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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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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이재민 구제에서 침략의 수단으로 변모한 창석철도 _ 김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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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철도(滄石鐵道)는 중국 하북성을 동서로 횡단하는 철도 노선이다. 이 철도는 경한철도(京漢鐵道)와 연결되어 산서성에서 생산되는 석탄 등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중요한 노선이기도 하였다.

  

일찍이 1920년 가을 북양군벌정부 교통총장 엽공작(葉恭綽)은 당시 화북지역 일대에 만연한 기근으로 주민들이 도탄에 빠지자, 철도 부설을 통해 빈민을 구제한다는 취지로 창석철도의 부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철도는 석가장(石家莊)에서 고성, 진현, 심현, 무강현, 투진을 거쳐 창주(滄州)에 이르는 총연장 221킬로미터의 노선으로 계획되었다. 1920111일 석가장에서 정식으로 부설공사에 착수하였다. 19211월 교통부는 창석철도로공처를 설립하고 이대수(李大受)를 처장으로 임명하였다. 1년 후 로공처를 공정국으로 변경하고, 심기(沈琪)로 하여금 국장을 겸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19225월 자본 부족 등의 이유로 부설공사는 일시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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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 창석철도 

    

19297월 국민정부는 손문의 유훈을 실행하기 위해 철도부를 설립하고, 이와 함께 전국에 걸쳐 철도 부설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때 가장 시급히 부설해야 할 철도로 창석철도가 선정되었다. 철도를 부설하기 위한 자본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자본 화창공사(華昌公司)의 대표 이치요시 데쓰오(市吉徹夫)와 차관계약을 체결하고, 1,000만 엔의 차관을 도입하기로 합의하였다. 차관 계약을 체결한 이후 6개월 이내에 철도의 부설공사에 착수하여 2년 내에 완공하기로 합의하였다.

   

차관의 이자는 8()로 정하여 20년 내에 상환을 마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국민정부 철도부는 차관계약이 일본 측에 지나치게 유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며 외교부에 항의서를 제출하였다. 철도 부설이 계속 연기되면서 마침내 19354월 철도부는 차관계약 및 공정국의 철폐, 그리고 화창공사와의 차관계약을 파기한다고 선언하였다.

   

하북성 일대는 토지가 비옥하여 농산물의 생산이 풍부하였으며, 특히 면화의 생육에 적합하였다. 일본은 자국 최대의 공업인 방직공업의 발전과 군수품의 수급을 위해 하북성 면화에 주목하였다. 따라서 창석철도의 부설은 면화의 생산과 운송을 확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더욱이 하북성을 포함한 화북 일대에서는 면화 이외에도 석탄과 철광석, 오금 등이 다량으로 산출되었다. 그럼에도 하북성 남부 40여 현을 동서로 관통하는 철도가 부재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산서 동부 및 하북성의 석탄과 면화, 식량 등의 운송은 상당 부분 운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화북 일대의 화물 운송과 경제 발전을 위해 창석철도의 부설이 시급한 현안이 아닐 수 없었다.

   

경제적 효용 이외에도 창석철도의 부설은 군사적으로도 매우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창석철도는 하북성 내지를 관통하여 진포철도와 접속하여 천진에 도달하며, 서로는 정태철도, 동포철도와 연결하여 섬서성과 산서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으로서는 이 지역에서 군사적,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석가장과 동부 연안을 통하는 운송로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일본정부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로 하여금 덕주(德州)에서 석가장 사이의 구간을 측량하도록 지시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 화북지역이 일본의 판도로 넘어가자, 일본은 산서성의 석탄을 비롯하여 화북지역의 농산물, 광물 등을 약탈하기 위해 석덕철도(石德鐵道)의 부설을 추진하였다. 특히 산서성의 석탄을 확보하기 위해 창석철도의 기점을 석가장으로부터 덕주로 변경하였으며, 이로 인해 석덕철도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일본은 194071일부터 현지 주민들을 징용하여 철도의 부설에 동원하였으며, 같은 해 1115일 전 노선을 개통하였다. 1941년부터 이 철도의 운영을 일본자본의 화북철도주식회사로 이양하였다. 이 철도는 화북지역과 화동지역을 잇는 중요한 철도 노선의 일 구간이 되었다.

   

이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이후 이 철도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19471117일 진찰기변구철로국(晋察冀邊區鐵路局)이 설립된 이후 석덕철도의 복구에 나서 마침내 1948215일 전 노선에 걸쳐 다시 열차를 개통하였다. 1985년 철도 전 노선에 걸쳐 복선화를 완료하였으며, 덕주시연료공사에 매각되어 석탄 운반용 전용선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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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창석철도 실측 건설도

  

    

중국문화오디세이 19


김지환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교수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의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 1. https://www.163.com/dy/article/I15D6KVQ0553MUOM.html

사진 2. https://book.kongfz.com/233430/1879619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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