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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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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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이라는 제목으로 연구자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공원국 선생님의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공원국 선생님은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이미 『춘추전국이야기』(전 11권), 『유라시아 신화 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의 저서와 『말, 바퀴, 언어』, 『중국의 서진』, 『중국을 뒤흔든 아편의 역사』, 『조로아스터교의 역사』 등의 역서를 내는 등 왕성한 출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중국 서북 변경과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문화와 경제를 연구하기 위해 신장위구르자치구-키르키스스탄-카자흐스탄-북극해에 대한 현지조사를 진행 중이며, 그 과정에서 보내온 중국 서북 변경민의 삶과 문화에 대한 그의 관찰과 소회를 여기서 풀어낼 예정입니다.(편집자주) |
1) 연재 서문- 반성문
혹자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누가 내렸는지 모를 이 천형(天刑)을 받아들인다면 학자들은 과거를 또박또박 읽고 현재를 기록하면 될 뿐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혹자는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보한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심각하게 수정되어야 할 듯한데, 멀지 않은 과거와 오늘날의 현실이 이 ‘진보주의’ 실험이 가져온 파괴를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로서 명백하게 느끼는 점 하나는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뫼비우스의 띠 위를 달리는 개미처럼 원(반복)과 직선(단선적 진보)을 모두 거부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셈입니다. 그 사이 인민을 다스리는 이들은 ‘피정복’이니 ‘경제위기’니 하는 ‘반복’의 위협을 강조하여 힘을 얻고, 인민을 시장 안의 수요자로 활용하는 이들은 ‘진보’의 미래를 포장하여 이익을 챙깁니다. 디지털 미디어 기술 덕분에, 단숨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다수 당사자의 이해관계와 상관이 있으면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든 정보든 상관없이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재생산 됩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 지적(知的) 지형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대중 사이에 유행하는 혐오와 숭배 양 극단 사이에는 엄연히 커다란 공백이 존재합니다. 국가의 정책 보고서든 증권가의 정보지든 심지어 술자리의 담소든 중국이라는 지구상 가장 큰 정치집단을 마치 잘 포장된 상품처럼 하나의 단위로 보고 논지를 전개합니다. 이 극단적인 단순화가 힘을 얻는 사이, 소위 인문사회과학은 인식의 양극단 사이의 간극을 메우지도 못하고 현실적인 담론에 끼어들지도 못하면서 학교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과 전체주의의 발흥 이후 이어진 냉전의 와중에서 그랬듯이,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이 심각한 테러‧국지전‧국가주의의 물결 속에서 ‘현실주의(Realism)’라 불리는 결과론의 아류에게 압도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관련된 지식으로 연명하는 작가로서 친중 혹은 반중이라는 확고한 극단 사이에 묻혀, 극소수만 들여다보는 잡문을 쓰다 사라질 듯한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이제 학문 방법상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반문해봅니다. 일단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을 제쳐두고, 스스로 두 가지 문제를 통감합니다. 인문사회과학은 지금껏 문학적인 상상력을 흡수하는데 인색했습니다. ‘올리버 트위스트와 장 발장의 이야기가 《자본》보다 향후 전개될 사회에 대해 더 작은 메시지를 던지는가? ‘멋진 신세계’에서 ‘분노의 포도’를 따 먹지 않고서, 소위 자아를 잃지 않고 현재와 미래사회를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문학은 인문사회과학이 결여한 양식良識(어쩌면 왕양명이 말한 양지良知의 발전 형태가 아닐지)을 다룹니다. 만약 양식 없이 학문을 할 수 있다면, 학문은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될 일입니다(그런 시절이 곧 올 듯도 합니다).
