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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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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
노자의 신격화 버전, 노군 숭배 _ 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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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중국사상은 이른바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통해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원류)이 완성되었다. ‘제자백가’는 대변혁의 시대인 춘추전국시기(春秋戰國時期, BC770~AD221) 일군의 學人들에 의해 전개된 사상운동이자 최초의 체계적인 지식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적자생존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질서원리가 요청되었다. 제자백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춘추전국의 혼란을 해결할 방안을 찾았고, 상주시기(商周時期) 이전부터 축적되어온 고대문화를 집대성하면서 성립하였다. 제자백가는 풍요로운 중국 사상과 문화의 원천으로서 일정한 사상적 완결성을 가지고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자백가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파는 역시 공자(孔子)의 유가(儒家)와 노자(老子)의 도가(道家)이다. 유가는 대체로 지배층의 생각과 삶을 규율하였고 도가는 기층 민중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유가가 공동체의 운영을 책임지는 여당이라면, 도가는 여당을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도가 사상이 없었다면 중국이라는 거목의 뿌리가 썩어문드러졌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무튼 두 가지 매우 이질적인 사상체계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루었다는 점, 즉 일정한 완결성을 가졌다는 점은 중국 사상의 특징적 면모이자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민간신앙은 물론 ‘업종별 조상신(行業神)’ 숭배에서도 공자와 노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일하는 서민들의 공자 숭배에 대해서는 지난 ‘여섯 번째 이야기’(2016년 11월호)에서 다룬 바 있다. 이번에는 노자(老子)를 살펴보는데, 노자가 신격화되어 도교의 교주로서 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숭배될 때는 대개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고 불렸고, 줄여서 ‘노군(老君)’이라고도 한다.1)


노자는 춘추 말기에 활동한 인물로 공자보다 나이가 많다. 고대의 역사와 제도에 대한 지식이 깊어, 공자가 노자를 방문해 예(禮)에 대해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은자(隱者)’의 이미지도 갖고 있는데,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푸른 소(靑牛)를 타고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세상에서 사라지려고 했는데, 이때 관리인 윤희(尹喜)가 노자에게 책을 쓸 것을 권고하였고 이에  『도덕경(道德經)』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漢)나라 초기 진(秦)나라의 폭정에 지친 백성들이 쉴 수 있도록 당시 통치자들은 황로(黃老, 黃帝와 老子)의 조용한 통치방법을 택하였고, 자연스럽게 황로의 학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런 관심은 점차 숭배의 차원으로 발전한다. 후한(後漢) 시기에 이르러, 황제가 노자에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노자는 도교의 교주로서,  『도덕경』은 도교의 경전으로서 신성함을 갖추게 되었다. 사상가였던 노자가 신격화되어 도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노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불리게 되고, 삼라만상을 주재하는 최고의 신령 중에 하나가 되었다.


신령이 된 노자는 여러 가지 고결한 모습으로 환생하였고, 그의 일생은 일반인과 달라야만 했다. 예컨대, 그의 어머니는 유성(流星)의 기운을 받아 노자를 잉태했고, 무려 81년 동안이나 노자를 임신하고 있었다. 노자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래서 노자(老子)라고 했고, 이는 살아있는 신선이 세상에 내려온 것이었다.


노자의 신격화 버전인 태상노군은  『서유기(西遊記)』,  『봉신연의(封神演義)』,  『팔선전(八仙傳)』 등의 민간소설을 통해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고, 민간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신령이 되었다. 특히  『서유기』의 저자는 각종 에피소드에서 태상노군이 지극히 높은 지위를 가진 신령임을 암시하였다. 노군은 이미 창세 신령이었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질서 있게 하고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그렇다면 일하는 서민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업종에서는 노군(老君)을 어떻게 취급했을까? 이교(李喬)의  『행업신숭배 : 中国民衆造神史硏究』(북경출판사, 2013년 8월판)에 따르면, 10여 종의 업종에서 노군을 조상신으로 섬겼다. 아래에서는 그 내력을 살펴본다.


• 금속공업


금속공업에는 금, 은, 동, 철, 주석을 다루는 장인(匠人) 및 금속 제련 주조 기술자, 땜질을 하는 땜장이, 금속기기를 취급하는 장사꾼 등이 모두 포함된다. 모두 금속 및 용광로와 관련이 깊다. 이들은 여와(女媧), 여동빈(呂洞賓), 화신(火神) 등등 여러 종류의 조상신을 섬겼는데, 노군(老君)도 ‘화로의 신(爐神)’이라 칭해지며 각지의 금속공업 종사자들이 보편적으로 숭배했던 조상신이었다. 일례로 전통시기 산서(山西)에서는 금속공업을 ‘노군의 행업(老君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금속공업 종사자들이 노군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까닭은 노군이 전설상에 ‘화로의 신(爐神)’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설에는 많은 버전이 있는데, 예컨대 노군이 팔괘로(八卦爐 = 老君爐)를 가지고 황금이나 불로장생의 약(丹)을 제련해(煉丹) 냈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유기』에서는, 노군이 손오공을 팔괘로에 넣어 장생불사의 환약(丹)으로 제련해 내려고 했다고 한다. 대개 노군의 화로(老君爐)에서는 연단(煉丹)뿐만 아니라 병기나 각종 철기도 제련해 낼 수 있었고, 노군이 친히 화로의 불을 지피고 쇠를 두들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어떤 민속가요에서는 건장한 대장장이를 노군의 제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노군이 도교의 교주에 해당한다는 점도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도교의 승려인 도사들이 연단로(煉丹爐)를 가지고 금은(金銀)을 제련했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는 금속공업 종사자들이 도사들의 스승인 노군을 조상신으로 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1  爐神 老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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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火爐의 神, 老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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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업


