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SSN 2508-2884 (Online)

관행 톡톡
9월호
한반도와 연결되는 중국 길림성의 매집철도 _ 김지환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

매직철도.jpg


매집철도(梅輯鐵道)는 중국 길림성 매하구(梅河口, 현재의 해룡현)로부터 집안(輯安, 集安)에 이르는 철도로서, 길림성 동남부를 관통하는 노선이다. 매하구를 출발하여 사가, 유하, 타요령, 오도구, 삼원포, 포통구, 간구, 통화, 철창, 과송, 석호, 양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집안에 도달하며, 총연장 251킬로미터에 달한다.

    

이 노선은 압록강철교를 넘어 한반도로 연결된다. 집안은 압록강 오른편 기슭에 위치하여 북한의 만포(滿浦)와 강을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한중 교역에서 연계운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철도를 타고 계속 나아가면 압록강철교를 건너 평양-만포 사이의 철도를 종관하게 된다.

     

일찍이 1927년 장작림의 봉계군벌 동북교통위원회는 조양진에서 유하, 통화, 압원을 거쳐 임강현성에 이르는 철도 노선의 부설을 계획하였다. 이밖에 중일합판으로 휘남현 삼송강탄광을 개발한 이후 탄광을 거쳐 유하와 통화를 지나 임강에 이르는 노선의 부설계획도 수립하였다. 비록 1931년 만주사변으로 말미암아 실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매집철도의 부설 및 노선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만주국이 수립된 이후인 193510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만주국 화폐 8,500만 원의 예산으로 철도의 부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철도 부설공사는 세 구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1구간은 매하구에서 통화에 이르는 구간으로서, 1937314일에 완공되어 개통되었다. 2구간은 193821일에 부설공사를 시작한 통화에서 철창에 이르는 구간으로서 같은 해 11월 운행을 개시하였다. 3구간은 철창에서 집안에 이르는 구간으로서, 193831일에 부설을 시작하여 1939910일에 운행을 시작하였다.

     

1939101일 매집철도 전 노선의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만주국 총리대신 장경혜가 참석하여 압록강철교 위에서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장경혜는 철도 노동자가 사용하는 쇠망치를 들고 레일을 세 차례 내려쳐 레일의 부설이 완료되어 정식으로 열차가 개통되었음을 선포하였다.


매집철도는 만포철도를 통해 한반도와 연결되었다. 만포철도는 평안북도의 지역 개발을 위해 부설된 철도로서, 평안북도 최북단 지역, 중국과 국경을 접한 압록강 상류 만포에서 평안남도 순천까지 299.9킬로미터에 이르는 노선이다. 1932111일 순천 방면의 부설공사에 착수하여 193921일 강계-만포 간 공사를 끝으로 완공되어 개통되었다. 만포철도가 완공되자 매집철도와 상호 연결되어 한반도에서 직접 중국 집안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매집철도는 부설 과정에서 만주국 화폐로 총 26,576,387원이 투여되어, 1킬로미터당 평균 105,595원이 소요된 셈이다. 철도 궤간은 1.435미터의 표준궤이다. 철도 부지로 점유된 토지는 총 20,937,302이며, 사용된 토석의 수량은 524.5에 달하였다.

      

부설공사에 동원된 노동력은 약 213만 명이었으며, 노동자 한 사람당 2.6를 완성한 셈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대부분 천진과 산동지역 출신이었다. 하루 노동량은 무려 14시간에 달하였으며, 식사도 절인 야채에 콩과 옥수수로 만든 국수가 전부였다. 숙소는 천막으로 얼기설기 만든 임시거처에 불과했으며, 노동 복장은 마대나 시멘트부대 등으로 만든 허름한 것이 전부였다.

      

항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194610월 국민정부가 매집철도를 수복하였다. 그러나 19475월 국민정부군이 동북지역에서 철수하자 통화는 중국공산당의 세력 하에 편입되었다. 이에 매집철도 역시 중국공산당의 관할 하에 편입되었다.

       

19471028일 중국공산당 철로국은 매집철도를 조속히 복구하기 위해 매집철로입공위원회를 설립하고 그 아래 공정처를 두었다. 공정처 아래 매통과 과송 2개 공정대를 조직하여 해당 구간에 대한 복구작업을 진행하였다. 매집철도는 8개월여의 시간을 거쳐 복구를 완료하고, 마침내 1948128일 전 노선에 걸쳐 열차를 개통하였다.



중국문화오디세이 20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중국학술원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 이 글에서 사용한 이미지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https://lrl.kr/haap

프린트 복사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