또 하나, 지금껏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기존의 범주(範疇)에 스스로를 가두고 만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분석단위로서 국가는 정치학의 영역이며 법률은 법학의 영역이고 화폐는 경제학의 영역이고 인식은 철학의 영역일까요? 학자들이 학문을 그렇게 다루는 사이, 놀랍게도 국가의 정책결정자나 대중은 조악한 수준에서나마 최소한 학자들이 고수하는 범주를 가로질러 판단합니다. 그들은 연구자들이 배격하는 혐오나 친밀감 등의 감정과 구체적인 수치를 뒤섞어서 모종의 결론을 도출하지만, 이 결론은 나름대로 전체성과 정합성을 가지고 있어서 최소한 분과를 담당한 학자들의 주장보다 강력합니다. 오류 여부를 막론하고, 범주에 갇히지 않은 종합적인 판단은 대중을 사로잡습니다. 지식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오늘날 분과 학문의 과제를 수행하기도 어려우니, 과거의 플라톤이나 공자, 근래의 모스(Marcel Mauss)나 폴라니(Karl Polanyi) 정도의 종합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러나 중국 이해의 피상성을 돌파하기 위해서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심각히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먼저 비교적 좁고 특수한 주제를 선정합니다. 그러나 도중에 부딪히는 문제들을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빠트리지 않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려 합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좌절을 예방하고, 비교적 전면적인 안목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2) 변경의 중층 모순
변경(邊境, frontier)의 프리즘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필자는 앞으로 국가 안에서 변경을 없애려는 시도와 그 반작용을 중심으로 글을 서술할 것이다. 그러므로 첫 글을 통해 변경의 이중성을 간단히 묘사하려 한다.
변경은 중심부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며, 그 자체로 모순 덩어리다. 변경은 선(border, 국경)이 아니라 면적을 가진 땅이다. 변경 사회는 중심부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멀지만 행정적으로 오히려 가장 가까운 공간이다. 또한 변경에서는 변경 밖 내지에서는 존재하되 실체를 숨기고 있던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변경에는 총을 든 군인이 있고, 불시 검문권을 가진 경찰이 있고, 가장 융통성 없는 행정기구가 있으며, 인간들의 이동을 관리하는 출입국관리소가 눈에 들어온다. 내지에도 이런 제도와 장치가 있지만 일상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변경에서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러기에 중심부에서 일어난 변화도 중심의 주변이 아니라 이곳 변경에서 가장 먼저 감지된다.
변경에서는 중심부 근처에서는 가려져 있던 알력도 그대로 알몸을 드러낸다. 예컨대 변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든 사회 집단들은 다른 집단에 대해 훨씬 더 분명한 태도를 보인다. 조상들이 살던 땅에 남아 있다가 졸지에 변경민이 된 현지인(혹은 현지민족)은 이주민에 대해 틈만 나면 적대감을 보이고, 이런 태도는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특히 삶의 환경이 열악해지면 각 집단들은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확인한다. 그래서 변경에서는 무수한 정체성이 생겨나고 진화한다. 마찬가지로 변경의 정치는 피아, 즉 국경 안팎의 구분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국경을 마주한 두 국가의 중심이 서로 갈등하면 변경이 가장 먼저 요동친다. 준(準)전시상황이 수시로 연출되고 변경민은 한 방향 즉 국경 밖의 적만 바라보도록 강요당한다. 현재 카쉬미르를 비롯한 중국 서북 변경의 상황이 그렇다. 변경에서 집단들은 내부에서, 그리고 국경을 마주보고 강렬하게 대치한다.
지금껏 변경을 면적이 없는 선(국경선)으로 축소하는 것이 국민국가의 목적이었다. 국가는 변경을 무균지대로 만들고자 행정력을 동원한다. 하지만 오늘날 어떤 국경도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지 않기에, 인간과 상품(화폐)과 이들을 따르는 온갖 부수적인 것들이 변경을 오간다. 그래서 변경을 무균지대로 만들고자 하는 국가의 폭력이 아무리 강해도 변경은 온갖 균들이 서식한다. 이질적인 문화와 질병이 가장 파괴력을 가진 부산품들일 것이다. 변경은 어떤 것은 거부하고 어떤 것은 통과시키는 반(半)투과성 거름종이다. 동시에 변경은 오가는 물질과 비물질을 억류하고 굴절시킨다. 무엇이 변경을 통과하고 못 하는지, 무엇이 억류되는지를 통해 전체 사회의 욕구와 병리현상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다. 통과 가능한 물질 혹은 비물질 단위 목록은 시간에 따라 바뀌므로, 이는 전체 사회의 이행과정을 보여주는 뚜렷한 흔적이다.