도자기를 만드는 업종은 전통적으로 유서가 깊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조상신을 섬겼다. 노군(老君)도 그 중에 하나이다. 노군을 도자기 굽는 ‘가마의 신(窯神)’으로 섬기게 된 것은 역시 노군로(老君爐)를 가지고 연단(煉丹)을 했다는 전설과 관련이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노군이 ‘팽성 주발(彭城碗)’과 ‘의정 질그릇(義井砂鍋)’의 제작방법을 창시해 전해주었다는 전설이 도공들의 노군 숭배에 영향을 끼쳤다.


• 벽돌·기와 제조업


벽돌과 기와도 불로 구워 만든다는 점에서 금속공업이나 도자기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역시 벽돌공이나 기와공도 노군이 불가마를 만들었다거나, 팔괘로 또는 노군로(老君爐)로 불리는 화로를 만들었다는 전설과 관련해 노군을 조상신으로 섬겼던 것이다.


• 석탄업


지역에 따라 석탄업자들도 노군을 ‘화로의 신(爐神)’이나 ‘가마의 신(窯神)’이라고 칭하며 조상신으로 섬겼는데, 이는 화로나 불가마에 석탄을 사용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 제당업


지역에 따라 제당업자들도 노군을 조상신으로 숭배했다. 특히, 설탕을 끓이는 일을 하는 직공들이 노군에 주목했는데, 이는 설탕을 끓일 때 화로를 사용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전술했듯이 노군을 ‘화로의 신(爐神)’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 방앗간


방앗간에서도 노군을 신성하게 여겼다. 일례로 방앗간에는 하나의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채찍을 손에 든 사람은 절대 방앗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는 노군이 푸른 소(靑牛)를 타고 다녔다는 전설 때문이다. 채찍을 손에 들고 있으면 노군이 타고 다니던 소를 놀라게 해 달아나게 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방앗간에서 노군을 조상신으로 섬긴 이유는 방앗간이 맷돌을 돌리기 위해 소의 힘을 이용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노군은 전설상 소와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일례로  『서유기』에는 ‘독각시대왕(獨角兕大王)’이라는 마왕이 나오는데 이는 본래 태상노군이 타고 다니던 ‘푸른 소(靑牛)’였다. 독각시대왕은 ‘금강탁(金剛鐸)’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어 손오공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는데, 결국 태상노군이 도망쳤던 청우(靑牛)를 굴복시켜 다시 천상으로 데려가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민간에서 노군은 청우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사진 3  青牛를 타고 있는 老子 銅像(安徽省 渦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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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靑牛를 타고 있는 老君(清乾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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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자 직공


말에 편자를 박는 일을 하는 장인(匠人)도 노군을 조상신으로 숭배했다. 이들이 노군을 섬긴 이유도 역시  『서유기』에서 노군이 청우(靑牛)를 굴복시켜 코에 고삐를 끼우고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노군에게 소나 말을 복종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 조상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 걸인(乞人)


거지는 구걸을 생업으로 삼는다. 중국 역사상 거지들은 송원(宋元) 시기 이래로 대부분 조직을 갖추었다. 그 조직은 매우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고, 구걸 방식에 따라 다양한 양태를 보였다. 문파(門派)에 따라 구역은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고, 위계질서 또한 엄격했다. 또한, 범단(范丹), 주원장(朱元璋), 공자(孔子) 등 숭배했던 조상신 또한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했다. 이들이 노군을 조상신의 하나로 섬긴 것은 함곡관(函谷關)을 지나 서쪽으로 유사(流沙)를 건너 떠돌아 다녔다는 이미지에서 유래하였다.


【중국 행업신 이야기 동업자들의 세속화된 신성 10

 

박경석 _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교수

 

                                                

1) 아래의 노자에 대한 언급은 张作舟, 老子老君信仰的历史考察, 『中華文化論壇』 2014年 第3, 101~104. 참조.


*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8, 174쪽.
李喬, 『行業神崇拜 : 中國民衆造神史硏究』, 北京出版社, 2013.8, 176쪽.
http://baike.baidu.com/item/%E8%80%81%E5%AD%90%E9%AA%91%E9%9D%92%E7%89%9B%E9%93%9C%E5%83%8F
http://bbs.artron.net/thread-3752840-1-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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