는 보안(保安)이라 불리는 임시직 경비원의 수가 크게 늘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지극히 단순한 반복 검열이기에, 그들은 검열 기계의 보조역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수는 실업률 통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한순간에 줄이려면 상당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행정부는 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법을 터득한 듯하다. 정부는 검열기술의 최대 수요자이기에 기술의 발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그들이 얻은 소위 빅데이터는 기술 발전을 추동하는 요인이다. ‘검열기술은 그 동안 여러 정부들이 친환경 기술등을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겪었던 모든 좌절을 겪지 않는 듯하다. 민과 관을 가리지 않고 빅데이터는 커다란 유혹이다.


그사이,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이라는 변수는 이중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그들이 시작한 관세전쟁은 중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지만, 무역전쟁의 역사를 살펴볼 때 장기적으로는 수입국에 더 큰 해를 입힐 것이다. 또한 그들이 시작한 전쟁을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중국)에게 세계 무역질서의 수호자라는 왕관을 억지로 씌우고 말았다. 그들은 일대일로 정책을 인프라 건설을 미끼로 상대국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먹이는 행동이자, 결국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1026일자 폼페이오 발언)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런 언사는 그 진위에 상관없이 중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한다. 한 때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굴복할 것 같지는 않다. 냉전시기의 러시아는 오늘날 중국에 비하면 턱없이 규모가 작은 나라였으니. 권력 기반만 확고하다면 적정한 정도의 싸움은 체제의 땅을 다지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그 사이, 대결은 메두사의 머리카락처럼 이곳저곳에서 변경을 만들어낸다. 대결의식이 촉발한 애국심은 애국자와 비애국자를 가르는 날카로운 변경을 만든다. 과거 소비에트와의 대결의식이 온 국민으로 하여금 삼선(三線)개발과 국방력 강화에 매진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미국과 만들어가는 대결의식은 단결을 저해하는 자들을 마음껏 증오할 기반을 낳았다. 서부에서 카쉬가르로 들어가는 유로 도로의 검문소 인원들은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흘끗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 사람이 위그르인처럼 보이면 검문소로 넣고 한족이나 기타 민족 사람으로 보이면 그냥 차 안에서 검문을 받도록 한다. 그간에 차가 너무나 많이 늘어났고 이제 행정요원만으로는 관리하기 힘든 것이다. 다만 안면인식기능 네트워크도 따라 발달하여, 차안으로 인식카메라가 한 번 돌기만 하면 탑승자 전원의 신원이 파악된다. 기계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역할을 해내지만, 인간은 인종주의에 기대고 있는 상황이다. 하루 종일 수행하는 꼭 같은 일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보안요원이 기계에 밀려 검색대의 주인에서 내려올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기계가 다음에 할 일은 인간의 동공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하는 것일 터이다. 기계는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반응을 감지하고는 적당한 딱지를 붙일 것이다. 딱지 붙은 인간은 스마트 시티안에서, 반역을 꿈꿀 때조차 눈을 감고 몸을 어딘가로 숨겨야 할 것이다. 그의 몸에서 머리는 변경이 될 것이고, 팔 다리는 원격조종을 받는 장치가 될 것이다.


상하이에 사는 훙(, 가명)은 타지크 혈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이므로 언제나 탈출을 꿈꾼다. 그는 거대 도시 상하이에 살면서도 그의 조상들이 떠나왔던 서쪽을 바라보고, 서쪽 음식을 먹으며, 나름대로 이슬람의 전통을 지키며, 자유를 화두로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자유를 추구해서 나온 작품을 팔 공간은 현재 중국에 없다. 그가 무심결에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순간, 그는 이마에 딱지를 붙여야 할 것이다. 일단 딱지가 붙으면 거대 도시 어디에도 숨을 공간은 없다. 배회하는 순간 누군가 다가올 것이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를 조사할 것이고, 심문기계는 그의 부아를 돋워 순식간에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들 것이다. 그는 동방에 사는 변경민이다. 그가 꿈처럼 외국으로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행은 확실히 불가능하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들이 한 치 재겨디딜 땅조차 없는 변경민으로 전락한 것을 보면. 유럽 어딘가, 예컨대 독일로 가볼까? 그는 독일어를 모른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문화적인 자산을 다 잃은 채 다시 아시아에서 온 변경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백하지만, 중국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자체의 의지를 가진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이 바야흐로 스스로를 실현하려는 것일까? 절대정신은 인간의 의지가 완벽하게 제거당한, 주체 없는, 어쩌면 기술 자체의 오차 없는 시선망일까? 오늘도 중국몽(中國夢)은 여물어 간다. 누구를 위해서인지, 무엇을 향해서인지도 모르는 채.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13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는 필자가 제공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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