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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08-2884 (Online)

갯벌로에서
1월호
2024년, 새로운 글로벌 경쟁전략 시대의 도래와 한국의 준비 _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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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한미중의 새로운 관계

 

숨차게 달려왔던 일 년이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밝아왔다. 2023년 한 해가 유독 길게 느껴졌던 건, 지난 6년 정도의 시간이 우리를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의 발발 이후 미·중 전략경쟁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전염병과 전쟁 등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적 악재들이 겹치면서 몰아친 소용돌이에 그대로 휘말려 버렸던 2023년은, 그래서 독립된 일 년이 아닌 지난 6년간의 연속된 과정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지난 6년의 시간은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6년은 앞으로도 7, 8...으로 연장될 것인가? 지난 6년의 연속 선상에 있을 미래는 어떠할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4년 새해를 시작한 지금, 우리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은 변화 없는 미래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상상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의 일련의 사건 혹은 현상들, 즉 미·중 갈등과 경쟁의 격화, 세계적 전염병의 발발, 현실이 되어버린 전쟁, 세계화 시대의 퇴조, 경제와 안보를 합치시키는 전략적 사고와 세계적 공급망의 재편, 가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체제 대립의 표출, ()중국 봉쇄와 디커플링의 시도 등은 파편화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되어 오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라는 세계 질서의 기본 축의 약화로 유발된 것이다. 때문에 현재의 미·중 전략경쟁은 세계 질서의 구조적 변동으로 인식되면서 강대국 세력전이론과 신냉전 담론 등이 제기되고, 현재의 국면이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의 상황으로 빗대어지기도 하였다. 현시점에서는 어떠한 이론적 해석과 입장이 옳은 것인가를 결정할 수는 없으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경쟁과 갈등이 관리되지 않는다면 향후 세계가 파국적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을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래 위기상황에 대비하고 이를 피해가기 위한 이성적 대안들이 현실에서 모색되는 증후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미·중 간 경쟁과 충돌 국면에 변화가 가시적으로 포착된 것은 2022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당시 양국 정상은 모두 긴장을 관리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소통과 대화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가시적 효과 없이 1년이 지났고, 작년 1115일에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다시 한번 더 관계개선과 소통 채널 구축을 통한 위기관리의 중요성에 합의했다. 양국 정상은 경쟁 격화가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동일한 입장을 확인하고 경쟁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양국 군사 소통 재개 및 제도화를 합의했다. 이러한 미·중 정상들의 합의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들은 양국 관계의 파국을 막았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강대국 패권 경쟁이라는 본질적 속성에는 변한 게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중 관계 개선은 일시적 현상이며 구조적 악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세하기는 하나,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 지난 미·중 정상회담의 내용을 토대로 경쟁과 함께 위기관리의 노력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 억제정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내년 대선 요인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212일 미국 하원 중국특별위원회는 관세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최혜국 대우 박탈 및 반도체 등 분야에서 중국의 글로벌 시장 장악 저지를 위한 긴급 조치촉구 등의 내용을 담은 대중(對中) 정책 종합 보고서를 공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저가의 중국산 범용 반도체 견제 방안을 고심 중에 있음을 보도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에 맞서 미국 청정 에너지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태양광 제품 등에 대한 관세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그러나 1221일 미 합참의장과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참모장이 영상 회담을 개최하고 글로벌 및 지역 안보 현안에 대해 논의를 함으로써 14개월 만에 미·중 고위급 군 당국간 소통 채널이 복원됐다.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의 ·중 정상회담 이후 공중과 해상에서 중국의 위험 행위가 중단됐다는 평가가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한미일 3자 연대 강화의 반대급부로 북··러 협력 관계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중국이 현시점에서 미국을 과도하게 자극할 수 있는 3자 연대나 중·러 관계를 동맹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더 힘을 얻어가고 있다. 공고성이나 지속성의 측면에서는 아직 불확실하나 군사적 충돌이나 위기를 관리하고 관계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미·중 간 노력이 현재 실행되고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이러한 흐름을 볼 때, 미국의 대중 정책이 경쟁 우선에서 경쟁과 위기 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변화됐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202312월은 2018년 이후 지속되어 오던 일련의 흐름이 방향을 틀어가는 시작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향의 흐름을 한국도 빠르게 포착하고 새로운 전략적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세계적 추세에 따라 한국의 외교전략도 변화됐다. 그간에도 한·중 관계는 미·중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으나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면서 한·중 관계는 이전보다 미·중 관계에 의해 더 많은 것이 결정됐다. 2022년에 출범한 신임 한국 정부는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한미 동맹에 대한 전략적 명확성을 지향했다. 그것은 미국 국빈방문과 워싱턴 선언’, ·일관계 개선, ··3자 정상회의 및 캠프 데이비드 선언의 과정에서 명확하게 표출됐다. 그간의 한국 정부의 외교 전략과 행위가 지난 6년간 국제정세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면, 이제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변화에 따라 한국 정부도 새로운 대중 정책과 관계 수립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난 12월의 변화는 이전의 한국 정부의 대중 정책을 생각했을 때 인상적인 지점들이 있다. 특히 경제교류 분야에서의 양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감지됐다. 12월에 들어와 한중 외교부 국장 회의, ‘한중 경제협력 종합점검회의', ‘한중 기업인 및 전직 정부 고위인사 대화등 한중 정재계 인사들의 회의가 연속해서 개최되고 있으며, 업통상자원부는 중국 상무부와 1차 공급망 핫라인 회의를 열고 요소 등 주요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 구축의 노력을 시작했다. 한중 정재계의 비즈니스 비자 면제 요청, 경제협력 활성화 과제 건의 등 경제 교류 활성화를 위한 요구도 적극적으로 정부에 제기되고 있다. 또한 외교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 등 한국 신임 정부 관료 후보자들의 한중 관계에 대한 발언에 변화가 보이면서 한국 정부의 외교기조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인가에 대한 기대도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중국이 한국과 가장 가까운 경제협력국임을 유념하겠다는 발언을 했으며, 외교부장관 후보자도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한중 간 협력, 마약 음료 등에 대한 대처를 위한 한중 경찰 협력, 한중 지방 도시 차원의 협력과 교류 등 다양한 영역과 차원에서의 교류도 활성화 되어가고 있다.

 

현재의 변화들은 매우 불확실하고 또한 미세하다. 더군다나 미국의 대선, 한국의 총선을 비롯해 주요 국가들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 올해의 국제정세는 그 누구도 정확하게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인류가 걸어온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방향의 설정이다. 병행되어야 할 것은 현재의 변화에 대한 아주 세심하고 면밀한 추적과 분석이다. 그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관계와 정세를 고정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변화의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우리의 오류는 변화를 포착하지 못하고, 변화를 꿈꾸지 못하는 것에 있다. 지금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해 더 큰 폭과 정도로 상상하고, 그것을 우리가 주도하는 계획을 세울 때이다. 2024년은 지난 6년과 매우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정주영 _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상임연구원



                                                           


이 글에서 사용한 사진은 필자가 제공한 것으로 출처는 다음과 같음.

사진1. 게티이미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639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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