인간 사회의 완충능력 때문에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 약간의 시차가 있지만, 물리 법칙과 마찬가지로 변경 사회 또한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따른다. 예컨대 변경을 선으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 즉 중심부에서 국경선까지의 모든 삶은 균질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변경의 사회적‧자연적 생태에 압력을 가한다. 애초에 변경은 복수의 정체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므로 균질화 시도는 복수의 정체성을 단수의 정체성으로 축소하는 시도이며, 배제된 복수는 격렬하게 저항한다. 강력한 압력은 저항을 압도하는 듯하지만, 저항 또한 시차를 두고 나타나므로 미래를 예단할 수는 없다. 예컨대 오늘의 압력이 긴 시간의 간극을 건너 미래의 테러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변경 연구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인 참여관찰은 필수적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변경의 지리적인 범위를 벗어난다. 변경에서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변경을 벗어나면서 변경 밖의 내지에 새로운 변경이 형성되기도 한다. 국경 내 변경의 면적을 줄이고자 하는 시도는 국경 외 변경에 대한 동경을 낳고 국경 밖에 변경을 만들 수도 있다. 중국측에서 넘어온 러시아계 키르키스인이 국경을 넘으며 나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언어도 러시아어로 바뀌었다)
“투르키스탄은 자유의 땅이다! 이제부터 당신은 자유다.”
어떤 땅에 비해 자유롭다는 뜻인가? 물론 투르키스탄의 중국측 변경인 신장(新疆) 일대에 비해 자유롭다는 뜻이다. 중국국적의 키르키스인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변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국경 안은 물론 국경 밖에서 작지만 응집력 있는 변경을 만들어낸다. 서북 변경에서 가장 먼 동남부 연해에서 변경이 형성될 수도 있고, 바다 건너 아메리카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원래 변경인이 아니던 학자, 여행자, 상인들 사이에서도 변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룸치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하는 한족 상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한족으로서) 사업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언제보다 힘들다는 것인가? 물론 어제보다 힘들다는 뜻이다. 왜 힘들어졌나? 변경을 균질화하려고 만든 규제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한족이면서도 중앙의 변경 정책에 대항하는 심리적인 변경을 만들고 있었다.
요약하면, 어떤 운동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변경을 선으로 줄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변경을 넓히기도 한다. 예컨대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카슈가르는 이제 온전한 변경의 외양을 띠고 있다. 붉은 완장을 찬 아주머니들이 방망이를 들고 대낮의 거리를 순찰하고 건물 입구마다 전신 스캐너가 서 있다. 물론 베이징의 지하철 검색대는 변경의 검색대와 꼭 같다. 변경화 된 사회 안에서는 기존에 없던 무수한 경계가 형성된다. 유치원 담장을 철조망으로 두르고(군용 철조망이다), 정문은 철문으로 보강하고, 철봉을 든 보안요원들이 지킨다. 누군가 밖에서 자물쇠로 채운다면 영락없이 어린이를 위한 ‘감옥’이다. 아파트, 관공서, 상점, 시장까지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모든 단위는 경계로 나뉘어졌다. 이렇게 변경을 선으로 줄이려는 시도는 역설적으로 변경과 중심 사이의 온 공간을 철조망으로 조각조각 나누어 변경으로 바꾸어버렸다. 결국 변경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철조망으로 이뤄진 국경(변경이 응집된 선)이 내지로 확대되었다.
붉은 완장을 찬 아주머니들
철봉을 든 보안요원들
철문으로 보강된 정문
변경의 풍경을 바꾸는 요소들은 많지만 앞으로 기술과 시장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변경은 선으로 줄이고자 만든 직선의 도로는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내지 배후시장의 존재는 변경의 생산방식을 바꾸었다. 초거대 규모의 농장이 세워지고, 공동의 목장은 개별 목축업자(이제는 유목민이 아니다)에게 분배되었다. 일인이 점유한 수백만 평의 농장에는 단일한 작물이 재배된다. 목축업자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볏짚의 도움을 받아 가축의 수를 불린다. 중국 서북 변경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유목 혹은 반유목 부족민의 정체성은 해체되고 중소규모 목축업자의 정체성이 확립되었다. 도로(그리고 모든 소통 기술)와 시장은 변경의 균질화를 실현할 황금의 열쇠로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모든 운동은 쌍방향이라는 명제는 소통기술의 발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교류 덕분에 곧 사라질 듯한 서북 변경의 정체성은 불쑥 바다의 변경에 등장한다. 갓 직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유치원에서 일할 예정인 광동 여학생 뤄(羅)는 칭하이로(쿤룬(崑崙) 산 이남은 이제 완전한 변경지대다) 졸업 여행을 왔다. 뤄는 외국인은 서북 변경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없고 쿤룬 산맥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 가수의 노래를 한국 청소년들보다 오히려 더 잘 부르는 뤄는 “정치적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거기 가서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못 가요?”
광동의 복잡한 삶을 떠나 서북으로 왔지만 서북의 실상은 부자유다. 변경의 부자유를 경험하고 돌아간 비非변경인들 다시 동부에서 변경을 만든다. 변경을 경험한 이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강렬하게 ‘중화민족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실 가장 위험한 변경은 애초에 동부에 있었다. 바다 양측에서 생겨난 다양한 수준의 민주주의(제도적 차원과 심리적 차원에서 세분화할 필요가 있지만), 계산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연해 지역의 유동성 자금, 연해를 떠나 비행기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 통제 할 수 없이 유통되는 정보는 동부에 대규모 유동적인 변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 때문에 이들의 실상은 가려져 있지만 간단한 인터뷰만으로도 그들의 존재가 감지된다.) 그러므로 동남부 변경 관리를 위해 서북부(혹은 서남부) 변경을 통제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와 필요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중앙방송은 끊임없이 서북 혹은 서남부 변경의 삶과 국경 너머의 삶을 대비시킨다. 국경 너머에 적수(敵手)가 있다! 그 적수는 수십 번 재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동부에서 변경의 최대 변수인 ‘민주주의’의 절박성을 통감하는 이들은 서부 변경민이다. 변경민은 소수이고 변경은 멀지만, 변경민의 갈망과 비변경민의 변경 경험은 강렬하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의 변경정책의 역사는 길다. 기록으로 확인 가능한 진(秦)의 변경정책은 명백한 동화(同化), 추상적으로 말해 유위(有爲)였다. 진시황 스스로 월과 호를 밀어내고 풍속을 동화시켰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변경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처음부터 중층적이어서, 동화 정책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의 건국공신 육가(陸賈)는 《신어(新語)ㆍ무위(無爲)》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주공께서 예악을 제정하고 천지와 산천에 제사를 지내시며 군대를 쓰지 않고 형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자[刑格法懸] 사해 안의 나라들이 받들어 모이고 월상(越裳)의 군주가 두 번 통역을 거쳐 내조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못할 일이 없었다[故無爲也, 乃無不爲也]
육가의 변경 정책은 무위와 예양(禮讓)이다.
변경과 중심의 간극을 줄이는 이상적인 장치로서 예양은 자발적인 규제 장치로써 오늘날에도 현실적인 의미가 있지만, 이는 극히 안정적인 사회‧경제‧정치적인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예양은 비폭력과 상호인정을 전제하므로 오늘날의 인권과 민주 개념과 상통한다. 그러나 상공인(돈)과 관료‧군대(힘)를 통한 변경통제와 예양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 변경민의 삶은 하루하루 극도의 무례함을 견디는 과정이다.
결국 모순이 켜켜이 쌓인 변경문제는 하루 이틀에 풀리지 않을 것이고, 변경민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무거운 모순 덩어리들을 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순을 통해 연구자는 중국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변경은 중심부의 속살을 헤집는 수술용 칼이다.
【변경에서 바라본 중국 1】
공원국 _ 작가 / 중국 푸단대 인류학과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bbs.tiexue.net/post2_12642459_1.html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